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해 (고해사제의밤 토마시 할리크 p19)
고해 사제들에게 맡겨진 권한, 곧 매고 풀 수 있는 권한, 세상에서 악과 죄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권한의 원천은 바로 ‘파스카 신비’다. 사죄경을 외울 때마다 가장 핵심적이라고 여기는 부분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라는 대목이다. 이 부활의 권한이 없다면 고해는, 그리고 화해의 성사 전체는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속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어 내며, 응어리를 풀어내고, 조언을 구하는 기회 그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주술사나 정신분석 전문가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사실 화해의 성사는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르고, 그보다 훨씬 깊다. 화해의 성사는 부활 사건들에서 오는 치유의 열매다.
* 동아일보|사회 입력 2016-02-16 03:00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엄마 ‘자격’? 그런 말은 없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욱해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손이 올라갔다며 한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원장님, 저는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부모건 교사건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 엄마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다. 그렇다고 ‘엄마 자격’이 없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들은, 특히 엄마들은 육아를 조금만 잘못하는 것 같으면 ‘엄마 자격’을 걱정한다. 주변에서 “엄마가 돼서…” 하면서 ‘자격’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조금 화가 난다. 엄마면 엄마지 ‘엄마 자격’이 어디 있는가. 물론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 이때는 ‘나는 왜 아이를 때렸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고치면 된다. 수많은 자녀교육서의 저자나 육아 블로그의 스타들처럼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고 엄마 자격이 없을 수는 없다.
눈앞에서 자동차가 내 아이를 덮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0.1초도 생각지 않고 바로 뛰어들 것이다.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하는 엄마도, 골고루 먹이지 못하는 엄마도, 매일 짜증육아를 일삼는 엄마도 모두 반사적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만약 그때 다치거나 죽게 된다면, 그 순간을 원망하고 후회할까. 아마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지난해 놀라운 외신이 있었다. 출산 도중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가 자신의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난 것이다. 의료진은 엄마의 의식을 되돌리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데려와 엄마 품에 안기고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의 바이털은 급격히 상승하며 일주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엄마들은 하나같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육아가 좀 서툴더라도 대부분의 엄마는 그래도 내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엄마의 뇌에는 ‘아기를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라는 명제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아기를 갖는 순간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보살핌의 본능이 엄마의 뇌를 좌우한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더 많이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이 그 증거다. 이 호르몬들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고, 지키고, 사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영국 런던대의 안드레아스 바르텔스 박사는 엄마들의 본능을 뇌영상으로 촬영해 관찰했다. 엄마들에게 자신의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뇌의 모습을 살펴본 것이다. 엄마들의 뇌는 하나같이 비판적 사고나 부정적 감정이 줄고, 행복감이나 도취감이 일어나는 반응을 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뇌의 반응은 성인이 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성인이 사랑에 빠져 있는 유효기간은 보통 2년이다. 하지만 엄마의 뇌는 아이를 키우는 20년 동안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 엄마들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육아에 능수능란하지 않고, 아이에게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자신 안의 ‘엄마’라는 근본까지 의심하며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죽하면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세상에 보냈다’는 서양 속담이 있겠는가. 엄마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도 ‘엄마’를 폄하하거나 가벼이 말해서는 안 된다. 허나 자만하지는 말자.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300만 년 전이다. 우리의 모성 본능에는 아직도 그때 것이 남아 있다. 물불 안 가리고 ‘내 아이’에게만 몰두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은 맹수도 없고, 먹을 것도 풍부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에 맞게 아이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은 배우긴 해야 한다.
‘엄마 자격’이라는 생각이, 내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을 때 드는 줄은 안다. 하지만 그조차 ‘엄마’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더 잘 키우고 싶기에 드는 생각이다. 내 안의 엄청난 육아 본능을 믿어라. 그리고 방법은 내 아이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 된다.
* 오늘의 묵상 (220705)
제자들을 파견하며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 선포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첫째, 복음 선포는 혹독한 방해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방해의 주인공이 ‘사람’이라는 점, 둘째, 복음 선포는 어떠한 방해에도 힘을 주시는 “아버지의 영”께서 계시기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김대건 신부님에게서 현실이 된 예수님의 말씀을 만납니다. 복음이 전하는 제자들의 처지와 승리를 교회에서 본 신부님은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 성교 두루 무수 간난 중에 자라왔습니다.”(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간 스물한 번째 편지 [마지막 회유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살이 안내서』, 39면 참조)라고 하셨고, 아울러 당신이 천주교인이냐고 묻는 관장의 질문에 “나는 천주교인이오. …… 나는 배교하기를 거부하오.”(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간 스무 번째 편지, 29면)라고 답하시며 무엇을 말해야 할지 일러 주시는 ‘아버지의 영’을 드러내십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삶은 일상에서 환호가 아닌 방해를 만납니다. 방해가 두려워 시작을 못 할 때가 있고 적당히 흉내만 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방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는 방해의 순간에 오시는 아버지의 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아니라 두려움만을 보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안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성 김대건 신부님께 특별한 전구를 청해 봅시다.
(김인호 루카 신부 대전교구도룡동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