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공지영이란 소설가가 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가 된적이 있었고 영화도 나왔다.
나는 아직 그 영화도 못봤고 책을 읽지못했다.
그러나 신간평란에 나온 걸로 봐서는 이 책 제목의 무소는
분명 우리가 그림책이나 자연 타규멘터리에서 본 동남아 등지에서 사는
그 무소가 아니라 코불소 또는 외뿔소 이다.
작가가 인용한 이 말은 불교경전 "수타 파누타"라는 불경에 나오는 경구에 있는 말이란다.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고대 수도승들은 걸식하면서 혼자 수행하며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 했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코뿔소)의 외뿔처럼 한곳 한 방향을 향하듯이
혼자서 가라는 뜻으로 해석 된다. 즉 많은 인연를 맺으면 괴로움이 크다는 뜻일게다로 추측한다.
그러니 외롭지만 혼자 정진하라는 뜻쯤으로 생각 한다..
여기서 말한 무소는 코뿔소로 번역할 때 무소로 오역한 것이란다. 정작 우리가 아는 무소(물소)는
지금도 인도. 미안마. 필립핀. 중국, 대만 등지에서 사육
혹은 야생상태로 사는 소무리중의 뿔 두개 달린 소 즉 수우(水牛=water buffalo) 그 동물이다.
내가 이 무소 이야기을 끄내는 것은 작은 이유가 있다.
무소는 위의 물소든 코뿔소든 어느 것이든 몸집이 크고 객관적으로 볼 때
행동이 좀 우둔하고 직선 방향으로 나간다.
거기에다. 큰무리을 짓지도 않고 외로히 사는게 생태이라고 알려젔다.
우직하게 융통성 적게 사교성 없이 오로지 책임감. 옛날에나 통했던 성실이라는 단어만
신조로 알고 사는 좀 딱한 사람,
그런데 내가 그녀석 떠나고 난 다음 어떻게 알게된 싸이에서 발견한
그 녀석 닉네임이 하필이면 바로 그 무소,
자동차 회사에서 힘좋은 지프형의 차를 그 무소 이미지로 된소리 나게
무쑈라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녀석 외모부터 성질하며 마음 씀씀이 친교의 형태가
무소와 거의 맞는 것 같다. 중고등 때는 멍게가 그 녀석 별명으로 알았는데,
하도 얼굴에 여드름이 많아서였데지-
생각 할수록 녀석은 무소 였다. 묵직하고 직선형 그리고 임무에 충실
저 몸상하는 줄 모르고 일요일도 없이 회사에 충성! 충성! 죽을동 살동도 모르고--
안타까운 녀석-
불경의 말씀 데로 이 인연 저 관계 다 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그리 빨리 갔는가?
"노거수" 이는 내 본이름이 아니다. 그저 인터넷에서 쓰는 별명이다.
잘못 알고계신 분도 더러 있다. 사람은 특히 지금 사람들은 여러개의 이름
즉 호칭을 가지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별명. 집안에서는 애칭,
하기사 요즘 젊은이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태명이라는 것 가지고
수선을 떠는 것도 자주 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호만도 200가지가 넘는다지않나?
임금님은 자그만치 6. 7 가지 이상의 호칭을 가지고 있단다.
태어나면 휘 (諱)7.8세에 관례을 치르면 자(字) 보통 쉽게 쓰는 호,
공을 세우면 신하들이 올리는 증호 중국에서 내리는 시호.
능에 능호. 종묘 위패에 올리는 묘호
그리고 어릴 때 탈 없이 잘 자라라고 부르는 아명. 고종은 아명이 갯똥이랬지.
나도 직장 물러나고 60 줄 지나 젊잔은 모임에 나가면
호가 뭐라는가 뭍는 사람 더러 있었다.
대학 다닐 때는 "비만오면 박수를 치는 사나이" 라고 남들이 말했지.
교사가 된 후에는 학동들이 나를 "잡상인"이라 했다.
그 당시에만 해도 교무실 서무실에 수많은 월부 할부 장사들이 드니들어 업무에 지장도 있어
출입문에 "잡상인 출입금지"라는 표찰을 달아 둔 형편이였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젊은 혈기에 겁도 없이 마치 약장수 처럼 열심히 떠든 것이
내 이름과 연관되어서 저들이 수작했을 거라 믿는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 준 별명을 사랑한다. 그만큼 나와의 거리가 가깝다는 실증이고.
교사 생활 중 학동들에게서 좋든 나쁘던 별명하나 못얻은 교사는
참교사가 못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가끔 글을 쓰거나 이름을 뒤로해야할 때가 있을 적에는
처음에는 맥랑(麥浪)이라고 했는데.
80 년대 모 방송국 연속극에 남부지방 어느 고교 문학모임를 같은 글짜을 썼기 때문에
"보리물결" 즉 麥浪이라는 내 스스로 지은 그 호, 자호를 바꿨다.
보리내음 나는 고향이라는 뜻에서 맥향(麥鄕)이라고 --, 그러나 발음 하기가 좀 걸린다.
그러다가 내가 나무공부를 하고 인터넷을 쓰게 되어 닉네임이 필요하게 되었다.
고민하다가 지금은 농촌사회의 붕괴로 사람떠난 빈 고향마을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마을 앞 해묵은 크고 오래된 나무. 늘 한자리에서 마을의 역사을 지켜보고 있는 큰 나무.
쉼터와 의지터가 되오던 그 나무. 집 떠난 자식들의 안녕을 두손모아 빌던 그 나무.
외지에서 돌아올 때 멀리서 보이면 휴하고 맘놓이는 그 큰 나무,
고향하면 어머님 얼굴 다름으로 떠오르는 동구밖 그런 큰나무가 되고자.
즉 해묶고(old ) 큰( big,great tree)나무 처럼 살아보겠다고 만든 이름이다.
이 말은 아직 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단어이다.
노거수란 나무는 수령, 크기의 기준이 없다.
현재 100년이상의 나무가 우리나라에 10 만 그루 정도가 산재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하도 쓸쓸해서 나라에서 독거노인 대우하듯 약간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나
나무도 노령화 되어 앞날이 걱정인 것이다.
그중 학술적, 역사적, 생태적, 민속적 가치가 있는 것은
천연기념물이라는 명예를 줘서 지금 51종.162 그루는문화재청에서 특대를 하고 있다.
나무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외과수술 흔적이 처연히 보이고 속이 썩은 둥치들이 많다.
이번 컴바스 같은 강풍에는 여지없이 쓰러진다.
겉보기는 멀쩡해도 속은 다 썩은 나무들이 많다. 나도 그와 같다.
다 썩은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내장. 이것이 내 닉네임 노거수(老巨樹)이다.
얼핏 생각하면 좀 거만한 이름 같기도 하다. 제가 무슨- 하며.
헌데, 말이 씨가 됐던가 그 놈의 무소가 내 몸뚱이를 늦닷없이 치고 받고 달아났다.
무소 저도 제 힘에 갔다. 이 늙은 고목 빈둥치도 부서졌다.
언제 새봄에라도 새싹이 돋을까?
무소 그 놈 참 우직 했지.
노거수 그 해묶은 나무, 비오느 날 빈 속에서 귀신불 이 날거지.
내 희망이였던 우직 했던 그 무소와 속 빈 노거수의 인연은 이렇게 서른 여덟해가 전부였다.
첫댓글 그 우직했던 무소 가 서른 여덟해로 노거수 선생님과의 작별에 가슴이 짠아안 해지는 전율이 옵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됨을 느끼며 가슴한켠에 묻어둔 그리움을 글로 승화시키시는 선생님 의 글들을 잘 보고 있습니다
노거수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요
서른 여덟해였군요...^^
마음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