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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요, 여러분.
선선한 가을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하기 딱 좋은 시기죠.
그런 의미로 책 추천 시간입니다.
이번 작품은 제목 뉘앙스가 좀 부정적인데요. 꼭 희망이 없는 것 같달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기 위한 여정이랍니다.
도서명: 내일이 없는 소녀
저자: 황희
* 이 책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4번 일반소설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이 잒품한테 미안한 소리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땜빵용에 지나지 않았었다. 사실 본래 읽고 싶은 작품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현재 재활통신망 도서관에 2권까지 올라온 정통 판타지 소설이다. 그런데 하필 그 책이 완결까지 8권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입수했다. 그리고 나는 내 촉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시각장애인으로 쌓은 독서 경력이 20여 년을 넘으면, 뭔가 어떤 책에 관한 촉이 생긴다. 이걸 끌린다고 무작정 읽으면 다음권 이야기가 궁금한데 전자도서 제작은 느려서 나중에 후회한다는 둥, 이건 조만간 후속권이 나올 테니 읽어도 나중에 목을 덜 빼고 기다려도 된다는 둥, 그런 예감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이런들 저런들 어차피 기다려야 한다는 게 함정인데, 그래도 기왕이면 최대한 덜 기다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그런 사정 때문에 이 ‘내일이 없는 소녀’로 급하게 돌아서게 된 것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꿩 대신 닭인 건 맞았다. 그런데 내용이 참 절망스럽게 짜증나고, 소설 주인공들의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입밖으로 ‘제발!’ 소리가 나올 만큼 간절한 내용이라 끝까지 완독하게 되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내일이 없는 소녀
소설은 친절하게도 주요 설정에 관한 설명을 주고 시작한다. 사람의 기억, 슬픔, 원한 등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어떤 장소나 물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는 잔류사념,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그 가능성 만큼의 새로운 세계가 분기된다는 평행세계 이론, 텔레파시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의 형태로 전달되는 환청 내지는 평행의식까지. 이런 주요 개념은 이 ‘내일이 없는 소녀’라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소재들이다. 소개글에 보면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월요일이 없는 소년’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이야기인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적지는 못하겠다. 또 그 두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이기 때문에 ‘내일이 없는 소녀’를 이해하기 위해 ‘월요일이 없는 소년’을 펼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네 방이랑 학교 뒷마당에서 본 건 아마도 잔류사념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어.”
책은 소녀가 자살을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이도이, 초등학교 시절 끔찍한 사건을 당한 이후로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 정말이지, 도이는 ‘그날’ 죽다 살아났다. 그러나 분명 살아난 것이 맞지만 하루하루 죽음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냈다. 손목에는 무수한 자해흔이 생겼고, 때로 자살을 시도하는 그녀를 지키는 건 부모님의 몫이였다. 그날도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형사 아버지의 개입이 없었다면 도이는 목그네를 타며 죽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도움으로 살아난 도이의 오른쪽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에 보았던 환상,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낯선 남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 그리고 남자가 소년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려는 장면. 찰나, 도이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을 향해 “다 죽어! 엄마 마중 나가!”라고 외쳤다. 그것, 그녀가 자신의 방에서 자살을 시도했을 때 봤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뇌의 산소가 부족해져서 보게 된 백일몽이나 환각이었을까? 친구 지석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잔류사념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녀는 반신반의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도이는 어머니를 마중 나가라는 환청을 듣고 불운을 피할 수 있었던, 얼굴에 흉터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의 타투이스트로 자라난 소년, 석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이 잔류사념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간에 접촉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분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한편 어릴 적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던 석윤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다짜고짜 가게로 밀고 들어온 손님, 수상한 남자들과 온통 자상으로 가듞한 얼굴을 지닌 소년은 석윤을 폭행하고, 집안에 도청기와 카메라를 설치한 뒤 그의 노트를 가지고 사라진다. 그것은 석윤이 이따금 들리는 환청, 그를 위험에서 구해준 X의 속삭임을 기록한 공책이었다. 덧붙여 얼굴이 자상으로 빼곡한 소년, 수혁은 석윤이 당할 사건을 평행세계가 분기하며 당한 소년이었다. 차츰 수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도이는 잔류사념을 통해 베프 지석이 당한 학대에 대해 알게 되고, 더불어 비닐 밀봉팩에 쌓인 지석의 주검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과거의 잔류사념과 접촉해 과거를 바꿔 새로운 평행세계, 지석이 학대당하지 않고, 수혁과 석윤이 불행한 사건을 겪지 않아도 되는, 그녀의 부모님이 절망하지 않는, 무엇보다 도이 자신도 끔찍한 사건을 당하지 않은,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고 고통을 겪지 않은, 그런 세계를 분기시키려 하는데.....
“넝쿨손은 넝쿨식물 줄기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실 같은 건데, 이게 실처럼 가느다랗게 보여도 사실 나무조각도 뚫을 만큼 강해. 넝쿨로 자라는 식물들은, 이 넝쿨손을 뻗쳐 줄기를 지탱하는데 뭐든 움켜잡아. 움켜잡고 위로 올라가. 난 네게도 이 넝쿨손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뭐든 움켜잡는 생명력 같은 거 말이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사연이 기구하다. 넝쿨손의 생명력 운운하는 문장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비단 초등학교 때 잔인하게 성폭행을 당했던 주인공 도이와 의붓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그녀의 절친 지석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환청, 도이의 목소리를 듣고 불운을 피했던 석윤 또한 그렇다. 그는 교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른 소년이 되었으며, 양지라기보다 사회의 응달에서 살고 있다. 또 석윤이 당했을 사건을 평행세계가 분기되는 결과로 인해 당하게 되는 수혁의 삶도 기구하기는 똑같다. 목숨은 건졌으나 얼굴에 남은 무수한 자상으로 사회생활은 물론 대인관계도 몽땅 날아가 버렸다. 겨우 코스프레를 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설 수 있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이니, 수혁이 평행세계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탐정을 찾아가서 자신이 당했던 사건이 있던 시점에,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와 같은 또래 소년의 행방에 대해 의뢰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렇다. 수혁, 그의 목적은 자신이 불운을 당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도이는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고 지석의 죽음을 되돌리면서, 그녀의 과거와 접촉해 다른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현재를 바꿀 결심을 한다. 하지만 선택은 연쇄적인 것이라, 그렇게 되면 그녀의 현실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없던 새 건물이 생길지 모르고, 담임 선생님이 여자에서 남자로 바뀔 수도 있으며, 누군가 당하지 않았던 사고를 당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석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불투명하고, 석윤이 피했던 불운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친했던 사람인데, 생판 모르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불확실성 탓에, 석윤은 도이가 하려는 일에 회의적이다. 심지어 그녀를 막기 위해 극단적인 일까지 저지르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사념과 접촉하려 하는 도이의 심정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누군가의 생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과거의 끔찍한 일을 겪었던 그 현장을 다시 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아무리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고, 내 인생이 바뀐다는 사실도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도이는 8살의 그녀가 살았던 가람동 아파트로 향한다. 그러나 도이의 능력으로 끔찍했던 순간이 해결되어 계속해서 또 다른 평행세계가 열리지만, 그만큼 또 다른 불운한 결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석이 자살한 경우도 있었고, 수혁이 불운을 피한 세계도 있었으며, 석윤의 얼굴이 자상으로 망가진 세계와 가정법원 소년부 조사관 황인준의 아내와 어린 딸이 살해당하는 세계도 있었다. 또 그녀는 어떤 세계에서 칼을 맞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서는 끔찍한 사건을 피한 대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과연 몇 번을 뛰어넘어야 모두 행복한 세계가 나올까? 어떤 평행세계로 가야 그 악마와도 같은 이들이 없을까?
세계를 뛰어넘으며 희망을 찾는 여정
‘신이 있다면, 신이시여, 저 괴물들을 두 번 다신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마옵소서.’
소설은 제2 평행세계로부터 시작해 도이가 능력을 씀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로 분기하며 전개된다. 그에 따라 도이와 지석, 석윤과 수혁, 황인준 조사관의 세계가 변하고, 그들의 관계와 상황 역시 변화를 겪는다. 읽으면서 어떻게 서로의 인연이 다시 연결될지 궁금했고, 주요 인물의 달라진 모습이나 사건들이 절묘하게 엮이며 그만큼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한편 세계가 바뀌는 정도가 꽤 심해서 미로를 헤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참 짜증스럽기도 했다.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거나 연쇄 살인범 따위가 나오는 책이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4인방 악마들’에 대한 건 지금 되새겨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읽는 내내 욕지기와 함께 쌍욕이 올라왔고, 귀신이 잡아가도 무섭지 않을 것들의 범행 묘사가 많이 힘들었다. 그냥 ‘확!’ 어떻게든 죽여도 타당할 것 같은 종자라는 생각만 들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가 범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길 바라지. 그래야만 너덜너덜해진 피해자의 고통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보는 엄중히 차단되지. 게다가 가해범들은 보호니 교육이니 해서 관련자들이 모두 합심해 사회 복귀를 돕지만 피해자에 대해선 어떤 관리도 해주지 않아. 하다 못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일 텐데도 말이야.”
더 열불이 뻗치는 건 그 인간 쓰레기 4인방이 ‘촉법소년’이란 이유로 형을 감면받고, 끽해봐야 보호관찰 내지는 소년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의 처벌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런 미친,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전자도서를 삭제할 뻔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그저 그런 상습 절도나 상해나 강도가 아니었다. 물론 그 범죄들도 시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4인의 악마들이 행한 본래 범죄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감이 있다. 무려 강간 성폭행, 소아성애, 그리고 살인이니까. 그것도 사람이 저지른 것 같지 않은 끔찍한 행태로 자행했다. 심지어 인간의 마음 속에 어떻게 그런 악의가 있을까 싶게 잔인한 구석도 넘쳤다. 이를테면 석윤의 얼굴을 난자한 자상이라든가, 도이의 온몸을 물어뜯은 짓거리라든가..... 그런 심리는 범죄 수사를 전공하는 프로파일러라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 비단 전문가까지 갈 것도 없이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인 나부터도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 과한 설정 아닌가 싶다가도, 이 세상은 그만큼 험한 곳이라며 일견 그럴 법하다고 납득하게 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옛말이라고 다 맞는 소리는 아니었다. 요즘 사회에 맞게 변경될 필요가 있겠다.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고 다 인간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길 포기하는 종자들에게까지 ‘인권’이란 단어를 붙여줘야 할까? 하늘이 내린 권리 이전에 인간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특정한 사유 없이 동일 범죄를 여러 번 저질렀으면 이미 그들 스스로가 용서받기를 포기한 거고, 갱생할 의지도 없다는 뜻인데, 이 사회에 다시 나오면 안되는 것 아닐까? 요새처럼 애들이 조숙하고 알 거 다 아는 현대에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방패로 기능해야 하는가. 그 범죄가 잔인하다면, 법으로 처벌해야 옳은 거 아닐까. 아무리 사회적 약자라고 해도 생계형이 아닌 의도적인 상습범이라면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어정쩡한 법적 처벌 탓에 피해자들의 가슴만 무너질 뿐이다. 이건 촉법소년만 염두하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위 약자 프레임을 쓰고 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쓰레기 종자들에게 적용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당한 7월 초반의 불미스러운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 ‘베트남 종자’ 때문에 우리 가족은 정신적·금전적·이력적인 타격을 입었다. 동생은 서류상으로 붉은 줄이 그어졌고, 엄마는 마음 고생을 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으며, 아빠는 그것이 금전적이든 뭐든 해결할 길 없는 문제에 한숨만 늘었다. 나는 어차피 되지 않을 거라 무기력함에 체념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베트남 종자를 이렇게 저렇게 하는 상상을 수십 번했다. 염산과 드럼통과 전기충격기 등을 동원한 난폭한 망상들. 스스로도 이런 잔혹한 면이 있었나 놀라기도 했지만, 피해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공상으로 심신을 위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죽거나 심각한 외상적 피해가 없는 우리 가족도 이런데, 소설에 나온 도이와 지석과 석윤 등의 피해자는 오죽하겠는가. 그 어떤 법적 처벌도 불가능하다는, 외국인 신분이 방패가 되어 기능하는, 내가 사는 현실의 꼬라지를 보고, 소년법이 면죄 혹은 감면 사유가 되는 ‘내일이 없는 소녀’의 세계관과 뭐가 다른가 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역시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더니, 현실이 이 모양 요 꼴이니 소설마저도 시궁창이다. 소년법과 잔혹 범죄자들의 처벌에 관한 것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어떠한가에 대한 생각도 했다. 더 성에 차지 않는 건 예의 그 ‘세간의 인식’이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피해자에게도 뭔가 어떤 빌미가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 말이다.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 지갑을 잘 보관해야지 왜 가방 바깥 주머니에 넣어두었냐고 하는 식과 비슷하다. 20%는 부주의함과 경솔한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그런 말들. 아니, 실상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가족이 겪은 베트남 관련 사건만 놓고 봐도 그랬다. 피해자인 우리가 자책하고, 어째서 문화가 다르겠거니 여겼는지,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를 후회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그런 행동이 쪽팔리다고 말한다. 멍청했다고, 아둔했다고 말이다. 물론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부친의 그런 발언, 모친의 그런 한탄은 심히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피해자가 당당하지 않을 게 뭐가 있는가? 무엇을 자책해야 하고, 어떤 것에 쪽팔림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 베트남 여자를 믿은 것? 사람을 의심하지 않은 것? 이런 기저에 깔린, 피해자가 면구스러워하는 의식은 대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못된 의식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회도 외면하고, 법도 외면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고 여겨 부끄러워하기에, ‘죄’는 묻히는 게 아닐까? 가려지고 숨겨지고 쉬쉬하며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도 털어낼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털어낼 방법이 없는 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어찌 보면 희망으로도 보인다. 그렇기에 악마들이 없는 평행세계를 분기시키려는 그녀, 도이를 응원하게 되었다.
선택함으로써,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이곳의 지석은 죽었지만 제2의 지석들이 어둠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밖으로 나와 자신을 상하게 만든 가해자를 당당하게 고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도이는 생각했다.”
이 소설의 궁극적인 테마는 희망이고,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선택이지 싶다. 정확히 말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이쪽 세계에 나는 그 무엇을 선택하지 못했다고 해도, 평행세계 이론에 따르자면 그 순간 또 다른 세계가 분기될 것이다.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는 이쪽 세계의 내가 하지 못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쪽 세계에 내가 영영 멈춰 있을 거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선택이란 게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 순간 미래는 바뀌고, 세상은 변할 것이며, 새로운 길이 나타날 테니까. 이 소설에서 제1 평행세계는 마지막에 나온다. 그리고 기어이 찾은 평화로운 제7 평행세계 역시 최종장에 배치되어 있다. 그 두 세계의 위로와 희망이 책의 감상을 적는 현재까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내면으로부터 아주 익숙하게 들려오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환청처럼 듣게 된다면, 그것은 저쪽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 자신이 보내는 격려이자 위로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문장으로 감상을 마무리하겠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해. 네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선택하는 순간 새로운 운명이 펼처지니까. 네 선택에 그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 그 사람들은 네 선택을 책임져 줄 사람들이 아니니까. 나중에 네 선택이 잘못된 거란 생각이 들면 그땐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돼.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니? 저 나무의 가지처럼 계속해서 선택이라는 가지를 뻗어나가면 되는 거야. 그러는 동안 너라는 나무가 완성되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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