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 성인
23. 성녀 김 루치아
(金---, 1818년 ~ 1839년 7월 20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녀의 이름은 김누시아(金累時阿)[2]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름 누시아는 그녀의 세례명루치아(Lucia)로 보인다.
김누시아(1818~1839). 성녀(聖女).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루시아.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9세 때 모친에게서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했고, 열심히 수계(守戒)하여 14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하였다. 그 뒤 모친이 사망하자 가산을 전부 팔아 장례를 치르고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며 생활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에는 이매임(李梅任)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4월 초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의 어린 자녀들이 고문과 혹형을 이겨 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함께 살고 있던 이매임, 이정희(李貞喜) · 이영희(李英喜) 자매, 김성임(金成任), 그리고 성사를 보러 상경한 허계임(許季任) 등과 순교를 결심한 후 4월 11일 이들 5명의 여인과 함께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박해가 발발하자, 그녀는 세 명의 독실한 여성 교우들과 함께 자수하여 그들의 신앙을 증언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그들 중 가장 어렸지만 그 모임의 지도자였다. 그녀는 온갖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평정을 일지 않았다. "너같이 고운 여자가 천주교를 믿을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천주교를 믿습니다." "너의 천주를 부정하면, 네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저의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저의 임금님이시자 아버지이신 분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수수번을 죽어도 그리할 수 없습니다." "너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 "저는 아직 스무살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제 나이의 여자가 결혼을 안한 것은 이상할게 없습니다. 젊은 여자에게 그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너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아닙니다. 저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님을 부정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네가 말하는 영혼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육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신성하며 보이지 않습니다." "너는 하느님을 보았느냐?" "아닙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백성이 임금님을 본 적 없다고 해서, 그분이 계시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저는 땅 위의 피조물을 보았으므로, 창조주께서서 계시는 것을 압니다."
포청과 형조에서 고문과 혹형을 받았으나 천진한 태도와 한결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을 이겨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포도대장은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여러 종류의 고문을 가했으며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당혹스러워 했다. 그녀의 침착함을 본 형리들은 그녀가 귀신에 씌였다고 생각했다.
김 루치아와 교우들은 그들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지고도 감옥에서 수 주 동안을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녀는 좋은 머리결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잘라서 팔았다. 그 돈으로 그녀는 약간의 음식을 사서 동료 죄수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녀는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격심한 고문과 고통을 겪고 사형 판결을 받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나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가 언제인지 몰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우리를 따라 천국으로 와.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를 기다리고 있어.”
3개월 동안 옥살이한 후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을 때, 그녀의 나이 22세 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 발췌문헌 : 가톨릭 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