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이틀 내리는 비는 마른 대지에 반가운 손님이지만 소풍을 앞둔 아이에게는 불청객이었다. 소풍 전날,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놓고 월요일이 오기만 기다리던 아이는 비 때문에 정상수업을 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고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놀리듯이 말했다. 예전에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인데 이런 날씨에 가면 좀 무섭지 않겠니? 놀랍게도 소풍 장소는 영광 불갑사였다. 그 장소를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했던 반 아이들이 ‘지존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연일 뉴스에서 쏟아지는 ‘살인’이 이제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듯 대화 또한 자연스러웠다. 어디 살인뿐이라, 자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살이라는 용어는, 희생자 자신이 일어나게 될 결과를 알고 행하는 적극적 혹은 소극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결과로 일어나는 모든 죽음의 사례들에 적용된다(20쪽)고 한다.
작가는 방대한 자살 통계와 자료를 바탕으로 자살에 대해 현대인이 궁금해 할 질문에 답하고 있다. 1897년에 쓴 책이지만 놀랍게도 현재에 살고 있는 나 또한 그가 분류 ․ 분석해 놓은 이론을 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살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분류한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정신병 환자가 저지르는 자살 중 우울증 자살(Melancholy suicide)은 그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것은 정상인들의 자살과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자살이라고 한다. 나는 우울증 자살이 정상인들이 저지르는 세 가지 자살 중 ‘이기적인 자살’과 닮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자살은 인간이 존재의 근거를 삶에서 찾지 못할 때 일어난다. 많은 지식인들의 자살이 이기적인 자살에 해당된다. 이기적인 자살은 열정적이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물결과 같다. 언제나 슬픔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를 괴롭히지만 심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기보다는 공허한 것이다. 삶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우울한 상태는 흥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이타적 자살’은 그 근원이 맹렬한 감정에 있는 만큼, 일종의 정열의 연소를 요구한다. 원시 사회나 군대에서 사회의 명예나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자살로 흔히 일본 사회에서 일어났던 ‘할복자살’ 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럼, 최진실이나 장자영의 자살은 어떤 종류의 자살일까.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아노미성 자살’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노미성 자살(Anomic suicide)은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함으로써 받게 되는 고통에 기인하고 있다. 사회의 격변기에 흔히 일어나는 자살로 세워놓은 목표는 높은 데 반해 현실이 그 만큼 따라주지 못했을 때 상실감으로 인해 일어난다. 여기에서 아노미(anomy)가 발생한다고 한다. 즉, 가장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욕망이 규제를 받지 못하므로 일종의 무규율 상태가 더욱 고조된다는 것이다.
이루지 못할 욕망이 극에 달하면 목숨까지 위협당하지 않을까. 이혼한 당사자나 실연당한 연인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아노미성 자살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그 근저에는 분노가 자리한다.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학자답게 사회문제로 가지고 간다. 즉 무한한 욕망을 사회가 규제하거나 발현할 수 없게, 억압하거나 풀어주었을 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문제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는다. 지금 이 시간처럼 어스름한 분위기에 보슬보슬 내리는 새벽 비는 사람을 차분하게 하면서 우울하게 한다. 이런 감정은 일반적인 사람이면 대부분 가질 것이다. 공통된 현상은 자살률을 높이지 않는다. 혼자만 소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씨. 여름. 그것도 햇살 좋은 2시나 3시 정도의 시간. 그것은 우주론적 자살과 연결되는데 사람은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즉 다른 사람은 활동적인 시간에 나만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에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기혼자 보다는 독신자가 더 높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결혼을 하면 자살할 확률이 절반은 줄어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부부간의 관계보다는 자식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흔히 나는 자식이 삶의 존재 이유라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 하지만 그 농담이 뼈 있는 말임이 틀림없다. 비록 비가 와서 무한정 소풍을 뒤로 미룬 현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 숙제하라고 윽박질렀지만 말이다.
나는 책을 읽다보면 책을 쓴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그 당시의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부러움이다. 뒤르켐은 1897년에 어떻게 ‘자살’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학문으로 승화시켰을까, 라는 감탄 이면에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그때 무엇을 했나, 라는 탄식을 한다. 많은 철학가를 배출한 나라. 프랑스. 또한 훌륭한 프랑스 작가들. (나는 영미 작가들보다 프랑스 작가를 더 좋아한다.)
부족한 지면에 이 책의 장점을 다 살리지 못했지만 다시 한 번 고전이 된 이 책을 읽고 현대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고인이 된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저자소개 :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
에밀 뒤르켐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이며 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현대 사회학의 3대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르도 대학과 소르본 대학, 파리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프랑스 제3 공화국의 도덕적, 정치적 통합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분업, 자살, 가족, 국가, 사회정의 등 당시 서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연구와 사회생활의 원형을 구하는 미개한 종교의 고찰 등에 몰두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뒤르켐은 또한 「사회학 연보」(1893~1913)를 창간하였고, 이를 통해 프랑스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 뒤르켐 학파가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뒤르켐 학파라고 불리는 사회학자 그룹을 지도하였으며, 이후의 세계의 사회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많은 글을 통하여 사회학방법론, 종교사회학, 교육사회학, 지식사회학, 구조주의 인류학, 현대사회론 등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저서로 『사회분업』(1893),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1895), 『자살』(1897), 『원시인의 분류』(1903)(Mauss와 공저), 『종교생활의 기본형태』(1912)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