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송강호.

[올리버]

감독 봉준호가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 봉준호는 경의가 담긴 눈빛으로 황종려상 트로피를 송강호에게 건냈다. 영화 ‘기생충’이 칸느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벌인

의미있고 가슴벅찬 퍼포스였다.

봉준호는 “ 기생충이 저에겐 되게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가 가능했던 건 함께 한 아티스트들 덕분”이라며 “무엇보다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지 못할 영화였다”고 말했다. 봉준호가 거론한 그 위대한 배우의 얼굴엔 수줍은 미소가 밝게 번졌다.

송강호는 봉준호의 페르소나다. 송강호는 봉준호 덕분에 배우이력의 정점을 달렸고 봉준호는 송강호 때문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마틴스콜세지에겐 로버트 드니로, 배창호에겐 안성기, 왕가위에겐 양조위, 장진에겐 정진영, 팀 버튼에게

조니 뎀이 있다면 봉준호에겐 송강호가 있다. 그의 영화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가장 빼어난 배우였다.

                                    

송강호를 배우로 각인시킨 감독은 송능한 이었다. '넘버3'의 메가폰을 잡았다. 한석규가 주연이었지만 영화 팬들의 머리엔 송강호가 각인돼 있을 것이다.

"나....난.. 싸...아 움. 할.때 하..하..한넘 만.자..바.서 주..주..글때..까..가지 패!"

시골조폭 '오야봉'인 송강호가 어리숙한 조직원들을 데리고 상경해 여인숙에서 라면 먹으면서 합숙하는 장면에서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했던 대사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불안정한 시선으로 단어 하나 하나를 끊어가며 내지른 말투는 송강호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역할이었다.

이후 송강호는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한재림, 장훈 감독을 만나면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배우로서 물이 올랐다.

하지만 송강호는 누가 뭐래도 봉준호의 배우였다. 17년간 함께 하면서 둘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주요 작품들에서 환상의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다.

실화범죄 영화인 <살인의 추억>(2003년)을 시작으로 <괴물> <설국열차>를 함께했고, '기생충'까지 찍었다. 송강호는 봉준호의 7개 장편영화중 네작품의 주연을 맡았다. 모두 흥행성과 작품성이라는 모든 감독이 원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살인의 추억>이 흥행은 물론 평단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범죄스릴러의 교과서라는 말까지 들었다.

시니컬한 시골형사 송강호는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후 바로 다음 작품에서도 둘은 함께했다. 한국형 괴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괴물>(2006)에서 송강호는 괴물에게서 딸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연기하며 영화를 주도했다. <괴물>은 1301만 관객을 모아 한국영화 흥행작 베스트 3에 올랐다.

이후 배우 김혜자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킨 영화 <마더>(2009)를 연출한 봉준호는 글로벌 프로젝트인 <설국열차>(2013)에서 다시 송강호를 불렀다. '캡틴 아메리카'의 히어로 크리스 에반스와 송강호를 투톱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송강호는 할리우드 스타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거친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그리고 설국열차 이후 6년만에 다시 만난 봉-송 콤비는 기생충으로 한국영화의 새장을 열었다. 봉준호는 "송강호 배우는 제가 영화를 찍을 때 더 과감해지고 어려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의지가 되는 선배님"이라며 "축구는 11명이 뛰지만, 메시나 호날두는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해버리는 강호 선배님이 바로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이에 송강호는 "봉 감독과 안 지 20년이다. 인간적인 믿음도 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비전에 늘 감탄한다"며 "제가 메시는 아니지만, 파란 잔디밭에서 마음껏 축구 하듯 뭘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이가 봉 감독"이라고 화답했다.

송강호에 대해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송강호는 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춘 배우다. 영화 변호인의 변론장면에서 눈빛을 번들거리며 숨돌릴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로 좌중을 압도하거나 영화 밀정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일본경찰 이정출역은 리얼리티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약왕'처럼 관습적인 배역에 소비되는 경우도 있지만 맡은 배역마다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연기로 완벽한 변신해 송광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한다.

거장과 불세출의 배우가 뿜어내는 시너지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것이 틀림없다. 세계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봉-송 콤비의 다음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출처/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