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월계관
가시 면류관은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될 때 예수를 조롱하려고 로마 군인들이 왕관 대신 가시로 였어 씌운 관이다 ( 마태 27,29 ) 본래 면류관은 왕이나 군주가 통치의 상징으로 쓰는 관이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할 때 병사들은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온 다음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외치면서 조롱했다. ( 마르 15,17 ) 그 이후 이 가시관은 예수님이 유다인의 왕으로 불렸음을 상징하고 수난과 고통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수님 가시관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을까? 물론 그동안 논란도 많았지만 어떤 나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예루살렘에는 적어도 12 가지 이상의 가시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대추나무 가시 면류관을 만들었다고 믿었다.그래서 이 나무를 "그리스도의 가시"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는 사마리아와 남부 이스라엘에서 아주 흔한 나무다.현재도 지중해 연안 즉 레바논,팔레스티나,시나이 등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예루살렘 모리아산 동쪽 경사진 면과 골고다 계곡 등에서 흔히 자라고 있다.
우리는 가시라 하면 일반적으로 장미과 식물의 날카로운 가시를 연상한다.그런데 이 대추나무는 가지가 길게 자라면 늘어지는 성질이 있다.나무의 가시는 단단해 바늘처럼 날카롭고 예리하나 길이는 짧은 편이다.이 나무 열매는 대추야자나 무화과처럼 훌륭하고 귀한 과일은 아니어도,먹을 수 있는 과수였으므로 도처에 심어서 가꾸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대추나무는 가시가 있어도 머리에 맞게 등굴게 엮는 데도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로마 병사들은 칼로 쉽게 잘라서 가시관을 였었을 것이다.
성경에서 가시가 있는 나무는 수십 종류에 이르며 여러 가지 비유에 사용했다.사랑스럽고 로맨틱한 표현에서부터 위협과 위험을 나타내는 표현까지 비유가 다양하다.
성경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늘 부정적 이미지다.주로 형벌,무가치,비생산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쓰였다."게으름뱅이의 길은 가시밭 같지만 올곧은 이들의 앞길은 잘 닦여 있다 ( 잠언 15,19 )
또 가시나무는 가치가 없어 버리거나 태워버려야 한다고 표현한 대목도 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게 되면 쓸모가 없어서 오래지 않아 저주를 받고,마침내는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 히브 6,8 )예수님 비유 중에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에 대한 언급도 있다 ( 마르 4,18_19 )
사순절을 지내면서 예수님 고난의 시작인 가시 면류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이 가시관은 조롱과 모욕의 대명사인 동시에 인류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월계관이기도 하다."가시 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 마태 27,29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자,이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요한 19,1_5)
명동대성당 사제관 앞에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 형상의 큰 석상이 있다.특이하게도 예수님 머리 부분에 철근과 큰 쇠 못으로 가시관을 만들어 놓았다.눈길을 끄는것은 석상 밑 부분에 세 개의 굵은 쇠못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이 큰 쇠못을 보면 우리 죄인들이 가시관도 모자라 예수님에게 못을 박고 있다는 통회가 절로 된다.
첫댓글 고통의 신비 3단에 머물러지는 요즘입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쩌면..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보다도...
가시관을 쓰시게 해 놓고는 퍼붓는 온갖 비난과 모욕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요..
음...
다시한번 가시관에 머물러봅니다.
세실리아 자매님...
좋은 글...감사하구요....
잘 계시지요...
기쁜 한 주 되세요...
정말 반가운 말에 제가 무척 행복해 집니다.저도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주님의 가시관을 떠 올리며.....안타깝고 마음도 편치 못했습니다.
늘 우리가 주님의 가시관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날씨는 춥지만,댓글을 읽으면서 한결 제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