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2-작은 소통 '행위'를 위해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옥중 서신을 매주 한 번 쓰기로 했습니다. 감옥 밖의 또 다른 감옥 세상과 끊임없는 소통 '행위'를 위한 작은 노력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타이프를 칠 지도 모를 분의 노고를 고려하여 짧게 하려 노력했지만 또 길어져 죄송하군요.
수감자들에게 휴일과 명절은 '곱징역'이란 말이 있다 합니다. 면회, 신문도입, 편지 발송, 목욕, 빨래 시간이 다 없어지는 공휴일에 수감자들은 시간이 빨리 가길 소원합니다. 더구나 이렇게 무덥고 습기 차는 여름 날씨에는.. 그 시간을 저는 서신을 쓰는 것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낼만하고 옆의 동료가 켜는 TV 소리도 웬만큼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 저 같은 초보자들을 위한 소개 입문서인 '아렌트 읽기'(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란 책을 읽고 있는데요.. 제 지식과 논리가 짧아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책에 의하면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나찌 전법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란 네 단어를 떠올린 사람이라 합니다. 지은이에 의하면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사유함을 멈추는 특수한 능력에서 초래하는 악의 유형'으로 보았다 합니다. 아렌트에게 '사유한다'라는 것은 '공(공)영역' 또는 '공공선'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어둠'을 다름아닌 '정치에 대해 지겨워하는 태도'로 보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연장인 '정치의 실종'을 '전체주의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 짧은 지식에도 아렌트가 사회의 영역들을 받치는 경제에 대한 통달한 이해가 있던 사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아쉽거나 심지어 반감이 생기는 대목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제자 영-브루엘에 의해 소개되는 아렌트의 사상에는 공감이 되고 자극이 되는 부분이 더 많아 계속 관심을 갖고 읽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영-브루엘이 소개하는 아렌트의 '행위' 개념입니다. 아렌트는 세 가지 활동들을 인간에게 근본적이라고 선언했다 합니다. 1. 노동(labor), 2. 작업(work), 그리고 3. 행위(action)입니다. 이 중 '노동'과 '제작'은 혼자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행위'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책의 한 구절을 옮겨 보겠습니다;
'[행위는] 어떤 특별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데 (비록 여러 상황에서 용기의 덕목을 필요로 하기는 해도), 이유는 그것이 탄생성이라는 인간의 태어남이라는 조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는 예기치 못함 혹은 새로움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창시 initiation이다. 시작 또는 창시로서 행위는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지만 모두에게 관계된, 잠재적으로 모든 인류가 관계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한편 아렌트는 '노동'과 '제작'이 활동적 삶 내에서 너무 지배적인 것이 되면 '행위'는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말했습니다. 책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소비 사회 내 대부부의 사람들은 자신을 노동자, 단순한 직업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생계비를 벌고 있으며', '생계비를 벌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들의 차이를 나타내거나 또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실제로 생각할 수가 없다.’
최근에 배우 김여진님 등의 트위터 홍보 '행위'에 더욱 힘입어 (강정마을 소식이 강정마을 카페 사이트와 '강정당' 트위터들의 홍보 '행위'에 더욱 힘입은 것처럼) 한진 중공업 김진숙님의 180일 고공 농성(7월 3일)이 한겨레 신문 등에 계속 나온 터니 제주 도민일보와 코리아 타임즈에도 나오고 또 외신에도 실렸다는 소식을 여기서도 접하고 있습니다. '해고는 곧 살인'이라며 정리해고 철퇴를 외쳐온 170여명 노동자달의 투쟁은 쌍용 노동자들, 유성 노동자들을 비롯해 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금꽃 나무'로 모여 들게 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구절은 한 작가가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한탄하며 쓴 구절이었습니다;
'우리는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 버리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가 아마 '교감'이란 단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단어는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 단어가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김진숙님은 자신이 자신 이전에 죽은 두 명의 동료들 때문에 그들이 죽은 직후 자신의 방에 불을 뗄 수도 없었으며 또 노조 지도부가 일정 타협한 지금도 쉽게 크레인에서 못 내려간다 말했습니다. 그렇게 진성성의 울림을 깊게 자아내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참 드물 것입니다. 김여진님도 김진숙님도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아렌트의 사고를 서투르나마 적용해 볼까요?
김진숙님과 그의 동료 노동자 분들은 결과가 불확실할지도 모르고 예측 불가능한 '행위'를 통하여 자신들이 단순한 노동자 또는 작업자가 아니라 '공공의 선'을 창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즉 그들이 '누구인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7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한겨레 신문은 필리핀 수백만에 세워진 한진 중공업 공장 내 현지 필리핀 노동자들의 파업과 현지 회사 관계자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폭언, 폭행 등을 다룬 기사와 논평을 실었는데 후자의 글쓴이는 자신이 몇 년 전 그 곳을 방문했을 때 현지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한국어가 '빨리, 빨리, 새꺄'라고 하여 얼굴이 확 붉어졌다고 썼습니다. 글을 읽으니 31명의 현지 노동자들이 이미 산재로 사망하고 회사 관계자들이 현지 노동자들의 개인당 18만원 월급을 이용, 착취하는 현실에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버랩 되는 사진 2개가 더 있었습니다. 코리아타임즈, 한겨레 모두 사진과 함께 짧은 캡션만 올려 아쉽긴 했지만 인도 동부 오리사 주 자가싱푸르라는 마을에서 포스코의 부지매입으로 땅을 뺏길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통나무로 그리고 심지어 자신들의 몸뚱이로 바리케이트를 쌓아 언제 올지 모를 경찰 진압에 대비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전투인 강정마을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슬펐고 분노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미 소제국주의라는 사실이 그러고 보니 소말리아의 이른바 '해적'에 명확한 증거도 없이 검사의 '사형 선고' 구형이 내려진 우리 나라는 이미 인종 차별 국가가 아니었던가요?
강정의 아픔을 넘어 더 아픈 곳으로 우리의 소통 '행위'를 확산해 보는 노력들이 많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의 인도 오리사주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제 작은 연대 '행위'의 시도입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최성희 올림.
첫댓글 최성희님의 옥중서신을 제주의 인터넷 언론에 기고하였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주의 소리나 헤드라인 제주 등에 문의해 보세요. 연락처는 고권일 위원장님이 갖고 있으니 고권일 위원장님과 상의 후 기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