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너와 나의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을까.
맑은 호수, 그리고 단풍이 든 산. 산은 호수에 잠겨있고 호수는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해 낸다.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봤었지. “산에 비하여 물이 만만해 보이고
마음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왜냐고? “ ”그건 산은 높낮이가 있고 물은
높낮이가 없이 평평하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대답을
했었는데, 그 대답이 참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사람들이 달린다.
아니, 마라토너들이 달린다. 아니, 각자의 사연과 목적을 갖은 러너들이 달린다.
갑자기 미래 생각이 났다. 미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미래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날아갈 것 같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하늘 속에서 미래가 나를 보면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 같았다. “오빠 힘내”라고.
이제 하프지점이다. 매트를 밟으니 삐 하고 소리가 난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2시간이 넘어간다. 목표시간 4시간 20분.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이어진 오르막길. 주자들이 하나 둘씩 걷기 시작한다. 길가에 서 있는
러너들도 적지 않다. 춘천댐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걷지 말고 달리자고 했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걷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걸으면 완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30km 표지판이 보인다.
아직도 12km가 남아 있다. 급수대에서 물과 이온음료 그리고 간식을 충분히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몸은 축 처져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앉아있는 러너들. 누워있는 러너들. 그리고 걸어가는 많은 러너들.
또 걷다 뛰다 하는 러너들.
“자네 말이야 달리다가 한번 걷게 되면 달리다가 또 다시 걷게 된다네.
우리 몸은 편안함을 알게 되면 그 편안함을 기억하여 다시 편하게 해달라고 계속
유혹을 하게 되지. 지친 러너에게 그 편안함의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가 어렵거든.
아무리 힘들어도 걷지는 말게나. 한발에 10cm의 보폭으로 달리더라도 끝까지
걷지 말고 달리게나. 대신 너무 힘들면 급수대에서 잠깐 쉬는 게 좋을 걸세."
아버님의 말을 되새기며 절대 걷지 않기로 명심을 하고 계속 달려갔다.
35km 급수대에서 다시 쉬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급수를 충분히 하고 힘을 내어
달려갔다. 너무 힘이 든다. 이건 어떻게 형언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마취주사를 놓은 듯 몸 전체가 제 멋대로 노는 것 같다. 하프를 달릴 때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풀코스 마라톤을 달려봐야 마라톤의 진수를 안다고 했던가.
그래도 걷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최선을 다해 달려갔다. 드디어
소양대교를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진 끝이 보이지 않은 8차선의 직선도로다.
달려도 달려도 거리는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 내 앞에서 달리는 사람도,
내 옆에서 달리는 사람도, 그리고 내 뒤에서 달리는 사람도 다 지치긴
마찬가지다.
걷다 뛰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예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보니 나도 걷고 싶어진다. 아예 땅을 쳐다보면서 달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하나~둘, 하나~둘을 세면서 그렇게 달려갔다.
드디어 40km지점이 나온다. 다시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했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2.195km.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힘을 외치고 달려갔다. 달릴만 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500미터도 못가서 또 힘겨운 달리기가
이어진다. 몸은 풀어지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그러나 그런 박수소리도 나의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드디어 멀리 골인점이 보인다. 그렇게 고대했던 골인점이…….
골인점이 가까워지자 자꾸 눈물이 나려한다. 땀을 닦아내는 척하며
눈물을 닦아내고 마지막 구간을 최선을 다해 달렸다. 200미터,
100미터. 순간 42km를 달리면서 내내 가슴속에 지니고 왔던
준비한 조그만 플랜카드를 꺼내들고 두 손으로 쫙 펼쳤다.
“ 나 장가간다. 미래야 사랑해~~” “
그렇게 4시간 16분 만에 골인을 했다. 그리고 미래와의 포옹.
미래가 웃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오빠 힘들었지?........”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 아버님이 악수를 청하고 축하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 아버님을
끌어안으며 “아버님 정말 존경합니다.” 하고 말하니 “그래! 수고했네.“
라고 말씀을 하셨다. 하늘은 드높았고 바람은 상쾌했다. 세상 모든 게
다 아름답게 보였으며 내 스스로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듬해 봄 나는 미래와 결혼을 했다. 미래는 지금 임신 6개월이다.
“미래야 내가 아이 이름 지어놨는데 뭔지 궁금하지 않니?......”
“뭔~대“ ” ‘완주(完走) ‘라고 지었는데 어때.......?" “완~~주”,
“오빠가 마라톤 완주해서 우리가 결혼했으니까....... 뭐 그럴싸하네.”
“그런데 ’완주‘가 만약에 딸이면 나는 사위 얻을 때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증 가져오라고 할까? “ ^^
“그러다 우리 완주 시집도 못가고 늙는 건 아닌가.” 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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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끝
첫댓글 첫번째 풀코스 완주때 생각이나네요.울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