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논산 대둔산 법계사로 향해 동생과 함께 길을 떠났다. 마침 오늘은 한일 아파트 계 하는 날이어서 남편은 계원들하고 광천 오서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서해 바닷가로 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광천에서 산행하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합류하자면 일찍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차 떠나기전에 지형스님께 전화드렸더니 부여로 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이어서 부여로 가기로 했다. 청양을 지나 부여에서 논산으로 가는 길은 아직 시골길 그대로여서 얼마나 구불거리는지 공주로 갈 걸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로 가면 논산은 지방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 한번 법계사에 간 적이 있는데 왜 그리 까마득한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골길은 가을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길가의 샛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우수수 날리고, 봄 한때는 눈같이 하얀 꽃송이를 달고 있던 벚나무잎이 이제는 빠알갛게 물들어서 파아란 가을 하늘을 향하여 활짝 팔을 벌리고 있다. 왜 이다지도 가을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건지 가슴이 아릿하다. 동생네 일이 아직 잘 안 풀려서 더욱 허전하고 슬픈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걔네 일이 잘 되어 아무 걱정없이 가을을 즐길 수 잇다면 얼마나 좋을 까? 아름다운 가을, 우리 인생의 가을도 저렇게 아름다워야 하는데, 내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동생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가을 길을 달린다.
대둔산 자락에 자리한 논산 법계사는 전에 보덕사에 게시던 지형스님의 사형께서 원력을 내어 지으신 절로 내원사 문중 비구니 스님들의 안식처로 보통 400여 비구니 스님들이 노후를 의탁하실 수 있다고 한다. 불교계 최초의 노후 복지관인 셈이나 조계종단의 도움 하나도 없이 그저 비구니 스님 한 분의 원력으로 지었다고 한다. 공부하시는 스님들의 노후가 안정되어야 안심하고 공부를 하실 수 있을 것이니, 그런 시설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
손 전화를 하면서 찾아가는 법계사는 이제 보니 연산에 가까워서 공주에서 연산으로 갔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돌고 돌아 온 것이다. 연산은 옛날 말로는 황산벌이어서 계백장군의 결사대와 화랑 관창등의 신라 장수들과의 싸움이 있던 곳으로 백제 전쟁 전시관등이 있었다. 1400여년전 나라의 명운을 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났던 벌판 같지 않게 가을 하늘은 그냥 무심하게 파아랄 뿐이다.
양촌면 소재지를 지나서 대둔산자락으로 찾아가니 멀리 산 자락에 법계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들어 가는 입구에 있는 집들은 얼마나 가난해 보이는지 절만 아니면 사람들이 오갈 일이 없는 아주 외진 산 밑이었다. 법계사는 400여 스님들이 기거하실 수 있도록 거대한 아파트처럼 되어 있었다. 전에 지형스님 방에 갔었는데 10평 정도의 원룸 아파트처럼 되어 있었다. 스님들이 평소에는 딴 절에 공부하러 다니셔도 이 곳에 방 하나가 있으니, 언제나 당신 친정집 처럼 편히 가실 수 있는 집이 있는 셈이다.
지형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셔서 동생과 같이 가족의 이름을 대고 기도등을 올렸다. 물론 기도하는 마음도 있지만 비구니 스님들이 편하게 공부하실수 있는 여건을 드리는 것도 큰 일이다. 절에서는 마침 바자회도 같이 하고 있었다. 비구니스님들이 손수 만드신 묵, 두부등을 직접 맛 볼 수 있도록 썰어 놓았고, 된장, 간장, 깻잎등 귀한 식품이 많아서 사다보니 한꾸러미가 되었다. 우선 간장이 맛이 있어야 음식이 맛이 있는 법인데 우리 집 간장이 맛이 없어서 간장도 한병 샀다.
" 어머, 보덕사에 오시던 보살님 아니세요? "
스님이 나를 보고 반갑게 물으셔서 보니, 전에 보덕사에서 뵈었던 스님이다. 보덕사에 오셨던 스님들이 오늘 행사에 모두 모이셨나보다. 처음 주지스님이 바뀌셨을 때 그동안 오가시던 맑은 눈의 젊은 스님들을 못 보게 된 것이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또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여서 돌아보니 다우스님이었다.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 저는 여기서 일년동안 교무소임을 보고 있어요"
다우스님은 고려대를 나오신 스님으로 정말 여법하게 공부하시는 스님이다. 동안거 결재때 쉬는 시간에도 보덕사 마당을 빠알간 볼로 포행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 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네요, 한 십여년 된 것 같애요, 그때 보살님 참 어려우셨는데 이제 괜찮으세요?"
정말 그때 어려웠다. 몇년 사이에 친정의 세분의 어른들이 돌아가셨고 그것이 모두 내 몫이었다. 언젠가 보덕사 뒷산을 다녀오니 집에서 전화가 와서 스님들이 나에게 말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벌써 십여년 전의 일인가보다.
법당에도 신도들과 스님들이 가득 계셨다. 마침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법계사에는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하여 한달에 한번씩 제사를 드려 주는데,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못 하고 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우선 법계사에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싶다. 영가들을 위해서도 좋고 스님들 공부하시는데 도움도 되니 꼭 그러고 싶다. 스님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하고 일행들과 오서산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서둘러 돌아 나왔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날, 좋은 스님들 뵙고 좋은 기도 올릴 수 있어서 살아있는게 너무 감사하다.
첫댓글 아름다운 만남은 계속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벌써 열 아홉번째가 되는 군요 그 불심으로 하는 기행은 참 여유로울 것 같아요
아름다운 여행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바쁜 마음에 눈으로 슬쩍 보고 나갔다가.......이제야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청양에서 부여.....그리고 논산길이 여유롭게 드라이브 하기는 참 좋은길인데.ㅎㅎㅎㅎ 글을 읽을때마다 나두 훌쩍 떠나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