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시 대단한 글입니다. 나이도 젊은 분이 영화적 내공이 너무 깊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고가 되길 바라며..창시의 구사일생님의 글을 하나 더 퍼와봅니다.
[영화를 보고] 공공의 적vs 인정사정볼것 없다.
번호:376 글쓴이: 구사일생
조회:44 날짜:2002/01/17 19:45
작년이 조폭영화의 한 해였다면, 올해는 범죄(형사) 액션물이 주도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개봉한 이것이 법이다를 시작으로 예스터데이, H,튜브.복수는 나의 것 등이 모두 범죄자와 추격자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루고 있는 범죄영화들입니다.
작년 초에 친구가 조폭 영화의 흥행붐을 주도 했듯이 올 연초의 출발선에 서 있는 공공의 적이 올해 범죄액션물의 흥행을 예측해볼수 있는 척도가 되겠지요.
처음 강우석감독이 메가폰을잡은 형사 영화라고 하니, 제일먼저 생각난게 투캅스류의 코미디였습니다. 그런데 설경구, 이성재가 주연한 투캅스라? 조합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고 영화를 보니, 의외로 투캅스보다는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떠올리게 하는 제법 진지한 액션물이었습니다.
감독과 배우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99년 개봉시에 투캅스의 콤비(박중훈, 안성기)를 그대로 가져다 놓고 진지한 형사 영화가 되겠느냐 하는 우려를 낳았었죠. 안성기는 그렇다 치고 박중훈은 코믹 이미지가 너무 강해 투캅스류의 코미디를 벗어난 영화가 될수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영화는 이명세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룬 걸작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습니다.
공공의 적은 인정사정..에서 보여주었던 교묘한 범인과 집요한 추격자간의 대결이라는 기본 모티브를 그대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주연인 설경구가 맡은 강철중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이고, 범인을 쫓는데 있어서 사냥개같은 집요함을 보여주는데, 이 캐릭터는 인정사정... 의 우형사(박중훈)과 상당히 유사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강철중은 직분에만충실했던 우형사와는 달리, 개인적인 이유로 각종 비리도 서슴지 않으며,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유도 상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면, 이성재가 맡은 살인마 조규환은 인정사정..에서 베일에 싸였던 범죄자 장성민(안성기)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펀드매니저이지만, 밤이면 부모까지도 살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 패륜아입니다. 장성민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다녀야하는 범죄자의 3류인생이라면, 조규환은 사회적 주류이자 여피족으로서, 돈과 명예의 그늘속에서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천 베일을 연상시킵니다.
영화는 이 두 사람- 적당히 타락한 3류형사와 이중적모습의 펀드매니저-의 대결을 통하여 누가 더 이 사회의 공공의 적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두 영화는 똑같이 범인이 누군가를 처음부터 관객에게 제시하고 드라마를 시작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머리를 써가며 볼일은 없습니다. 두영화는 드라마의 초점을 범죄자보다는 범죄자를 추격하며 벌어지는 추적자의 심리변화에 맞춰놓습니다. 인정사정.. 이 우형사를 중심으로 하여 강력범죄속에서 살아가나가는 형사집단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면,공공의 적은 사회의 부조리함과 이중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에서 드라마를 사회성의 문제로 까지 끌어올리지는 않습니다. 인정사정..은 형사액션의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형사들의 삶을 따뜻한 시각에서 포착해낸 휴먼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사회집단속의 하나인 강력반형사들의 고단하고 격렬한 삶속에서 비추어지는 인간미를 잡아내기 위하여 범죄자들과는 비장미 넘치는 결투가 인용되었고, 장성민은 수많은 범죄자중의 하나일뿐입니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에서, 분명한 권선징악적 사회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펀드매니저 조규환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상류층의 부조리를 대표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패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류층으로 살아가며, 그 뒤를 쫓는 공권력조차도 돈과 권력으로 조종할수 있는 존재..그런 자야 말로 바로 우리 사회에서 쫓아내야 할 공공의 적이라면, 적당히 타락한 강철중은 초반부에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악한 존재이지만, 후반부에 가면 서민적인 영웅으로 변모하여 법을 대신하여 더 악한 범죄자를 자의로 응징하게 됩니다.
두 영화는 결정적인 차이는 비주얼과 스토리의 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명세 감독은 스타일 리스트로서, 완벽하게 짜여진 이야기로 극을 풀어나가기 보다는 장면장면에서 나타는 시각적 효과와 여백의 여운을 남깁니다. 초반부에 40계단에서 벌어지는 살인장면 시퀀스는 단 하나의 대사나 설명도 없지만, 관객은 장면만으로 그 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사하며 따라갑니다. 비오는 날 죽음이 눈앞에 온것도 모르고 우산을 찾는 남자, 죽은 이후에도 무심하게 째깍거리는 손목시계 등, 이명세 감도의 영화는 관객의 상상의 자유를 누릴수 있는 다양한 암시와 여운으로 장면을 채워나갑니다.
반면 강우석 감독은 시각적 기교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영화안에서 강우석감독은 철저하게 고려된 대사속에 관객에게하고싶은 말을 다 토해내며 관객이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와줄것을 요구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강철중이 조규환과 대결하기 저에 절규하는 내뱉는 계몽적인 대사들은 바로 강우석 감독이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말이었을 것입니다.
공공의 적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뛰어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설경구의 연기는 인정사정..박중훈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드라마에 있습니다. 강우석감독은 98년 생과부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오락적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다 낭패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강우석 감독은 형사와 범죄자의 대결이라는 스릴러적인 기장감도 살려야하고, 그속에서 사회의식이라는 거창한 주제도 다루려고 하는 듯보입니다.
어차피 강우석 감독은 양들의 침묵같은 정교한 심리 스릴러의 긴장감을 만들어낼만한 감독은 아닙니다.그렇다면 본인의 스타일대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정공법을 취해야 할텐데 어중간하게 작품성과 오락성사이에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영화는 중반부부터 두 남자의 대결에서 우러나오던 긴장감을 놓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전반부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공허한 사회고발의 메세지속에서 설경구의 원맨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우가 아무리 뛰어난 연기를 하더라도 시나리오와 연출이 필연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면,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것은 허무함뿐입니다.강우석 감독은 항상 마지막 40분이 재밌는 영화가 진짜 재밌는 영화라고 이야기합니다.그러나 공공의 적은 잘 나가다가 마지막 40분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미끄러진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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