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영남만인소 봉소 재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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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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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랫은 지난 9월 3일~4일에 있었던 <제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축제> 때 만든
<2010 영남만인소 재현 행사> 리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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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만인소 (사도세자 추존만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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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지킴이, 한국예총안동시지회, 안동청년유도회, 안동어린이 선비단,
웅부시조합창단, 예절학교, 노리누리가 함께한 2010 영남만인소 봉소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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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소 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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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疏首(또는 소두疏頭)가 소청疏廳 앞에 오른다.
소수는 하회마을 충효당(서애 류성룡선생 종택)의 류영하 종손이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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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향에 앞서 관수 세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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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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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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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두와 알자알자(ㅋㅋ 암마두마가 맡았습니다.)가 읍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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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청에 올라 독소 의례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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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가 상소문을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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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상소대개를 잡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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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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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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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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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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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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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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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封署)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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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에 앞서 상읍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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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읍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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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읍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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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양으로 가기 위해 순서되로 위치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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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안동 청년유도회 우병식 회장님)이 복장과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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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안동 청년유도회 우병식 회장님)이 복장과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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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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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이 집사자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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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내자, 봉소, 소궤, 소수, 장의, 독소 등의 순으로 서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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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싣기 전에 천으로 다시한번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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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싣기 전에 천으로 다시한번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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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마두마와 이야기 중인 노리누리 집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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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궤를 버스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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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이나고 웅부공원에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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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다 펴질 못했다.
100M를 훌쩍 넘어버리는 2010 영남만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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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기, 사소, 제소, 장의, 봉소 역할을 맡아주신 선생님들께서
만인소를 다시 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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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출, 알자를 맡는 암마두마^^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일시 : 2010년 10월 2일 오후 2시
장소 : 안동시 웅부공원
10월 2일 안동문화지킴이 김호태 대표님의 영남만인소 설명문의 일부입니다.
영남만인소는 조선시대의 상소의 한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상소는 한명이 상소문을 써서 올리는데 만인소는 한명이 아닌 약 일만명이 함께 서명해서 올렸던 상소입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상소문이었던 영남만인소였습니다. 폭 1.1m에 길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상소문이 지금 여러분 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사상 만인소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792년 정조 때입니다. 안동의 선비들이 개혁군주인 정조를 돕기 위해 만든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가 그것입니다. 정조 때, 사도세자에 대한 언급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이 사안에 대하여 이야기 되는 것을 금기시한 것입니다. 이에 안동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궁궐을 찾아가 임금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 정조가 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1792년 3월에 도산서원 앞에서 정조의 명으로 치러진 도산별시에서 정조의 개혁 의지를 파악한 영남유림은 동년 4월에 소두 이우를 중심으로 최초의 영남만인소가 만들어서 정조에게 전달합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상호 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대를 바꾸고 싶었던 정조의 부름에 영남 유림이 움직여 정조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죠. 최초의 만인소가 정조에게 전달되었던 순간 이례적으로 정조는 상소를 가지고 올라간 선비들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 만인소를 읽게 하고 밤이 늦어지자 상소문을 중심으로 초를 8개 놓고 밤늦게까지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도로 정조에게는 큰 힘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만인소의 전달을 방해한 수문장과 승지가 파면에 이른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유생들이 연명하여 올리는 상소는 숙종 때부터 성균관에서 근실이라는 것을 받아서 승정원에 제출하게 되어있었습니다. 허나 노론들이 장기 집권하면서 성균관 유생들도 모두 노론이 장악을 한 상태로 영남에서 문제시 하고 있는 일들이 조정에 전달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명의 유생의 상소가 아닌 일 만 명이 함께 올리는 상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 사람의 뜻은 곧 천하 사람의 뜻”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것입니다. 이미 이전에 연명 상소는 있었습니다. 백인소가 그러하였고 우암송시열의 문제를 지적하는 천인소 또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어 만인소라는 엄청난 규모의 상소문이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인소는 총 7차례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학계에서 알고 있습니다. 정조에서부터 조선말까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영남 유생들이 나라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힘쓴 유일한 정치 참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안으로는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1792)”, “서얼차별 철폐 만인소(1823)”,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1855)”, “서원훼철 반대 만인소(1871)”, “대원군 봉환 만인소(1875)”, “척사 만인소(1881)”,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1884)”입니다. 이러한 만인소에는 언제나 안동 유림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소두를 하면 후손들까지 낙인이 찍히며 테러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안동의 선비들 언제나 만인소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첫 번째 만인소부터 마지막 만인소까지 92년이 걸립니다. 뜻을 모으고 조직화 하고 행동에 올리는 일을 일곱 차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영남유생들의 만인소를 통한 정치 참여는 1884년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로 끝이 나고 이 후, 무력이라는 형태로 만인소의 정신이 안동선비들에 의하여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안동 독립운동의 시작입니다. 영남만인소를 준비했던 경험으로 뜻을 모으고 의병을 조직화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것은 1,000명을 넘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안동 선비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끝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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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