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를 제창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유명한 변호사이기도 했다. 특히 형벌 제도에 관심이 많았던 벤담은 죄수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원형 감옥을 설계하기도 했다. 한 세기가 흐른 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저서에서 이 판옵티콘을 근대적 감옥의 원형으로 지목했다.
푸코는 단순한 격리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근대 이전의 감옥과는 달리 판옵티콘은 죄수들의 정신 상태를 순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앙에는 높은 감시탑이 서 있고 이를 중심으로 1인 수용 감방이 빙 둘러싸인 형태의 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죄수는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별다른 물리력 없이도 24시간 타인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신적 압박감은 사회적 일탈을 일삼았던 범죄자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하게 되는 내면의 규율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판옵티콘이 21세기 서울에서 재현될지도 모르겠다. 감시탑은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된 방법용 CCTV이며 간수는 이를 통제하는 관제 센터다.
서울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가 관내에 CCTV 272대를 설치해 적지 않은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서울의 다른 지역 자치구들도 설치하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는 최근 열린 구청장협의회에서 구체적인 설치 비용까지 산출하고 서울시가 예산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부유층 동네에서는 자비를 들여 CCTV 설치에 나서고 대부분의 경찰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CCTV 설치가 서울 시내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극악한 범죄가 횡횡하는 불신의 시대에 사는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 자위책을 마련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순히 ‘감시의 눈’만 늘리면 범죄를 예방 할 수 있다는 국가 기관의 간편한 논리다.
여기에는 개인의 사생활은 어찌 됐든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가 통제되면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빅브러더’식의 섬뜩한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번뜩이는 CCTV의 눈이 서울을 거대한 판옵티콘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