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우신 선생님
이 미 나
“이미나 씨!”하고 핸드폰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제 막 돌이 된 둘째를 돌보다가 화들짝 놀라 대답하였다. 무려 30여 년 만의 일이다. 초등학교 때 큰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 어디 계신지 수소문하니 모 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란다. 반가움에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되지 않고 행정실에 내가 제자임을 밝히고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는데 바로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신 것이다.
진작 전화를 드려보고 싶었지만, 선생님 앞에 멋진 모습이 되면 연락드려 봐야지 하는 마음에 등단하고 나서야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는 말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축하한다며 “미나 글 참 잘 썼지”하고 칭찬해 주셨다. 이에 나는 선생님이 담임하셨던 초등학교 4. 5학년 시절 선생님의 세심한 관심과 격려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 문학에 정진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지인분을 통하여 내가 도서관 문예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회원분을 통해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한 사실을 알고 계시다고 하셨다. 나도 선생님께서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 근무하시다가 다시 이 지역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다는 근황을 들었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제 간의 대화의 주를 이루었던 것은 내 글짓기 실력과 문학에 대한 열심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선생님은 자주 반 아이들 앞에서 내가 글짓기 대회에서 응모하여 상 탔던 작품을 읽어 주시며 “미나처럼 감수성이 풍부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하고 격려해 주셨다. 또한, 매일 일기를 써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하는 학교의 방침이 있었는데 매일 차분히 써 내려갔던 일기를 통해 나는 자연스레 글짓기 연습을 하게 되었고 일기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숨겨진 내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게 되신 것이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내 글짓기 실력을 칭찬하시는 일이 거듭되면서 나는 자신감을 얻어 각종 글짓기 대회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면 서둘러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고 학교 공부를 복습하고 그다음은 꼭 독후감 쓰기 글짓기 대회에 응모할 준비를 했다. 서둘러 주어진 책을 읽고 내용을 구상한 뒤 연습장에 책의 내용과 생각과 느낌을 적어 보고 원고지에 써 내려갔다. 그런 치열한 노력에 화답하듯 언제고 나는 전교생들이 지켜보는 조회 때 글쓰기 상 수상자로 호명되곤 하였다.
그렇게 글짓기상은 쌓여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도 “미나는 글 잘 쓰는 애”라며 치켜세워 주니 자부심도 생겼다. 나는 내 문학적 가능성을 생각해 보며 앞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소망을 가슴에 심었다.
이처럼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각자 아이들의 성품과 재주를 꿰뚫어 보시고 그 장점과 능력을 키워 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셨다.
그리고 반 아이들 사이에서 항상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셨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교육청에서 한 반에 착한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을 뽑아 상을 주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한다. 선생님은 일단 투표를 통하여 아이들 생각을 물었다. 투표 결과 남학생은 표가 가장 많이 나온 아이를 그대로 정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여학생의 투표 결과에는 잠시 침묵하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착한 아이를 뽑으라고 했는데 인기순으로 투표했구나”, “여자아이 중에 가장 착한 학생은 미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착한 여자아이 후보지만 표가 적게 나와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착한 어린이 수상자로 나를 지명하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미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품이 착하다.” 말씀하시자 반 아이들 사이에 아무 이견이 없었다. 나름대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려 했던 내 모습을 면밀히 봐주신 선생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감사한 분이었다. 늘 내게는 부모님이 교육자이면서도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못해 의기소침했는데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학업에도 매진하여 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학업 우수상도 타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다른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고 반 여자아이 두 명의 지속적인 놀림과 조롱으로 학업성적도 하락하고 자신감도 없어지면서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 앞에서 “미나는 글 잘 쓰는 아이”라는 칭찬을 더는 들을 수 없을 것 같고 성적도 떨어지니 자존심이 상해서 옆 반 선생님이셨지만 피해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교육자 자녀이면서 성적이 뛰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을 당했고 심한 압박과 열등감에 빠져 더는 작가의 꿈을 꿀 수 없었다. 또한, 심리적 위축 때문에 꾸부정한 자세로 생활하다 보니 척추가 휘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항상 몸에 기운이 없고 화병에 난독증까지 오게 되었다는 고백까지 선생님께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이런 나의 아픈 과거사를 듣고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지금 네가 원하는 작가가 되어 꿈을 펼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하시며 위로해 주셨다.
이제껏 담아 두었던 나의 과거와 심경을 선생님께 풀어내자 어느덧 30분쯤 시간이 지나버렸다. 둘째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촉박해진 나는 선생님께 무엇보다도 제가 다시 용기를 내어 작품활동을 재개하고 작가로 될 수 있도록 해주신 큰 힘은 선생님의 세심한 관심과 칭찬이었다며 공을 선생님께 돌리고 인사를 드리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통화하며 낙심의 나락 속에서 선생님의 칭찬을 떠올리며 힘들게 문학을 다시 시작한 시절을 옛이야기처럼 웃으며 말할 수 있으니 감사했다. 전화를 끊고 그분과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초등학교 때 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문학 인생이 있을 수 있었을까? 늘 세상으로부터 성적이 우수하지 못해 교육자 자녀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고 이로 인해 얼마나 깊은 좌절감을 겪어야 했던가?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문학의 꽃을 피워 낼 수 있게 해준 *회복 탄력성은 바로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이었음을 확신한다.
식물도 사랑의 언어를 듣고 자란 화초는 그 뜻대로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풍성하고 튼튼하게 자라나지만 그렇지 못한 화초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영혼을 가진 사람이야 사랑과 관심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그러하기에 살아가는 동안 남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며 힘들어하는 이에 손을 잡아주고 빛을 밝혀 주어야 하는 것은 숨 쉬는 자들의 소명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며 자취가 묻어 나는 작가가 되어야지…. 확신이 찬 기대 속에 그 시절 선생님의 흐뭇한 미소가 자꾸만 스쳐 지나간다.
*회복탄력성: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