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이 내게 준 의미는
(마니산(摩尼山)산행)
예정에도 없었던 산행을 갑자기 결정했다. 안팎의 일로 머리도 복잡하고 잔병도 잦아 의욕이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어느 시인의 ‘일상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떠나라.’ 는 말처럼 굴레를 탈피해 망설임 없이 등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무릎 부상으로 산행 전날의 강풍과 비는 아내의 불참 결심을 굳히게 했다.
버스가 가을 길을 달린다. 잊고 지냈던 가을의 끝자락에서 그 향을 찾아 떠나게 된 것이다. 잠시나마 창밖을 통해 가을의 정취(情趣)에 빠져든다.
나뭇잎은/칼바람에/사형수처럼 몸부림치고/ 낙엽은/바람 부는 대로/떠돌다/갈 곳 잃어/내 마음도/애처롭다.
마니산 입구에 버스가 도착 한다. 맑은 공기와 대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며 마음속의 누적된 피로를 풀고 가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무리를 지어, 때론 일렬로 줄지어, 부부와 손잡고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부럽다. 동행하지 못한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어딘가 허전했다. 처음 실시한다는 플러스 등산 대회의 취지를 숙지했더라면 전날 기후와는 상관없이 강행했을 텐데, 지금 나는 자연을 아내 삼아 오르고 있다.
한참을 올라 칼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 있는 자연을 바라보면 잠든 아기와 같이 평화롭고 사랑스럽다. 또한 가까이 있는 자연을 바라보면 깨어 있는 지식인같이 삶의 생기가 돌고 내일의 안목을 갖게 한다. 산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기다릴 줄을 안다. 나무는 비바람 눈보라쳐도 흔들림 없이 온 몸으로 이겨내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지킬 줄 안다.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대했는지, 기다려주었는지, 또한 내 가족이나 직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키려고 노력을 했는지 사색할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산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서 산은 내게 위대한 스승이 되기도 한다. 무심한 바위와 나무는 침묵해도 느끼고 깨닫게 해주는 곳이 산이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계곡마다 붉게 물든 단풍들이 마지막 패션쇼를 하듯 열정적인 율동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신선이 된 듯 계곡을 내려다보니 가을 바닷가 바람은 에어컨보다도 더 시원했다. 언제 비가 왔냐고 비웃 듯 흔적 없이 등산로엔 낙엽이 푹신하게 쌓였다. 그 길을 밟으며 참성단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때론 수다를 떨며 산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동행하지 못한 아내가 또 한 번 눈에 밟혔다.
시월의 마지막 날, 아니 올가을 단풍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달려온 산행이 아니었나. 그때 정상에서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오늘이 11월 1일이라는 것을, 그래 79년 11월 1일 새한자동차에 입사한 날이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것이기에 의미가 다른 것일까. 이 날을 마니산에서 보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고교를 졸업하고 그해 6월 훈련소에 들어와 10.26 사건이 터지고, 입사를 했다. 참으로 혼란스런 시대였다.
돌아보면 세월이 참 빠르다. 한 우물을 판지 30년이 되었지만 늘 젊다고 자신(自信)위하며 지냈는데, 어느새 두 녀석이 성장해 상병(上兵)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무상(無常)함을 실감하고 있다. 이 또한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산(山)만이 내게 뒤를 돌아보게 한 선물이요, 깨달음이 아닐까.
이제 함허동천(添情洞誇)야영장을 향해 내려간다. 멀리 볼 수 있는 시야는 좁아지지만 자세하게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관찰력은 탁월했다. 주단길이 따로 없다. 노란 카펫을 밟고 내려오는 주인공을 상상한다. 어느새 바람이 놓칠세라 낙엽을 뿌리며 축복해 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가슴 뿌듯하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소변을 보기위해 인적이 없는 곳으로 들어서자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서 줄행랑을 친다. 고라니도 인적을 피해 풍성한 열매로 식욕을 즐기고 있었을까. 아니면 편히 쉬고 있었던 것일까. 고라니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분명했다. 본의 아니게 내 욕심만 채우려 쫓아 낸 것 같아 미안함마저 들었다. 깊은 산속에 있어야 할 고라니가 야영장 근처의 산에서 목격된 것은 그만큼 먹이가 부족함이 아니었을까.
순간 어릴 적 겨울, 토끼를 잡으러 간다고 이웃집 형을 따라간 생각이 떠올랐다. 그땐 노루였는데 어미라고 한다. 형과 나는 높지 않은 산 중턱에서 노루를 발견하고 잡을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잡겠다고 뛰어 올랐다. 노루는 힐끔 힐끔 경계하면서 쉽게 산을 올랐다. 한 참을 힘겹게 올라 쳐다보면 잡힐 만 한 곳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노루였다.
차라리 보이지나 말지. 노루에 홀려 산 정상에 오르니 기다렸다는 듯 산을 내려가 넓은 들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코앞에서 노루를 놓친 것 같아 분통했고, 치타처럼 달려가는 노루를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때 노루도 생명을 담보하고 고라니처럼 먹이를 찾아 마을 앞산까지 내려온 것이었으리라. 끝내는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길이 사는 법이었다.
도착지점인 야영장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인천산악연맹협회 소속의 산악회 회원들로 행사 분위기가 뜨거웠다. 시산제가 끝나고 산악회 대항 족구대회는 가을산행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산악회 별로 또 다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이었고, 그 속에서 분출되는 우리들의 함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는 내 머리와 어깨를 짓눌렀던 모든 시름과 피로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모두가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할까. 말똥한 눈은 창밖을 응시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상 최대의 다큐멘터리, 대자연의 위대함을 숨죽이며 가슴으로 듣는다.
가을이 불타는 소리/낙엽이 떨어지고/앙상한 가지에 매달린/저 붉은 열매는/혼기 놓친 노처녀의/가슴을 때린다/ 바람이라도 불면/툭하고 떨어져/까치도 쳐다보지 않는/노처녀의 비애다
올해는 욕지도와 마니산, 두 곳 밖에 못 다녀왔다. 많은 산행을 해야지 하면서도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로 뜻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행 후엔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산행도 가을의 단풍을 소재로 추억을 만들 수 있어 흡족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 쌓였던 앙금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등에 맨 배낭과 두 손에 쥔 짐들로 육체는 힘겨웠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 새털 같았다.
‘대악’ 산악회가 좋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몇 번의 산행으로 감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산행계획대로 정확한 시간대 운행과 저렴한 경비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건전한 산악회 분위기 조성과 직원들 간의 매너 있는 질서유지가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일반 산악회의 버스문화와는 차별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때문에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다음 산행이 기다려지곤 한다. 이번 산행도….
2009.11.1 서재에서...
첫댓글 류인복님에 글은 보니 한번 다녀온 듯 합니다. 다음 산행에는 두 분이서 같이 하셔요...^^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는 함께 다녀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드디어 다녀왔군요 우리 산악회 문인 한명 있는 것이 홈피를 밝고 훈훈하게 하는군요 글감사 감사
과찬입니다. 이벤트님도 잘 지내시지요.
자연바람처럼 속세와 동떨어진 산행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천천히 산행하며 서로 호감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모처럼 어릴적 고향의 겨울을 떠올린 시간들이었습니다. 샐리님, 행사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