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비밀
나는 술을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애주가다. 술이라고 생긴 것은 안 먹는 것이 없지만 특히 소주를 즐겨 마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값이 싸고 특히 배부르지 않아 좋다. 양주나 와인은 비싸고 맥주나 막걸리는 포만감에 괴롭다. 민속주도 있지만 반주로 즐기기에는 역시 소주같이 만 만 한 술이 없다. 다른 사람이야 어떤지 몰라도 내 기호는 그렇다.
내 생각에 소주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술이다. 회를 먹을 때도 좋고 고기를 구워 먹어도 좋다. 삶은 고기에도 좋고 끓인 고기에도 좋다. 물론 생고기에도 좋다. 그뿐 아니라 한식에도 좋고 중식에도 좋고 일식에도 좋고 양식에도 좋다. 참새 집에서도 좋고 포장마차에서도 좋고 선술집에서도 좋다. 나 같은 애주가에게는
주류불문(酒類(주류)不問(불문))
안주불문(按酒(안주)不問(불문))
좌석불문(座席(좌석)不問(불문))
이라는 3대 불문율이 있다. 주류불문은 술이라고 생긴 것은 다 먹는다. 술이면 된다. 안주불문은 술만 있으면 안주야 있고 없고 따지지 않는다. 술만 있으면 된다. 좌석불문은 술이 있으면 앉아서먹거나 서서먹거나 따지지 않는다. 술이면 된다.
1998년을 전후로 대형할인마트가 우리나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계 할인점인 W마트가 선두로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진출했다. 뒤를 이어 우리국내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형유통센터가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유통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 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들 대형마트는 미끼 상품을 재외하면 묶음판매로 가계비용을 줄이는 데는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할인마트의 등장은 골목상권이 대기업으로 흡수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가계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대형할인마트는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계에서는 할 수 없는 원스톱 쇼핑을 가능케 하였다. 젊은 층 소비자에게는 더 없는 매력으로 다가 왔다. 주차나 냉난방과 다양한 편의시설은 소규모 자영업자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유통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가계소득의 증가는 주거환경개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주택단지가 개발되고 거기에는 바로 신흥도시가 형성되었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대형유통센터가 들어섰다. 아파트단지마다 소규모 상가가 있기는 했다. 지역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중대형쇼핑센터가 화려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소규모 아파트상가와 중대형쇼핑센터 간에는 필연적으로 고객유치경쟁을 벌여야만 되었다.
소규모 영세업자는 날이 갈수록 출혈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도산의 쓴맛을 보아야 했다. 이런 현상들은 영세상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 사업이라기보다 현상유지에 급급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다보니 규모를 확장한다거나 품목을 늘리기보다 소비재를 중심으로 소규모운영체제로 바꾸어야만 했다. 중대형마트는 소비재를 미끼상품으로 하여 포인트제를 도입하여 고객유치에 더 열을 올렸다. 이런 획기적인 마케팅전략은 소상인들을 한 번 더 울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아파트상가에서는 360ml 소주 한 병에 1,400원에 판매한다. 이에 반해 이웃 중대형마트에서는 1,250~1,260원 받고 포인트도 적립해 준다. 비단 소주뿐 아니다. 주 부식을 비롯한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격경쟁은커녕 경쟁을 피해야만 그나마도 현상유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면에 소비자는 이집 저집을 다니며 골라 사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중대형마트들의 경쟁은 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배달은 이제 기본이다. 어떤 곳은 3만 원 이상 구매해야 배달이 되는 곳도 있지만 구매에 제한을 두지 않는 곳도 있다. 어떤 곳은 과일이 싼가하면 어떤 곳은 야채가 다양하다. 정육이 싼 곳이 있는가하면 다양한 잡곡을 파는 곳도 있다. 이처럼 고객유치를 위한 그 나름대로 특화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소비자의 권좌는 튼튼하고 매우 안정적이다. 소비자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 본적이 있었던가. 동네 상가뿐만 아니라 대형할인마트에서도 인터넷쇼핑을 하면 24시간 내 배송을 해 주겠다고 광고한다. 소비자의 권익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나날이 신장되고 있다. 선택의 권리는 소비자에게 있으니 이를 누가 말리랴. 국민의 주권은 언제 소비자선택권만큼 누리게 될지.
우리 동네는 논밭이 주거단지로 개발돼 신흥도시로 형성된 지 7년 정도 되었다. 상권이 처음 형성될 당시부터 장사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물갈이가 됐다. 가계점주들은 아직도 들고나기를 거듭한다. 이곳에서 처음부터 터를 잡고 가계를 연 사람은 이제 몇몇에 불과하다. 또 그들은 장사가 잘 되었고 나름대로 돈도 벌었다.
2홉들이 소주 한 병 값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동네 식당엘 가면 아직도 2홉들이 소주 한 병에 2,500원을 받는데도 있다. 우리 동네는 3,500원을 받거나 대부분 4,000원을 받는다. 유명상권으로 알려진 곳은 5,000원도 받는다한다. 우리 동네 가계의 월세가 하루 1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니 웬만큼 장사가 돼서는 임대료를 빼고 나면 인건비나 나올까 싶기도 하다.
나는 반주를 즐긴다. 집에서는 소주 3잔이지만 외식을 하게 되면 2홉들이 1병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 같은 애주가는 외식 업자에게 가장 이문을 많이 남겨주는 환대받아야 할 고객이다. 소매점에서 1,250원하는 소주 한 병에 4,000원을 주고 먹는다. 외식업자는 소주 한 병 팔면 대충 쳐도 2.750원이 남는다. 또 빈병보증금도 병당 1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소주는 다른 어떤 메뉴보다 손쉽고 이문은 훨씬 많다.
나 같은 애주가의 생각은 다르다. 정말 성공적인 외식사업자가 되고 싶다면 ‘소주 값 올리는데 연연하지 말라’ 말하고 싶다. 업주의 자존심을 걸고 음식에 공을 들이면 사업은 분명 성공한다. 이 비결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밀이다. 외식사업을 하는 업자들이 너무 빤히 보이는 이문에 급급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식사업으로 꼭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내 집에 오는 고객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물론 사업이라는 것이 말처럼 녹녹치가 않다. 맛과 서비스가 뛰어 나도 폐업을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반면 맛도 별로고 서비스도 별로인데 성업 중인 곳을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의 권리가 왕좌를 넘어 이제 신의 권위에 이른 것인가. 아무튼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좋은 일이다. 쌍수를 들어 환호할 일이다. 그러나 90%가 넘는 영세자영업자들의 고충은 현실이야말로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소비를 미덕이라 했던가. 그러나 수입대비 지출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정경제다. 사회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지출을 늘일만한 뾰족한 방도가 없다. 그것은 고정된 지출목록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가 팽팽 잘 돌아서 소주 한 병 사는데 값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주 한 병 먹는데 값 따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호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두루두루 잘 사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