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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평안남도 순천(順川)에서 출생하였다. 경기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 재학 중 독일에 유학,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에는 서울대학교
법대•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 밖에도 사후에 출판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와 비장(秘藏)의
일기를 모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1968) 등이 있다. 자살로 스스로의 인생을 결말
지었다.
육칠십년대에 청소년기를 맞은 문학소녀라면 한번쯤 미치도록 빠져들어
자기 분신을 발견하는 감격과 기쁨을 맛보았을 전혜린. 여성 법학도요
독일문학가로서 두권의 유고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 로움을 또다시>를 남기고 서른한살에 요절한 그는 30여년이 흐른 지금
에 도 여전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소녀시절부터
전혜린의 가슴에 자리잡았던 명제 ‘절대 평범해선 안된다’가 그대로 실현
된 셈이라고나 할까.
전혜린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의 삶을 신비화시켰고 숱한 추측을
낳게 만들었다. 그의 죽음이 자살이냐 아니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로 남아 있다.
어쩌면 자살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 닐지 모른다.
그는 늘 죽음을 생각하며 되뇌었고, 설령 계속 살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을 테니까.
전혜린은 일제시대 중반 부유한 관리의 맏딸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아버지가 사다주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워낙 여학생이 드문 데다 도통 남의 눈을 의식
하지 않는 거리낌없는 행동, 경탄스러울 만큼 예리한 두뇌 때문에 그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5년 가을, 전혜린은 법학을 그만두
고 문학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을 떠난다. 뮌헨의 슈바벤, 내리깔리는 축축한
안개 사이로 오렌지색 가스등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그곳은 곧 전 혜린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그녀는 뮌헨대학에서 독일 리얼리즘의 선구자
그릴파르처의 문학을 연구하는 한편, 철학자 니체와 그의 연인이며 소설가였던
루 살로메에 열중했다.
도서관에서 루 살로메의 전기를 읽다가 그 사진을 몰래
오려냈을 정도로 전혜린은 루 살로메를 좋아했다.
귀국한 전혜린은 여자는 강단에 세우지 않는다는 완고한 전통을 깨뜨리고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서울대학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1세기에
한번쯤 나올 희귀한 천재’라는 격찬을 들으며,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뒤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일곱살짜리 딸 정화를 남긴 채. 소설을 쓰겠다 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서.
그녀가 자주 입에 올린 단어는 권태와 광기였다. 광기일 만큼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그러나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태로운 일상. 전혜린은 그
둘의 충돌 한가운데서 한없이 절망하고 허무의 나락에 빠졌다.
맹렬하게 삶에
매달리는가 하면 다음 순간 허무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양 극단을 무수히
넘나들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고 하루에 커피 15잔을 마셔야
정상이 될 만큼 그의 심장은 약해져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가슴에 자리잡은
‘절대 평범해선 안 된다’는 명제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지극히 평범한(!) 자신의 삶을 못견디게 만들었을 것이다.
전혜린의 내면은 ‘자아’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나 민족,
국가 따위는 그의 의식세계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4•19와 5 •16도 그에겐
진정한 의미의 ‘격정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전쟁 뒤 독 일의 데카당스한
분위기에 흠뻑 젖은 전혜린에게 한국사회의 암담한 현실 은 고뇌할 가치 없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식인 으로서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건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었다. 전 혜린이 문학소녀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자아에 대한 열렬한
몰두, 절정의 순간에 대한 탐닉, 이리 저리 부딪치는 열광, 정체모를 불안과
절망이란 요소들. 전혜린, 그녀는 전 쟁이 낳은 정신적 무국적자였다.
전혜린(田惠麟, 1934년 1월 1일 ~ 1965년 1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번역자이자 수필가. 독일 유학파출신. 수필이자 일기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가 유명한 저서이다. 1934년 1월 1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1월 10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경기도 안양시 조남리 선산에 묻혔다.
• 경기여중,고 졸업
•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 1955년 서울대 법대 재학중 독일로 유학
• 1959년 뮌헨 대학교 독문과 졸업후 귀국
• 서울대 법대, 이화여대 강사, 성균관대 교수 지냄
가족 관계
• 아버지: 전봉덕 - 일제 강점기의 경찰이며 대한민국의 군인, 변호사.
• 남편: 김철수 - 대한민국의 헌법학자
전혜린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와의 운명적인 만남 -
대동아전쟁, 해방, 한국동란, 3.15 부정선거, 4/19, 5/16 을 격고, 이세상에서의 삶을 열정으로 살다 먼져 가신 당신을 추모합니다. ..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生)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밑줄을 쳐가며 읽었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일기로부터의 단상'' 한 구절이다. 특별히 이 구절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교사로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급훈을 바로 여기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전혜린, 그녀는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는 그토록 빠져 있었나. 오래 전에 이미 망자가 되어 버린 그 이름, 전혜린을 나는 왜 사십 년이 지난 후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의 케케묵은 일기장 속의 한 구절이 왜 우리 학급의 급훈이 되었을까. 그의 책에 나오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에 왜 감격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 처음 그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어쩌면 책읽기를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빠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단발머리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문을 통해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선배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귀동냥으로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뿌연 기억의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이름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난 뒤에,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안목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나를 이해하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는 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십 여 년이 넘는 긴 세월을 공무원으로 근무하신 아버지의 딸이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충직한 공무원으로 말 그대로 ''야전 교범''같은 인생을 살아오셨다. 아버지가 받은 수많은 상장과 상패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듯함 뒤에 감추어진 그분의 사고 체계는 대단히 획일적이고 규격화, 규범화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자유로운 정신이나 사고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부족했다.
아버지의 원칙은 마치 법과도 같아서 만약 내가 반항아, 문제아가 되어 삐딱하게 굴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찍히게(?) 될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이나 학교의 지시를 잘 따랐던 모범생이었다. 내가 초•중•고 12년을 개근했던 것이나, 별 문제 없이 웬만큼 공부를 했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순탄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재미없게, 밋밋하게 흘러갈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만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혼자서는 뭘 제대로 못하고, 부모님의 ''FM(야전 교범)''을 거스르는 일 따위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세상 밖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식구들 몰래 연애를 했던 것도 바로 이 책이 나를 충동질한(?) 결과였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전혜린은 당시로서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좋은 이력을 자랑한다. 1934년, 평안남도 순천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소위 명문고라 일컬어지는 경기여중, 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 한다. 그러나 관료적인 냄새를 풍기는 법학에 대해 별 흥미를 갖지 못한 그는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땅 독일로 향하게 된다.
뮌헨대학에서 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러한 그의 영혼의 자유와 서른둘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그의 매혹적이고 투명한 에스프리, 그리고 빛나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은 바로 생에 대한 그녀의 치열함이었다. 정열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뜨거운 열정'' ''화수분 같은 열정''이 그에게는 있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해서 샘솟듯 나오는 ''무한 열정''….
크게 잘난 것 없이 평범해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갔을 내가 전혜린을 만나고 나서는 용감해졌다.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의 엄격함에 맞서 당당히 반기를 들었고, 아버지의 불합리한 규범에 대해서도 따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내게 영향을 미쳤던 전혜린의 자유와 열정, 광기는 책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다.
내가 지닌 여러 가지 제한이나 껍질에 응결 당함이 없이 내 몸과 내 정신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한 속에 내던지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여태까지 그냥 주어지기만 했었던 생을 앞으로는 내가 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싶다. 내 운명에 능동적으로 작용을 가하고, 보다 체계화에 힘쓰고 싶다.
서른이라는 어떤 한계선을 경계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피동에서 능동의 세계로 들어가서 보다 열렬하게 일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 밀폐된 내면에서의 자기 수련이 아니라 사회와 현실 속에서 옛날에 내가 가졌던 인식애와 순수와 정열을 던져 놓고 싶다.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닭이 일제히 울 때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증발하는, 그리고 혀에 이끼가 돋아나고 손이 얼음같이 되는, 그리고 눈이 빛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이 그것인 것이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적인 각성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 전에 날카롭게 지적을 했다. 그의 따끔한 충고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게도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많은 어머니들은 끊임없이 아이에게 방해받고, 또 스스로 아이를 방해하면서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방법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 거기 있는 어머니''이다.
그러나 과연 그 여자들은 정말로 있는(現存) 것일까? 있는 것은 그들의 공허한 희망의 메아리뿐이다. 아무도 그 여자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대개의 경우는 조만간에 증명되고 마는 것이니까. 자기 곁을 기꺼이 떠나는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원한 감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생을 택하지도, 살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남의 생(아이들의 또는 남편의 생) 속에서 그 보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무런 생활도 갖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환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인 것이다.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끝나버린 생을 지속하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의의를 찾고 실증하고 있는 여인이 가장 겸손한 어머니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문득 전혜린과 그의 삶을 떠올려볼 때가 있다. 이 땅에서 그가 살았던 생은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부를 태우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열정적인 삶이었다. 이따금 그를 돌아보며 나는 ''역할 모델''로서의 그를 떠올린다.
그에게서 배운 삶에 대한 치열함, 당당함, 그리고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은 다시 대를 이어 내 딸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그들에게도 아마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감화와 영향력이 내 딸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두루 미칠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머리말에서 이어령씨가 썼듯이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우고'' ''서른 두 해의 생을 완전하게 산 활화산'' 전혜린을 이 가을에 추억한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