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흐르다 웅덩이가 나오면 흐름을 멈추고 빈 웅덩이를 채운다. 낮은 곳을 다 채우고서 나서 수평을 이룬 뒤에 갈 곳을 찾는다. 물은 낮은 곳이 있을 때에는 끝없이 기다리며 채우는 일에만 몰입한다. 다 채워지면 비로소 새 길을 찾아 떠난다. 다시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서 흐른다. 결국 가장 넓고 깊어진 바다는 물이다.
사람에게도 인생길을 가다 보면 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의 숙성기간이다. 고난을 겪은 후에야 남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숙련 기간을 지낸 이후에야 이르게 되는 달관의 경지가 있다. 조선의 문장가 김득신은 하도 공부를 열심히 해 데리고 다니는 종도 문장을 외울 정도였지만 김득신 자신은 깨우치지 못했다. 벼슬이 한 집안의 흥망을 좌우하는 일이니 김득신을 물리치고 양자를 들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모자란 아들이었지만 지극히 아끼고 칭찬했다.
김득신은 결국 59세에 소과에 합격해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던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남들은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할 나이였다. 결국 40년 간 책을 읽고 나서야 뜻을 이루게 된 셈이다. 김득신은 1680년 8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뿐이다'라는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이 새겨져있다.
둔한 머리였지만 대단한 노력으로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뒤늦은 벼슬길도 탄탄대로였다. 김득신보다도 더 기다린 사람이 있었다. 낚시 바늘도 없이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려 온 강태공은 무려 80살에 인정받아 한 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 크게 되기 위한 숙성의 시간이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고난과 실패도 물이 흐르다 빈 곳을 채우는 과정과 같다. 더 멀리 가기 위해 경험해야 하는 시간이고 사건이다. 웅덩이가 크면 담기는 물도 많고 시간도 길다. 머물면서 채우는 숙성의 시간과 경험은 삶의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