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창고
서재 붙박이장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놓았다. 작은 옷장에서 나온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작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숨 막히게 빽빽하니 켜켜이 살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옷장도 바람이 드나들게 열어젖혔다. 바닥을 닦고 방안에 가득 쌓인 물건을 분류했다. 제일 큰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하나 준비해놓고 장갑을 끼고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류하고 잡다한 것은 쓰레기봉투에 미련 없이 넣었다. 옷장은 보물창고다. 아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숨겨놓은 곳이다. 장난감도 고등학교 입학할 때 갖다버릴 만큼 소중하게 간직하는 편이다.
보물창고에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처음 쓴 그림일기,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 받아쓰기 노트. 성적표. 처음 입은 태권도 도복, 퍼즐, 수십 마리의 공룡, 수백 장에 가까운 딱지, 로봇 시리즈. 미니 자동차 전 차종을 거의 수집함. 처음 등원할 때 메고 간 가방. 초등학교 입학식 때 들었던 가방. 탬버린. 피리. 하모니카. 오르겐. 곤봉, 가을 운동회 응원할 때 쓴 반짝이, 처음 신은 흰 고무신. 돌 한복. 유치원 한복, 아기 때 신은 양말. 장갑, 수백 개의 구슬, 붙박이장은 아이들 추억의 보물창고다. 한 번 씩 꺼내서 바람으로 말려주는 작업을 한다. 덕분에 보관이 잘 되어있다. 남편이 처음 입사한 회사의 유니폼과 전역 할 때 입은 군복도 상자에 잘 보관을 해두었다.
작은아들이 일러스트 공부를 하면서 예쁜 캐릭터 인형이 많다. 그것도 한쪽에 자리를 마련해서 보관한다. 일러스트 책자와 캐릭터 인형, 인형 뽑기도 해서 가져온 동물 인형도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보관했다. 일본 여행에서 가져온 인형은 가끔 꺼내서 대화를 나누는 친한 벗이다. 구석진 곳에는 포도주 몇 개 있다. 포도주를 좋아해서 은사님이 사서 보내주시는데 지금은 건강상 잠시 먹지 못하고 있다.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근사하게 마실 생각이다.
대청소하면서 큰 선물을 받았다. 결혼식 때 들었던 홍매화 닮은 빨강 한복 가방이 상자에 보관이 되어있었다. 30년이 지났는데 새것 그대로였다. 색상도 변하지 않았다. 신기해서 요리조리 둘러보면서 아직도 나의 마음은 빨강 가방처럼 여전히 설렘이 있는 새댁이었다.
청소와 분리수거까지 큰아들과 함께 마치고 나니 오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붙박이장을 열어보니 정돈이 잘 되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오늘 큰일 하나 했다. 밖에는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강풍이 분다. 산책은 못 할 것 같다. 제주도에서 보내온 레드향을 하나 먹으니 봄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피곤함도 함께 톡톡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나만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며 하루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