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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지교’는 옛말이 됐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어머니들이 교육의 중심 역할을 도맡아왔지만, 성공한 인물 중 상당수가 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이의 성공을 담보하고 있는 셀러브리티들의 멘토, 아버지의 힘이다.
직장 생활에 올인해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설사 열의가 있고, 시간을 만들었다 해도 방법을 모른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모델링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자녀 교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국부모코칭센터 대표 김응자 박사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가정생활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문화와 가정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달리 객관성, 모험심, 권위, 야망, 질서, 엄격함과 절제, 관용, 인내와 같은 덕목을 가르치는 존재이며, 자녀에게 충분한 가치를 부여해서 사회의 유능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갖느냐에 따라, 자녀가 미래에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는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 생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아버지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능동적으로 자녀 양육에 참여할 때 자녀의 인지발달, 성취동기, 신체적·사회적 능력 발달, 정서적 발달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아버지와 대화가 많은 아이는 학업성취 수준도 높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이의 모델이자 멘토
이처럼 자녀 교육에 아버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 아버지들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이의 훌륭한 스승이지만, 아버지는 아이에게 보다 더 넓은 세계와 가치관을 심어주는 진정한 멘토다. 뒤늦게 골프에 입문해 짧은 시간 내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던 프로골퍼 임지나, 천재 첼리스트에서 국민 아티스트로 한 단계 성장한 장한나,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소년 송유근. 이들의 성공 뒤에는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아버지가 있었다.
묵묵히 옆자리를 지켜주다
프로골퍼 임지나 아버지 임태정 씨“위암 말기 수술을 받은 날 지나가 우승했던 경기가 열렸지요.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딸아이를 응원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헌데 그날 우리 지나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겁니다. 기뻐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기력이 쇠했지만 꼭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덕분에 38kg까지 체중이 빠져 앙상했던 몸이, 지금은 50kg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지나를 위해 제가 한 일이요? 그냥 골프채를 멘 채 지나 곁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
2009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LG전자 여자오픈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임지나 선수의 아버지 임태정 씨는 딸에게 골프 인생을 열어주었다. 사업차 제주도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갔지만 바뀐 환경 탓에 좀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커져가던 차.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딸에게 골프를 권유했고, 그때부터 무거운 골프채를 들고 캐디 역할을 하며 딸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다.
“골프가 이렇게 힘든 운동인지 처음 알았어요. 저 역시 당시엔 골프에 까막눈이었던지라 아무 준비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무조건 다그치는 이기심과 욕심을 버렸죠. 그게 제가 지나에게 해준 전부입니다.”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위와 췌장, 십이지장 등 장기를 전부 떼어내는 수술로 장장 10시간이 넘게 사투를 벌였던 임태정 씨. 임지나가 프로선수가 되기 전 고3 때부터 사업도 접고 오직 딸 뒷바라지에 전념해온 그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늘 딸 생각뿐이었다.
“남편이 정말 신경을 많이 썼죠. 말못할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한 번도 딸에게 내색한 적이 없었어요. 제주도에 있을 때도 지나에겐 연습장에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자신은 집에 와서 몰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적도 많았습니다. 홀로 끙끙 앓으면서도 겉으로 내색 한 번 안 하면서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꾹 참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지나의 전지훈련을 위해 들어두었던 보험마저 해약해 위암 말기를 선고받고 나서는 아무 대비도 없어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딸을 위해서 한 일이라며 정작 본인은 무덤덤하더라고요.”
옆에 있던 아내 채혜련 씨가 입을 열었다. 이렇듯 남모를 고통을 혼자 곱씹으며 딸을 뒷바라지해온 임태정 씨가 임지나 선수를 뒷바라지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다. 첫째 기본기를 다지는 것, 둘째 자식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 것, 셋째 친구 같은 아빠가 될 것, 넷째 정신적인 교육을 중시할 것, 다섯째 아무리 어려워도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 것.
“골프는 스윙이 안 되면 불가능하니까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항상 한라산 등반 체력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기본을 익히는 것이 공부에서든 운동에서든 제일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교육에 주력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은 절대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지나가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땐 정말 뛸 듯이 기뻤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에 저 같은 아빠는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을 때가 더 기쁘더군요. 아버지가 딸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니까요.”
친근할 땐 한없이 친구 같고 힘들 땐 묵묵히 힘이 되는 아버지. 그래서 암 투병 중에도 힘든 몸을 이끌고 임지나 선수의 캐디를 맡아 투혼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힘든 순간에도 딸의 곁을 지키며 묵묵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평소에도 ‘스포츠는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며 골프 팬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항상 값진 경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딸을 응원해온 임태정 씨. 비록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제 몸 챙길 여력도 없었지만 위암 말기를 딛고 건강을 되찾은 지금, 딸에게 골프 인생을 열어준 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다며 각별한 딸 사랑을 대신했다.
임태정 씨의 멘토링 원칙
1 기본기를 잊지 않게 하기
2 자식 혹사시키지 않기
3 친구 같은 아빠 되기
4 정신교육 중시하기
5 금전적인 지원 아끼지 않기
열린 사고 이끌어주다
첼리스트 장한나 아버지 장용훈 씨어린 나이에 천재 첼리스트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한나. 뛰어난 연주 실력뿐 아니라 지난 1992년 열 살의 나이로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최근에는 지휘자로도 명성을 떨치며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 그 뒤에는 열린 교육으로 삶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해준 아버지가 있었다.
어릴 적 장한나의 천재적 재능은 음악을 전공했던 어머니가 발견했지만,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그리고 더 넓은 사고를 지닌 아티스트로 성장하기까지는 아버지 장용훈 씨의 역할이 컸다. 장용훈 씨는 마케팅을 전공하고 코트라 미주본부 시장조사팀 차장으로 재직하며 여느 아버지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딸의 장래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함께하고 이끌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제가 좋아하는 마케팅 책의 첫 페이지에 ‘마케팅 전문가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마케팅 근시가 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마케팅만 알고, 마케팅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위험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죠. 보다 넓은 사고를 하라는 이 문구의 의미는 비단 마케팅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철학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음악 외의 많은 것들을 익히라고 끊임없이 얘기해주었죠.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도 음악이 아닌 다른 학문을 선택했고,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입학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사실 장용훈 씨는 아내 서혜연 씨와 함께 어린 딸의 뛰어난 음악성을 키워주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여느 이민자들이 겪는 것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러기 가족’으로 생활하는 데 반해 장한나의 가족은 가족 모두 함께하는 미국행을 결정했다.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잘 적응하려면 집은 언제나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가족구성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저는 어머니가 자녀를 데리고 유학에 나서는 ‘기러기 가족’이나 ‘기러기 유학’은 어린 자녀에게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조기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부모에게 자녀가 인생을 사랑할 줄 알고, 또 스스로의 삶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장용훈 씨가 딸의 교육에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아이만의 장점을 발견하고 꾸중보다는 격려하고 칭찬하되, 절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고 지구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르쳐 독립된 인격체임을 끊임없이 인식시켰다고 한다. 아울러 딸이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신이 원해서 음악을 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 장한나는 여느 천재들처럼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진 ‘신동’이 아니라 더 큰 그릇을 지니고 사회 저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사회공헌을 하라고 조언해왔는데, 이 때문인지 요즘은 한나가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음악 이외에 청소년, 소외계층, 그리고 더 나아가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과 협력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용훈 씨의 멘토링 원칙
1 넓게 생각하기
2 가정의 안정감을 주기
3 남과 비교하지 않기
4 봉사와 희생의 정신 키워주기스스로 해답 찾는 법을 가르치다
천재소년 송유근 아버지 송수진 씨여덟 살의 나이로 인하대에 입학,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소년 송유근. 그는 역대 최단기간에 초·중·고 과정을 수료하고 최연소 대학입학으로 화제가 됐던 주인공이다. 12세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이하 UST)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 현재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들의 영재성을 발견하고 이끌어준 아버지 송수진 씨가 있었다. 그는 한 방송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근이가 초등학교에서 정상교육을 받았다면 10과목을 모두 공부해야 하는데, 그 과목들을 다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유근이의 재능을 살려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보다는 내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송수진 씨는 송유근 군이 여섯 살이 돼서야 아들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기본적인 교과과정을 가르쳐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송유근 군이 고등수학의 미적분을 푸는 것을 보고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기쁘고 놀랍기보다는 오히려 부모로서 아이의 영특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며,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등의 고민에 휩싸였다고. 사실 어릴 때 송유근 군은 행동이 느리고 평범한 아이였기에 뒤늦게 발견한 영재성이 오히려 부모로서는 당황스러웠다는 것.
“심지어 유근이가 자폐증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어요. 한번은 집 앞에 있는 개미집을 4시간도 넘게 꿈쩍하지 않고 지켜보더라고요.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노는 게 정상이니까요. 하지만 유근이의 남다른 능력을 발견하고 나서는, 그것이 자폐증 증상이 아닌 놀라운 집중력과 관찰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문제는 아이의 영재성을 이끌어줄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질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답변해주었지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중에는 ‘밤샘 공부’를 할 정도였다고. 특히 송수진 씨는 집요할 만큼 끈질긴 질문공세를 펼치는 아이에게 제대로 답변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편하게 물어보고 아이와 함께 답을 찾는 가정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송수진 씨의 말에 따르면 가장 좋은 교육은 ‘관찰’과 ‘기다림’이라고 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인내하며 조용히 이끌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아이의 영특함을 발견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이끌어줄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에 옮겼다. 특히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의 영재교육 현실 속에서 송군의 뛰어난 재능을 계발하고 이끌어주며, 무서우리만치 파고드는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특화된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박제남 인하대 교수와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안도열 서울시립대 교수를 찾아가 대학 교과과정의 수업을 따로 듣거나 수학 및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개별지도를 받게 했고, 이후 교수진들이 적극적으로 대학 과정을 권유해 인하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난관도 많았다. 초·중·고교 과정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했지만 13세 이하의 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결국 송수진 씨는 초등 검정고시 나이제한 규정을 철페해달라는 행정소송을 했지만 패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송군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영재성을 띤 아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틀을 벗어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특화된 영재교육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아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송수진 씨의 멘토링 원칙
1 자녀의 장점을 살리기
미술로 배우는 영어! 창의력도 쑥!쑥! [아큐박스] - 검색어: 유아영어 영어학습지 엄마표영어 영어교재
2 호기심을 이끌어내기
3 인내심 키우기
4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 여성조선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