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가 남은 자이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미국 동부에는 흔히 아이비리그(Ivy League)라고 불리는 8개의 명문 사립 대학교가 있다. 그중에 가장 오래되고 인지도 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교는 하버드(Harvard), 예일(Yale), 그리고 프린스턴(Princeton) 대학교이다.
이 학교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경건한 청교도와 개혁주의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오늘날 그 교정들에서 청교도들의 신실한 신앙 고백을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캠퍼스의 외형은 비할 데 없이 웅장하며 화려해졌고 온 세상이 선망하는 최고의 명문 대학이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온갖 종교를 혼합한 종교다원주의의 무덤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반면, 그 화려한 기득권을 차버리고 나와 오직 성경 무오성과 개혁신학을 지켜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여전히 작고 아담한 모습으로 남아 본질을 지키고 있다. 세속 역사는 거대함과 화려함을 승리의 징표로 삼지만, 구속 역사는 전혀 다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작은 자가 곧 남은 자”라는 역설이다.
1. 거대화 속에 길을 잃은 하버드 대학교
1636년,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첫발을 내디딘 지 16년 만에 경건한 청교도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3년 후 이 학교는, 자기 재산의 절반과 400여 권의 장서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청교도 목사 존 하버드(John Harvard)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하버드 대학교가 청교도 지도자를 세워 신대륙에 성경적 가치가 뿌리내리도록 의도한 학교로 시작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버드는 설립 후 65년이 지난 1701년에 청교도 영성이 사라지고 세속화의 길을 걷는 문제로 예일대학교가 설립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더니 100여 년이 더 지난 1805년에는, 하버드의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지탱하던 홀리스 석좌교수직(Hollis Professor of Divinity)에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을 숭배하는 유니테리언(Unitarian)주의자 헨리 웨어(Henry Ware Sr.)가 임명되면서 하버드의 영적 기틀은 뿌리째 흔들렸다.
오늘날 하버드 신학대학원(Harvard Divinity School)은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임을 내세우고 있다. 경건한 청교도 목회자를 양성하려고 시작한 학교가 기독교의 본질을 버리고 반기독교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로 변질한 것을 볼 때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1805년, 홀리스 석좌교수직에 유니테리언주의 신학자 헨리 웨어가 임명되자 이에 반발한 정통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1807년, 매사추세츠 앤도버(Andover)에 신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앤도버 신학교 역시 점차 자유주의화 되었고 1908년에는 하버드 신학교와 제휴함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렸다. 이후 앤도버 신학교는 1931년에 뉴턴 신학교와 제휴하더니 1965년에는 뉴턴과 완전히 합병하여 ‘앤도버 뉴턴 신학교’가 되었다. 2017년에 이 학교는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과 제휴하여 뉴헤이븐으로 이전했고, 현재 예일 신학대학원 내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세속의 물결에 휩쓸린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가 초심을 잃고 세속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코네티컷 지역의 청교도 목회자 10명은 1701년, 각자의 서재에서 아끼던 책들을 기증하여 콜리지에트 스쿨(Collegiate School)을 설립했다. 그리고 1718년, 10명의 설립자 중 하나인 코튼 매더(Cotton Mather)가 엘리후 예일(Elihu Yale)에게 요청하여 상당 금액의 물품과 서적 등을 기증받았다. 그러자 학교 측은 엘리후 예일의 숭고한 기증에 감사하여 학교명을 예일 칼리지(Yale College)로 변경했다.
예일 대학교의 공식 문장에는 히브리어로 אורים ותמים(우림과 툼밈)이 새겨져 있고 테두리에는 라틴어로 Lux et Veritas(빛과 진리)가 씌어 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와 진리 안에서 학문을 추구하겠다는 학교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예일 칼리지 역시 세월의 공격을 이기지 못했다. 19세기 미국에는 2차 대각성 운동의 열기와 함께 계몽주의 및 이성주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정통 칼빈주의의 전적 부패 교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결국 1820년대에 이르러 칼빈주의 전통인 인간의 전적 부패와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물리치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능력을 강조하는 알미니안 사상을 포용하였다.
그 당시 예일의 신학 사상은 나다나엘 테일러가 주도했다고 하여 테일러주의로 불리거나 예일대학교가 위치한 코네티컷주 뉴헤이번(New Haven)의 지명을 본떠 뉴헤이번 신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한번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를 높여 놓은 뉴헤이번 신학은 훗날 예일 대학교가 독일의 고등 비평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아무런 저항 없이 흡수하는 길을 터주고 말았다.
3. 프린스턴의 출범과 몰락 과정
1805년, 하버드가 유니테리언에 무너지는 것을 본 미국 장로교(PCUSA)는 개혁주의 정통 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전문 신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PCUSA 총회는 1812년, 프린스턴대학교 인근에 프린스턴 신학교를 세우고 아치볼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목사를 초대 교수로 임명했다. 이후 프린스턴에 합류하여 개혁 신학을 든든히 세운 사람 가운데는 조직신학자 찰스 호지(Charles Hodge)와 성경 무오성과 영감성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B. B. 워필드(B. B. Warfield) 등이 있다. 이렇게 시작한 프린스턴 신학교는 1822년 예일이 뉴헤이번 신학으로 넘어갈 때도 성경 무오성을 사수하며 개혁주의 신학의 튼튼한 성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보루마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지 못했다. 1900년대 초 자유주의 사조가 밀려오자, 미국 북장로교(PCUSA) 총회는 1910년, 1916년, 1923년 세 차례에 걸쳐 교단이 지켜야 할 5대 근본 교리(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기적의 역사성)을 재확인하여 진리를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 선언이 발표된 1923년, 그해 12월 26일에 자유주의 및 포용주의 성향의 목사 150명이 뉴욕주 어번(Auburn)에 모여 교단의 5대 교리에 반대하는 어번 선언문(Auburn Affirmation)을 발표했고 이후 서명자가 늘어 이듬해에는 1,293명이나 되었다.
이 교리적 타협은 결국에는 신학교마저 삼켜버렸다. 1929년 미국 북장로교(PCUSA) 총회는 신학교 구조 개편안 의결을 강행했다. 새롭게 통합된 이사회에는 어번 선언문에 서명한 자유주의자들이 다수 들어오게 되었고 개혁주의 교리를 수호하려 했던 메이첸과 보수 교수진은 신학적 주도권을 박탈당했다. 이로써 프린스턴은 설립 117년 만에 교리적 타협과 세속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4. 프린스턴의 무너짐과 웨스트민스터의 결단
미국 개혁신학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던 프린스턴 신학교가 근대주의와 성경 비평학의 거센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포용주의의 길을 택하자, 이에 반발하여 화려한 프린스턴의 교수직과 교단의 기득권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나온 사람이 J. 그레셤 메이첸(J. Gresham Machen) 박사였으며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 등 개혁자들이 그 대열에 합류하었다.
이리하여 1929년, 메이첸 등이 필라델피아에 세운 학교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다. 메이첸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를 기독교와 전혀 다른 종교로 규정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학생 50여 명과 함께 수업을 시작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지도도 없었으나 메이첸과 여러 교수들의 노력으로 펜실베이니아주의 글렌사이드(Glenside)에 아름다운 캠퍼스를 마련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개혁주의 신학생들이 모여드는 신학교로 남아있다.
하버드가 유니테리언주의자에 장악되는 것에 반발해서 생겼던 앤도버 신학교와 예일대학교의 뉴헤이번 신학에 맞서기 위해서 설립되었던 하트포드 신학교는 세월이 지나며 다시 세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는 작고 아담한 교정에서 ‘성경의 완전 무오성’과 ‘역사적 개혁신학’을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앞에서 살펴본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에 비교하여 웨스트민스터의 독특한 점은 지난 97년 동안 종합대학으로 몸집을 불리지 않고 오로지 정통 개혁주의 신학 교육에만 매진했다는 사실이다.
5. 작은 자가 곧 남은 자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으로 왕국이 두 조각이 되었을 때, 북쪽 이스라엘은 10개 지파와 넓은 영토, 막강한 부강함을 자랑하며 국가 명칭조차 가져감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대하고 부유했던 북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척박한 산지 속에 작고 가난하게 남겨진 유다를 통해 구속사를 이어가셨다. 유다는 이스라엘에 비해 약소했지만, 성전과 메시아의 언약은 유다를 통해 보존되었다. 어쩌면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작았기에 거대화, 세속화의 유혹에서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역사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세속적 영향력을 좇아 몸집을 불린 기관들은 100년 안팎 만에 무너져 갔지만,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작고 겸손한 자리를 지킨 이들은 끝까지 진리를 파수했다. 진리는 규모의 크기나 세상의 박수갈채에 있지 않다. 세상이 보기엔 작고 초라할지라도, 변함없이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서 있는 자, 그 작은 자가 곧 남은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