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국가는 국민을 지킨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3명의 자식 잃은 노모에게 막내를 돌려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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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와주에 사는 한 노모는 아들 4형제 모두를 군에 보냈다. 2차 대전이 종전으로 치달을 무렵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들 네 명 가운데 셋이 전사했다. 막내 한 명만 살아남았다. 이름은 제임스 라이언(맷 데이먼). 계급은 일병이다. 미 행정부는 이 막내 사병을 노모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수소문 끝에 그가 프랑스 전선에 생존해 있음을 알아낸다. 국가가 국민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책무를 다한 것이다.
마침내 밀러 대위(톰 행크스)가 이끄는 선발대는 우여곡절 끝에 전쟁터에서 어렵사리 라이언 일병을 찾아낸다. 하지만 라이언은 전우를 사지에 남겨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버틴다. 국민 된 도리와 군인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밀러 대위의 선발대는 라이언 일병과 함께 최후의 전선에 남아 죽음으로 라이언을 구해 집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야기다. 영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묻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와 국민은 그 국가를 위해 어떻게 의무를 다하고 봉사해야 하는가다. 이 영화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도덕성, 그리고 조국애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잘 풀어내고 있는데, 인본주의적인 내용과 탄탄한 이야기 구조, 사실적이고 박진감 있는 화면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장면들. 감독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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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떠난 여덟 명의 대원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메시지 중 하나가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대원들은 “짚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 “재원 낭비”라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우리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완수해야 할 밀러는 부하들을 설득한다. 작전 중 부하를 잃은 밀러 대위와 선임중사는 이 문제를 놓고 얘기한다.
밀러: 그거 알아? 부하가 죽어 나갈 때마다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해. 그의 죽음으로 다른 둘, 셋, 아니 다른 10명의 목숨을 구한 거라고. 어쩌면 100명일 수도 있고. 부하가 몇이나 죽은 줄 알아?
중사: 몇 명이죠?
밀러: 94명이야. 그건 내가 그 10배의 사람들을 구했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안 그래? 아니면 20배의 사람들을 구한 걸 수도 있고… 그렇게 간단하더라고. 그런 식으로 임무를 합리화하는 거지.
중사: 그런데 이번엔 한 명을 구하는 거예요….
밀러: 라이언이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야지. 고향에서 사람들 병을 고쳐주거나 수명이 긴 전구를 만든다거나.
이렇듯 임무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밀러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영화는 실전 경험이 전무해 실수를 연발하는 통역병 업햄의 성장을 통해 전쟁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자네 견딜 만해?”하는 밀러 대위의 말에 업햄은 “전쟁은 감성을 교육하고, 작전수행은 육체를 완벽하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이 충돌하는 위기의 순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라는 미국의 시인이자 신비적 이상주의 사상가 에머슨의 글을 인용해 자신의 건재함을 표현한다. 영화 종반 들어 업햄은 결단력 있는 군인으로 성장해 간다. 제네바 협정을 지켜 포로인 독일군을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전우들이 바로 그 독일군에 의해 죽게 되자 그를 사살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장면들. 감독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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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전투 묘사… 스필버그 감독의 두번째 아카데미상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영화 초반의 전투 묘사다. 감정이 개입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오하마 상륙 전투 장면들은 단연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1944년 6월 6일, 오하마 해변으로 향하는 상륙함 속 미군들의 표정은 공포와 불안감 그 자체다. 뱃멀미로 정신이 혼미해진 병사, 상륙함의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총알 세례. 독일군의 총알은 정확히 미군들의 머리에 가슴에 복부에 명중한다. 집요하게 퍼붓는 총알은 물속으로 숨은 병사마저 따라잡고, 어느새 바닷물은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지옥 같은 이 해변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난사하는 독일의 기관총을 향해 돌진한다. 아직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임무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 첫 전투 장면만으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영화의 명화로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초반에 관객의 시선을 잡는 데 성공한다.
성조기로 시작해 성조기로 끝나는 너무나도 미국적인 영화임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조국애·전우애 등 보편적인 휴머니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 스필버그는 다소 순진하지만 진지한 그만의 인본주의를 통해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전쟁 상황에도 발휘되는 뜨거운 인류애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우리는 최근 영화 속의 라이언 일병처럼 전우애로 뭉쳐진 병사들을 실제로 봤다.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 너머에 매설한 목함 지뢰에 하재헌·김정원 중사 등이 크게 다치고 남북 간에 긴장이 팽팽해지자 전역 연기를 신청해 뜨거운 전우애를 보여준 장병 87명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결단은 날로 개인주의화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과 함께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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