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농업의 새로운 화두로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이 떠오르고 있다. ‘치유농업’, ‘돌봄농업’ 등으로도 불리는 사회적 농업은 장애인·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농업·농촌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 재활·교육·일자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뜻한다. 지역문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농촌공동체 육성에도 많은 기여를 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에서 4시간30여분 남짓 걸려 찾은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소재의 ‘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이하 여민동락법인)’은 국내의 대표적인 사회적 농업조직이다. 닿자마자 사무실 입구에 걸린 붉은 푯말의 ‘與民同樂(여민동락)’이 눈에 들어왔다. 여민동락은 공자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맹자(孟子)가 주창한 ‘여민락’에서 유래한 말로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함께 한다’라는 의미다.
여민동락법인은 2007년 사회복지 실천 경험이 있는 세 쌍의 부부가 묘량면에 귀농한 후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농촌 복지활동을 하면서 농촌공동체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여민동락공동체(이하 공동체)’의 줄기 조직이다.
여민동락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은경 씨(48)는 “저도 2010년 10월에 귀농해 어르신 돌봄과 모싯잎 송편공장, 동락점빵 등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농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여민동락법인은 지역 어르신의 ‘생산적 복지’ 실현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귀농인 정착에 특화된 사회적 농업조직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모싯잎 송편공장 등 농촌복지사업 통해 마을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
42개 부락이 모인 묘량면은 18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전형적인 과소화 농촌지역이다. 특히 묘량면 인구의 80~90%가 어르신들이며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만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이은경 대표는 “마을 인구의 다수인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살펴보면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 분, 건강은 양호하나 품을 파는 정도의 노동만 가능한 분, 근처 마실 정도 갈 수 있는 건강상태지만 노동은 어려운 분, 치매·중풍 등 질환을 갖고 계신 분 등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며 “공동체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조사해보니 건강하지만 소득수준이 낮아 어려움을 겪거나 외로움·고독 등 정서적 빈곤을 갖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지역 어르신들이 소득을 꾸준히 얻으면서 사회적 소속감도 갖고 자신의 삶에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생산적 복지에 초점을 맞춰 공동체가 ‘여민동락 할매손 모싯잎 송편공장’과 ‘동락점빵’ 등 농촌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설립한 할매손 모싯잎 송편공장은 영광군 특산물인 모싯잎을 주재료로 한 송편떡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단 온라인 통신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영광지역에 워낙 많은 모싯잎 송편 공장과 상점이 있어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동락점빵은 묘량면 내에 생필품을 구매할 상점이 없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탑차를 활용한 이동식 간이장터다. 2010년 5월 이후 동네 유일의 구멍가게가 사라지면서 마을 어르신들은 생필품을 구매하려면 하루에 겨우 두세 번 오는 버스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근처 장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
이은경 대표는 “묘량면은 생필품 구입이 어려운 ‘구매난민’ 지역”이라며 “어르신을 비롯한 마을 주민의 편의를 위해 매주 목요일·금요일마다 탑차가 42개 부락을 순회하며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판매수익은 농촌 복지사업을 통해 다시 지역에 환원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동체 사업으로 시작한 할매손 모싯잎 송편공장과 동락점빵은 현재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상태다.
어르신 노동환경 맞는 야생화 재배·귀농교육…사회적 농업 가치 확산에 노력
지난해 정부의 사회적 농업 시범사업 조직으로 선정된 여민동락법인은 농촌 노인 일자리 제공과 귀농인 정착에 힘쓰고 있다. 농촌 일자리 제공의 경우 고령농의 노동 환경에 맞춰 소득은 많지 않더라도 노동 강도가 비교적 약하면서 정기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야생화와 맥문동, 수선화, 튤립 등의 작목을 선택해 재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마을 어르신이 하기 수월하면서 쾌적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판로까지 확보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어르신들이 텃밭농사를 통해 수확한 농산물도 대신 판매해주고 있는데 판매량이 점점 늘면서 어르신 소득도 지난해 월평균 20만원에서 올해 50만~70만원 정도로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에 여민동락법인은 묘량면에 귀농한 주민을 대상으로 작물 재배와 농기계 사용 등의 교육을 진행해 정착하는데 도움을 줬고, 지역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이해와 농업과 연관된 진로 제시, 농장 체험 등의 사회적 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농업·농촌의 재생과 마을공동체 활성화’라는 목표로 사회적 농업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화해 추진할 계획이다. 눈에 띄는 사업들 중 하나는 수 십 년간 먹거리 생산에 많은 열정을 쏟고 농업에 헌신했으나 무명의 농사꾼으로 남은 마을 고령농의 삶과 철학을 콘텐츠로 하는 ‘농사문화재’다.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협업으로 농촌 어르신의 이야기를 책과 영상으로 기록해 이들의 삶을 예우하는 한편, 학생들은 사회적 농업의 의미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했다.
이은경 대표는 “여민동락법인의 원래 목적인 마을 어르신들이 지속적으로 농사활동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새로운 농작물에 대한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돌보는 농부학교’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농부(초등학생)·꿈꾸는농부(중학생)·미래농부(고등학생)·예술농부(중·고등학생) 등 사회적 농업 교육을 더욱 세분화해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마을 주민들과 협동을 통해 우리 농촌의 교육·문화·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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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부터 기분좋은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