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17일(금요일) 맑음
< 배경음악으로 안치환의 "부용산"을 올렸습니다. 잘 아시죠?
많은 시인들에게 회자되어온 빨치산 노래 부용산.....>
정말로 가슴이 아려서 죽을뻔 했다.
가다가 가슴을 부여 안고 산중에서 끄윽 끄윽 토하는
딸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 찢어지는 가슴을 어찌 필설로 형용하리...
여린 여자애가 산중에서 가다가 마신 음료수(허쉬 쵸코렛 시럽)등을
토하며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연신 토하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지 아빠를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있는 눈을 들어 바라본다.
"아빠 나 집에 가야해?"
아마 우리식구만 갔으면 당장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왔을 것이다.
앞선 일행을 따라간 돌쇠 아들내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적막감 마저 도는 산중길에서 딸내미와 아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저 안아프기만을 빌고 있을 뿐이다.
토하는 내용이 아까 노고단 산장에서 얻어먹은 떡도 토하고 그런다...
이제는 돌아가기도 뭐하고 계속 진행이다.
녀석의 손을 꼭 힘주어 잡아주는 것뿐이 할수 없다.
참 이런 무기력감이 나를 슬프게 한다.
노고단 정상 밑으로해서 우린 반야봉을 향해서 간다.
노고단 넘어오는 길목에서 그 넓은 산들의 행렬 때문인지
노고단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의 영향인지 아님 돌쇠의 기도 때문인지
이젠 딸랑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제법 이야기도 하면서 걷는다.
기분이 좋아진 딸랑이를 위해 돌쇠와 할아버지의 등반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세월이 흘러 딸랑이랑 간다고 이야기 해준다.
****돌쇠 아버지(별명이 반란군 답죠??후후)*****
지리산은 그렇게 돌쇠와 그 일행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옛날 돌쇠 부자를 받아들이듯이 세월의 흐름속에 한세대를 지나
이제는 돌쇠와 그 딸랑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노고단을 지나 멀리 반야봉이 보인다.
이번 종주에 반야봉은 옆으로만 스쳐지나가는데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어른과 배테랑 등반가들도 2박3일의 빠듯한 일정에서
반야봉은 못오르는데 하물며 아이들까지 있는데....
반야봉은 멀리서 보면 여인네의 둔부같이 완만한 산정을 볼 수있다.
어째 포근함과 아늑함을 이야기하면 항상 여인에게 비유한 것이
많은데 아무래도 여성하면 모성애의 근본이기 때문일것이다.
반야봉을 지나며 딸랑이에게 반야봉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해준다.
얼마 되지 않은 수십년전...
반야봉 밑자락 어느동굴에 산삼밭이 있었다 한다.
그 산삼밭이 있는걸 아는사람은 한 심마니와 노스님 한분뿐...
그 심마니는 그 산삼밭에서 한꺼번에 다 캐서 자기의 살림에 보태쓴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할때마다 한뿌리씩 캐서 좋은일과 살림에
보태서 사용하였다 한다.
그래서 노스님도 그 장소를 알고 계셨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말씀을 안해
주시고 있었다 한다.
어느날 갑자기 그 심마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 심마니 아들은 그 산삼밭이
있는 것은 알지만 장소가 어디인지를 몰라 그걸 알고 계시는 노스님께
물었지만 노스님은 인연이 있는자가 발견한다며 그 장소를 안알려주시고
스님도 얼마후 입적을 하셨다 한다.
그래서 그 아들이 반야봉 일대라는 것만 알고 계속 뒤지고 다녔지만
아직도 못찾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후후! 돌쇠도 우리 딸랑이 아프니까 우리 산삼밭 동굴 찾으러 갈까?
하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딸랑이도 거기에 맞춰 찾으러 가잔다.
딸랑이 비칠거리며 한숨을 후후 내쉬며 그 전설같은 이야기를
듣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우린 지리산의 능선을 타고있었다.
길 옆에는 야생화가 만발하여 있고 군데 군데 휴식하기 좋은 장소는
어김없이 절경이 펼쳐져있었다.
산정에서 바라본 산들의 이어짐.......
아! 저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는 저 백두대간의 숨결을 타고가면
저 북녁의 땅을 지나 우리민족의 영지인 백두산에 도착 할텐데.....
딸랑이에게 지금 배우고 있는 산맥의 개념과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설명해준다.....
무슨소리인지 이리저리 눈망울을 굴리며 듣기는 하지만 이해는 못하는
눈치다.
언제 백두대간을 달리며 녀석에게 다시 우리민족의 기상과 저기 대륙으로
향하는 민족의 기상에대해 설명해줄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빨치산들이 대간을 통해서 다시 북으로 향했다는
말이 가능 할것 같다.
지리산과 빨치산 .....
지리산의 문학작품이면 어김없이 빨치산이 등장하는데
빨치산하면 한국전쟁을 생각하는데 실은 빨치산은 일제시대 일제에
대항하기위한 지역 유격대로 시작되었다는 걸 혹시 아시는지...
그 활동이 미비하고 해외 유격대의 활동이 두드러져 드러나지않았다가
한국전쟁 발발시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의 장에
등장하는 빨치산.....
지리산 골골에 얼기설기 얽힌 빨치산의 이야기가 생각나 갑자기
가슴 답답함을 느낀다.
특히 민주주의의 남쪽에서 쫓기며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가며 자기의
진영인 북의 공산주의자들에겐 버림받은 이시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된
빨치산 남부군 대장 이현상의 죽음과 그밖의 많은 죽음들....
피아골의 핏빛 단풍은 빨치산과 거기에 얽힌 우리 오욕의 역사에서
힘없이 숨져간 양민들의 피가 섞여 그렇게 눈시울 뜨겁도록 단풍이
선홍색 핏빛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짓누른다.
빨치산과 군경 사이에 있었던 많은 양민들은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가 날리는 세상속에서 이유없이 생을 마감 했었고
그 수많은 원혼이 지금도 돌쇠가 서있는 이 지리하도록 길고긴
지리산 자락 자락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운무에 호곡성을
실어보내는 것 같다.
몇년전 "눈물의 여왕" 이라는 가극이 있었다.
아마 98년도쯤 될 것인데 직접 그 가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극의
내용이 빨치산 남부군 대장 이현상과 토벌대 대장 차일혁 총경
(이분이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불심으로 화엄사를 화마에서 구함...지난번 관음사에서 보셨죠...
우리 손으로 불태운 절이 얼마나 많은지...)등에 관련된 픽션과 넌픽션이 가미된 가극 이었는데
백조가극단의 전옥이라는 배우가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의 초청을 받아
장성 갈재에서 빨치산과 토벌대 앞에서 "눈나리는 밤"을 공연 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는데 전옥이라는 배우는 이 눈나리는 밤의 명연기로 인해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게된다.
포로로 잡힌 빨치산과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토벌대들 모두
전옥의 노래와 연기 앞에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도 있다.
눈물의 여왕인 전옥이 "노래를 민주주의식으로 불렀겠소? 공산주의식으로
불렀겠소? 사람과 사람사이에 못만날 사상이 어디있단 말이요??"하는
말과 지리산 자락에서 남부군 사령관인 이현상의 독백
"이 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민족이다"라는 말이 왜이리 답답하게
80년 오월의 하늘이 되어 돌쇠에게 오는지......
에고 눈물 한방울 찍어내곤 다시금 그 아픈 상채기를 숨기고 있는
지리산의 등골을 타고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