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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龜頭문양중 秀作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지보(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之寶)
印文이 易刻이 아닌 正刻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남호씨의 그래픽 세종대왕 어보
고궁 박물관에 있는 어보들,,, 금빛이 너무 찬란하네요,,,
미국 LA county박물관 문정왕후 어보,,, 전통적 아말감기법에 의한 금박빛이 납니다.
은은 한 금빛,,,,
금박이 벗겨진 경계 부분에 청녹이 형성 되어 있네요,,,
이제 자신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될것 같습니다.
근 3주동안 이 물건에 너무 정신이 매달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야될 일도 미루고,,,
이물건에 대한 여러 조언과 따뜻한 염려의 글을 주신 회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도 올립니다.
처음 이 물건의 사진을 올릴때 전체적으로 다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회원님들도 짐작 하시겠지만 시끄러운 문제를 피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회원님들의 조언과 며칠간의 열공(?)덕분에 이제 미 물건을 마음놓고 공개 할수 있게 되었네요,,,
제가 진품으로 보고 구입을 했던 이유는
1.거북의 頭像
어느 시대든 예술품을 보면 흐름에 있어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물품을 보면 대체로 부드러운 곡선을 택합니다. 문양의 깊이도 깊지도 얕지도 않게,,,
거북의 두상에 보이는 문양에서 우리나라 대표적 거북 두상의 형태가 잘 나타나 있더군요.
눈,눈썹,입술,이빨,코,,, 부드러우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감,,,,
석물이나 다른 어보의 거북문양보다 두상은 오히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물건인 것 같았습니다.
2,형태 및 크기
조선 역대 어보는 모두 거북 형상입니다.
그러나 제작 시기에 따라 등의 문양,두상의 모양,발의 모양,거북 등에서 발까지의 높이가 다르게 나옵니다.
조선조에서 어보의 크기는 너비3치5푼(10.6cm) 두께7푼(2.12cm)으로 정했는데 실제 크기는 정확히 지켜지지 않았고 중기에는 크기의 변화가 심하다가 후기에 다시 규정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이 물건도 크게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3.녹소
보관이 잘못되어서 인지 녹소가 형성되어 있고 금박이 벗겨져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금박을 벗긴것이 아닌 자연적 상태에서 벗겨진 것이라면 적어도 100년 이상 오히려 훨씬더 년대가 올라간 것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목부분에 번져나온 검은 반점은 고려시대 금박 사리함에서 번져나온 검은 반점과 동일한 형태를 보입니다. 이 부분이 적어도 년대가 오래된 물건 이라는 점을 제게 확신 시켜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보는 은과 동의 비율이 23:54로 혼합되고 나머지는 수은등 다른 금속으로 제작 되었다고(다를 자료에 의하면 구리와 주석을 함금) 하는데 銀과 銅의 비율은 시대에 따라 달랐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물건의 녹소를 보면 청녹(구리녹)이 형성되어 있고 금박이 벗겨진 부분에 검은 땟깔이 보입니다.
銀이 산화되면 처음엔 고동빛이 나다가 검게 변하는데 검은 빛이 나오는걸로 보아 은의 산화에 의한것으로 판단 하였습니다.
문정 왕후의 금보에도 금박이 벗겨진 경계부분에 청녹이 형성 되어 있었습니다.
4.금박
이 물건에 입혀진 금박은 현재 국립고궁 박물관에서 공개한 다른 金寶들과 색상이 다릅니다.
고궁 박물관에서 공개한 다른 어보들은 전체가 금과 동 혹은 다른 금속과의 혼합된 것인지 표면만 금박을 입힌 것인지 궁금하네요,,,아니면 보존을 위해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 방식으로 도금(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미극 LA 카운티 박물관에 있는 문정왕후 금보의 금박이 우리나라 오리지널 금보 빛으로 판단 됩니다)해서 인지 너무 번쩍 번쩍 하네요,,, 어보 제작에는 은과 동 다른 금속이 혼합되어 있고 금도금을 하였다는 부분과 상충되어 혼란스러운데 일단 이 물건의 금박 형태를 일본이나 중국물건에서는 보지를 못하였고,,,,
우리나라 불상에서 이런 형태의 금박이 보였기에 진품이던 copy이던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물건으로 확신했습니다.
우리나라 어보의 금박은 수은에 금을 녹혀 아말감을 만들어 칠한후 가열하여 수은을 증발시키고 가죽으로 광택작업을 한다라고 나오더군요,,,
위 물건의 금박 형태는 전통방식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5.전체적 균형미와 재질,문양의 세밀함
보통 copy를 보면 재질이나 문양의 미세한 부분에서 진품에 비해 세밀함이 떨어지는데 이 물건의 문양의 세밀함이나 재질의 치밀도는 아주 우수합니다.
이게 copy라면 적어도 어보를 만드는 장인들과 동일한 수준의 예술적 감각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할텐데,,,, copy를 만들려면 은밀히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한사람의 힘으로 구상에서 부터 전범만들기,금속배합,주물,전각,금박작업까지 모든 부분이 가능 하겠느냐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에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했었습니다.
어보 제작에는 금속을 용해하는 鑄造기술,두드려 만드는 緞造기술,문양을 조각하고 印文을 세기는 彫金기술자가 필요하고
제작과정은 본을 제작=> 구리 주석을 합금,용해=>보신과 보뉴를 따로 제작=>단조와 줄을 이용해 다듬기=> 보신과 보뉴에 印文과 문양을 조각 => 보신과 보뉴보다 용융점이 낮은 (주로)銀을 이용해 보신과 보뉴를 접합=>표면 다듬기=>보수(끈) 구멍내기=>도금작업전 酸처리=>수은에 금을 녹여 아말감 칠하기=>아말감이 마른후 가열하여 수은 증발 시키기=>마무리 작업으로가죽으로 광택내기 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되었던데 위 물건을 보면 정상적 제작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적어도 한두명이 은밀하게 만들기에는 재료와 장비,모든 제작 과정을 거치기에 불가능하고 판단되었고 원래 어보를 제작하는 곳에서 만들어 졌다고 판단 되더군요,,,,
6.주물
이 물건에서 보면 인장부분과 등부분은 매끈하게 되어 있지만 거북 몸통부분은 기포가 있습니다.
copy를 하려면 오히려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런 기포 자국을 일부러 내었을까 하는 의구심,,, 진품과 구별 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을리는 없고,,,
다른 어보에서는 이런 기포 자국이 보이지 않네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매끈하게 만들면서 몸통 부분만 이런 기포 자국을 내는것은 주물 기법상 훨씬 더 고난이도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만 너무 긍정적으로 보았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네요,,,
7.무게
제가 진품으로 보았던 두번째로 중요한 요소 였습니다.
무게가 3.5kg으로 판매자는 청동제품이라고 하였는데 이정도 싸이즈의 청동제품 무게가 과연 3.5kg까지 나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상으로 보아 금이 포함된 것은 아니고 적어도 銀이 포함되지 않고서는 3.5kg까지 나오지 않을것 이라 생각 했습니다.
8.인수 구멍
어보에는 어보를 꿰기위한 인수구멍이 있습니다.
사진상 어두운 부분이 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명암을 조잘해 보니 다른 어보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형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어보를 만들수 있을 정도의 장인이 아니고는 인수의 구멍까지 정확히 만들어 낼수 있을까? 하는 생각,,,,
9.전각문
사진상 잘 구분이 안되지만 전각문의 깊이가 아주 깊게 나옵니다.
전각문은 모두 手作業으로 하는게 정상,,, 사진상으로는 기계작업을 한 흔적을 찿지 못했습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전각문으로 볼때는 고도의 정밀도가 보입니다.
이 정도 정밀도를 copy하는 입장에서 한다면,,,, 더 할말이 없을것 같습니다.
copy라 하더라도 높은 예술성을 인정하고 싶네요,,,
거북 두상이나 발을 보면 수작업으로 문양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만들어진 시기
땟깔이나 녹소, 전체적인 느낌을 보면 적어도 100년이상 혹은 그 이전으로 제작 시기가 보입니다.
그 시기면 조선조 혹은 대한 제국 시기인데 copy를 한다면 그때 누가 무슨 목적으로 copy를 하였느냐와 과연 copy를 만들 효용성이 있었느냐 하는 점 입니다.
세종 시기에 국왕의 문서를 위조하기 위해? 불가능 이라고 봅니다.
그게 아니면 당시 수집가들을 에게 판매를 위해? 이것도 거의 불가능,,,
도대체 copy를 만들 이유가 상상이 안되네요,,,
수집가들에게 판매를 위해 copy를 만들었다면 빨라도 1910년대 이후 일텐데,,, 땟깔을 보면 그 이전 물건으로 보입니다.
11. 판매 혹은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면 고궁 박물관것과 동일한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완전히 다릅니다.
즉 복사된것이 아닌 새로운 도안 구상과 제작을 했다는 것인데,,,
후대 왕이 다시 추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다른 추론을 항수가 없었습니다.
12.등딱지 문양이나 두상 문양을 보면 주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수작업으로 문양을 깍았습니다.
귀두부분도 처음에는 주물상태인줄 알았는데 수작업으로 만든것으로 보입니다.
전통 어보 제작 방식과 동일 합니다.
이 물건에 대한 제가 진품으로 판단하고 구입을 결정했었던 이유 였습니다.
그러나 이 물건이 文宗이 세종대왕에게 추존한 어보가 아닌 이유는
1. 현재 국립 고궁박물관에 문종이 세종대왕 에게 추존한 어보가 있네요,,,
2,세종대왕의 어보는 귀두형인데 이 물건은 후기형인 용두형(귀두에 용두형상을 가미)입니다.
3,초기 어보의 뉴에 거북꼬리는 곧은 형태였다가 휜형태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고궁 박물관의 세종대왕 어보의 거북꼬리는 곧은형인데 위 물건은 굽은 형태 입니다.
4. 印文은 역으로 각인 되는데 이 물건은 정으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死者의 물건은 生者의 물건과 반대로 한다는 우리 유교문화의 관례를 따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왕의 서거후 3년은 생전과 같이 모시는데 어보는 후대 왕 즉위후 바로 추존하기에 이 물건은 정식 어보가 아닌것으로 판단 합니다.
이 물건에 대한 개인적 평가
1.진품 세종대왕 어보는 아니지만 용두 부분은 오히려 세종대왕어보나 다른 어보들 보다 문양이 더 뛰어나다.
2,비록 진품 어보는 아니지만 조선시대 금속예술의 秀作중에 하나라 해도 손색이 없다.
3.전통 어보 제작흔적이 잘 나타나 있다.
의문점.
왜?
어떤 목적으로 copy를 한것도 아니면서 이 물건을 만들었으며 역대 왕 중에 세종대왕의 존호를 새겼는가 하는 점 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보는 모두 6.25때 미국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융희 황제때 종묘에서 몇과가 분실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후 되 찿았는지 기록은 찿을수 없고,,, 어느 왕의 어보가 분실 되었었는지 기록도 없네요,,
이 물건에 대한 하나의 가장 큰 개연성을 가정하면 당시 어보가 분실되어 새로 제작 하였다가 분실된 어보를 되찿아 되찿은 어보를 재 안치하고 이 물건이 남겨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거북의 두상이나 꼬리 형태, 년때를 보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만 기록들이 없으니,,,,,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종묘를 지키던 자가 장막 뒤에 있던 어보가 분실되었는지 어떻게 알수 있었겠느냐고 대답했는데도 불구하고 처벌 되지 않았고 융희 황제가 종로 경찰서장에게 어보를 찿아딜라고 사정하다시피 하였고,,,
당시 종묘 담당관리 였던 이완용의 아들이 융희황제에게 이제와서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대답했는데도 처벌 되지 않았다고 나오더군요,,,
대한제국 말기의 슬픈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찡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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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 즐거운 감상 하시고 어떤 의견이시던지 남겨 주십시요,,,
우리까페 회원님들은 고전이 전공 이시라 여러 이야기가 나올수 있다고 생각 되네요,,
비록 주 수집 종목은 아니더라도 재미삼아 의견을 나누고 같이 공부 하면 좋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어느날 회원님 눈앞에 어떤 물건이 불쑥 나타날런지,,,ㅎㅎ
첫댓글 혹시 만일을 대비한 예비군이 아니엇을까요?
보야님의 그 동안의 많은 수고와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이렇게 논리적으로 접근을 하기 쉽지 않은데
참 수고 많이 햇읍니다.ㅎ
ㅎㅎ
덕분에 이번에 공부 많이 했습니다.
이 물건에 제 추정대로 의미있는 銀의 양이 포함 되어 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조선시대 어보를 제작한 기관에서 제작 되었고다고 봅니다.
진품으로 생각하고 구입한것이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것 같읍니다.
통장이 비엇다는 말씀을 이해 할것 같읍니다.ㅠㅠㅠ
http://dankoon2001.blog.me/60168283599
제가 찿은 자료: 인문이 정으로 각인 되어 있네요,,,
http://search.i815.or.kr/ImageViewer/ImageViewer.jsp?tid=co&id=5-000430-000
수복님이 알려주신 자료: 인문이 역으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위에 것은 국립고궁 박물관 소장품이라고하고,,,,
무지 헷갈립니다,,, 도대체 몇과가 있는 것인지,,,, 정으로 각인된것이 맞는지 ,역으로 각인 된것이 맞는지,, ,,,,,
@그림자 그렇네요,,,
저는 거울에 비쳐줬다는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저도 세종대왕 금보는 고궁 박물관 것이 유일한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세종대왕 승하후 문종에 의해 추존된 어보라 사용이 되지 않았을 듯 싶습니다.
세종대왕 진품 어보는 아니라고 보았기에 저도 자료를 공개 할수가 있었습니다.
판매자에게 돌려 보낼려니 물건이 너무 좋아 보이고,,,
제 인감으로 사용할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인감으로 사용 하기엔 너무 비싼듯 하고,,
어떻게 할까 고민중 입니다.ㅎㅎ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헛돈 쓰는셈 치고 잡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네요.
비록 가짜라도 조선시대 금속예술품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이고 이런류의 어보가 더 존재 할런지 모르겠지만 거의 유일품 인듯 싶고,,, 진품이 아니기에 소장하는데 법적으로도 문제도 없으니,,,
@그림자 진품이다는 확신이 100%였다면 아예 공개를 못했겠지요,,, 앞으로도 공개 못할 것이고,,,ㅎㅎ
오히려 진품이 아니다라고 판단이 되니 마음이 편안해 지더군요,,,
이번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문화재청에서 미국에 광고해서 일정 기간을 주고 어보나 궁중 유물은 출처를 묻지 않고 보상을 하고 구입하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 회수 할수 있을것 같다고,,,,
선의의 구입자도 있을수 있는데 죄인이 되어버리면 강물에 던져버릴 지언정 누가 소장 하고 있다고 공개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분위기로는 앞으로 한점도 회수하지 못할것 같네요,,,적어도 어보 정도를 소장한 사람은 어떤 성격의 물건이라는걸 알고 있을 것이니,,
오늘 어보에 대한 기사가 나왔네요... 비슷한게 있더군요
저도 보았습니다.
몇점이라도 찿았으니 다행이네요,,,
잘 모르는 물건이지만... 용 머리를 가진 거북이의 형상은 참 이채롭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거북이를 좋아해서 몇 마리를 키우는데, 참고로 올려주신 고궁박물관의 것이나 LA 카운티 박물관의 어보들은 우리네 토종 거북이인 남생이의 형상을 하고 있네요.
등갑에 뚜렷한 세 줄의 용골(남생이의 주된 특징입니다. 사진 참조)이 표현되어 있어서 말이지요.
외래종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는 '거북이=남생이'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반면 보야님이 구하신 것은 거북 종류가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양이 확실히 다르네요,,, 감사~~
이게 저희 동네에서 나왔다네요.
저는 듀크님이 시애틀에 계시는걸로 알았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지 모르겠네요,,,
샌디에고에 계시는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몇점이라도 찿게 된게 다행이고 제 물건이 진품이 아니었던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 합니다.
예 최근에 닉네임을 지역하고 같이 쓰는 걸로 변경 했습니다. 해군 대령으로 미국 해병 예편하신 분을 수 소문(?)하고 있는 데 어렵네요 ㅋㅋㅋ
어려운 말씀이지만 저라면 이른시간에 반품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미 반품을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진품 어보는 아닐지라도 조선시대 금속 예술품으로 보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싸게 구입을 한 것 같습니다.
오늘 판매자로 부터 환불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여서인지 메일을 보내니 24시간 안에 답을 주겠다고 하더니 불과 몇시간만에 물건을 반송하면 24시간안에 신용카드 계좌로 입금 시켜준다고 하더군요,
여러 회원님들에게 심려를 끼친듯 싶고,,, 도움과 위로글 감사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일로인해 수양이 더 필요함을 느꼈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내리는 판단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기본적 지식의 밑바탕이 없는 논리는 허구라는걸 실감했네요,,,
차분히 다시 밑바탕부터 다져야 될것 같습니다.
도움주신 회원님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하다는 글 올립니다
잘하셨네요
출혈이 심했을 텐데도
인간의 욕구라는게 한계가 없는거라 비록 반품하였더라도 미련이 많이 남았겠습니다
앗~ 보야님
보야님의 글을 오늘 처음 봤읍니다.
다름이 아니라 처음 제가 구입했다가, 10일정도 박물관 관계자및 전문가분들과 예기나누어본 결과 진품이아니라
생각해서 제가 구입의사 포기했던거 였읍니다.
그후에 보야님께서 가져 가신거군요^^
저두 10일동안 얼마나 마음 두근거리고 긴장했었는지^^
이제는 속 편함니다.
보야님도 훌훌 털어 버리세요.
박물관 관계자 분이나 문화제청 분들에까지 제가 다 여쭈어 본 결과 전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읍니다^^
제가 좀더 일찍만 봤어도 보야님 걱정을 덜어드릴수 있었는데요^^
저두 처음엔 세종대왕 어보인줄로 시작해서 7일후에 구입 포기^^
ㅎㅎ 그러셨군요,,
많은 분들이 보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물건을 만져 봤는데 정말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첯번째 낙찰 가격이면,,, 비록 가짜라도 제가 소장 하고 싶은 물건이었습니다. 용두 부분을 확대경으로 보면 주물이 아닌 수작업으로 깍은 물건 이었고 아말감도 전통방식 이었고,,, 차라리 문면만 없었다면 조선 금속예술품으로는 秀作으로 보였습니다.
제 낙찰 가격은 적송님의 가격보다 두배 이상 높아 망설이다가 결국 반품을,,,,,
캐나다 어느곳에 거주 하시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