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최고의 외식 먹을 거리 소갈비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냐고 질문하면 과거형으로 ‘숯불소갈비’라고 명확하게 대답할 것이다. 다소 모호한 답이지만 ‘과거’라는 ‘방점’으로 한다면 확실히 숯불소갈비가 1등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벗어나도 우리 한국 사람은 소갈비를 정말로 좋아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가 아니고 ‘좋아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983년 중국민항기 납치사건(그 당시는 중공민항기)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강남의 모 가든형 갈비집을 유명하게 만드는 사건이기도 했다. 5공화국 정권은 당시 적성국가인 중국인 납치승객을 정치적으로 융숭하게 대접했다. 그 중 먹을 거리 부분에서 가든형 갈비집에서 중국인 손님에게 접대한 숯불갈비는 1980년대 기준으로는 최상의 음식이었다. 또한 가든형 갈비집은 한국의 압축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갈비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
외식의 빈도수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낮았지만 필자가 소싯적 경험한 외식 중에서 숯불소갈비는 일종의 만찬이자 향연이었다. 토박이 중산층 서울사람인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고기로 인정하지 않았다. 소고기만이 진짜 육류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 소고기 중에서 어머니가 가장 선호했던 부위는 단연 갈비였다. 일제 강점기 때 소갈비를 외가에서 짝으로 보관했던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사실 그 시절에는 삼겹살이라는 메뉴 자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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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생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방자구이’ 혹은 ‘로스구이’라는 표현을 썼다. 외식으로 사먹는 메뉴도 불고기와 갈비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돼지갈비를 사먹은 기억도 거의 가물가물하다. 아마 중학교 때 처음으로 태릉에서 돼지갈비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소갈비를 먹으러 가장 많이 간 곳은 지금도 남아있는 서울 을지로 조선옥이었고 청량리 홍릉갈비도 몇 번 가본 것 같다. 특히 수원에서 먹었던 갈비는 정말로 대가 큰 왕갈비였다.
필자는 타고난 대식가는 아니지만 갈비에 관해서는 예외였다. 어머니는 손이 커서 한 번 외식을 하면 가족에게 많이 먹이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웠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웬만한 어른 이상으로 소갈비를 뜯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갈비댓수는 아마 20대 이상을 상회했을 것이다. 이런 내력이 90년대 초반에 당시 직장생활을 하던 필자가 속했던 회사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OT를 갔을 때 같이 테이블을 앉은 직장동료 3~4명이 먹는 것 보다 소갈비구이를 더 많이 먹었다. 그 때 먹은 갈비가 이동갈비다. 확실히 먹어본 사람이 더 많이 먹는 것이다.
싸고 맛있는 소갈비집은?
필자는 소갈비에 관해서는 전국의 맛집의 정보를 한 눈에 꿰고 있다. 서울 방이동 벽제갈비는 칼집이나 원육, 양념 등 모두 훌륭하지만 매우 하이엔드한 가격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벽제갈비 대표님이 대학선배라 약간의 어드밴티지가 있다.
충남 예산의 소복갈비는 가격이나 맛 모두 괜찮지만 구워서 나오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서 직접 굽는 생생한 현장감이 아쉽다. 또 거리상으로 너무 멀다.
강원도 춘천의 내력 있는 봉운장갈비는 옛날갈비 맛을 간직하고 있지만 손님에게 주문을 과하게 받게 하는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 3번 정도 방문했는데 늘 주문을 받는 방식이 똑같다.
부산 해운대소문난암소갈비는 늘 암소를 사용하지만 갈비를 굽는 불판이 다소 아쉽다.
문을 닫았다가 몇 년 전 다시 오픈한 명동 장수갈비는 금싸라기 땅 명동에서 부담 없는 비용으로 갈비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그러나 충남 예산의 소복갈비와 삼우갈비 스타일로 주방에서 구워서 나오는 스타일이다.
소금양념이지만 수원의 수원갈비스토리 한우갈비는 육질과 양념이 장인솜씨가 있지만 역시 주방에서 구워서 나오는 스타일이다.
경북 안동시 역전 앞 갈비골목의 한우갈비도 1인분에 19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맛있는 한우갈비는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안동한우갈비와 동부숯불갈비에서는 즉석으로 양념을 한 양념갈비가 아주 괜찮다. 전에 안동시청 담당자에게 광양불고기나 언양불고기 못지 않은 잠재력이 있어 향토음식으로 육성했으면 좋을 거라는 조언을 했다.
수입육을 사용하지만 경기도 북부의 송추가마골, 경기도 수원의 본수원갈비도 손색이 없다.
신촌 서서갈비는 작년에 일본인 야키니쿠 종사자들에게 대접한 적이 있는데 엄청 먹는 것을 목격했다.
얼마 전 문을 닫은 경기도 분당의 바로갈비는 안동의 갈비집을 벤치마킹해서 영업을 했지만 홍보부족과 경기불황으로 폐업을 했다. 업주 부부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사실은 양념 한우소갈비를 참숯으로 구워서 비교적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수도권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한국 외식시장에서 양념 소갈비 시장은 급속하게 감소하고 생고기 중심의 식문화로 완전히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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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맛있는 국일 생갈비
몇몇 지인들과 맛집 벤치마킹 투어를 다녀왔다. 이번 벤치마킹의 테마는 육개장과 소고기국밥이었지만 첫날 저녁은 대구광역시 국일 생갈비에서 한우갈비로 마무리를 했다. 1인분 200g 22,000원으로 우선 가격이 상당히 매력 있다. 서울의 60% 정도 수준 가격대다. 하루 5끼~6끼를 먹는 강행군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한우갈비가 슬슬 넘어간다.
참숯으로 굽는 암소한우갈비 맛은 우리 한국인이 갈비를 유독 선호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여자를 포함한 일행 모두 전원이 잘 먹는다. 역시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소갈비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 분명하다.
어떻게 하다 초면의 식당 주인장이 우리 테이블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암소와 황소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주인의 주장은 거세우는 마블링이 많지만 싱거워서 사용을 안 한다고 한다. 나도 동의했다. 대구는 유독 거세우가 절대 우세인 지역이다. 역으로 암소와 황소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과연 암소답게 갈비 맛은 진하고 고소했다. 직접 식당에서 작업을 한 갈비의 맛도 좋았지만 다 먹고 난 후 서비스로 제공하는 된장찌개가 더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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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 국산콩으로 직접 담근 된장을 갈비 작업을 하고 남은 잔여육(속어로 기리빠시라고 한다 )와 갈빗대를 넣고 끓인 된장은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는데 우와~ 소리가 절로 난다. 된장찌개는 고객이 갈비집을 다시 방문하게 하는 중요한 무기일 것이다. 된장찌개를 계속 참숯 위에 올려놓으니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장 지론은 고깃집에서 된장찌개는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150% 동감, 동감… 아시다시피 필자는 된장예찬론자 아닌가!
그러나 양념육은 많이 아쉬웠다. 즉석에서 양념을 했지만 참기름 맛이 강해 양념육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필자는 갈비는 생갈비보다 양념갈비를 더 좋아하지만 국일생갈비는 생갈비가 훨씬 낫다. 좀 주제넘게 안동의 갈비골목의 양념갈비를 벤치마킹하라고 가벼운 조언을 했다. 장사 마인드가 좋은 업주는 우리 일행에게 비싼 안창살을 서비스했다. 이러니 단골이 안 될 수 있을까. 필자의 전국 갈비지도에 ‘국일생갈비’가 확실히 기재됐다.
옛날에는 자주 먹었던 소갈비 외식인데....
그러나 맛있게 갈비를 먹고 있지만 딸이 자꾸 눈에 밟힌다. 고등학교 3학년인 귀염둥이 딸은 대학입시에 정진하고 있다. 거의 사교육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는 정말 대견한 자식이다. 요즘 학교기숙사 밥이 잘 나오겠지만 가끔은 영양보충을 해줘야 하는데... 딸도 갈비를 아주 좋아한다. 생고기보다는 분명히 양념육이다. 그리고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선육후면(先肉後麪)의 멋을 알고 있다.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자주 양념갈비로 외식을 하고는 했다. 집안 경제상황이 좋아서 소갈비를 사먹는 것도 그다지 부담이 없었다.
아이들이 커서는 이것이 힘들어진다. 우선 부모랑 외식을 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주머니 사정도 예전만 못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갈비집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동네 수지에도 유명 갈비집이 있지만 냉면이 제조냉면이다. 그리고 한우갈비는 좀 지출하기 좀 부담스럽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갈비를 분명히 좋아한다. 맛있는 한우양념갈비를 참숯으로 구워서 먹고 직접 뽑은 메밀냉면으로 마무리하면 이것이 아직까지 우리가족 최고의 외식일 것이다. 물론 가격적으로도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레이더로는 서울, 경기도에서는 그런 식당을 아직 못 찾았다. 그래도 방학이 되면 딸내미와 아들을 데리고 한우갈비를 먹으러 꼭 가야겠다.
대구시 중구 동산동 98번지 053-254-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