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수필 제92호》 / 기획특집 청탁원고(2021.04.20.발행)
■ 필자 주 : 예향(藝鄕) 전북수필문학회에서 발간하는 《全北隨筆》 제92호 기획특집 귀한 지면(誌面)에 대전수필문학회 역대 회장 6인이 <초대수필>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이 책은 《전북수필》 회원 가족뿐만 아니라 4월 28일 전주에서 열리는 한국문인협회 <수필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전국 수필인들에게도 증정한다고 한다.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보잘 것 없는 졸고 수필을 선 보이는 필자로서는 걱정도 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너그럽게 살펴 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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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수필 제92호》 동인지
◆ 전북수필문학회장 윤 철 수필가 서신
▲ 책과 함께 보내준 전북수필문학회장의 서신
【답장 / 윤승원】
전북수필문학회 윤 철 회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윤 철 회장님께서 따뜻한 서신과 함께 보내주신 《전북수필》 92호 반갑게 잘 받았습니다.
藝鄕 전북수필문학회에서 발간하는 《전북수필》 92호에 저의 졸고를 초대받은 것만도 영광인데, 윤 철 회장님의 인정 넘치는 따뜻한 서신을 받고 보니, 졸고 수필이나마 참여하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느낍니다.
《전북수필》 92호를 읽다 보니, 역시 예향 수필작가님들의 훌륭한 작품이 풍성하여 저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빨려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 작품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고, 어찌 보면 원거리 수필작가에 대한 신비감도 주니,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북수필문학회 훌륭하신 회원님들과 수필작품 교류를 통한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인연이 아니라 대전·충남 수필 문단의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입니다.
윤 철 회장님의 감동적인 서신과 함께 훌륭한 《전북수필》 92호를 읽을 귀한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4월 28일 전주에서 열리는 제21회 <수필의 날 전국대회>를 그 어느 해보다 뜻있고 보람 있게 치르시길 기원합니다.
전북수필문학회 모든 수필작가 선생님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2021. 4. 22.
대전수필문학회 윤승원 올림
(*《전북수필》 92호, 60쪽 / 기획특집 "대전수필문학회를 찾아서"
/ 수필 「아버지의 쌀가마」 필자)
▲ 필자의 아들이 그려준 삽화 - <아버지의 쌀가마>
※ 다음은 《대전수필문학회 / 수필예술》카페 - <윤승원 '개인 서재방'>에 소개한 수필.
■ 수필(*아들이 그려준 <삽화 2점>이 들어간 글)
아버지의 쌀가마
윤승원 ysw2350@hanmail.net
가깝게 지내는 퇴직공무원 몇 분과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자주 주고받는다. 혼자 보기 아까운 글도 공유한다. 그중에는 이미 본 것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보내주신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꼭 답장을 보낸다.
‘다시 보아도 새롭습니다.’라거나 ‘몇 번을 보아도 감동입니다.’라고 답한다. 거기에 덧붙여 ‘혼자 보기 아까워 가족 채팅방에도 올려 자식들과도 공유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면 상대는 더 기분 좋아한다. 서로가 공감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퇴직공무원 L씨가「까치」라는 제목의 고 황수관 박사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는 ‘나이가 들면 더욱 공감하게 되는 옛날이야기’라는 토를 달았다. 다시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명강의. 하지만 웃을 일이 결코 아님을 일깨운다. 요약하면 이렇다.
설날, 어느 가정에 83세 아버지와 53세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침 창가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아버지가 물었다. 야, 저게 뭐냐? 아들은 ‘까치’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 오냐 고맙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두 번째 또 물었다. 야, 저게 뭐냐? 그러자 아들이 ‘금방 까치라고 했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오냐, 고맙다. 그러면서 세 번째 또 물었다.
나이가 많으면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면서 야, 저게 뭐냐? 아버지가 또 묻자, 아들은 버럭 화를 내면서 ‘금방 까치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못 알아먹어요?’ 했다고 한다. 화를 내는 자식을 보고 아버지는 너무 서러워 옛날 일기장을 꺼내왔다. 서른세 살 때 일기장이라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 살짜리 아들과 마루에 마주앉아 있을 때 마침 창가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왔다. 아들이 나에게 뭐냐고 물었다. 얘야, 저건 까치란다.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물었다. 나는 23번을 까치라고 답을 하면서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즐거운지 몰랐다. 아들이 너무 귀여워서 품에 안아주었다.’
▲ 아들(서양화가)이 그려준 '까치' - 컴퓨터 그래픽 그림이지만 아비가 볼 때는 까치 눈이 살아 있다. 꼬리도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도시 변두리 주택가 창밖으로도 이런 까치를 자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자식에게 효를 가르치려고 의도적으로 기록해둔 가정교육 교재가 아니다. 화를 내는 자식에게 면박을 주기 위해 보여준 일기장도 아니다. 자각(自覺)은 침묵으로 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신성한 인간 내면의 성찰이다.
유치원생 손자가 오늘도 할아비에게 묻고, 또 묻는다. 어린 손자의 눈에는 이 세상 만물이 온통 신기한 것뿐이다. 짓궂게 10번을 묻더라도 10번 모두 성실하게 답해줘야 한다. 할아비는 진땀은 나지만 즐겁다. 짜증은커녕 사랑스럽다. 그 옛날 나의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오셨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렇게 살아오셨다.
온갖 세상풍파 다 겪으신 구순(九旬)의 원로 학자 지교헌 박사가 나의 생활 속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요. 윤 선생이 퇴직공무원들과 나눈 ‘까치’ 얘기를 듣고 보니 문득 하나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떤 가난한 아비가 자식의 입학금 마련을 위하여 친구에게 애걸한 나머지 친구의 집에 가서 쌀가마니를 지고 나오다가 통곡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원로 학자는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이 조상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 믿고 친구에게 애걸하여 빚을 지고 울음이 터진 것이니, 그 울음의 뜻은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운 차원”이라고 했다.
▲ 아들이 그려준 '쌀가마' - 그 옛날 시골에서 농사지을 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에서 볏짚으로 가마니를 짰는데, 그 볏짚 가마니와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신세대 아들이 상상하는 '할아버지의 쌀가마'는 마대 푸대에 새끼줄을 동여 맨 것으로 묘사했다. 그래도 쌀가마 그림을 그려준 손자의 상상력이 가상하다.
나는 원로 학자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아려왔다. 과거 학창시절 내가 목도한 아버지의 깊은 한숨과 탄식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형님의 대학교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는 소 팔고, 전답도 팔았다. 그래도 모자라 ‘장리쌀이라도 얻어다 먹어야겠다.’ 라고 걱정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장리(長利)쌀’이 무엇인가. 내 고향 충남 청양에서는 ‘장려쌀’이라고 했다. 긴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곡식이 떨어지면 이웃집에 가서 쌀을 꾸어다라도 먹어야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었다. 이 때 쌀 한 가마를 얻어다 먹고 가을에 한 가마 반을 되돌려 갚은 제도가 장리쌀이다. 그러니, 가난한 농민들은 ‘농사지으면 뭐하나? 장리쌀 갚으면 먹을 게 없다’라고 한탄했다.
남의 부채(負債)가 그만큼 무섭다는 말을 ‘장리쌀 무서워 빚지지 말아야 한다.’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곱장리’ 고리(高利) 관행 때문에 ‘장리쌀 빌려먹고 기둥뿌리 빠진다.’는 속설도 생겼다. 오늘날 고리사채의 두려움과 같다고나 할까.
시골 사람들의 흔한 농담 중에 ‘고지 먹었냐?’라는 말이 있다. ‘고지’라는 것이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는지 진정 뜻을 아는 사람은 우스갯소리라도 ‘고지 먹었느냐’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춘궁기에 부잣집 지주에게 쌀을 빌려 먹으면 장리 이자 대신 농번기에 품으로 갚는 것이 고지다. 고지 먹으면 지주가 원하는 날에 일을 해주어야 했으니, 그 힘든 노역의 남모르는 심리적, 육체적 고단함이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 아버지가 겪었던 말 못 할 수모와 눈물 어린 비애를 어찌 다 필설로 표현하랴. 빚지고, 굶주리고, 힘든 노동에 허리가 휘어도 자식 공부시켜 가난한 아비 꼴을 면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을 그렇게 애써 공부시켜놨으면 부모 은공을 아는가? 부모가 늙고 병들면 어찌하는가. 부모는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누운 똥도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키워 놓지만 자식은 늙고 병든 부모 대소변 처리도 역겹다.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 사랑 만분지일도 갚지 못했는데 요양원으로 모신다.
먹는 것, 배설하는 것, 닦는 것, 모두 남의 손에 맡긴다. 외로운 병상에서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연명하다가 결국 인공호흡기를 떼면 관 속으로 들어간다. 등에 힘겹게 짊어지고 살아온 고단한 ‘인생 쌀가마’도 비로소 내려놓으니 극락(極樂)이다. 불효자는 돌아가신 후에야 부모님 산소 앞에 엎드려 자신이 누구 덕에 존재하는지 조금 깨달을 뿐이다. ■
첫댓글 장천선생의 글은 한 세기의 삶을 앞뒤의 세계로 확산하는 역사의식이 돋보입니다. 잔잔한 흐름 속에 영원하고 올바른 가치관이 담겨져 있는 타종과 같은 수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기성세대들은 엄청나게 변화하는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대간의 갈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느끼고 체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졸고인데도 과분하게 삶의 가치관과 역사기록 측면에서 따뜻한 의미 부여를 해주시니 부끄럽지만 큰 힘을 얻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삶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오는 28일 전주에서 열리는 <수필의 날> 전국 행사에 고매한 인품의 전국 문인들에게 증정되는 책이라 생각하니 크게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존경하는 정 박사님께서 각별히 격려해 주신 덕분에 큰 위안을 삼습니다. 분에 넘치는 소감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카카오톡 답글
◆ 일송 송하섭(문학평론가, 전 단국대 부총장) 2021.04.24. 17:34
윤 선생님.
마셔도 마셔도 샘물이 솟아오르듯 날마다 날마다 윤 선생님의 수필샘에서는 새로운 작품이 나오네요. <전북수필>의 작품 잘 읽었습니다. 부모님의 자식 사랑 주제 역시 파도 파도 끊이지 않지요. 잊을지 모를 미담이 새롭네요. 건필 다시 빕니다. 참. 어제 소주와 화제는 달고 달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04.24. 17:51
존경하는 송 교수님의 따뜻한 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답글이 감동입니다. 과분합니다. 필자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 같은 원로 학자님의 함축된 귀한 문학평론 문장은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옥고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우면서 영광스러운 마음 숨기기 어렵습니다. 즐겁고 유익한 자리 만들어 주셔서 거듭 감사 인사드립니다. 지금처럼 늘 건강하셔서 아름다운 인생길이 어떤 방향인지 나침반이 돼 주시길 바랍니다. 행복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윤승원 올림
※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댓글
◆ 박영진(수필가, 한남대학교총동창회장) 2021.04.22 17:27
<아버지의 쌀가마> 잘 읽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헌신과 희생을 잘 알기 어렵지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따스한 윤회장님 가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버님의 글과 아드님의 삽화 그리고 책을 받아놓고 기뻐하는 어른들과 손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맙습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04.22 18:34
졸고를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식 사랑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명언입니다.
내리사랑은 그저 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아준 것이 은혜가 아니라 죄인지도 모릅니다.
자식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뜻으로 태어난 존재이니까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은 죽는 그 날까지 베풀어야 할 마땅한 도리인지도 모릅니다.
아비 글에 삽화를 그려준 자식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삽니다.
부자간에 말이 통하는 아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버지의 쌀가마?!
이 주제는 저에게도 유년시절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지금이야 농촌도 특수 작물과 과수 등 농산품이 다양해졌지만, 제가 어렷을적만해도 논에는 벼농사가 전부 였습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쌀 밥을 먹지 못했으며, 또한 그 벼농사 일의 주축이었던 송아지를 팔아서 자식들이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였습니다.
농사철에 아버지는 늘 지게를 지고 수 없이 논둑 길을 다니시어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둑이 무너지길 다반수 였습니다.
이렇듯 아버지의 쌀가마란 주제는 저에게도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투박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참 따뜻한 말입니다.
한번 외쳐봅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복진한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도 지게지고 논둑길을 다시시던 모습이 댓글 속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추수가 끝날 무렵, 둑이 무너질 정도로 무거운 지게를 지고 다니셨던 아버지의 그 발길,
<아버지의 쌀가마>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복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도 존경 받아야할 한 시대의 아버지이셨습니다.
소 팔고 전답 팔아 자식을 가르치신 우리들의 아버지들.
오늘 날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오신 우리들의 아버지들.
그분들이 애국자이십니다.
그분들이 진정한 이 나라 건설의 주역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우리들의 위대한 아버지들입니다.
복 선생님 댓글이 필자인 저를 울컥하게 합니다.
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페이스북 《한국문학시대》 그룹 댓글
◆ 김명아(대전문인총연합회장, 계간《한국문학시대》 발행인) 2021.04.26 06:13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죽는 날까지 자식 생각에 눈 감지 못하십니다.
자식이 산 조상이라서 부모 대신 사랑으로 공경하는 깊은 뜻 모르고 치매 들었다 하는 세상에 삽니다.
아버지는 80kg 쌀 한 가마를 불끈 들어 올리셨는데 나는 아버지 나이에 이르러서도 쌀 한가마를 들지 못합니다.
이제 손자가 아버지 같아 손자 말씀 잘 듣는 할애비가 되었습니다. 꼭 나 닮은 생각과 행동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날마다 좋은 날, 오늘도 즐거우세요.
▲ 답글 / 윤승원 2021.04.26. 07:11
김명아 회장님 기억 속에 각인된 아버지 모습이 대한민국 위대한 아버지 상입니다.
"80kg 쌀 한 가마를 불끈 들어 올리셨는데 아버지 나이에 이르러서도 쌀 한 가마를 들지 못한다. "말씀이 생생하게 가슴에 스며듭니다.
"이제 손자가 아버지 같아 손자 말씀 잘 듣는 할애비가 되었다."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저의 졸고 수필의 주제가 이 시대 자손들에게 효 문화의 화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졸고 수필을 가슴으로 읽어주신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졸고를 따뜻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