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교회
성경 말씀: 시편 36편; 요한1서 5:1-12
요약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하면 제사와 같은 예식으로 표현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려는 것은 생명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으로 임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에 접합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삶을 삽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요한복음 처음 플로로그에 나오는 성육신은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플로로그는 예수님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생명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는 세상에 있는 것 가운데 살아갑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변하니 결국 변하는 과정에 따라 삽니다. 그러면서 주위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위의 변화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변하는 세상을 자신에게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삶의 목적을 정합니다. 변하는 세상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사람과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이 하나님도 세상을 바꾸려고 하신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을 뜻하시는 대로 바꾸기 위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이 뜻하시는 대로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죽음에 속박되어 변합니다. 죽음 아래 있는 세상이니 세상의 변화는 죽음에 기인하고 죽음으로 종식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구원은 죽음을 피하는 것으로 고착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세상에 변화를 주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을 심으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변화로 살지 않고 생명으로 사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생명은 씨로 자라고 번식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씨로 심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세상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개인의 삶으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개인은 태어난 이상 변화하는 삶에 속박된 것입니다. 즉 개인으로는 변화될 뿐입니다. 개인이 지닌 생명, 곧 세상에서 존속하는 수명은 예수님으로 심어진 함께의 생명으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함께의 생명은 개인과 무관하게 세상에 심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생명에 접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접합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개인이 아닌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자라는 것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으로 세상에 임한 생명을 지녀가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으로 임한 구원은 생명의 구원입니다. 세상의 상태가 좋게 바뀌는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된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함께의 생명으로 사는 삶입니다. 비록 세상이 죽음의 지배 아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함께의 생명
구약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을 말하지만 생명의 내용이 없이 제사에 그친 것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나님과 함께는 제사로밖에 표현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할 때 어떤 형태를 취하던 의식적(儀式的)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이미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부터 보인 한계점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하는 것밖에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점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보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주의하지 않습니다.
구약을 읽어 가면 성전 중심적 제사를 둘러싼 장소나 예식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내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여집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이 세상에 대하여 할 지침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근원적이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판단될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 규정된 내용은 세상의 조건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함께 보디는 개체를 강조한 것입니다.
존속의 뜻을 둔 것은 개체이지 함께가 아닙니다. 개체 의식이 강조될수록 함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은 존속하여 가는 것이라서 개체로 존속하는 것이 기본이지 함께가 기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존속에 근거하여 함께를 말할 수 없습니다. 함께는 하나님으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으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함께는 존속하는 상태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보이는 생명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솟아나는 함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함께로 드러나는 생명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이신 분이심으로 조건에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건에 함께로 미치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면서 또한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개체로 죽음에 속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셔서 언약으로 함께하심으로 인간을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인간은 개체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함께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함께의 이루어짐입니다. 함께의 이루어짐은 생명을 띱니다. 함께의 상태를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으로는 상태로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함께의 생명으로 성령님에 의하여 증언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함께의 생명은 세상에서 보는 개체의 목숨과 구별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복음으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다루면 예수님도 일반 사람과 같이 존재로 이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기에 함께의 생명으로 다루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함께의 생명을 증언합니다.
구원의 생명
사람들은 각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나 주위의 변화된 상태로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구원해주시는 능력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존재를 의식하는 한 구원은 존재의 상태를 바꾸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심으로 구원의 상태로 바꾸어줄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개인적으로 존재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구원은 변화로 밖에 여길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 곧 힘을 가지신 분으로 여깁니다. 일반 종교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힘으로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는 세상을 변화하는 힘을 의식하며 살 때 갖게 되는 것입니다.
힘에 대해서는 언제나 보다 더 큰 힘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단지 상상으로 신화를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보다 더 큰 힘을 생산합니다.
생명 의식을 갖고 생명으로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생명으로는 변화가 아닌 새로움을 말하게 됩니다. 존재는 변화로 다루지 새로움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반대로 생명은 새로움으로 말하지 변화로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상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 언급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하여 예수님을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가 예수님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생명으로의 구원은 하나님의 생명에 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의 씨로 싹트고 자라서 복음을 열매 맺는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지 변화의 말씀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도 생명의 자람이지 세상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죽음에 속박되어 있기에 변화로는 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죽음을 이기는 생명으로만 이야기됩니다.
세상에서 죽음을 이기는 생명은 교회로 보입니다.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생명이 교회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교회로 역사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로 활동하는 것은 교회의 활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교회로 보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명의 삶은 교회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교회로 보입니다. 개인으로 보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개인으로 사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개인으로는 누구도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은 사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함께의 생명의 삶을 사셨고, 그런 생명의 삶은 교회로 보입니다.
교회로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물을 취합니다. 즉 그것들은 복음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물로 교회의 삶을 삽니다. 교회로 사는 삶이 세상에서 구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로 살게 하옵소서.
교회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교회로 구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교회로 아버지와 함께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