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화(權和)는 우왕[辛禑] 때 청주목사(淸州牧使)가 되었다.
고성(固城)에 요민(妖民) 이금(伊金)이라는 자가 있는데, 스스로 미륵불(彌勒佛)이라 칭하고 사람들을 미혹시키며 말하기를, “나는 능히 석가불(釋迦佛)을 부를 수 있다. 무릇 귀신과 토지신[神祇]에게 기도하고 제사지내는 자, 말과 소의 고기를 먹는 자, 재물을 남과 나누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을 것이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3개월 뒤 해와 달이 모두 빛을 잃을 것이니 그것을 보라.”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내가 힘을 쓰기만 하면[作用] 풀이 푸른 꽃을 피우고 나무가 곡식열매를 맺을 것이며 한번 씨 뿌려서 두 번 거둘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민이 이를 믿고서 쌀과 비단과 금은을 시주하면서 〈남들보다〉 뒤쳐질까 염려하였고, 말과 소가 죽으면 그것을 버려두고 먹지 아니하였으며, 재산이 있는 자는 모두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또 말하기를, “내가 명령을 내려[勑] 산천의 신을 파견하면 왜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라고 하자, 무당과 박수(巫覡)가 더욱 공경하고 믿어 성황(城隍)과 신사(祠廟)를 철폐하고 이금(伊金)을 부처처럼 섬기며 복과 이익을 빌었다. 무뢰배들은 이금을 따라다니며 모여서 스스로 제자라고 칭하며 서로 속임수를 썼으니 〈그들이〉 이르는 곳마다 수령이 혹은 나와서 영접하여 객관에 묵게 하기도 하였다.
청주(淸州)에 이르자, 권화는 그 무리를 꾀어서 불러들여 그 우두머리 5인을 결박하여 가두고 조정에 급히 알리자 도당(都堂)에서는 여러 도에 이첩(移牒)하여 모두 사로잡아 참수하도록 하였다. 판사(判事) 양원격(楊元格)이 그 설을 신봉하였으므로 이에 이르러 도망가 숨었으나, 찾아 체포하여 곤장을 치고 유배보냈는데, 가는 도중에 죽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고 전주목사 겸 원수(全州牧使 兼 元帥)로 나가 왜적 2급을 베어 바치니 우왕이 사람을 보내 술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이 이후의 일은 본조(本朝)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