한국분 한국인 한국놈
미국에 살면서 나는 돈 많고 독하기로 세계에 소문난 유태인(jewish)들을 접 할 기회가 많았다. 내가 4년 동안 유태인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이다. 내 가 유태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우리 민족과 유태 민족은 삶 과 사고의 방식에 있어서 공통점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어느 정도인가 하면 미국 사람들이 우리 교포들을 보고 `제2의 유태인`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좋은 의미보다, 독하고 인정 없고 수전노라는 나쁜 의미가 더 짙게 배어 있다. 유태인들도 이제 가능 없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간 흑인 빈민촌에서 살 아 남은 유일한 민족이 바로 코리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 할렘가에 가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유태인들은 한물간 생선도 돈을 받고 팔았지 만 마음씨 좋은 생선 가게 한국 아줌마들은 이웃 흑인들에게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물이 간 생선과 과일을 공짜로 나눠주며 `이웃 사촌`의 정신을 몸소 실 천하며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다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생활에 관해 신이 내린 규범을 율법이라고 하는데 유태인들은 이 율법과 자기 생활과의 일치를 지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들만이 신이 선택한 백성, 즉 엘리트(elite) 민족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흑인 동네에서 돈을 벌면서도 그 잘난 선민 의식 때문에 흑인과 동화되지도 못하고 화목하지도 못한 것이었 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경제, 외교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떡 주무르듯 하면서 도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 못지 않은 질시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보고 느낀 바로는 우리 민족도 유태인 못지 않게 총명함과 부 지런함을 지닌 민족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총명한가 하면, 이제 우리 교포 자녀 들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대통령 상을 받거나 명문 대학 졸업식에서 각 부문의 최고상을 받는 일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고, 얼마나 부지런한가 하면 뉴 욕커들이 뉴욕에서 같이 살고 싶은 민족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이구 동성으로 부지런하고 깨끗한 코리언들을 뽑을 정도다. 다만 유태인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 는 것은 협동성과 검소함이다. 너무 똑똑해서 잘 뭉치지 못하고, 돈을 벌면 저축 을 하지 못하며 펑펑 잘 쓴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유태인들에게는 없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이다.`정`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뭐라 꼭 집어 설명할 수도 없지만 영어 로도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면 굳이 `초코파이`의 광 고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정`의 민족이다. 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귐`에서 나오는 애착같은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우리 교포들을 보고 사귀기는 힘들지만 한번 사귀고 나면 다시 끊을 수 없는, 매력과 마력 사이의 어떤 힘을 느낀다고들 한다. 내가 감히 우리 민족을 유태 민족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정 때문이다. 정이 아주 없어져서 다시 대할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을 경상도 말로 `정내 미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정을 중요시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이 표현은 거 의 욕에 가깝다. 유태 민족이 독일 나치스(Nazis, 국민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에 의해 6백만 명이 학살 당해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배경에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정내미가 떨어지게 만든 유태인들의 거만함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5천 년 역사의 소용돌 이 속에서 살아남아올 수 있었던 힘의 비결이 바로 이 정이라는 것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 보면 `정을 준다`는 말의 반대는 `멍을 준다`라고 한다. 남에게 멍이나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온 것은 바로 우리 `백의 민족`이 지금껏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저력이었다. 내가 새삼 우리 민족이 정의 민족이라고 피부로 느끼는 것은 MBC 라디오의 이종환과 최유라가 진행하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프로가 주는 감동 때문 이다. 이 프로에는 매주 한번씩 불치의 병에 걸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코 너가 있는데 10분 남짓한 방송이 나간 지 하루만에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의 돈이 모금되고 있다. 지금의 심각한 불경기를 감안한다면 엄청난 액수임이 틀림없다. 이 프로를 들으면서 내가 받은 또다른 감동은 이러한 정으 로써 판국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도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사람이 병에 걸리듯 사회도 병에 걸리는데 이것을 사회 질환이라고 한다. 우 리 사회의 고질적 질환을 `한국병`이라고 하는데 누가 그 병의 종류를 조사했더 니 무려 120여 가지나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종합 병원`인 셈이 다. 병의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병체의 조직, 기관의 형태, 기능의 변화를 조사, 규면하는 학문을 병리학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을 도입하여 `사회 병리학`이라는 분야가 생겼다. 우리 사회의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사회 병리학 전문가가 필요 한데 솔직히 말해 그것에 관해 개뿔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아무리 병 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꼭 고쳐야 된다는 것뿐이다. 1백2십 가지가 아니라 1천2 백 가지의 병에 걸렸더라도 사랑하는 제 나라를 살려야 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 가 아닌가? 그래서 `1백2십 가지나`가 아니라, `1백2십 가지밖에` 안 걸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태인들은 율법을 지키며 하루하루 를 사는데 특히 십계명에서 말한 `안식일`은 특별나게 지키고 있다. 유태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몇 가지나 될까? 백 가지? 천 가 지? 아니면 만 가지? 어림없는 소리다. 그들이 안식일에 지켜야 할 일은 책으 로 따져 육법 전서 분량이다.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랍비(rabbi)라고 불리는 율법 선생한테 가서 일일이 확인해가며 살아야 하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 다. 신에 대한 약속과 애정 때문이다. 안식일 하나만 봐도 이 정도인데 그럼 전체 율법서는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가고 남는다, 유태인의 지혜서라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탈무드 Talmud)는 우 리가 알고 있듯이 단행본 몇 권 정도가 아니라 컨테이너 한 대가 와도 다 못 담 을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한국병은 양으로 따지자면 새 발 에 피도 안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프랑스 대학은 등록금도 없고 교육의 질 또한 세계적 수준이다. 하 지만 프랑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 수능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어려운 `바카롤레아(고등학교 졸업 자격고시)`를 치러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 이 제 나라에 대한 애정과 21세기를 향한 기대와 비전만 갖고 있다면 한국병이 그 질과 양 모두가 아무리 심각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먼저 증상을 자세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그와 함께 배설물을 조사해 거꾸로 추리해 나가는 방법도 있다. 이 두 가지 방 법을 다 써서 우리 사회를 진단해 보면 부끄러운 모순과 비리들이 우후 죽순처 럼 드러날 것이다. 애국적 자아 비판을 통해서 그것을 숨기지 않고 밝히는 것이 변환기이자 변혁기이며 과도적 혁명기인 지금의 위기에서 살아 남기 위한 유일 한 방법이다. 나의 심한 비판과 질타에 대해 “때리지 말고 말로 해!”라고 불평을 늘어놓 을 사람들도 있을 줄 안다. 하지만 지금은 말로 위로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다. 한번 부러진 뼈가 다시는 부러지지 않듯 우리가 병을 치유하면 더욱 강화 면역 성과 튼튼한 체질을 21세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 있다면 이정도 사랑의 매는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유태인보다 더 우수한 민족, 중국의 56개 민족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머리 좋 기로 소문난 우리 `백의 민족`이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제 나라를 구하러 119 구조 대원처럼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을 한국인 이다.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하며 노래 부르는 구경꾼들은 한국놈이다. 그럼 한국분은? 그건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무사히, 그리고 성 공적으로 이 나라를 구했을때 사람들이 불러 줄 아름다운 이름이다.
마지막 시도
어느 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 순진한 계집애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가난에 한이 맺힌 아버지로부터 너는 꼭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 왔다. 그곳에 털이 나기 시작할 때 즈음 되어 그녀는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 몇 년 간은 낮엔 공장에서 일하며, 밤엔 열심히 야간 학교를 다녔지만 차츰 돈맛을 알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 불타는 향학열을 짭짤한 잔업 수당과 엿 바꿔 먹었다. 그 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 공장 저 공장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정착 한 곳이 바로 술집. 아무리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해봤자 룸살롱 팁만 못한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 버렸다. 공장에서 모은 돈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뜯어 고친 그녀는 화류계에서 이름을 날리며 돈을 많이 벌었다. 돈이 생기면 처음엔 은행 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런 그녀를 가만히 놓아주지 않았다. 먼저 옷 이 날개라는 옷집 영업 사원의 감언에 속아 의상에다 과감한 투자를 했다. 작으면 남들이 깔본다기에 자기용도 V6로 한 대 샀고 남은 돈과 은행에서 대 출받은 돈을 합쳐 강남에 삐까번쩍한 빌라도 한 채 구입했다. 남들에게 나도 잘 나간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골프라도 배워볼까 생각하고 있는 차에 갑자기 술집 이 장사가 안되기 시작했다. 불황 때문이었다. 급한 김에 옛날 단골 손님들에게 놀러오라는 전화를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요즘 술 값 세일하고 팁 저렴한 곳이 주위에 널렸는데 굳이 비싼 술집에 갈 필요 있느냐고 되물었다. 은행에 이자 갚 을 날이 다가 오면 월변을 내었고 또 그 월변은 일수를 빌려서 갚았다. 그러다 보니 느는 것이 빚이었다. 결국 빚잔치를 하기 위해 집을 내어놓았지만 부동산 경기도 밑바닥이라 똥값에 처분해야만 했다. 다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은 몸뚱이 하나뿐. 설상 가상 의사로부터 위에 큰 탈이 났으니 계속 술을 마시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술집 여자가 술을 못 마신다니, 당연히 술집에서 쫓겨났고 다른 집에서 받아 줄 리 만무했다.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존심` 때문에 못하겠고 그럼 이 여자가 마지막 갈 곳은? 내가 밑도 끝도 없이, 70년대 목욕탕 때밀이와 호스테스의 이뤄질 수 없는 사 랑을 그린 영화 <영자의 전성 시대> 같은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데 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사화가 바로 이 불쌍한 영자 꼴이 났기 때문이다. 당신 같으면 이 여자에게 어떻게 조언하겠는가? 이 여자에게 천호동이나 588같은 사 창가로 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두 가지가 모자라는 사람이다. 하나는 이 여자에 대한 사랑이 모자라고 또 하나는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다. 요즘 사창가는 10대 아니면 20대 초반의 `영계`들이 판치는 세상이란 것도 모르나? 몸조리 잘해서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1 더하기 1은 2` 밖에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다. 이 바닥에선 한번 `퇴물`로 찍히면 영원한 퇴물이 다. 다시 술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잘해봤자 `새끼 마담` 정도다. 팁도 제대로 못 받고 허울만 좋은 마담이다. 조금 `존심`이 상하더라도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라 고 말하는 사람은 순진하다 못해 여자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사람이다. “여자는 오직 자존심 하나만으로 살다가 그 자존심을 갖고 무덤으로 간다.” 올해 연세가 70이 되신 내 어머니께서 이제 자존심 그만 좀 죽이고 아내하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내게 일러주신 말씀이다. 그러면 어떤 충고가 가장 현명한 것일까? 당신이 이 여자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시골에 있는 아버 지가 자기 딸의 이런 소식을 들었더라면 당장 택시를 대절하여 서울로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붙잡고 “아이구! 이제 우리 집안 망했네! 이 년아! 내가 돈 벌어 잘살라고 했지 언제 이렇게 몸 팔아 돈 벌라구 했냐!”며 대성 통곡한 후 바로 그녀를 개 끌 듯이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내 글을 읽고 이렇게 궁금해했을는지 모른다. “당신은 망해가는 이 나라를 살려야 한다면서 변변한 해결책은 하나도 내놓 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그래도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이다. 책을 다 읽고도 작 가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를 모르는, 센스가 발바닥인 일명 `형광등`들도 그 수 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책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속수 무책이다. 우리가 지금껏 겪은 일련의 불행하고도 불쾌한 사태들은 이제 다 종료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진 행중이기 때문이다. 화산이 폭발할 띠는 다 폭발할 때까지 그냥 놓아두는 수밖 에 없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더 많은 재벌 회사가 몰락하고, 더 흉측한 사회문제들이 일어나고, 더 이해할 수 없는 집 단적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왜? 콩을 심어 콩을 추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냉전 시대부터 전 예산의 25퍼센트를 국방비에 투자해가며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린 미국은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에서 야 그 결실을 맺고 있다. 그로 인해 넘쳐나는 신무기들 덕택에(?) 앉아서 평화롭 게 쉬고 싶어도, 전쟁만 나면 한 달 굶은 개처럼 어디든지 뛰어 나가야 하는 호 전적인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방 후부터 박정희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바쁘다고, 부 끄럽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등의 온갖 이유로 은폐했던 우리의 허물과 죄와 수치와 모순들이 지금 비온 후의 죽순처럼 그 찬란하고도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 앞에 나타내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10년? 20년?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예를 들어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의 의미를 한번 새겨보자. 한번 망친 교육은 백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피해 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말이 쉬워 백 년이지, 우리가 지금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하면 우리 자식들의 자식들 세대에서 그에 걸맞는 결과를 보게 된다는 말이 다. 그럼 정치는? 또 경제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고2 때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나를 보시며 담임 선생님께서 말 씀하셨다. “그래, 지금 공부 열심히 해두면 고3 때 좀 수월하겠지.” 선생님의 갑작스런 칭찬에 우쭐해하며 난 이렇게 물었다. “고3 때 열심히 하면요?”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야 재수할 때 좀 편하겠지.” 항상 좋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나쁜 경우도 염두에 두고 살아라는 의미 있는 유머였다. 내가 이제 우리 세대 때에는 “다 글렀다!”고 말하니까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삼세 번`이 나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려면 `도학`으로써 인심을 바르게 하고 왕도 정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의 대표적 개혁 사상가인 정암 조광조의 개 혁이 있었다. 그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목숨처럼 지켰던 원칙주의자요, 왕도를 세 워 이상 국가 실현을 꿈꿨던 이상주의자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겠다며 목숨을 건 개혁을 감행했던 실천주의자였다. 물론 그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반대자들의 모함에 빠져 젊은 38세의 나이에 풍운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는 왜 개혁에 실패하였을까? 역사가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한 다. 개혁의 강도가 그 당시의 사회가 감당하기에 너무 `약발이 세었던 것`은 아 니었을까? 사람들은 그를 `화태`, 즉 `화를 낳는 사람`이라고 부른 것만 봐도 얼 마나 그의 개혁 의지가 강했는지 알 수가 있다. 두 번째는 19세기 말, 나라가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풍전 등화의 위 기 속에서 독립 협회를 통해 주권 수호와 민권 확립의 기치를 내세웠던 서재필 의 개혁 운동이 있었다. 독립 신문을 통한 대중 계몽 운동으로부터 시작한 그 개혁 운동이 막을 내릴 때까지 그는 수많은 서구적 선진 사상과 문물을 우리 사 회에 전파하였다. 그가 개혁에 실패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가 주도한 개혁의 수준이 그 당시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비해 너무 높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를 `선각적 지식인`이라고 부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개혁을 추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마 그가 1백 년 쯤 늦게, 다시 말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개혁을 추진했더라면 그 수준이 딱 맞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국 회 부회장으로 있는 오세응 의원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아쉬움을 토했다. “만약 독립 협회의 개혁 운동이 성공하여 구한말에 근대 국가가 성립되었더 라면, 그 후 수난과 분단으로 점철된 민족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1백 년만의 선택이요, 민족사의 발전을 좌우할 `신한국 창조`의 개혁 운동이며, 21세기 한국의 번영을 가늠할, 창조적 개혁 운동이라고 자화자찬 한 YS의 개혁 운동이 그것이다. 아시다시피 한마디로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 우스운` 개혁 운동이었다. 굳이 평을 하자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일방적 개 혁이었기에 국민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하지도 않은채 끝나고 말았다. 철학, 도덕, 제도적 장치라는 개혁의 `삼박자`가 결여된 밴드 없는 잔치였고, 모두를 초대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썰렁한 파티였다. 조광조처럼 화끈하 지도 못했으며 서재필처럼 수준 높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문민 정부의 개 혁 실패를 무지 아쉬워하고 있다. 그것이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구습을 타파하고 왜곡된 사회적 분위기를 혁신하여 정의 사회로 갈 수 있었던, `9회말 2사후` 같은 우리 세대의 마지막 찬스였기 때문이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 패자는 패전의 멍에를 져야 한다. 하지만 이 멍에를 우리 의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국가 대표팀이 졌다고 해서 청소년 대표 팀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라는 서양 속담을 믿고 우리는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 걸어야 한다. 멕시코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삼천리 반도 금수 강산`은 못 물려줄지라도 멕시코같은 나라를 상 속 해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나가다가 망한 나라`를 멕시코라고 하지 않고 `제2의 코리아`라고 부를지도 모른 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픈 심정으로 나의 자아 비판을 끝맺으려 한다. 해결책 을 기대하고 이 책을 사 본 많은 독자들의 허탈한 마음을 헤아리며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긴다. 너무 원론적이고 설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 충고 는 그런 것이 아닌가? 제목은 거창하게도 <아이들에게 죽어도 멕시코를 물려주 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십계명 Ten Commandments for those who swear on their sword that they won't leave a Mexico to their children>이다.
1.원점으로 돌아가라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인간은 원래 행복한 자연 상태에 있었으나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불행한 사회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나는 우 리 나라 사람들에게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 영화 <백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를 보면 잘못된 미래를 돌리기 위해서는 그 미래가 시작된 과거의 한시점, 즉 원점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주장을 편다. `일리`가 있 는 이론이다. 우리의 원점은 어디인가? 나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리 가기는 싫다. 해방 직후로 하면 어떨까? 가진 것 은 아무것도 없었어도 모두가 희망에 부풀어 만세를 불렀던 그때. 하지만 내가 말하는 원점은 좀더 깊은 시점을 상징한다. 돈을 멀리하고 이웃과 학문과 평화 를 사랑했던 그때도 좋고, 개구리 잡고 물장구 치고 보리밥 먹던 어린 시절도 좋다. 우리 마음 속에 찌들어 있는 세속적 욕심과, 나만 옳다는 아집과,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이 때처럼 덕지덕지 끼지 않았던 그러한 시절로 `하나, 둘, 셋,넷 ` 구령에 맞춰 모두들 돌아가라는 말이다. 돈에 환장한 이 미친 세대를 자기 아 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빼고.
2.다 포기하라 배가 풍랑에 휩싸였을 때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 다에 던져버려야 하듯, 침몰하는 우리 사회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소 유와 권리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 쫓기는 도둑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훔친 장 물을 던져버리고 가볍게 뛰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마음 속에 감춰둔 장물도 모 두 분리 수거하여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돈 벌어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도 포기해야 한다. <마지막 시도>는 성적 으로 불능이 된 교수를 여제자가 살려낸다는(?) 황당한 내용의 성인 연극이다. 이 교수가 발기 불능이된 원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 시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이로 인한 섹스 공포증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를 거 품 신화에 빠지게 했던 성장 중독증과 분에 넘쳤던 과도한 의욕들을 이제 다 포 기하란 말이다.
3.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라 일본놈들이 목숨처럼 철저하게 지키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의 실패를 기록으 로 남겨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전임자가 인수 인계를 할 때 그가 이 회사에 들어온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의 일기를 후임자에게 건네주는 것이 일 본 회사의 관례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빠짐 없 이 적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의 전철을 절대로 밟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정도 6백년 기념 타임 캡슐을 제작할 때 인천 세무 비리 사건을 다 룬 신문을 넣은 것은 아주 잘한 짓이다. 경험이란 수치스럽거나 자랑스럽거나를 떠나 다 소중한 재산이요, 경쟁력이다.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 겠다. “난 일기에 뭘 적을지 잘 모르겠네요, 이 사회를 망친 게 제가 아니라서요.” 모르긴 뭘 몰라. 우리가 바로 우리 사회를 망친 주범이요, 공범인데.
4.아이들 교육을 다시 하라 머리통이 큰 어른의 생각과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차 라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을 바로 교육시키는 편이 더 낫다. 내가 바라는 교육은 도덕 교육과 국적 교육이다. 도덕은 자본주의의 수문장이요 비밀 번호다. 도덕이 무너지면 자본주의는 골키퍼 없는 골대요, 해킹 당한 전자 은행이다. 또 도덕이 무너지면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도구적 가치가 본래적 가치로 전도되어 지금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도덕에는 `개인적 도덕`과 `사회적 도덕`이 있는데 내가 더 절실히 원하는 것 은 사회적 도덕의 회복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개인과 공동체 사 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갈등 중에서 사회 구성 원 다수와 관련되어 있어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도덕 문제를 사 회적 도덕 문제라 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도덕 문제는 공중 도덕의 문란, 자원 의 낭비와 과소비, 집단 이기주의,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풍토, 그리 고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고발 정신의 부족 등이다. 복 잡한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도덕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또 다른 교육은 국적 교육이다. 국적 교육이란 국가의 구성원, 즉 국민이 되는 자격을 얻게 하는 교육이요, 한마디로 애국심을 심어 주는 교육이 다. 이제 국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은 `세계화의 바다`에 빠져 살 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대한 미국`이나 `미 합 중국 서울 스테이트`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우리는 독립의 길밖에 없습니다.” “독립을 못 얻으면 어떻게 하느냐?” “죽음을 찾을 길밖에 없습니다.” “쪽발이 여학생이 하나를 알면 우리는 둘을 알고, 그 애들이 한 시간 공부하 면 우리들은 두 시간 공부해야겠다는 모질고 독한 결심을 가져라, 알겠나?” “넷! 명심하겠습니다.” 이건 전투하러 나가는 독립군들에게 하던 고참의 정신 교육이 아니다. 지금은 주위가 온통 국적 불명의 패션 거리로 변한 이화여대의 전신 배화학당의 한 기 숙사 사감이 개화기때 여학생들에게 행한 애국 교육의 한 장면이다. 우리 나라 여학생들의 애국심은 이 기숙사에서 싹이 텄고 나중에 3.1 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 운동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국적 교 육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게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서 이런 질문은 그만 받아야 한다. “아버지는 일본하고 축구할 때 전쟁 치르듯 하면서 마일드 세븐은 왜 펴요? 둘 중에 하나만 하세요.”
5.의식을 열어라 고인 물에 이끼가 끼듯 닫힌 세상은 갑갑하다. 우리 사회는 선입관, 편견, 흑 백 논리, 고정 관념 등의 경직된 사고로 인하여 사물의 실상을 정확히 볼 수 없 는 의식의 사각 지대다. 봉사 나라에서 더 이상 애꾸가 병신 취급 받아선 안된 다. 남은 한 눈이라도 똑바로 뜨고 시각을 교정하는 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성 경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면 영원한 세상에 들어갈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 식의 틀을 깨고 거듭나야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2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말라는 소리다. 같이 고민하며 연구해 보자고 해야 한다. 2라고 대답하면 이 아이는 죽을 때까 지 1 더하기 1이 무엇이냐고 다시는 묻지 않을 것이다. 인식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월급은 항상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는 월급이 해마다 줄어드는 회사도 많다. 회사 형편에 어려우면 감원을 하거나 월급을 줄이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월급이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물가도,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 살았으니 못 사 는 데도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똑똑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어올 것이다. “그럼 지금의 위기도 호기로 삼을 수 있겠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6.정의를 세워라 정의 사회 실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다. 쿠테타로 정권을 도둑질한 5공 정부가 내세운, 정말 얄궂다 못해 웃기기까지 한 모토이다. 하지만 본래 그 의미 는 심장이다. 사람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어야 멋있는 사람이듯 사회도 품위가 있어야 멋있는 사회가 된다.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가 바로 품위가 있는 사회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아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법 정의가 실천되 며,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정의롭게 서는 그 날, 우리 사회는 품위를 찾을 것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오랜 비웃음과 실소의 습관에서 벗어나 정말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7.구시대의 잔재를 버려라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 새 술을 헌 포대에 담으면 포대가 터지고 헌 술을 새 포대에 담으면 술 맛을 버린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던 많은 비리 와 부패 문화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2천만 원은 떡 값이 아니고 20억원도 축의금이 될 수는 없다. 산 사람을 죽일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우리의 장례 문화도 과감하게 고쳐 져야 한다. 세계를 둘러봐도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르는 나라 중에 잘사는 나라 는 없다. 결혼 문화도 마찬가지다. 키워준 것만도 고마운데 부모에게 돈까지 뜯어내어 치르는 결혼식은 축복할 일이 아니라 배은 망덕한 문화다. 음력 설도 우리의 설이 아니다. 음력은 병자 호란 당시 인조왕께서 청나라에 항복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인 사대주의적 역법이다. 세상에서 양력 설을 쇠고 또 음력 설에 사흘 동안 노는 나라는 우리 나라뿐이다. 구시대의 무거운 옷을 입고 변화의 시대를 향해 뛰려는 것은 갑옷을 입고 수영을 하는 것과 같은 짓이다.
8.위기를 직시하라 지루도 조루와 마찬가지로 병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위기 불감증은 병이다. 서양 속담에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안전하다` 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기에 사실 더 위험한 것이다. 가수 송대관이는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둔한 것일까? 곰의 후예들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웅담을 많 이 먹어 담이 커진 것일까? 아니면 혹시 위기 불감증 치료에 의료 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서일까? 버스 지나고 나서 울면 무슨 소용 있나? 우리 나라 사람 들은 걱정도 팔자라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렇게 말한다. `적게 걱정한 사람은 많이 울고, 많이 걱정한 사람은 적게 운다.`
9.책으로 돌아가라 책에는 길이 있다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 길을 모른다, TV 는 정보와 기쁨을 주지만 길은 가르쳐주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 읽는 법 을 지금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애들은 또 다시 미아가 되어 어두운 밤길을 헤매 게 될지 모른다. 미국 토크쇼의 스타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세계에서 개런티가 가장 비싼 여인이다. 하지만 TV가 만들어낸 스타답지 않게 독서 운동가로 활약 중이며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최대 적은 TV이다. 나의 소원은 미국을 다시 책읽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책이었으며,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이겨낼 의지를 길렀기 때문이다.” 15년 전 내 손윗동서는 결혼할 때 혼수 품목에서 TV를 제외시켰다. 나를 비 롯한 모든 가족들은 그의 튀는 행동에 손가락질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는 멀 리 앞을 내다본 `난 사람`이었다. 이제 제발 TV를 끄고 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 다. 방송국 돈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해도 되나?
10.서봉수처럼 살아라 서봉수는 다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 바둑 기사이다. 그는 타고난 바둑 천재도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배운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리고 그는 그 흔한 바둑 유학 한번 가보지 못했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영등포 뒷골목 바둑이 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잡초, 된장 바둑, 표범, 오뚝이 등의 숱한 별명이 붙 은 그의 바둑이 마침내 세계를 제패했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에서 14승을 올린 박찬호나 숙적 일본을 2대 1로 꺾은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의 그것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이번 제 5회 진로배 세계 바둑대회는 한.중.일 3국에서 각각 최고수 5명이 출 전하는 국가 대항전이었는데 그는 혼자서 중국 순수 5명과, 1명이 이미 탈락해 4명만 남은 일본 선수 모두를 이겨 버렸다.다른 한국 대표 선수들을 다 `벤치워 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이룩한 9연승 중, 역전승이 네 번, 한 집도 아닌 반집승이 세 번이었다고 전해진다. 신문에서는 이렇게 평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두들겨 맞아도 계속 고개를 들었던 그의 집념이 이룬 승리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 더도 덜도 말고 서봉수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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