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속 연암의 발자취를 쫓아서
사.D +6Day (일곱째날)
5) 만리장성의 시발점 산해관 1
산해관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갖고 있었다. 즉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華夷)의 기준을 만리장성으로 삼았다. 발해의 노룡두에서 시작되는 만리장성은 산해관 각산장성(角山長城)과 연산산맥을 넘어 서쪽 사막의 감숙성 가욕관(嘉峪關)까지 약 6,400㎞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인공 건축물이다.
문명(文明)과 비문명(非文明)으로 대체되는 화이를 가르는 기준이 만리장성이었던 만큼 산해관의 안쪽을 관내(關內), 밖을 관외(關外)라 불렀다. 이 관문을 들어서야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중국을 왕래했던 조선의 외교사절 역시 요동의 사행노정(使行路程)을 경유하여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해관을 통과해야 했다.
조선의 사신들에게 산해관은 중국의 규모와 제도를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특히 산해관의 관문 중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은 그 위용이 가장 웅장하였으며, 조선 지식인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상징적인 경계(境界)이기도 했다.
1780년 사행에 참여했던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熱河日記)』 일신수필(馹汛隨筆) 산해관기(山海關記)에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큼을 모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산해관의 규모와 위용을 평가했다
산해관이라고 해서 나는 Chiness Restaurant인줄 알았뎅......-.-;;;
우리 엄마들은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짬뽕을 더 좋아하셨쥐....
.각조별로 저마다의 특징과 소질을 키워 민족 중흥의 역사의 길로 들어서볼까??
공포의 삼각장....3조!! 개개인이 무장한 Naver Silk다....^^*
조오기...카메라 지고 가는 사람!!!!......Camera 뺐어 Film한번 보자 해~~~~!!
폼은 New 욕 Time 기자같은뎅.....영.....Not Believe!!!
올라갈때나 내려갈때나....부부밖에 없음을 ....
마늘 계신 분들 잘 아시쥬????? (김장 담그는 그 마늘 말9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