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의 거울에 비친 나
수완스님
신안 증도 출생. 1973년 출가. 1991년 『문학공간』으로 등단.
시집 『이내의 빈자리』,『지리산에는 바다가 산다』, 『유마의 방』 등.
현,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장, 산청 정취암 주지.
나는 내가 출가하여 수행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필연적인 운명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수많은 생을 거듭 윤회하면서 운명 지어진 내 삶의 근원적인 싹이며, 업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3학년이었던 어렸을 적부터 나의 가장 큰 의문은 지금의 나로 태어나기 전 나는 무엇이었으며, 부모 형제는 무슨 인연으로 만났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내가 불교와 가까워지게 된 심정적인 계기가 몇 가지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교회 장로였는데, 항상 점심 식사하기 전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학생들에게 시켰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부모와 동네 어른들이 지어준 농사의 수확을 먹으면서 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도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며 선생님께 따졌고 그때마다 심한 체벌을 받았다. 그럴수록 기독교에 대한 나의 반감은 더욱 커져갔다.
나의 부친은 7형제 중 셋째였다. 부친이 27살 되던 해에 다른 형제들이 건재한데도 불구하고 나의 조부모님으로부터 재산을 몽땅 상속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 오래되지 않아 형제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기 시작하여 형제들 중에 나의 부친만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부모님은 여럿의 조카들을 양육했고, 그 조카들이 장성하면 결혼과 더불어 재산을 분배하여 분가시켰다. 그런데도 나의 사촌들은 양육에 대한 고마움에 앞서 재산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집안이 자주 분쟁이 날 때가 많았다. 급기야는 내가 9살 되던 해에 재산분배를 다시 했다. 그래도 분쟁은 그치지 않았다. 내 몫의 재산도 그때 분배받았다. 그러나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내 삶이 부모님의 재산과 연관되어 존재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의 투명한 언저리에
햇살처럼 파고드는 회상의 물굽이가
어느 때부터
떠남이라는 원칙으로 굳어져 갔다
청회색 바다 표면 위로
조각배 되어 떠나던
어린 날의 기억들
그 조각 어느 하나라도
나 아닌 것이 없음을 깨달으면서
저녁 하늘로 번져가는 노을빛처럼
허허로운 마음속에 묻어야 했다
여객선이
마을 앞 선착장에 와 닿을 때마다
누군가 찾아오고 또 떠날 것만 같아
날마다 선착장으로 뛰어갔던
어린 날의 무수한 떠남 들이
나를 결국에는 이국보다 먼 곳으로 향하게 했지만
애써 눈물 감추며
내 두 손 감싸 쥔 채 산화되어 가던
어머님의 임종을 보며
이슬 같은 공허감을 마셔야 했다
도반 어머니의 진갑잔치에 갔을 때
주름진 손에 잔 드리우던
도반의 낙망과 어머니의 울먹임이
어찌 그리도 아름답게 보였던지
불현듯 조카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달산은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고
빈민촌락의 옹기종기하던 모습들은
잘 정돈된 공원으로 변해
조각상들만
폐허의 영혼들처럼
햇볕에 씻기고 서 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하나
붙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어느 하나
버릴수도 없는 것이기에
저 홀로 세상 끝에 서서
떠나는 것을
-시,「떠남」
내가 불교를 알게 된 인연은 어떤 스님이나 불교 서적을 통하여 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중학생 때 보았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지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보고 마음을 울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책을 통하여 나는 인류사에서 가장 큰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은 후 모든 생명은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가르침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45년간 설하신 내용 중에 윤회하는 삶의 법칙인 12연기법과 4성제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나는 세속적인 욕망의 세계에 대한 더욱 강한 거부감이 생겼고 급기야는 더 이상 부모의 재산을 의지해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들어가면서 자퇴하고 집을 떠나 세속의 속박으로부터 잠시 벗어났다. 하지만 마음속엔 부모에 대한 빚이 있었다. 나는 큰딸과 큰아들의 거듭된 파산으로 신산한 삶에 지친 부친께 생일잔치를 해드리고 떠나고 싶었다는 생각에 가출한 1년 동안 돈을 모았다. 세속 부친에 대한 마지막 도리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생일잔치를 해드리려던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났다. 내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부친께서는 전날 밤 갑자기 운명하신 상태였다. 생일잔치를 위하여 1년 동안 모아간 돈으로 장례를 치렀다. 삼우가 지난 후 나는 세속을 떠났다. 전생의 업에 의한 빚을 그렇게 청산했다. 출가한 후 내 몫으로 받은 재산은 처분하여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그중에 산은 문중에 종중산으로 주었다.
내가 출가를 한 후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안쓰러워하며 늘 따라다니셨다. 강원 학인 시절에는 해인사의 산내 암자에서 화주보살을 하면서 나를 지켜보셨고, 중앙승가대학 학인 시절에는 설악산 신흥사의 산내 암자에서 내가 방학하여 오는 때를 기다렸다. 졸업 후 문경 김용사에서 청소년 수련원을 하며 농사하고 청소년 포교를 할 때 어머니는 그곳에 오셔서 농사일을 가르쳐주며 함께 하셨다. 돌아가시던 날까지 종교에 대한 절실한 신심보다도 막내아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끝내 산문을 떠나지 않으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형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집을 부려 어머니를 화장하여 한강에 뿌려드렸다.
가을이면
죽음보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그 가을을 훨씬 더 지나
텅 빈, 모태(母胎) 속으로 향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다
호롱에 심지 돋우시던 어머니는
눈물 같은 배아(胚芽)의 싹을
떠나는 곳마다
또, 머무르는 곳마다 품으리라
가을이면
죽음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다
그들이 두고 떠난
가을이고 싶다
-시,「무당벌레의 고백」
출가 후 학인 시절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 꽁꽁 얼어붙은 수각의 얼음을 깨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로 잠을 씻고 새벽 3시 한대보다 더 썰렁한 법당에 모여 새벽 예불을 드리던 날들.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청소년 수련관을 만들자고 도반들과 문경 김용사에 모여 농사짓고 나무하고 법회 해주면서 젊은 열정을 불태우던 날들을 거쳐 서울에서 포교당을 열고 청소년들을 지도하며 유네스코 교수님들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청소년의 바램’을 담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청소년들과 함께했던 날들.
중앙승가대학의 교육부 인가와 학사 이전을 위하여 밤낮이 없이 촌음도 아까워하며 동분서주하던 날들.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불교의 유적을 찾아 배낭 하나 메고 원타스님, 함현스님, 현진스님 등 도반과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를 오가며,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을 넘어 인도 파키스탄 중국 티벳 네팔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부처님의 자취를 따라 고행 정진하던 날들이 있었다.
지나쳐 온 그 시간 속에서 인더스문명과 간다라 유적과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에서도, 중국 돈황의 찬란한 불화에서도 나는 전생과 내생의 나를 보았다. 통나무에 볏단을 두드려 타작하는 파키스탄과 인도 사람들에게서도 나는 나의 전생을 보았고, 티베트 고원의 모진 흙바람 속에서 1보 1배 하는 이들에게서도 나는 나의 전생과 내생을 보았다.
불교문학의 발전과 전승을 위하여 20여 년 세월 동안 쌓아왔던 탑이 사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의 한심한 이기심으로 흔들리던 날들.
정취암에 내려와 37년 동안 낭떠러지 절벽에 축대를 쌓아 길과 마당을 만들고 비가 새는 낡은 전각들을 하나씩 뜯어내어 새로 신축하여 도량을 세우던 나날들.
출가, 50년의 세월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았던 흔적들이 순간순간에 스쳐 지나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부낌이었다.
- <불교와 문학> 2023년 가을호 中
첫댓글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