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30:16~31)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하찮을 수 있는 노예 소년을 섬기는 행동이
주요한 발단이 되어
그 소년으로부터 적의 결정적 정보를 듣게 되어
다윗이 적을 처절하게 격파한다.
거기서 많은 전리품을 소유하게 되는데
전투에 참가했던 400명 중의 몇몇이
도중에 탈진하여 중간지역에서 쉬면서
참가하지 않은 200명에게는 전리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윗은 승리의 비결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말하며
모두에게 공정하게 전리품을 나눌 것을 명령하고
이것을 규례화 한다.
참가하지 않은 자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
또한 오늘의 본문은 아니지만
포도원 일꾼의 비유처럼 많은 시간을 일한 노동자에게
더 많은 주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사람에게는 적은 돈을 주는 것.
이 모두 우리 현세에서 너무나 당연한 법칙이자
그것이 공평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윗과 포도원 일꾼의 비유들은
우리의 그런 보편적 의식을 충격적으로 깨버리는 셈법이다.
차이점은 우리의 승리나 나눔의 주도권을 가진 존재가 하나님이시며
그는 사랑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시기에
돈을 벌기 원하는, 그 목적을 위해 질서를 잡은, 그 취지에 합당한
세상 합리의 잣대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무엇 하나라도 베풀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가장 큰 것이다.
그것을 위해 포도원을 경영하기도
전리품을 쥐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투에서 싸운 전투원이나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들이
물론 매우 수고로운 과정을 겪어서 존중받아야 마땅하겠으나
그 대가라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만 얻어진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 같은 대가를 얻는 것 같을 때
오로지 불평등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때때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심리가 더해져서 불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우주의 창조자가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어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과
단 돈 1원도 하나님의 배려 없이는 가질 수 없다는 사실,
일거수 일투족 속에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깃들여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자신이 받은 은혜의 크기를 느낀다면
남이 차지하는 그 작은 물질의 크기를 헤아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올해 성과금을 나누면서
노조와의 사전 공지나 협조 없이 기습적으로 기대 이하의 액수를
배포하고 그 불만에 애써 침묵하는 일로 인해
다소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사장을 포함해 경영진의 보수는 성과를 충분히 반영한 듯한데
직원들에게는 다소 인색한 행동을 보인 것 같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최근 가장 큰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는 기업인데
좀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면 소통을 통해 입장 표명을 하거나
설득을 하면 될터인데(다소 피곤한 과정일 수 있으나 피해서는 안 되는)
또한 벌어진 일에 대해서 투명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