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의 비행, 우리나라 시간보다 6시간 느린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후 4시 40분.
대한항공 KE 923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상공에서 아득히 모스크바의 지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러시아의 수도가 여기저기 산재한 숲 속에서 건물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이 없는 도시, 모스크바는 산이 없었다. 마침내 4시 50분에 쉐레메체보 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와 만난 후 식당으로 이동하여 한식 식당에서 차돌박이 된장찌개의 석식으로 일주간의 우리 일정이 시작됐다.
이즈마일로보 감마 호텔에 여장을 푼 후 시차로 어색해진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새벽 세시에 눈을 뜨게 될 것이라던 가이드의 예측대로 새벽 세시가 되자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는 형편.
텅 빈 듯 몽롱한 머리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 독경, 세면, 조식...
우리의 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7월 31일(월) 오후1시35분 인천공항 이륙, 러시아 시간으로 4시 50분 쉐레메체보 공항에 도착,
화요일 부분적으로 모스크바 관광 후 석식을 마치고 고속 열차인 삽산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
이틀 간 페테르부르크 관광, 목요일 밤 다시 야간침대열차에 몸을 싣고 금요일 아침 모스크바에 도착 후 나머지 관광,
중식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6시55분 모스크바를 출발, 한국 시각으로 아침 10시 정도에 인천공항에 착륙.
아이들을 포함해서 13-14명 정도.
공동체 회원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이런 여정을 마음에 품는 순간부터 종료되기까지 나름대로 심도 있는 기도를 드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으로 두 번째 인연.
5년 전 여정이 이르쿠츠크 동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알혼섬 등 비교적 소박한 지역이었다면,
이번은 러시아 중심부의 두 도시였다. 모스크바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측은 비껴갔고, 러시아의 창공과 기후는 해맑았다.
세계 대륙의 6분의 1을 차지한다는, 미국과 중국을 합쳐놓은 것만큼의 거대한 땅덩어리의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크레믈린 광장), 성모수태교회, 성모승천교회, 미가엘교회, 바실리성당, 굼 백화점, 아르바트 거리,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푸시킨 고리끼 고골리 체호프 파스테르나크 숄로호프 등 세계적인 문호들,
노벨 수상자 12명이나 배출시켰다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모스크바 강, 참새(레닌) 언덕, 볼쇼이 극장, 노보데비치 수도원, 모스크바 지하철.
먼저 문화적 감상이라면 대부분의 건축물이 중세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살린
70cm-1m 정도 두께의 금간 데 하나 보이지 않는 벽으로 세워진 대규모의 것이라는 것,
대부분의 건축물들에서 유럽식 감성과 러시아식 무게감이 합쳐진 바로크 양식의 예술성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 하지 않는가?
모스크바도 그렇지만 표트르대제가 건설한 이 도시는 거의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예카테리나 궁전, 호박방, 이삭성당, 카잔성당, 피의 사원, 표트르대제 청동기마상, 여름궁전,
니콜라이 궁전식사, 에르미타쥐 박물관(겨울 궁전), 네바 강, 발틱 해, 야간열차 등이 우리의 경험을 통과해갔다.
예를 하나 들자면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있는 이삭 성당의 높이는 101.5m에,
그 성당을 받치고 있는 사면 기둥이 32개인데 그 기둥 하나의 무게가 130톤이 되는 순수 대리석이다.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빼곡한 성당 내부엔 그 천장과 벽면이 예술적인 성화로 도배가 되어있다.
예카테리나 궁전의 3000억 가치가 있다는 호박방, 에르미타쥐 박물관 내부에 수많은 진품 예술품들.
각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 유적은 있지만
이런 규모 양식 견고함 예술성이 종합된 건축물들은 더욱 장중한 매력이 있다.
붉은 광장을 거닐 때,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갈 때,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묘원을 접할 때,
모스크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에르미타쥐 박물관을 이동할 때, 네프스키 거리를 산책할 때,
네바 강을 옆에 끼고 움직일 때, 동방정교회 건물들을 관상할 때 나와 공동체는 러시아 감성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국내의 경복궁이나 삼청동 거리의 느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덥지 않고 선선하기까지 한 날씨의 거리를 걷는 공동체의 얼굴은 러시아적 감성이 배인 얼굴이었다.
두 도시를 걷는 동안 공동체의 생활적 피로는 해결되어버렸다.
특히 여성들은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신 환기의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 발랄하고 행복한 기운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시베리아 바이칼 알혼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는 분명히 마음을 견인하는 매력이 있다.
젊은 시절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에 나오는 러시아 벌판과 그 엄숙한 분위기에 얼마나 이끌렸었던가?
그러나 내게는 영적인 가치가 우선한다. 영적 현실을 따져보자.
러시아 정교회에는 신앙의 흔적이 있지만 역동적 생명은 볼 수 없었다.
내 나라가 힘들던 시절 나는 내 나라 조그만 교회당에서 주님을 만났고 여기서 구원을 받았다.
나는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고, 마음껏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다.
이 환경 속에서 나는 영적인 풍요와 영적인 자유를 누린다.
조그만 그것도 반 토막이 난 나라, 그것마저도 산이 삼분의 2를 차지하는 나라.
그러나 은혜 속에서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경제수준은 유럽을 따라 잡았고,
세계 십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있고,
의학이나 기술도 세계적 수준이고, 세계 제일의 인천공항처럼 세계제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몇 개의 강점이 있고,
일처리가 빠르고, 관공서나 공공시설이 일류급이다.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이념 대립이 끊이지 않는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러시아 여정 후 내겐 이런 상념이 들었다.
2017. 8. 14
이 호 혁
첫댓글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네요^^
글을 보니 모든것이 떠오릅니다..벌써 추억이 되어 버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