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서정주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 문학≫ (1966)
*****
제목 '동천'이 의미하는 바는 ‘영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만나는 위치’임.
1960년대에 쓴 이 <동천>은 고도의 상징성을 띤 시로서 주목을 받는다.
상징시는 처음에 무엇을 표상하는지 난감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의 시의 구조와 시어 · 시구를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가운데 그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는 '우리 임의 고운 눈썹'과 '매서운 새'이다. 시적 자아는 이 '고운 눈썹'을 '즈믄(천날)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차갑고 투명한 겨울 하늘[동천(冬天)]에 매달아 놓는다. 이로써 '고운 눈썹'은 '초승달'의 이미지와 중첩되며, 시적 자아의 마음속에 갇혀 있던 '임의 눈썹'은 '즈믄 밤의 고운 꿈'으로 맑게 씻겨짐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보편적인 존재로 승화된다. 따라서 이 '초승달'은 시적 자아의 염원과 소망이 투영된 대상, 혹은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절대적 가치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띤 절대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달을 향해 날아오르던 '매서운 새'조차도 그것을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것이다.
이때 '매서운 새'는 무한과 영원을 동경하는 인간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거니와, '초승달'은 이 '매서운 새'조차 비껴가지 않으면 안 될 절대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초승달과 그것에 대한 외경 때문에 그것을 비껴가는 새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천상과 지상, 영원과 찰나, 혹은 절대적인 진리와 인간의 유한성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7·5조의 정형률을 기반으로 한 단연 5행의 동요와 같은 작품이지만,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구사하여 강렬한 언어적 긴장과 구성으로 차원 높은 경지를 암시한다.
또한 겨울 하늘에 뜬 초승달을 그리운 임의 눈썹에 견주어 노래한 이 작품은, 서정주시인의 초기시의 생명의 뜨거움이 변모의 과정을 거쳐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같은 인상을 준다.
*시인들 추천 '애송시 100편(6)' - 서정주의 <동천(冬天)>에 아래와 같은 미당의 시에 대한 해설이 있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