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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의 부활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르치시다
- 죽은 자들이 아닌 산 자들의 하나님 -
마태복음 22장 23-33절/ 23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26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병행구절, 막 12:18-27; 눅 20:27-40)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묻다
바리새인들이 음모하여 헤롯 당원들과 손잡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트집을 잡을 수 있는 빌미가 될 만한 말을 찾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였다가 오히려 무안을 당하고 그냥 돌아간 후에 이번에는 새로운 세력으로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다음과 같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준 율법에는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1) 그의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아 후사를 세워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제일 맏형이 결혼하였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둘째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둘째 동생도 자식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셋째 동생이 또 그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자식 없이 죽으므로 일곱째까지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다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일곱 형제가 모두 다 한 여자를 아내로 삼았었으니 대체 그 여자는 일곱 형제 중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
여기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있는 종교 지도자로 귀족 출신입니다. 대제사장은 이 사두개파에 속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비록 바리새인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있습니다만, 바리새인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1)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습니다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함께 천사의 존재도 영도 다 있다고 믿는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천사가 없으니 또한 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행23:8). 이렇게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두 파입니다만, 그러면서도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근거로 제시한 수혼법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나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 기록되어 있다면서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삼는 예를 가지고 질문한 것은 유대인의 독특한 관습인 ‘수혼법’에 의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아 후사를 세워야 한다”는 ‘수혼법’이 있습니다.2) 사두개인들은 이것을 들어 한 여자를 어느 일곱 형제가 모두 자기의 아내로 두게 된 경우를 예로 들어 부활이 있을 수 없다는 자기들의 생각을 정당화 하고자 하였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한 여자를 각각 자기의 아내로 두었던 일곱 형제의 경우에 다시 살아난 일곱 형제 중에서 다시 살아난 한 여자는 도대체 어떤 형제의 아내가 될 수 있겠는지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부활이 있을 수 없다는 자기들의 생각을 정당화 하면서, 예수님의 생각은 어떤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의견을 존중해서 듣고자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멸시하여 자기들의 질문에 예수님이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 :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다.
이런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처럼 오해하였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였으며,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해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수혼법’에서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무지(무식) 때문입니다. 수혼법은 이스라엘에게 있는 독특한 혼인 풍속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혼인한 가정에서 후사가 없이 남편이 죽으면 그의 아내는 수절한 상태에서 죽는 날까지 그 집안의 식구인 가족으로 있거나, 또는 그 집의 허락을 받아 다른 집으로 가는 재혼을 합니다만,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혼인한 가정에서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의 동생이 형수의 남편이 되어 후사를 얻으므로 기업을 잇게 하는 풍속입니다. 이 수혼법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창세기에서 보게 되는 유다입니다. 유다에게는 세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 중 엘이 다말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이 죽음으로 그의 동생 오난이 엘을 대신하였고, 그 또한 후사가 없이 죽음으로 막내인 셀라가 그의 형들을 대신하여 후사를 얻어 기업을 잇게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마지막 남은 아들 셀라마저 잃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셀라를 기업을 이을 자로 다말의 남편이 되게 하는 것을 차일피일 늦추며 의도적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므로 다말은 후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말이 직접 유다와의 동침을 꾀하여 베레스와 세라 두 아들을 낳아 마침내 후사를 얻음으로 베레스에 의해서 훗날 룻의 남편이 되는 보아스에 이르는 계보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혼법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수혼법만으로 충족이 되지 않을 경우에 이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제도로 ‘고엘제도’가 함께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고엘은 ‘기업 무를 자’를 뜻하는 것으로 본래는 레위기 25:24-29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땅’(재산)에 관한 것인데, 가까운 친족의 후사에까지 확대되어 ‘기업을 되찾아(회복시켜) 줄 자’를 의미합니다. 이 고엘 제도가 잘 나타나 있는 성경이 룻기입니다. 이곳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어 모압 지방으로 내려가 거류하던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사망하고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또한 이곳에서 결혼하여 아내를 얻었으나 후사 없이 모두 사망하므로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이 남음으로써 기업을 이을 자가 없게 되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으나 소유한 땅도 재산도 없으므로 가장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를 의지하게 되었고, 보아스는 나오미의 아들을 대신하여 룻의 남편이 되어 나오미에게 기업을 잇는 기쁨인 후사를 안겨 줌으로써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왕에까지 이르는 계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수혼법과 고엘제도는 이스라엘 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입니다만, 이는 단지 한 집안의 혼인과 가문 자체의 보호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이 수혼법과 고엘제도에 있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에서 있게 되는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거스르는 인간의 역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리고 다윗 왕과 언약을 맺으시어 그 자손으로 메시야(그리스도 ; ‘구속자’)를 오시게 하실 것에서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사두개인들은 그리스도에 이르는 하나님이 내신 수혼법과 고엘제도가 품고 있는 뜻을 잘 알고서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를 바라보며 그분이 행하실 능력을 의존함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로 인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부활도 천사도 영도 알므로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는 잘못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해로 부활을 부인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의미를 알지 못하여 오해하므로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에 있는 것이 부활을 부인하게 된 주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지상 생활 동안 가졌던 인간관계와 전혀 상관없이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능력을 행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알았었다면 하나님의 능력도 알고 그 믿음에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만,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그 믿음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의 무지에 의한 오해는 그들의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성경대로’ 오시고, 또한 ‘성경대로’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에서 가르침을 받는 부활의 진리
부활 때 하늘에 있게 될 우리의 상태 : 예수님은 부활 때에 있을 일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하늘에서의 우리의 상태가 어찌될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그 날에는 사두개인들이 예를 든 일곱 형제와 그들의 아내가 된 한 여자는 죽은 자로 있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자로 있을 것이며 그 상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결혼에 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장가가고 시집가고 한 결혼하여 있었던 지상에서의 모습으로 하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들의 모습은 하늘 세계의 것이므로 하늘의 천사처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죽은 자로 있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자로 있을 것이기에 그 생명의 부활이 있게 되며, 그 부활을 통해서 하늘에 있는 천사의 영과 같이 됩니다.
모든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모세에게 알리신 하나님 : 예수님은 부활 때의 우리의 모습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을 이야기 하신 후,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출애굽기 3:6에서 보는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것을 들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면서“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일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이것을 읽어보지 못했느냐?”고 책망하시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인지를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이 비록 옛적에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다’라는 뜻이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를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에게 계시해주셨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있은 당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그 당시의 사람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죽은 사람들을 살아 있는 자들로 말씀하심으로 죽은 자은 죽은 자로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자인 다시 살아남에 있을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조상인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의미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여서 하신 말씀인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보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것을, 그리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으로 지금 여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지금의(당시의) 살아 있는 유대인과 동일하게 살아 있는 자이며,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 산 자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모든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뜻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계대성 : 오래전 옛날에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떻게 해서 지금도 살아 있는 자인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다음과 같은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먼저 원래의 문맥인 출애굽기 3장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하자면, 이곳 6절에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실 일과 그 일의 목적과 그 일을 행하시려는 이유를 모세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시려는 일과 그 일의 목적과 이유의 토대는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15:13-21; 17: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끌어 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가시려는 것입니다(출3:8).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에 대해 이렇게 계시하십니다.“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그러나 모세의 계보를 보면,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출 6:20)이고, 그 위는 고핫(출 6:18)이고, 그 위는 레위(출 6:20)이고, 레위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명의 조상 중에 단지 세 명만을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것은, 그들이 지닌 의미,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들인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내용 때문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아브라함에게‘땅’과‘후손’과‘천하 만민이 얻을 복’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 안에서(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시며(창12:1-3), 이를 이룰‘씨’, 곧‘아들’을 언약으로 맺어 주시며, 언약의 의식과 그 표 할례를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창15:1-20; 17:1-22).3)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인데,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그리고 야곱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맺음에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그들의 믿음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 내용을 누리는 자들은 그 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후손들까지입니다. 이와 같은 언약의 특성을‘계대적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원리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실 때 ‘(그들의)하나님이었다’라는 과거꼴이 아니라,‘(그들의)하나님이다’라는 현재꼴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꼴로 말씀하셔도 언약의 특성인 계대적 원리와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시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언약하신 바대로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시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현재꼴로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현재꼴로 말씀하신 것을 풀어보자면,“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관계이며, 이러한 관계는 어느 한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의해서 죽은 자가 산 자가 되는 일이 있게 됨 : 따라서 출애굽기 3:6의“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불붙는 가시나무 떨기에서 모세하고 말씀하시고 있는 그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전히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예전처럼 유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세의 조상들로서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현재 그들과 여전히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조상들은 죽은 후에 죽은 자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로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는 하나님의 언약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고 그곳에서 그에게서 난 그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며,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천하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하여 복 받을 것을 약속하셨으며, 이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주실‘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언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인‘아들’안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이 무엇인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그 아들(후손)과 맺은 약속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하늘의 총총히 반짝이는 별을 들어서 후손이 그 무수한 별들만큼이나 많을 것이라고 하였는데(창 15:5), 바울은 여기서‘후손들’에게가 아니라‘후손’에게 라고 한 것에 주의를 하여야 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후손들’에게라고 하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대인 전부를 가리키는 것이 되겠지만‘후손’에게라고 하면 이는 한 사람인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갈3:16).
이처럼 한 사람인 그리스도인데, 어떻게 해서 ‘(그) 후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무수히 많을 것으로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 대신 죽게 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아주시는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엡 1:5). 그에 따라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의 사람이 되게 하여(엡 1:6), 우리가 하나님을‘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받게 하시므로(롬8:15)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후손’과 맺은 약속에 따라서 그리스도 한분을 통해서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만큼이나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해서, ‘후손’은 ‘seed'로 말씀되어졌습니다(창15:5, KJV).4) ‘씨’라는 말입니다. 이 ‘씨’는 ‘큰 민족’을 이룹니다. 얼마만큼의 ‘큰 민족’인가 하면,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받는 ‘모든 민족’입니다. 과연 하늘의 별들로서 말해질 수 있을 만큼의 ‘큰 민족’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후손’(seed)에 의해서 이루게 될 이 큰 민족인 하나님과 함께 계신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산 자’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지만,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죽은 자가 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과 ‘후손’과 ‘복’에 관한 내용을 요소로 하는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 내용을 누리는 자들은 그 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모든 후손들입니다. 이와 같은 언약의 특성을 ‘계대적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원리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그들의)하나님이었다’라는 과거꼴이 아니라,‘(그들의)하나님이다’라는 현재꼴로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언약에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인 ‘산(살아 있는) 자’로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후에 하나님의 언약인 ‘아들’을 통해서 ‘산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 속에 있는 것처럼, 지금 그리스도이신 자신을 통해서 참된 생명을 얻어 ‘산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은 자의 부활은 있으며, 이 부활을 어디에서 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출애굽기 3:6의 인용을 통해서 아들의 언약의 성취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게 될 것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의 질문을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자신을 계시하시며‘믿음의 주’로 전하는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배우는 부활의 진리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활 때에 있을 사람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1) 우리는 부활을 생각하기를 ‘육(몸)의 부활’을 할 것인데, 그 부활은 육의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지닐 것이라고 여깁니다. (2) 그리고 그 육의 부활 상태에서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활을 말씀하시는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 때에 있을 우리 부활은 분명‘육(몸)의 부활’입니다. 이는 우리 육이 부활하는 것에서 입니다. 그러나 그 육이 부활할 때에는 지상에서 가졌던 육의 몸 상태 그대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상태의 흙에서 취한 육의 몸은 없어지고 이와는 전혀 다른 하늘에서 주어진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는 우리 몸은 땅에서의 개념에 의한 몸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새로운 몸인 하늘의 개념으로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됩니다. 하늘의 천사는 육의 존재가 아닌 영의 존재입니다. 분명히 하늘의 천사는 ‘실체’입니다. 천사의 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몸은 땅의 형상이요 육의 형상으로서의 몸이 아닌 하늘의 형상이요 영의 형상으로서의 몸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형상이요 영의 형상을 우리 몸으로 새롭게 입는 부활을 우리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천사들처럼 하늘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따라서 육인 우리 몸이 부활하는데 처음 육의 몸 상태 그대로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활을 믿으나 부활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 육이 부활할 때는 처음 육의 몸은 없어지고 영의 몸을 새롭게 입음으로써 하늘의 천사처럼 존재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에서 열매와 씨, 그리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들어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몸이 죽으면 썩어질 땅에 속한 몸은 썩지 않을 하늘에 속한 몸으로, 지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이지만 다시 살아날 때에는 강한 몸으로, 지금은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몸이지만 다시 살아난 뒤에는 영적인 몸으로, 지금은 땅에서 나온 몸이지만 다시 살아난 뒤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늘의 신령한 몸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담과 같은 몸을 가진 우리가 후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지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부활이 있을 것인지를 알게 해 주니, 살과 피로 이루어진 땅의 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썩어질 몸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몸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몸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다 죽지 않고 새로운 몸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홀연히 그렇게 될 것인데,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들릴 때 죽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순식간에 다시는 결코 죽지 않는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땅 위의 몸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하늘의 몸으로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승리가 죽음을 삼킬 것이다’라는 성경의 말씀은 성취됩니다.
부활 신앙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는 사도 바울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승리를 주신다며 믿음을 다지게 하는 권면을 합니다.“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지금까지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장래의 승리는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니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에 항상 힘쓰십시오. 부활은 분명히 이루어지며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고전 15:3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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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가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12:19)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20:28)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신명기 25:5-6.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아들‘의 언약은 창세기 15장에서이며, 창세기 17장에서 재차 주어지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아들을 통해서 이룰 약속이 창세기 12:1-3의 ’땅‘과 ’후손’과 이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받을 복’이므로,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언약인 ‘아들’ 안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포괄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신 세 가지도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해진다.
4)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시고 마침내 들어가게 하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네 자손’은 ‘the seed', 곧 ’그 씨‘로서 아브람의 혈통에서 날 자가 아닌 약속으로 오는 자손(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