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이들 제 163호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의미
신앙 1부: 세 천사의 복음 요한계시록에는 이 세상 역사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대 쟁투와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12장에는 하나님의 참 백성과 교회인 남은 무리의 태동과 그들을 박멸하려는 용(사탄)의 움직임이 언급되어 있고, 13장에는 사탄이 짐승의 세력을 이용하여 짐승의 표를 내려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핍박하는지에 대하여 묘사되어 있는데, 14장에는 그런 짐승의 세력과 짐승의 표의 환란을 견디고 승리하여 구원받는 남은 무리 십사만 사천이 등장한다(계 14:1~5). 그리고 14장 6절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시는 메시지가 세 천사를 통하여 전달되고 있다. 그 중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복음은 둘째 천사가 외치는 복음이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기별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세 천사의 복음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공부해보기로 하자. * 세 천사의 복음의 요약 요한은 계시 속에서 공중을 날아가며 외치는 세 천사를 보았다. 그 천사들이 외치는 복음은 영생과 구원을 가져올 영원한 복음이었다. 1) 첫째 천사 복음의 핵심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6, 7). 첫째 천사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며 올바로 경배하라는 것이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순종한다는 뜻이며,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성품과 행실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요청하자, 주께서는 모세에게 그분의 “선한 형상과 이름을” 반포하시며 그분의 성품을 설명하셨다(출 34:6, 7).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는, 우리의 성품과 행실과 삶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2. 심판이 이르렀으니 창조주를 경배하라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회개하고 준비해야 하는 때의 긴급성을 말해 준다. 이 심판의 시간은 특별히 하늘 성소에서 중보사업을 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의 마지막 단계, 곧 주님께서 그분의 심판 작업에 착수하시는 때를 가리키는데, 재림 전에 누가 영생을 유업으로 받을 자인지 조사하는 심판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첫째 천사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촉구한다. 곧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명령함으로(계 14:7, 출 20:11) 넷째 계명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념물, 즉 그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정하시고, 십계명 가운데 재확인하신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의 복음은 세상에 창조주이시며 성경의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하면서, 인간의 제도에 의해 짓밟혀 온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존귀성과 예배일을 회복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를 경배하는 참 예배가 회복되고 그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성품의 원칙을 생애에 실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2) 둘째 천사 복음의 핵심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다. 무너진 바벨론에 대한 경고가 또 다른 천사에 의해 외쳐지는데, “거기(바벨론)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호소가 계시록 18장 4절에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사악한 여인, 음녀들의 어미, 그리고 그의 불순결한 딸들을 가리킨다(계 17:5). 1. 무너진 바벨론 지금은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바벨론화 되었다. 바벨론은 첫째 천사의 복음, 즉 창조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복음을 거절함으로 무너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셔서 가르치신 순수한 복음으로부터 떠나 첫 몇 세기 동안에 로마 교회가 배도한 것처럼, 오늘날의 많은 개신교는 성경이 말하는 순수한 진리로부터 떠났다.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둘째 천사의 복음은 마지막이 가까워져 올수록 점점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인데, 첫째 천사의 복음을 거절한 타락한 개신교의 종교 조직들이 연맹을 결성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해 공공연하게 반역할 때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2. 포도주를 먹임으로 둘째 천사의 복음은 바벨론의 배도와 그 강제하는 권세의 성격을 세상에 폭로한다. 곧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바벨론의 "포도주"는 오류의 가르침을 대표한다. 현재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는 개신교의 가르침과 교리에 완전히 침투되어 있다. 이제 바벨론은 그의 거짓 종교적 가르침과 교리를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하여 국가의 권세들에 압력을 넣을 것이다. "음행"은 바벨론과 국가들 사이, 즉 배도한 교회와 국가 권력 사이의 불법적인 관계를 대표한다. 3) 셋째 천사 복음의 핵심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계 14:9, 10). 셋째 천사의 복음은 흔히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의미로만 단순하게 해석된다. 그러나 셋째 천사의 복음에는 많은 사람이 간과하기 쉬운 깊고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짐승의 표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경고가 아니다. 이 복음에는 마지막 때에 셋째 천사의 복음에 유의하여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면, 다시 말해서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며 짐승의 표의 압력과 핍박과 환란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참 백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지침과 함께, 마지막에 성도가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복음의 진수가 들어있다. 1)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마지막 때에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하는 짐승의 정체와 그가 행할 일에 대한 예언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계 13:15~17).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짐승에게 경배할 것인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며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 외에는 모두 다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짐승의 표란 인간의 권위가 세운 표로서, 인간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법을 변경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을 바꾼, 인간이 세운 법과 날과 제도에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 계명은 독특한 법으로서, 창조주가 내리신 명령 곧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피조물이 인정하고 경배하라는 것이며, 창조를 기념하는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짐승은 옛날과 같이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인간의 제도를 높이며 짐승을 경배하도록 강요할 것인데, 그리하여 짐승의 표를 내리고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은 매매하는 일, 곧 경제적인 모든 활동을 금하고 핍박할 것이다. 2)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2). 왜 셋째 천사의 복음에는 짐승의 표에 관한 언급이 나오다가 갑자기 “성도의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짐승의 표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강요될 때에 그것을 받기로 거절하는 사람은 무서운 핍박과 환란과 굶주림과 박탈을 경험할 것이다.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에 각인은 누구를 경배해야 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루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참 백성은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라도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짐승의 핍박과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짐승의 표의 환란을 견디기 위해,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참 백성이 되고 죄를 승리하고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성도의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지셨던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며, 인내로서 모든 핍박을 이기는 사람들이 될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참된 믿음으로 죄를 승리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들이다. 곧 완전한 복음을 깨달아 경험하므로 그 복음의 진리로 성화된 생애와 성품을 이루어 하나님의 인이 이마에 찍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의를 경험하고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배에 참여할 것이며, 인간의 제도와 의를 선택한 사람은 짐승과 우상이 명령하는, 인간이 만든 예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후자는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인간의 계명에 우선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고, 전자는 셋째 천사의 복음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신앙 2부: 둘째 천사의 복음 – 바벨론에서 나오라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이유는 바벨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왜 무너졌는가? 1)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계 18:2, 3).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은 바벨론의 죄악의 잔이 가득 차고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즉, 바벨론의 무너짐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 바벨론의 타락을 말한다. 그것은 특별히 요한계시록 13장 15~17절에 기술된 짐승의 표의 최후의 위기를 가져올 짐승과 그의 우상 사이에 생겨날 배도한 대 종교 연맹을 가리킨다. 교회는 본래 주님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국가의 권력과 지지를 얻어, 표면적으로는 가장 종교적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 배도하도록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것이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 인다는 의미이다. 바벨론의 타락은 바벨론의 삼중 연합에 걸쳐 나타나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바벨론의 세 연합은 눈에 보이는 연합과 보이지 않는 연합으로서, 종교의 연합, 정치의 연합, 경제의 연합이다. 1. 종교의 연합과 타락: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2절). 2. 정치의 연합과 타락: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3절). 3. 경제의 연합과 타락: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3절).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첫 번째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은 두 번째 짐승으로 표상된 미국을 앞세워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고 짐승의 표를 내리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와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통제하여 연합하므로 그 세력을 구축할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바벨론의 삼중 연합이라고 부르며, 그것이 바벨론을 무너지게 한 바벨론의 타락이다. 2)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 18:4, 5). 지금 종교와 정치와 경제는 바벨론화 되었다. 그 뜻은 모든 세상이 바벨론화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복음을 보내셔서 당신의 백성을 모으시고 계시는데, 그 복음의 요지는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그곳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해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후 6:17, 벧전 1:16)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그분의 심판을 초래한 바벨론의 죄악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로 취해있는 잘못된 교리로부터 나와야 하며, 바벨론의 방식에 젖어있는 교육제도와 사고방식과 생활방식과 세상의 조류에서 탈피해야 한다. 3)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는 천사는 누구? 요한계시록 14장과 18장에 등장하는 세 천사와 다른 천사,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는 천사들은 누구인가? 실제로 눈에 보이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하늘을 날아 왔다갔다하는 천사를 말하는 것인가? 그들은 진리를 먼저 받아들이고 깨달은, 성령이 충만해진 사람들이며, 마지막 오순절 큰 성령을 받고 큰 능력을 갖추고 나아가 바벨론과 적그리스도의 비밀, 그리고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경고하며,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복음 속에는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 기록된 세 천사의 복음이 다 포함되어 있다. 복음을 펼치는 천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복음의 의미를 체험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바벨론의 습관과 사고방식과 생활에서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으므로, 이 능력을 체험하여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한 사람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외침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복음을 믿고 체험한 주의 백성, 특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마지막 남은 무리가 짐승의 표 환란을 통과하면서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서 큰 소리를 발하는 것인데, 이 복음을 세상에 외칠 때에, 주의 영광으로, 즉 그들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빛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환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이 바벨론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온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계속되는 기사들에서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구체적인 의미에 관해 연구해보자.
신앙 3부: 바벨론의 오류에서 나오라 바벨론이 언급될 때에 그 뒤를 따르는 표현에는 반드시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가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바벨론의 음녀로 표상된 “교황권”에 대한 언급에도 자세히 서술된 이 음행의 포도주란 하나님의 참 복음과 진리가 아닌, 바벨론의 오류와 이단의 가르침과 교리들을 말한다. 현재 기독교 안에서 전해지고 있는 가르침과 복음은 바벨론의 오류가 들어와 섞인 반쪽 복음의 가르침들이다. 기독교에 침투해 온 바벨론의 오류들을 잠깐 살펴보자. 1) 예정설의 오류에서 나오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 받을 사람을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이 예정설이다. 예정설은 요한 칼빈이 제창한 교리로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구속의 계획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사상이다. 예정설은 죽음을 불사하고 죄지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의도를 완전히 오도하고 있다. 성경의 정확한 가르침은, 각자의 자유 선택에 따라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들은 영생에 이르고, 불순종하며 죄 된 삶을 고집하는 자들은 결국 멸망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2)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오류에서 나오라 기독교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은 보통 “영원 구원”이라고 불린다. 이 가르침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시며 강요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왜곡시키는 오류 중 하나이다.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 인류 시조의 범죄와 타락으로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과 유전적인 연약성을 타고나는 점에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안으로 마련해주신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하고 매일 주님을 선택하며 주님과의 산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로 하는 선택권은 있다. 어느 편을 택하고 자신을 드리는가 하는 선택력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된다. 구원은 한 번의 결정이나 선택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을 통해 끊임없이 그분을 선택하므로 이루어진다. 구원은 한번 받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결코 과거에 이루어진 단 한 번의 결정에 기초하는 것도 아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으면 시들어 죽고 멸망하는 것이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의한 영적 성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관계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영혼불멸설의 오류에서 나오라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직접 도전하고 반역하는 오류 중의 하나이다. 영혼불멸설이란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이론이다. 영혼불멸 사상은 고대 헬라의 신비주의에 기초를 둔 이교 사상으로 사탄에게서 기원 되고 바벨론과 이집트의 이방 종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이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면, 그리고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벌써 가 있다면, 심판이 왜 필요하며, 주님의 재림이 왜 필요한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의 부활인 첫째 부활과 형벌의 부활인 둘째 부활은 무엇이며, 천년기 이후에 있을 악인들의 심판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죄의 값인 사망을 선고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 공로로 힘입어 죄를 용서받고 다시 영원히 사는 길을 마련해 주셨음에도 영혼불멸설을 믿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고집으로 진리를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4) 영원지옥설의 오류에서 나오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끝없는 우주의 세계를 운행하시지만, 한 마리 작은 참새도 떨어지지 않게 붙드시며 우리 각 개인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왜곡하며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한 분으로 만든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70, 80년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 영원한 지옥 불에 영원토록 태우실 것인가! 영원지옥을 믿는 사람들은 타당한 이유 없이 끝없는 고통 중에서 영원히 타고 있어야 하는 악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를 할 수 밖에 없으며, 악인들이 받는 형벌은 하나님의 잔인한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에 나오는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한 잘못된 개념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쓰인 표현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결과가 영원토록 유지되는 것, 곧 악인의 생명이 영원토록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형벌의 결과로서 영원히 멸망되어 완전하게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조사해보면, “영원”, 또는 “세세토록”이란 말이 57번 나오는데, 이 말이 언제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원히 불탄다는 표현은 절대 꺼지지 않고 영원토록 탄다는 뜻이 아니고, 그 불은 아무도 끌 수 없으며, 그 불이 태우는 대상들이 완전히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탄다는 뜻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 있을 지옥 불은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이며, 한 번 불붙으면 마귀와 악인들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타게 될 것이며 소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불의 의미는 영원토록 타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134호를 참조하세요.) 바벨론의 오류를 믿고 있으면 올바른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른 영적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무너지는 바벨론의 대표적인 죄인 취하게 하는 진노의 포도주,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로부터 나와야 한다.
신앙 4부: 바벨론의 예배 형태에서 나오라 기독교가 바벨론화 되었다. 요한계시록 18장 2절에는 무너진 바벨론의 삼중 연합 중 종교의 연합과 타락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위 예언의 말씀대로 현재 교회들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쇼나 오락프로와 비슷한 음악과 예배 형태가 교회 안에 난무하고 있고, 신령과 진정으로 경건하게 드리는 예배와 심령을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 대신 거짓 성령의 운동이 휩쓸고 있으며, 영적인 죽음과 흑암이 교회와 영혼들을 압도하여 주검이 있는 곳에나 출몰하는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종교적인 타락과 거룩하지 않은 연합과 동맹에 대해 경고하시며, 영적으로 깨어나 바벨론의 예배 형태에서 벗어나기를 호소하신다. 1) 축제 예배 형식에서 나오라 현 기독교 예배형태로 자리 잡은 축제식 예배는 더 효과적인 전도와 이 세대에게 맞는 흥미 있는 형식의 예배로 주목을 받으며 많은 교회에 도입되고 있다. 현재 기독교 안에 나타나는 경건의 부재와 참 성령의 역사 결핍으로 교회의 영적인 빈곤과 공황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것이 축제식 예배이다. 벌써 오래전에 미국 내의 기독교인들의 다수가 무대 공연식의 예배를 드리는 새로운 형태의 대형 교회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대형 교회들의 예배 형태는 마치 록 콘서트나 공연행사장을 연상케 한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 기독교의 많은 교회가 이런 형태를 도입하여 예배 드리고 있다. 그런데 그 축제식 예배에서 불리고 들려지는 빠른 박자와 엇박자가 섞인 요란한 복음 성가들은 가사만 복음적으로 살짝 대치시켰을 뿐, 보통 TV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연예오락의 유행가들과 다를 바가 없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요즘 춤으로 드리는 예배도 등장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춤, 힙합댄스, 재즈댄스, 발레와 퓨전 댄스 등으로 성경의 이야기들을 그려내며 춤을 통하여 청중들을 복음화한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축제식 예배의 근원과 원조는 천주교회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감각을 어지럽히는 축제 예배는, 성령의 조용하고 엄숙한 임재 대신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음악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취하게 하여 신자들의 정서를 기만한다. 이러한 종교적 연예오락이 기독교를 온통 타락시켰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것이 영적인 퇴락의 징조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흥겨운 예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클럽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댄스 리듬이 소위 복음 성가라고 불리는 곡들에 들어 있으며, 그런 노래의 곡이나 가사는 말초적인 신경과 욕망을 자극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또 하나의 오락이 되어 버렸다. 죄의 깨달음과 회개와 경건한 슬픔은 거의 없어져 버리고, 예배 형식을 통해 인간적인 행복과 만족을 찾기 위해 심지어 종교적 크리스천 로큰롤(rock-and-roll)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신경을 자극하는 리듬과 화음과 곡조로 된 복음 성가들을 부르는 것이다.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교회 예배 음악에 사용하는 타악기들과 드럼과 전자 기타들의 연주와 음악은 쇼와 영화에서나 사용하는 것들로서, 사람들의 감정만을 부추겨 참된 신앙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빈곤 상태를 가려버린다. 이런 축제식 예배는 바벨론의 예배 형태로서, 가장 엄숙하고 신령해야 할 기도와 성령님의 감동을 대신하려는 가련한 시도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경건한 예배와는 거리가 먼, 무너진 바벨론의 예배 형태인 떠들썩한 축제식 예배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야 한다. 2) 바벨론 방식의 목회에서 나오라 대형 교회가 우후죽순으로 세워지고, 비즈니스같이 거대한 조직을 가진 산업형 교회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이 현상이 교세의 확장과 교회 성장을 위한 것인지, 진정한 복음 전파의 정신을 띠고 생겨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교회는 바로 이 소명을 위해 존재한다. 큰 교회를 세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교인을 양산해 그들 위에 목회자가 군림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올바른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목사는 바벨론의 오류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의 복음만을 전해야 한다. 많은 교파의 교회가 침례를 주고 교회들을 설립하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빈궁한 자들을 돕지만, 성경상 의미로 볼 때에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복음의 전파에 이 모든 요소가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진정한 복음 전파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죄인들의 생애를 온전히 변화시키고 거듭난 생애로 만들기 전까지는 복음은 아직 온전히 전파된 것이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되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복음 전도의 목적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데리러 다시 오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영혼들을 준비시키는 데 있다. 교인 명부에 교인의 숫자가 더 많이 적혀 있을수록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려는 교회의 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교회는 더욱더 유명한 교회가 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한다. 현재 기독교의 많은 목사가 예수님의 겸손함을 본받아 교인들을 섬기고, 진정한 복음의 좋은 꼴을 먹이며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영혼들을 준비시키기보다는, 교인들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여 재물 욕과 명예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또한, 영혼의 굶주림과 영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가감 없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곧바로 전해야 하건만, 교세의 확장과 교회의 성장을 위해 교인들의 귀에 듣기 부드럽고 안일한 설교만을 고집하며 거짓 평안의 기별을 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이 회심하는 것에 관심을 두시지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식의 목회는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경고의 말씀과 병든 영혼을 치료할 치유력이 담긴 생명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여 영혼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할 목회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 충성하기보다 인간의 인정을 갈구하는 삯꾼 목자에게 내려질 심판의 선고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은 무너진 바벨론 식의 목회를 청산해야 할 때이다. 3) 거짓 성령 운동에서 나오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 그리고 한국의 교회들까지도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소위 성령의 역사 운동이 활개를 치고 있다.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 안에 보편화 되었으며 이런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부르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이 치유의 은사와 방언과 뜨겁고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다. 천주교가 배후의 세력이 되어 번지고 있는 거짓 성령 운동은 마지막 때의 많은 하나님의 참 자녀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미혹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기적이나 이적, 또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성령의 역사인 것으로 믿게 하면, 참 성령의 역사, 곧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애를 개혁하게 하며, 극기하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게 하며, 다가오는 심판과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소홀히 하게 될 뿐만 아니라 깨닫지도 못하게 되기가 쉽다. 거짓 성령 운동에 빠지게 되면, 생애의 진정한 변화가 없이도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히 임하며, 열광적이고 흥분적인 성령의 역사 안에서 “나는 구원받았다”는 거짓 안정감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 거짓 성령의 역사는 마지막 때에 짐승이 온 세계와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요한계시록 13장 13, 14절에 언급된 짐승이 펼치는 “이적”의 역사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미혹하며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 거짓 성령운동이야말로 무너진 바벨론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4) 비즈니스적인 신앙생활에서 나오라 교회가 교인의 숫자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하고, 숫자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들을 계발하며, 숫자를 크게 과시하기 시작할 때, 회심하지 않은 교인들이 교회에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뜨뜻미지근한 사람들로 차게 되고, 그리하여 교회의 영적인 상태 또한 뜨뜻미지근해진다. 그러나 교인들은 자신들의 헐벗은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숫자와 교회의 성장을 가리키며 교회가 영적인 면에서 부유하게 증가하였다고 믿는다. 이런 교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비즈니스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증가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비즈니스의 발판으로 변질되고, 교인들의 사적인 이익추구와 개인의 야욕으로 교회는 영적 암흑에 빠진다. 사치와 과시와 교만이 교회에 자리를 잡고, 재력이나 명예의 발판으로 교회의 직책이 매매된다. 곧 장로나 집사 같은 교회의 직책이 재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또한, 정치적인 야합 같은 성격의 당파들이 생겨나 교회 안에서 세력을 잡으려는 세속적인 정신과 분쟁이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는 영적인 죽음과 흑암이 가득한 곳, 곧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는 무너진 바벨론의 특징 중의 하나인 죽은 영적 생활, 세속적인 신앙방식에서 탈피해 나와야 한다.
신앙 5부: 바벨론의 교육제도에서 나오라 교육은 인간의 사상을 형성하고 인간성을 꼴 지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의미는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원칙에 맞는 참교육을 통해서만 교육의 진정한 목적인,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참교육을 통해서만 마지막 짐승의 표 핍박과 그 세력에 굴하지 않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바벨론에서 나오는 일에는 교육의 개혁이 포함되어 있다. 현시대의 무너진 교육제도와 교육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킬 수 없다. 1) 정형화된 교육에서 나오라 한국인의 교육은 정형화된 교육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는 진정한 교육 이념에서 크게 이탈되었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지적 수준만을 높이는 것으로 정형화된 것인데, 머리로만 취득한 지식으로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고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개념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곧 전문적인 지적 능력을 갖춘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었으며, 개인의 출세, 성공과 명예를 취득하는 지름길을 교육으로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험과 고시 만능으로 흐른 교육 풍토, 엘리트만 키워내려는 학교교육, 교양과 인성을 홀대하는 학교교육, 창의력과 인성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의 부재 등은 한국 교육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현재 한국 교육은 어떻게 사회의 최상위에 진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경쟁에서 이겨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줄 것인가를 가르치고 그것을 강요하는 왜곡된 교육이다. 이렇게 일률적이고 정형화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창의력이나 개성이 없어지고 대중의 사조와 흐름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유형의 사람들이 된다. 현대의 교육은 인본주의 사상으로 이루어져 많은 경우에 주입식 교육이나 세뇌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주관적이거나 창의적으로 무엇을 사고하거나, 독자적이거나 개인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체사고 (Group thinking)에 길들이게 되고, 사회의 틀이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단체사고를 갖게 되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어렵게 된다. 주류와 대중을 따라가도록 교육받은 사람에게 대다수가 반대하는 진리를 따라 홀로 걸어간다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하고 하나님의 편에 서는 일은 대중의 지지를 받거나 대다수가 좋아해서 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은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믿는 오류를 거절하고 진리를 따라 좁은 길을 걷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인본주의의 사고방식으로 인간을 꼴 짓는 현대의 교육은, 진리를 고수하고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독특하고 특별한 백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방해한다. 지금은 우리의 자녀를 참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육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의 교육제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청년들을 멀어지게 하고, 세상에 다가올 영적인 큰 사건, 재림과 심판의 날을 위해 준비하지 못하게 하며, 세속적인 성공과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게 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무너진 바벨론의 교육제도에서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2) 바벨론의 교육제도에서 나오라 중세기에 걸쳐서 나타난 종교 역사를 고찰해 보면, 천주교는 그들이 만든 법왕교의 교리와 그들의 신념을 퍼뜨려 온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육사업에 주력을 다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암흑시대를 몰아낸 루터의 종교 개혁을 선두로 시작된 각국의 종교 개혁은 큰 기둥이 되는 신학적인 오류를 대항하는 일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의 개혁자들과 종교의 핍박을 피하여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은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개신교 국가를 세웠으나, 법왕권이 세운 교육제도의 그늘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뛰어난 대학은 법왕교와 그 제도의 교육형태를 그대로 모방하여 세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제도는 법왕교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다. 제수이트를 양성하고 교황의 교리에 반항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세워진 교육제도를 보면, 학생들의 필요와 개성과 장래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선정해 놓은 교과 과정들을 공부하도록 강요한다. 참된 그리스도인 교육은 개인의 필요를 인식하고 품성의 완성을 위해 주력하며,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 적성에 맞는 학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왕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 전체를 하나로 다룬다. 그리하여 미리 선정해 놓은 교과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독립성과 개성을 없애고 일률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을 했는데, 이는 교황권의 권위를 굳게 세우는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일환의 교육으로서, 학생들을 맹목적으로 지도자에게 맹종하게 하였으며, 아무도 선택권을 발휘하도록 용납되지 않았고, 법왕교의 제도에 순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학생들의 개성이나 독특성 그리고 독립심이나 창의력은 이런 교육제도에 의해 획일화되고 파괴되었다. 현 교육제도에서 흔히 나타나는 학위제도나 경쟁, 표창, 상급 수여는 법왕교의 교육제도에서 빌려 온 것이다. 머리에 강제로 집어넣는 주입식과 형식적인 암기식의 공부 역시 그렇다. 그들의 교육방식을 보면, 암기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능력과 명석한 판단 능력을 제어하는 한 수단으로 강요되었고, 자제력을 가르치는 대신 엄격한 훈련을 시켰으며, 경쟁심을 유발해 동료 학생을 밟고 올라가게 장려하였으며, 이 일에 뛰어날 때에 상급을 주었다. 오늘날의 학위제도나 박사학위 과정 등은 다 로마교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급제도를 만들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강압하고 다스리려는 정신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그리스도의 정신과 교육 이념에 배치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 참교육 이 땅에서의 교육은 영원한 하늘 교육을 위한 예비 교육이다. 참 교육이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사람에게서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 다시 말해 지·덕·체의 발달을 증진해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되던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며 구속 사업이다. 참교육은 사람을 지적 거인으로 만들거나 적성에 맞는 특수 기능의 연마에만 치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지, 덕, 체의 원만한 발달을 기하는 전인 교육이어야 하며, 일생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평생 교육이어야 하는데, 곧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균형 있고 원만한 발달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참된 교육은 구원을 위하여 내세의 삶을 위하여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 가장 훌륭한 교과서 성경 다른 어떤 책보다도 가장 위대한 교과서요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지능을 계발시키고 지능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구원의 지식을 알려 주고 생애와 품성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주는 참된 교육의 기초는 성경 연구 외에는 없다. 성경은 신앙의 기초요, 지혜의 근원과 지적 훈련의 자료로서, 그 어떤 책, 아니 다른 모든 책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이 가지는 주제의 위대성과 단순하지만, 위엄 있는 말씀 그리고 비유의 아름다움은 다른 것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 즉 사람의 사상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 성경을 공부하므로 인간의 마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더불어 접촉될 때, 사람의 지능은 비로소 신장하고 높아진다. 위대한 교과서인 성경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 가장 진실한 생애를 산 사람들의 전기,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고 가족을 다스리는 원칙들, 곧 사람의 지혜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탁월한 원칙들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가장 심오한 철학,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감격스러운 시와 지혜의 잠언들이 담겨 있다. 또한, 성경의 기록 가운데는 하늘의 높고 영원한 사물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진리를 연구하는 사람은 진리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을 연구할 때에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의 비밀과 신비함을 깨닫게 되고,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계발되어 하늘의 더 높고 고상한 교육을 위해 준비되며, 그리하여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 안에 회복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2. 부모가 교사가 되라 ① 최초의 학교 - 가정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 최초의 교사가 되어야 하며 가정은 최초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정신과 성품을 형성하는 위대한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았다. 자녀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부모에게는 없다. 가정은 자녀가 하늘의 가정과 하늘의 학교를 위해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양성소이다. 자녀의 품성을 균형 있고 조화되게 해주는 부모의 의무와 목적은 사소하거나 하찮은 일이 아니며, 인내력 있고 참을성 있는 노력과 진지한 생각과 기도가 요구되는 일이다. ② 부모가 먼저 거듭나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과 연결하는 고리로서 하늘 아버지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자신들을 자녀에게 여호와의 교훈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생각하여야 한다. 그들은 자녀를 가르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 배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계속해서 빛을 모아 훈계와 모범으로 이 귀한 빛을 자녀를 교육하는 일에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모들이 먼저 신앙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모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거듭나는 경험을 하고 깨달은 진리의 빛 속에서 성화 되는 체험을 해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부모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자녀의 모본이 될 뿐 아니라 그들의 성품을 온전하게 꼴 지을 수 있으므로 부모는 자신의 성격의 결함과 조급함과 인내와 사랑이 없는 연약한 성품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하며 대화의 상대자가 돼 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청결과 질서를 계발시키고, 올바른 습관과 기호를 형성하도록 지도하며, 아버지는 자녀가 근면하고 자주적이며 남을 도와주도록 훈련하고 또한, 언제나 마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살고 행동하고 일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부모들은 가정에서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훈계와 모본으로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가르치고 사교적이며 친절하도록 그리고 근면과 절약과 극기의 습관을 계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③ 최대한의 학습을 하라 세상의 지식과 학문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해 무지하게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세상의 학습이 바벨론 적이라고 하여 학문을 멀리하고 학습의 기회를 게으르게 여기는 것 또한 하나의 극단으로 치우치는 일이 되기 쉽다. 만일, 학식이 많고 지식과 학문에 능한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을 하고, 세속적인 면을 배제하고 자신의 재능과 지식과 견문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때, 그것은 배우지 않은 사람의 유용성을 능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유용하고 고상하고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며, 모든 일에 효율적이며 뛰어난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 참교육에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닌,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일에 대한 폭넓고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갖추는 일도 포함된다. 또한, 스스로를 자양하고 자급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넓고 전반적인 박학다식한 지식과 학문을 가지는 것은 결코 참된 교육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고 유용한 일꾼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도 유용하고 충실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신앙 6부: 바벨론의 생활방식에서 나오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무너진 바벨론의 생활방식에서 나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는 바벨론화 된 세상의 사조와 경쟁과 세속적인 정신에서 나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먼저 바벨론의 정신에서 나오는 경험을 해야 아직 바벨론 속에 깊이 빠져 사는 주의 백성을 불러낼 수 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고후 6:17)고 주님께서는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백성과는 다른 거룩하고 순결하고 독특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말씨와 행동과 생각이 고상하고 순결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사랑과 경건한 모습을 삶 속에서 보여야 한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세상의 사조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이 얼마나 현 시대 인간들의 모습과 성정을 잘 묘사한 말인가! 마치 우리가 사는 오늘 날의 시대를 그대로 예언해 놓은 말씀 같지 않은가? 바벨론의 생활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이 무엇인가 함께 생각해 보자. 1) 현 시대 유행의 사조에서 나오라 인문주의 학습의 결과로 현대인들은 홀로 대중과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을 잊어버렸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과 또는 세상의 흐르는 사조와 다르면, 또한 자신이 군중 속에 함께 속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불안해한다. 단체생각 (Group thinking)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주관이나 생각보다는 대다수 사고방식을 따르고 자신의 판단을 대다수의 판단에 맡겨버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이나 의견이나 판단, 그리고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주로 사는 생활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현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바른 진리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사조와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은 세상과 반대로 가야 하는 좁은 길이다. 대다수가 믿지 않는 진리를 믿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길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기 때문에 조롱을 받는 길이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므로 비난을 받는 길이다. 유행하면 흔히 여성들의 옷이나 패션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유행 사조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의복의 유행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그리스도인 의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만일 현재 유행하는 옷이나 패션이 그리스도인의 원칙과 건강법칙에 맞으면 그 유행을 따르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행은 인간의 과시와 정욕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들이 많고, 건강법칙에 맞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너무 꼭 끼는 옷과 허리를 졸라매거나 허리에 너무 많은 무게가 가도록 만들어진 옷은 혈액순환을 방해하므로 건강에 좋지 않고, 너무 노출이 심한 짧은 옷이나 몸매를 드러내는 옷과 바지들은 이웃을 보호하고 그들의 신앙을 도와주는 데 부적당한 옷이다. 또한, 너무 고가의 것들을 소유하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더 헌신해야 할 우리의 의무에 소홀하게 되거나 유행의 제단에 희생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들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복을 개혁하고 검소하게 입는다고 너무 혐오감을 주거나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어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고 잘 선전하기 위한 단정하고 청결하고 아름다운 차림새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현시대의 유행하는 사조에서 나온다는 것은 비단 의복의 유행뿐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휩쓸고 있는 사상과 사조를 역행하는 것을 말한다.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명예와 권력을 탐하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세속적인 정신과 다툼의 정신을 나타내고 술수와 음모를 꾸미는 바벨론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버리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 시대를 장악한 스포츠와 오락과 연예, 그리고 그에 따르는 병적인 경쟁 정신을 보라. 또한, 현대에는 돈이 우상이 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며 내세의 삶과 하늘의 영원한 상급과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건만, 그리스도인들조차 허무한 이생의 삶을 위해 재물과 명예를 더 많이 축적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있고, 세속적인 오락과 TV와 쾌락에 깊이 빠져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않은 모든 정신과 행동과 삶의 방식, 곧 바벨론의 마음과 정신에서 나와야 한다. 말세의 징조인 자비가 없는 무정한 정신, 질투하고 모함하고 참소하는 사단의 정신, 절제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정욕적인 정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쾌락을 사랑하며, 경건의 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가진 바벨론의 상태에서 나와야 한다. 2) 경건의 능력을 갖추어라 바벨론의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서 나오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죄로 가득 찬 세상에 죄로 기울어지는 연약해진 성향을 타고난, 6천여 년간 퇴화하고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고,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의 성경 절을 함께 읽어보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약속하는 구절들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특히 다음의 성경 절은 매우 고무되는 성경 절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 1:3). 한글보다 영어로 이 성경 절을 읽어 보면 더 명확한 뜻이 전달된다. “His divine power has given us, everything we need for life and godliness through our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 이 원어의 뜻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데 필요한 모든 것, 곧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는 뜻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바벨론에서 나와 죄를 승리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라고 명령하시는 한편, 이 명령을 지킬 수 있고 죄를 승리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모든 일에 충만한 능력을 주신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하시는 능력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고 죄의 힘으로부터 보존하시는 능력까지 공급해 주신다. 그런데 이 놀라운 능력은 복음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때에 그 복음이 사람을 회개케 하고 마음을 변화시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 곧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난 사람으로 계속 살도록 유지시켜 주시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건하게 살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준비되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구세주 예수님의 재창조 능력,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무한하신 능력, 항상 우리를 보호하고 돕는 거룩한 천사들의 능력,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변화시키는 능력, 진리의 성화시키는 능력, 이러한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인간의 생애 가운데에 효과적으로 역사하도록 준비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당신의 의의 아름다움을 나누어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바벨론의 모든 부정하고 부패한 것으로부터 나와 성품을 완전케 하여 마지막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하는 위대한 일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기도와 간구와 굴복을 통하여 하늘의 능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 마치면서 이제 바벨론에서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서 깨어나고, 바벨론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고, 바벨론의 거짓 성령 운동에서 떨쳐 일어나고, 바벨론의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태도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교파나 교회를 떠나 나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령께서 강력하게 부담을 주시며 진리를 그대로 믿고 전하라고 강권하실 때 그래야 하지만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의미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성품이 먼저 바벨론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완전히 탈피한 당신의 거룩한 백성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인을 받은 이 거룩한 자들이 나아가 아직 바벨론에 남아 있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곳에 매여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내는 큰 소리 외침을 발할 것입니다. 그때에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 예언된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는 넷째 천사의 성령의 운동이 성취될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독자들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사랑의 편지: 돼지감자 캐던 날 돼지감자 캐던 날 강영은 여름철 연두텃밭 옆에 부쩍 키가 크면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가을이 오는 문턱에 키가 훌쩍 큰 해바라기처럼 노오란 얼굴로 웃음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 이게 뭐지? 들국화 같기도 하고, 작은 해바라기 같기도 하고…” 밭 옆에 출현한 그것은 몸에 좋다고 큰 언니가 심은 돼지감자, 일명 “뚱딴지” 꽃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키도 훌쩍 큰데다가 꽃도 노랗고 잎사귀가 비슷해 해바라기로 착각하기 쉬운 예쁜 돼지감자 꽃… 어느덧 돼지감자를 캐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 이게 뭐야?” 노랗고 예쁜 꽃과는 달리 땅속에서 줄줄이 나오는 돼지코처럼 울퉁불퉁 못생긴 뿌리를 보고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놀란 내 앞에서 언니는 “이게 얼마나 몸에 좋다구? 이눌린이 많이 들어있어 당뇨에 좋고, 또 변비와 비만에도 좋고, 항암제도 된대!” 하며 돼지감자의 멋진(?) 몸매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뚱딴지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꽃과 줄기는 예쁜데 뿌리는 뚱딴지같이 못생겨서… 돼지감자를 처음으로 캐던 날, 매듭이 툭툭 튀어나온, 보기 싫은 생강 같기도 하고 흙이 묻어 있어 몸통이 큰 시커먼 벌레 같기도 한 돼지감자를 씻어 아삭아삭 씹어먹으며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흠…예쁜 꽃에 보기 싫은 뿌리라…” 너무 아름답고 예쁜 것만 좋아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면만 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너무 매끈하고 멋진 모습만 기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하찮은 실수나, 주님의 섭리로 드러나게 된 큰 약점이나, 불쑥 저지른 형제의 잘못을 보면 그렇게 놀라고 실망하는지 모릅니다. 예쁜 꽃과 줄기에 딸려 나온 보기 흉한 돼지감자에 놀라듯이… 기대를 저버린 보기 싫은 모습이 남에게 보일 때, 받아들이기 싫을 만큼 실망시키는 행동이 남에게 나타날 때, 아니, 혀를 미처 제어하지 못한 내 입에서 뾰족한 말이 나왔을 때, 미처 다스리지 못한 마음에서 쓴소리가 나왔을 때, 그래서 자신도 몰랐던 보기 싫은 뿌리가 깊이 파묻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깊숙이 숨기고 싶던 보기 싫은 뿌리가 드러났을 때, 어김없이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숨김없이 드러난 남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서로 놀라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더 익혀야 했음에도 미처 익지 않은 말이 공중을 타고 올라 서로의 마음을 벌집 쑤시듯 헤집어 놓았을 때 더 성숙시켜야 했음에도 아직 숙성되지 않은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 서로의 사이를 엉망으로 벌려놓았을 때 우리는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손질 받아야 할 것이 많은 어린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아직은 우리가 전정 받아야 할 잎을 너무 많이 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아직은 우리가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더 많이 타야 함을 알게 되었기에… 간혹 겉모습과는 달리 돼지감자 뿌리처럼 울퉁불퉁한 것이 올라와 그것 때문에 우리가 더 겸손해지고 고개 숙일 수 있게 되기에… 그리고 아직 주님의 향기로운 중보의 기도가 우리를 감싸는 때에 드러날 것이 다 드러나 회개하게 하시는 섭리가 너무 고맙기에… 사각사각 입속에 씹히는 돼지감자는 달달했습니다. 밉지만 몸에 좋은 돼지감자를 먹으며 그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독자 이야기: 이단, 삼단, 사탄되는 목사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장로교회 K목사님이 생애의 빛에서 운영하는 [바이블카페]를 찾아와 강병국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K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그리고 신학생이 되어서도, 목회하면서도 늘 품었던 궁금증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어도 구원을 받는가?” “방언을 하는데 왜 내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없는가?” “왜 하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영혼들을 꺼지지도 않는 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 “사람이 죽어 즉시 천국과 지옥을 간다면 부활은 왜 필요한 것인가?” 그러던 중 교회로 오던 생애의 빛 월간지를 발견하여 읽고는 그러한 신앙문제에 대한 해답을 풀 수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비진리와 오해가 풀리고 이전에 품었던 성경의 해결되지 않던 의문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매일 영혼에 충만히 적셔지는 성령의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발견한 진리를 설교하면 교인들이 자신처럼 기쁨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여러 장로님을 비롯한 교인 대다수는 떠나가고 이상한 목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먼저 경험한 강병국 목사님이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목사님 처음에는 이단 되시고 나중에는 삼단 되시고 더 나아가 나중에는 사탄까지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왕 시작하신 거 목숨을 거십시오. 이미 예수님 시대에도 들을 귀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존했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듣지를 못했지요. 저도 처음에 진리를 발견하고 성경대로 믿자고 전하기 시작하면 친구들이 모두 분연히 일어나 연합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분연히 일어나 저를 떠나더군요. 그래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용기를 가지시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K 목사님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마저도 이단취급을 받는 뼈아픈 경험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을 신앙으로 낳으시고 키우시고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로부터 이단 소리를 듣는 것은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이해하는 강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섬길 자를 택할 때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마셨던 고난의 잔에 참예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제는 그 고난의 잔에 참예하는 주의 종들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면 인기, 명예, 평판이 떠나가고 경제적으로 망하고 제일 아픈 건 가족과 원수가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하는 그러한 결심 때문에 주님의 참된 백성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이 목사님의 아픔과 희생을 통하여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일어나야 합니다. 노아 때는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인류 중에 한 가족만을 택하여 사업을 마치셨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의 가정과 교회가 이 시대 노아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십시오. 곡식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K목사님은 현재 담임하고 있는 교회를 두고 나오셔서 홀로 [독립선교센터]를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K목사님을 통하여 모세와 같이, 엘리야와 같이, 침례 요한 같이 역사하실 것을 믿음의 눈을 통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귀한 열매들이 분연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오류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전하고자 결심한 목회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하심과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월간 세계 동향 TOP 5 1. 이스라엘-하마스, 8일 만에 휴전 중동지역 무력충돌 사태가 충돌 8일 만인 11월 21일 일단 휴전으로 종료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맹폭으로 시작된 무력충돌은 8일 동안 150명의 사망자, 8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이번 휴전이 영구적인 평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가자지구에서는 그동안 휴전과 교전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2.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대 장착 작업 진행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는 12월 3일 북한에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동 중지를 촉구하면서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 즉시 안보리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는 북한의 로켓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의 심각한 위반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 강력한 조처(Unspecified action)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3. 미 재정절벽 시한 다가오지만, 양당은 교착상태 재정절벽(정부 재정지출의 갑작스러운 중단이나 급감에 따른 경제충격)을 피하기 위한 재정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사이의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증폭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재정절벽이 2013년 미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이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4. 무디스, 프랑스에 이어 ESM과 EFSF 신용등급 강등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에 이어 11월 30일 유로존 구제금융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등급 전망도 모두 '부정적'으로 유지해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뒀다. 재정위기 유로존 국가를 위한 금융지원 기구들마저 신용등급이 강등되며 유로존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5. 연금 재앙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분노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국민은 은퇴 후 받기로 된 연금마저 삭감되고 있어 분노하고 있다. 그리스 은행은 연금 기금을 관리하며 그 돈의 70% 이상을 그리스 국채에 투자했지만 2012년 3월 그리스가 디폴트로 몰려 그리스 국채를 재조정할 때 약 80억 유로의 손실을 보았다. 이런 손실로 연금 수급자들은 소득의 33% 정도를 삭감당하는 등의 피해를 보았다. 시사와 성경: 위기가 주는 희망 위기가 주는 희망 희망이란 인류를 이끌어 주고 살아가게 해주는 빛이며 살아가는 이유이고 마지막으로 잡고 싶은 생명의 끈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간다.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 이 지구에도 희망이 존재한다. 그 희망 때문에 창조주께서는 이 지구의 역사를 아직도 유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를 위한 유일한 희망은 무엇일까?
2013년 세계 경제 전망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예보했던 미국 뉴욕대 루비니(Roubini) 교수는 2013년에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아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로 유럽의 국가별 채무 위기와 헤어나올 길이 없는 미국의 경제를 꼽았다. 미국에서 취하는 어떤 경제 조치도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며 날짜를 조금 연기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2013년 유럽, 미국과 중국이 3대 경제권에 큰 폭풍이 몰아치면서 세계 경제를 뒤흔들 예정이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 상황들이 큰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루비니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유로존은 슬로 모션으로 탈선하는 열차 같다. 최근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미국 경제는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곧 정지 상태에 이를 듯하다. 중국 경제는 연착륙 수준보다 빠르게 위축하고 있다.” 라면서 “이는 유로존 경제 붕괴, 미국의 더블딥(경기회복 뒤 재침체), 중국의 경착륙, 다른 신흥국들의 침체 등과 맞물려 글로벌 퍼펙트 스톰이 된다.”고 경고하였다.
2013 세계 기후와 식량 전망 2013년 세계 기후 변화와 천연 재해로 식량 위기의 촉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가뭄과 홍수, 폭우 등으로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원곡의 수입에 의존하여 식량을 해결하는 나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전 세계 가장 큰 옥수수 수출(전 세계 옥수수의 38% 생산) 나라인 미국의 가뭄으로 인한 곡물 감소는 세계 곡물 가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고된다. USDA의 리포트로는 옥수수 50%, 콩 39%, 수수 45%까지 수확량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옥수수 부족 현상으로 밀을 포함한 다른 곡물들의 가격이 점점 상승하고 있다. 시카고 무역 센터의 데이터에 의하면 옥수수 가격은 6월보다 61%가 올랐고, 콩은 20%, 밀은 4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으로 인한 또 다른 피해는 축산업이다. 따라서 유제품의 생산량도 약 25% 이상 줄었다고 일리노이주 우유생산자 협회의 한 요원이 발표하였다. 점점 심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러한 국제 이상 기후로 인한 곡물 감소가 식량 위기의 도미노 효과를 줄 것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2013년 폭발될 시위의 불길 움츠러든 경제로 예민해진 시민과 갈수록 늘어가는 실업자들, 올라가는 물가 상승, 빈부 격차의 심화 등으로 인한 시민의 불만이 시위와 폭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EK뉴스 유로저널에서는 “유럽에서는 기나긴 긴축 정책에 지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에 이어 이제는 프랑스까지 수십만 명이 긴축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국과 중동, 중국과 일본 등 그동안의 해묵은 감정이 폭발한 ‘앙숙’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혈시위와 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며 지구촌 전체가 시위의 불길로 타오를 것을 예고하고 있다. 유로 저널은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도 세계 곳곳에서 분노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하면서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간의 반대 시위가 점점 격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민은 마음속의 불만을 꾹꾹 눌러오고 있지만 어떤 기회가 올 때에 그 모든 것이 폭발되면서 전 세계적인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현재 상황이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 이렇듯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떠한 희망도 내일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기가 심화할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한 가지 희망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고 있는데 바로 그 위기가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켜줌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희망을 더욱 고취해 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오래갈 수 없다. 주님께서 오셔야 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만이 이 지구의 유일한 희망이요 인류의 희망이다. 그 외에는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다른 방법이 없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우리의 유일한 남은 희망이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 7:7,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