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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7월 발족한 새터민 봉사단체 ‘아우름’은 매월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연탄 배달, 독거노인 무료급식 등 화성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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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받은 만큼 돌려주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순실 ‘아우름’ 회장은 “저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한사회에 더 가까이 가고 한 일원이 된 것 같아 기쁘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우름’은 여느 봉사단체와는 사뭇 다르다.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가짐은 같지만 회원은 모두 북한이탈주민이다. 단체명이 ‘아우름’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아서 하나가 되다’라는 ‘아우르다’를 뜻한다. 이탈주민들이 봉사를 통해 남한사회, 지역사회 주민과 더불어 살아가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지난 2011년 7월 발족한 ‘아우름’의 주 활동 무대는 화성지역이다.
하나 둘씩 모여 시작한 회원은 어느덧 100여명. ‘아우름’은 몇 해 전 화성지역을 휩쓴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을 위해 두 팔 걷고 수해복구에 나선 것이 출발점이 됐다.
이후 이들은 ‘아우름’을 만들어 매월 한차례 정기적으로 지역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비록 주말이지만 이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이 같은 봉사는 연간 40여 차례. 이들은 주로 농ㆍ어촌 봉사, 연탄 배달, 독거노인 무료급식, 효나눔 복지센터ㆍ요양원 봉사를 한다. 계절ㆍ시기별로 과수원, 인삼농장 일손돕기, 김매기, 농작물 순 따기ㆍ수확 돕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탈주민 텃밭 가꾸기, 문화체험교육, 다문화 행사 보조봉사, 환경정화활동도 곁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봉사는 농촌 일손돕기. 농사일을 하면서 비록 몸은 힘들지만 10~20여년간 북한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이다.
여기에 회원들이 들녘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고 떠드는 사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타인을 위한 봉사 공간이 회원들의 힐링 공간이 되고 정보 교환은 물론,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다.
‘아우름’ 총무 역할을 하고 있는 박영란씨는 “북에서의 농사동원은 과제로 반드시 해야 할 말 그대로 과제 동원이지만 이곳에서 하는 농촌봉사 활동은 차원이 다르다. 나 스스로 결정해 남을 돕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몸은 힘들지만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에 마음은 행복하다”며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에 충족감이 있어 결국 나를 위한 것 같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에도 추운 겨울을 홀로 보내는 노인 가정 5~6곳을 찾아 연탄을 배달했다. 3년간 이들이 칼바람에 맞서 손을 비비며 어르신의 가정에 배달한 연탄만 1만 여장이다. 이들의 연탄배달은 의미가 남다르다.
북한의 추운 겨울날 목숨이 질겨 죽지도 않는 생명을 한탄하며 얼어 죽던지 굶어 죽기를 기다리던 절박한 생활을 겪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하고 있는 무료급식 봉사는 6~8명의 회원이 주방에서 150~300명분의 밥을 지어 반찬과 함께 독거노인들에게 나눠준다. 주방에서 일하지 않는 회원들은 어르신에게 안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일부 회원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르신들에게 밥을 나눠주다 보면 북한에 두고 온 노부모나 가족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또 회원들은 거동이 불편해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도 도시락을 직접 배달하고 있다.
어떤 날은 얼굴에 주름 가득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고향도 이북인데 내려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냐. 부모님이 00인데 아느냐”며 회원들의 손을 꼭 잡는다. 이때마다 회원들의 마음은 짠하다. 가끔 무료 급식이나 현장 봉사 때 일부 회원이 만든 북한순대, 남한의 유부초밥과 비슷한 북한식 두부밥을 대접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한다.
이기찬 할아버지(71)는 “처음에는 북에서 온 사람들이라 왠지 꺼림칙하고 믿지 않았다”며 “이젠 이들을 보면 마음도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특히 동탄 한림대 병원, 교회, 요양원 등 지역 단체ㆍ기관과의 연계 봉사를 하고 있다. 저들만의 봉사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로 어느 순간부터 봉사활동에 4~5살 꼬마까지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나온다.
앙증맞은 얼굴과 몸짓으로 재롱을 부리면 어르신의 얼굴은 어느덧 활짝 피고 웃음 충전 시간이 된다. 어르신을 위한 봉사의 장이 꼬마들에겐 산 교육장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봉사에는 대전, 인천 등 전국에서도 동참한다. 몇 년째 먼 거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싫은 표정 하나 없이 봉사에 나서 회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현장에는 서로 이름도 알지 못하고 속한 기관ㆍ단체가 다르지만 나누는 마음으로 어느덧 하나가 된다.
호기심으로 단체에 가입한 회원도 있다. 북한 사회에서는 접하지 못한 다양함이 있기 때문이다. 무료급식하는 방법, 과일 재배 및 수확, 남한식 농사 등을 알게 된데다 지역에 대해 알아 가는 즐거움은 덤이다. 봉사활동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일부 사람은 ‘북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로 회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비꼬거나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봉사활동은 지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3년 전에는 전북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마을 복분자 재배 농가를 찾아 복분자를 따며 구슬땀을 흘렸다. 당시 면장과 이장이 감사의 마음으로 음료수를 사와 회원들을 대접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했다. 농가주인 황모씨는 “복분자 수확에 시간이 오래 걸려 걱정이 많았는데 봉사 단원들의 일손돕기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탈북자 단체가 그러하듯 ‘아우름’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 가서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단체 운영을 위해 회비를 걷을 생각도 했지만 절차도 복잡하고 관리도 힘들어 이내 포기했다.
대신 차를 가진 회원은 현장 차량을 지원하고 점심을 먹어야 할 상황에는 도시락을 싸와 서로 나눠 먹는다. 이들의 순수한 봉사활동 소식을 접한 일부 독지가나 기관, 단체가 식사ㆍ행사비용 등을 지원한다.
이 회장은 “탈북자 대부분 남한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힘든 가운데도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몸은 비록 힘들지만 마음은 기쁘고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아우름’은 앞으로 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한 지속적인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지역주민과의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느낌이어서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불신의 벽이 높지만 지속적인 봉사활동으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봉사활동은 이탈주민 사이에 긍정적인 사회인식을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봉사활동에 참가한 회원은 자신의 친구나 지인을 데리고 온다. ‘우리도 남들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받으면서 남한테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이 회장은 “우리가 정말로 이 좋은 세상에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기 위해 탈북해 왔다면 그것은 정말 헛고생”이라며 “항상 감사로 살며 대한민국에 자그마한 힘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