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24년 10월 15일~19일(4박 5일)
2. 코스 : 한구촌-적수체-남반촌-왕망령 정상 관일대-케이블카 하산-비나리길-곽량촌-일월성석
3. 참석자 명단 : 청곡님, 담금주님, 곤달비님, 설봉님, 제우스님, 보라매님, 바람과 갈대님, 블루님, 미르님, 공명샘님, 진이님, 바람님, 별빛님, 동백님, 정현숙님, 작은별님, 조나단님, 산너울님, 진달래님, 채운님, 산꾸러기(21명)
어제 저녁 우리방에서 담금주를 많이 마시다보니 얼떨떨한 상태에서 일어나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 이틀밤을 보냈기에 짐 정리를 하고 캐리어는 차에 싣고 간다.
오늘은 트레킹 일정이 빡빡해서 아침을 호텔에서 먹을 수 없어 대신 도시락으로 준비를 한다고 한다.
호텔에서는 과일종류를 준비하고 가이드가 사비로 김밥을 준비 한다고 했다.
오늘 일정은 한왕 트레킹으로 왕망령을 올라가서 식사 후 하산은 만선산으로 해서 소쌍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심지어 비가 많이 내리면 고속도로를 공안에서 차단까지 할지도 모른다고 가이드가 말을 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해 본후 괜찮다고 하며, 짙은 안개로 인해 등산로를 찾기가 힘이 들었고 어렵게 왕망령에 올랐지만 하산을 하더라도 주위 조망을 즐길 수 없어 일정이 변경 되었다.
호텔에서 6시 출발하여 한구촌에는 7시경 도착하였다.
그런데 비가 제법 많이 온다.
우산이나 비옷을 입고 트레킹을 해야하는데 트레킹이 끝날때까지 비는 멈추질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는일이다.
조금 진행하니 서한구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아서 여기가 한왕트레킹 서한구 출발점인가 보다.
주변에 식당도 있고 포장도로 길을 따르다 산길로 접어들며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얼마되질 않는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도 먹는다.
적수체 마을에 도착하니 염소 사육장이 나오고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며, 가이드는 어딘가에 전화를 계속하고 있다.
가게 앞에 도착하였는데 선두는 계속 진행하기를 원하고, 후미는 여기서 쉬어가자면서 무작정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선두는 진행을 해 버리니 난감하네요~
여기서 비를 피해 김밥 등 간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이 오랜만에 이곳으로 산행을 한다면서 반가워 하고 몇분은 무단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니 미안해서 우의를 사 주는데 5위안이다.
다른 것은 사 주려고 해도 물건이 없다.
소시적에 보던 삼륜트럭(세발트럭)을 여기서 보게 된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선두는 너무 앞서 가 버린것 같다.
결국 두개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 가이드는 길을 폐쇄해 두어 계속 진행할 수 없다고 하여 되돌아 오게 되고 제가 고함쳐 부르던 곳에 도착하여 산으로 올라가려는데 중국 산꾼 5~6명이 내려오면서 왕망령 가는 길이라고 한다.
미리 정보를 알고 함께 움직였더라면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첫번째 터널 입구에 도착하니 선두가 기다리고 있는데 터널 길이가 짧아서 입구에서 출구까지 다 보인다.
두번째 터널은 길이가 150m 정도 되며 낮에도 어두워 암흑천지라 후레시를 켜고 지나가야 하는데 중간 중간 물 웅덩이도 있고 어떤 곳은 터널이 무너져 내린곳도 있어 조심조심 진행을 한다.
가이드가 먼저 앞에 가서 길을 확인하는데 공사로 인해 통제되어 더 이상 진행은 힘들다고 해 여기서 빽을 하게 된다.
원래 계획은 남반촌에서 마을을 지나는 산길을 따라 태항의 지존인 왕망령 정상으로 올라간다.
이 코스로 2시간 30분정도 올라가면 대자연의 수직절벽이 눈앞에 들어오며 그 중앙에 아래서 보면 외돌개가 되었다가 중턱에서 보면 남근석으로 보이는 높이 솟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외돌개를 지그재그로 오르면 좌우로 거대한 기암괴붕 숲이 펼쳐지면서 태항산의 멋진 자태를 들어낸다고 한다.
그 후 1,000m정도 고도의 8부 능선에 이르면 탁 트인 태항산의 풍광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협곡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기암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망속에 나타나는 목 긴 여인상은 마치 그 앞에 펼쳐지는 태항산 대자연의 경관을 목을 빼고 감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신만이 빚어 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슷이다.
이러한 8부 능선길은 마을 주민들이 양을 치기 위해 만든 목축로이며 이 능선에서 보는 태항산 협곡의 장쾌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왕망령 정상으로 올라간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곳곳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왕망령의 풍광은 마치 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통제중이라 적수체 마을 근처까지 되돌아 가서 트레킹을 이어가야 한다.
터널까지 갔다가 공사로 인한 통제로 다시 되돌아와 이곳으로 왕망령을~
드디어 통천문
하지만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심지어 가까이 있는 사람도 쉽게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니.
그래도 여기까지는 힘든 오르막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걸어주었고, 이후부터는 한결 편한 길이 이어지면서 중국 산꾼들도 만나고 특별한 문제 없이 진행하다가 아쉽게도 왕망령 갈림길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우측으로 갔다가 산사태 지역에서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다시 빽을 해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가이드도 당황을 하고~
짙은 안개로 우리와 같은 처지의 중국 산꾼들도 만나기도 하였답니다.
왕망령 갈림길 삼거리
이곳에서 가이드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짙은 안개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적수체 마을 이후 수시로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중국말로 하다보니 우리는 자세한 것을 모르고 있었음.
제우스님이 바닥에 왕망령 표시를 보고 좌측으로 가야 하는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가이드는 우측으로 가야 된다고 하면서 진행한 결과 엄청 먼 길을 되돌아와야 했으며 두번째 빽을 해야했답니다.
한참을 더 진행하니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보이는 것도 없다보니 서서히 배는 고파오고 간식을 먹자고 하는데도 선두는 뭐가 그리 급한지 36계 줄행랑을 치고~
후미는 정신없이 간식을 먹고 뒤따라 가는데 시간상으로는 벌써 왕망령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계속 진행을 하는데 선두가 멈춰 서 있고 가이드는 산사태가 난 지역을 지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참 난감한 일이다.
가이드는 당황하여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전화를 해 보지만 불통지역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긴급한 상황인데도 일행분들은 차분히 기다려주어서 큰 다행이었으며, 가이드와 총무님 그리고 몇 분과 의논한 결과 빽을 하기로 한다.
왕망령은 800m에서 1665m에 이르는 50여개의 산봉으로 이루어진 산군으로, 중국 국가지질국이 가장 아름다운 협곡 중 하나로 지정하였으며, 하남성과 산서성의 경계에 위치한 왕망령은 남태항 산맥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일출과 운해를 조망하기 좋은 곳으로 기산, 곡능, 고봉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마치 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
특히 왕망령 중앙에 거대한 낙타를 닮은 봉우리의 풍광이 아름다움을 더 없이 멋지게 만들고 광활하게 펼쳐진 산봉우리와 환상적인 운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환상에 빠진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쉬움만 남는다.
모택동 주석의 비서 이열은 “왕망령에 오르지 않으면 태항산을 왔다고 할 수 없고, 왕망령은 천하의 기봉이 다 모여 있어 오악에 오를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찬양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정치를 하고 싶은 자는 태산으로 가고,’ ‘왕이 되고 싶은 자는 왕망령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시진핑도 예전에 왕망령에 올라가 기를 받아서 현재 주석이 되었다나....
왕망령에 담긴 역사 이야기
전한의 10대 황제 애제(哀帝)가 후계자 없이 죽자 대사마였던 왕망은 태황 태후 왕씨(왕정군)와 연합하여 폭정을 핑계로 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다.
왕망은 오행도참설을 교묘히 이용하여 민심을 모아 자신을 가황제로 칭하게 하였으며, "왕망이 황제가 되라"는 적서가 쓰여진 흰돌을 만들어 연극을 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로 선양혁명으로 전한을 멸망시켰다.
전한 말 정치가이자 한나라 외척인 왕망은 쇠약해진 한나라를 권모술수로 멸망시키고 자칭 황제라 칭하며 신나라를 세웠고, 한의 부흥을 외치며 거병한 한 고조 9대손인 유수(훗날 후한의 광무제)가 태항산으로 도망을 치자 1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를 쫓아와 왕망령에 진을 치고 전투를 했다.
이 때 왕망이 진을 친 곳이라 해서 왕망령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유수는 왕망에게 쫓기어 막다른 절벽에서 뛰어 다음 봉우리로 건너가는데 유수가 뛰어 내린 길을 유수도라 부른다.
이 때 왕망은 유수가 죽은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수는 곤양전투에서 왕망의 대군을 물리쳐 왕망의 군사들은 사기가 저하되어 장안으로 후퇴하고 유수가 이끄는 8천 군사가 장안을 쳐 들어갈 때 상인 출신 두오가 왕망을 죽이고 수급을 경시제 유현에게 보냈다.
이로써 왕망이 세운 신나라는 16년만에 사라졌다.
왕망의 100만 대군이 유수 광무제의 8천 군사와 싸워 대패하여 후퇴한 장소가 왕망령이다. 왕망의 대군이 패한 이유는 폭정으로 민심과 군심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왕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산봉우리에 그 이름만 남아 후세 사람들이 그의 패배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왕망령 풍경구는 태항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하남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짓는 고개로 50여개로 이루어진 기암괴봉은 태항산의 다른 산봉과는 다른 절경을 보여주어 ‘태항지존’으로 불리우며 남태항의 최고봉이다.
왕망령 풍경구는 왕망령, 석애구, 곤산, 유수성의 4개 관광구로 나뉘어져 있다.
이 곳의 특징은 험봉, 기암, 괴석, 천단절벽, 협곡, 폭포, 운해와 일출, 안개속 소나무 등 자연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곤산은 절경구 동북쪽에 있으며 산세가 기이하고 홍곡이 그윽하며 깍인 벼랑이 환형으로 줄지어 있으며 험봉과 기석이 우뚝 솟아 산 위에는 운풍이 차고 산 아래 밭에서는 녹색이 물결 치며 저 밑에는 강이 흐르는 절경이 나타난다.
두 차례에 걸친 빽을 하다보니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짙은 안개속에서 국제적 미아나 국제적 조난자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닌가 생각하며 왕망령 정상에서 늦은 점심을~
가이드가 오늘 두 차례에 걸친 실수는 모두 자신의 탓이라면서 오후 일정을 좀 상의 하자고 한다.
식사 후 하산을 만선산으로 하기로 되어 있지만 이 날씨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비나리길과 곽량촌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한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꼭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되면 하산시 케이블카와 비나리길, 곽량촌은 경비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모든 것은 자신의 실수니 자기가 경비를 부담해서라도 가겠다고 한다.
저와 총무님이 일행들을 설득할테니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도 자기 입장과 회사를 생각해서라도 꼭 갈수 있도록 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더 이상 거절을 할 수가 없어 일정을 변경하기로 한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목이버섯과 다른 물건들도 많이 구입해 주게 되어 가이드도 엄청 좋아하고 회사에서도 무척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여기에 호응해 준 우리 일행분들도 대단하지요.ㅎ)
그리고 점심상도 푸짐한데 아마 늦은 시간인데다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미안해서 음식을 더 주문한 것 같으며, 본인은 반찬 두가지로 겨우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니 많이 안타까웠다.
지금까지 본 어느 가이드 보다도 책임감이 대단한 가이드인 것 같다.
오후 변경된 일정을 위하여~
2시 50분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카를 타러 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