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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학자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가 있긴 해도, 인간 창조에 대한 논의는 일찍부터 있었다.
벌코프는 인류의 통일성에 대한 학문적 증언들을 열거한다.
학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류의 통일성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과학적인 인간이 언제나 인류의 통일성을 신봉했던 것은 아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자동발생설(autochtonism)을 신봉했다. (중략) 아가씨즈(Agassiz)는 여러 개의 창조의 중심점을 상정하는 ‘복수아담론’(The Theory of the Coadamites)을 제창했다. 또한 이미 1655년 페이레리우스(Peyrerius)는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인간들이 이미 있었다고 가정하는 ‘전아담론'(The Theory of the pre-Adamites)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은 윈첼(Winchell)에 의해 부활되었다. 그는 인류의 통일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아담을 인류의 시조보다는 유대인의 시조로 간주했다. 최근 플레밍은, 확고한 태도는 아니지만, 주전 5500년 아담이 등장하기 전에 그보다 열등한 인류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가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들은 아담족 보다는 열등하지만, 동물들과는 다른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벌코프 조직신학』, 권수경, 이상원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1), pp. 398-99.
아담 전 인류설에 대해서 학자들의 견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글리슨 아처(Gleason L. Archer)
우선 우리는 구약개론서에서 ‘아담전 인류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처(Gleason L. Archer)의 구약개론서『구약총론』(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은 미국 성서학계의 보수적인 구약개론서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번역서(김정우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1994)에서는 ‘인류의 고대성’이라는 제목 아래 아담 이전의 인류 존재를 자세히 검토하고 있다(* 1994년판은 원서 제3판의 번역임).
유사 이전 인간의 화석과 유물들을 1850년대 처음으로 발견한 후부터 인류는 성경의 기록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이론이 창세기 기록과 조화를 이루는데 문제가 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중략)
피세칸스로프스, 스완스콤인, 네안델탈인, 그리고 나머지들(예를 든다면, 크로마뇽인: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나 B.C. 20000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인류들을 아담 시대 이전의 종족들로 보며 아담의 언약에 동참하지 않은 자들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문화적 유적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아담 이전의 피조물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었는지(혹은 삼분법적 용어를 쓰자면 영을 가졌는지)에 대해 계속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창세기 1:26절이 암시해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질적으로 다른 존재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창세기 1:26-27절에 있는 “사람”으로 번역된 것이 히브리 원어로 ’Adam임을 주의하라). 아담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오직 아담과 그의 후손들만이 하나님의 생기를 부여받았고 하나님 자신과 같은 영적 속성을 물려받았다. 로마서 5:12-21절은 모든 인류가 아담 이후에 생겨났으며 최소한 문자 그대로 그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 이는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과(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첫 인간) 아담 이전의 인류와는 아무런 유전관계가 없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크로마뇽인의 골격이 호모 사피엔스에 아무리 가깝다 할지라도 이 동굴의 인간들이 참으로 인간의 영혼과 인격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은 현재 인류의 원조가 되는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지만 하나님에 의해 멸종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창세기 1:26-27절대로 하나님의 영적 형상으로 지음 받은 첫 인간이며 과학은 이것을 부인할 아무런 증거도 없다. (후략) - 글리슨 아처,『구약총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9), pp. 274-78.
여기서 그는 아담 전 인류 문제 곧 인류의 고대성을 다루면서도, 창세기 1장과 2장의 인간 또는 아담을 동일 존재로 보고,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로 본다. 이를 베뢰아의 가설과 비교해 보면, 창세기 1장과 2장의 사람과 아담을 다른 존재로 본다는 점 이외 거의 대동소이하다. 물론 창세기 1장과 2장의 사람과 아담을 다른 존재로 본다는 점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지만, 아처는 유사 이전 인간의 화석과 유물에 근거를 두고 인류의 고대성을 성서신학 분야에서 다루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강조하지만, 베뢰아에서도 창세기 2장의 아담을 “모든 인류의 대표”요, “현재 인류의 원조가 되는 인간”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2) 밀라드 에릭슨(Millard J. Erickson)
에릭슨은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창세기 4장에 나타난 신석기 시대 자료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비록 우리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지어주는 것이 언어이며, 따라서 최초의 인간은 약 3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아직도 추가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창세기 4장에 나타난 신석기 시대 자료들에 대한 문제이다. 만일 아담이 3만 년 전에 창조되었고, 만일 가인과 아벨이 아담의 직접적인 자손이며, 만일 우리가 창세기 4장에서 신석기 시대의 관습들(예를 들어, 농업)을 실제로 발견한다면, 그리고 만일 신석기 시대가 약 만년에서 8천년 전에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세대들 간에 적어도 2만 년의 간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몇 가지 제안들이다.
① 전 아담론(The pre-Adamite theory)은 아담이 온전히 성경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인간이었지, 인류학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인간은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인간들이 이미 있었다.
② 가인과 아벨은 아담의 직접적인 자손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담으로부터 몇 세대 이후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몇몇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요약된 것-곧 아담의 아들 가인, 살인자 가인, 그리고 도시를 건설한 가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③ 창조 설화(창 1:26; 2:7을 참조)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 ‘아담’은 종종 인류 전체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성명 미상의 최초의 인간에 대한 언급이다. 다른 구절들(창 4:1; 5:3을 참조)에서 아담은 고유명사로서보다 이후에 출현한 한 특정한 개인을 지시하고 있다. (중략)
다섯 가지 제안들 중 어느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모든 견해들이 다 해석학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으나 ①번부터 ③번까지의 견해들이 보다 심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①의 견해는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한 진술 곧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로마서 5장은 인류일원설(monogenism) 곧 모든 사람은 아담에게서 유래되었다는 이론에 대한 증거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필자는 ④이나 ⑤의 견해에 호의를 갖는다. 그러나 창세기 4장에 나타난 신석기 시대 자료들에 대한 문제는 자료의 불충분으로 인하여 명확한 진술을 내릴 수 없는 분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 『인죄론』, 나용화, 박성민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pp. 65-67.
여기서 에릭슨은 로마서 5장의 “한 진술 곧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말”이 “전아담론”(The pre-Adamite theory)의 최대 난점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베뢰아의 주장은 해외 학자들의 “전아담론”과 달리, 창세기 2장의 “아담”을 “모든 인류의 대표”요, “현재 인류의 원조가 되는 인간”으로 보기에, 로마서 5장의 인류일원설(monogenism) 곧 모든 사람은 아담에게서 유래되었다는 이론에 전적으로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3) 존 스토트 (John R.W. Stott)
복음주의적인 신학자로 존 스토트는 한국교회에서도 복음주의 신학자로 신망이 높다. 그는 『성경 연구 입문』 (Understanding the Bible)에서 “하나님께서 그들[고대 인류] 중에 하나를 택하여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하다.”고 말한다.
원문:
I myself believe in the historicity of Adam and Eve, as the original couple from whom the human race is descended. I shall give my reasons in chapter 7, when I come to the question for how we are to interpret Scripture. But my acceptance of Adam and Eve as historical is not incompatible with my belief that several forms of pre-Adamic 'hominid' may have existed for thousands of years previously. These hominids began to advance culturally. They made their cave drawings and buried their dead. It is conceivable that God created Adam out of one of them. You may call them homo erectus. I think you may even call some of them homo sapiens, for these are arbitrary scientific names. But Adam was the first homo divinus, if may coin the phrase, the first man to whom may be given the Biblical designation "made in the image of God." Precisely what the divine likeness was, which was stamped upon him, we do not know, for Scripture nowhere tells us. But Scripture seems to suggest that it included rational, moral, social and spiritual faculties which make man unlike all other creatures and like God the creator, and on account of which he was given "dominion" over the lower creation. John R.W. Stott, Understanding the Bible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1999), pp. 26-31)
번역:
나 자신은 아담과 하와가 인류가 유래한 최초의 부부로서 그들의 역사성을 믿는다. 이점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할지를 말할 때, 7장에서 내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서 아담과 하와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전에 오랫 동안 존재해 왔던 아담 이전의 ‘원인’(原人; hominid)의 여러 유형에 대한 내 주장과 양립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 인류는 문화적으로 진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죽은 자들을 장사지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하나를 택하여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하다. 그들은 호모 에렉투스라 불릴 수 있다. 나는 그들이 호모 사피언스라 불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이는 이런 이름들은 자의적인 과학적인 이름들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은, 만일 명명을 한다면, 최초의 호모 디비누스인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성경적으로 명명되어야 최초의 영적존재다. 그에게 새긴 바된, 그 신적인 형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모든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고 창조주 하나님과는 닮은, 이성적,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특질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러기에 그에게는 하등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이 주어졌음을 제시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 출판된 번역본(최낙재 역, 성서유니온, 1975, pp. 55-56)에서는 그가 아담 이전의 인류 존재를 언급한 부분이 거의 삭제되어 있다(* 3면에 걸쳐 60여 행).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인류의 기원과 관련하여 경직된 경향을 보이는 한국교회의 풍토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 창세기의 인간 창조설에 대한 제안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인간 창조에 대한 베뢰아의 주장은 해외의 학자들도 다루는 하나의 가설이요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베뢰아의 주장은 종래의 소위 “전아담설”과 다르다. 이는 종래의 “전아담설”과 달리 창세기 2장 7절의 아담을 영적 존재로서의 우리의 조상으로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기에 이를 근거로 한 이단 시비 보다는 학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우리는 우주 창조 연대와 지구의 나이에 대하여 과학적 설명과 성서해석학적 설명이 한국교회의 현장에 혼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천지창조의 연대를 B.C. 4,000-5,000으로 보고 지구의 나이를 6,000-7,000년으로 계산하는 것을 성경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적인 연대기에 의하면 천지창조와 아담의 연대는 아무리 길게 잡는다 해도 수천 년 전이기에, 이는 지질학이나 고생물학의 모든 연구 성과를 부정한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경 기록들의 선별성을 주장한다. 즉 성경의 기록은 모든 일을 빠짐없이 망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일도 실제로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족보들이 모든 사람을 다 열거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만 수록하였기 때문에 생략된 연도가 많다는 것이다.
일반 학문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수십만 년이라고 하는 반면, 성경 연대기는 아담이 6,000-7,000년 전의 사람이라고 함으로써 엄청난 간격이 벌어져 있다고 할 때, 아담 이전의 고대 인류를 상정하는 것이 그 괴리를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더욱이 만일 성경 본문 자체가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기독교 변증 차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논제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연관하여 미국에서 나온 대표적인 구약개론서 중 하나에서 해리슨이 아담 전 인류설과 네피림 문제에 대해 밝힌 견해는 주목할만하다. 여기서는 먼저 원문을 소개하고, 번역문을 게재한다.
원문
The passage that mentions the Nephilim (Gen. 6:1-4) has, by common consent of the literary-critical school, been dismissed as myth and has been subjected to such implausible explanatory crudities as the suggestion that the Nephilim were actually “fallen angel.” To relegate such an ancient section to the realm of myth or legend as popularly understood by liberal scholars is to preclude immediately the possibility of any rational interpretation of the text, and to miss entirely the invaluable anthropological insights into the interrelation of homo sapiens and pre-Adamic species which the passage contains and which are amenable to those scholars who equipped to purse them. - R.K. Harriso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chigan, 1969), p. 557.
번역
네피림에 대해 문학비평학계에서는 신화로 취급하는 것이 대세인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어설픈 주장으로 네피림이 사실상 ‘타락한 천사’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학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신화나 전설로 이해되는 영역으로 고대 부분이 좌천된 것은 그 본문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떤 해석의 가능성조차도 즉시 배제시켰고, 호모 사피언스와 아담 이전 종족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그 구절이 내포하고 있고 또 그것들을 탐구할 준비를 갖춘 학자들이라면 다룰 수도 있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인류학적인 통찰들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서구 성서학계에서는 고대 인류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문제는 성서해석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베뢰아의 주장은 로마서 5장의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주장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기에, 벌코프가 지적하듯이 현재 인류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전아담론”(The pre-Adamite theory)과 달리 기독교 구원론을 조금도 저해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세계 신학계 특히 문학비평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창세기의 원역사 부분을 신화로 취급하는 오늘날, 우리는 한국의 신학계가 우주 창조와 인간 창조의 연대문제와 창세기 서두부의 여러 주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조금 길어서 문제입니다.
그래도 꼭 읽어보세요.
조용히 사라지려다 크리스탈님께서 너무 일방적이어서 드립니다.
모든 운영자님들의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자가 아니라 성공회 신부입니다. 성공회 신부는 카톨릭 주의자입니다. 기독교의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자이고 그는 프리메이슨 33도 사탄숭배자라는것이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런자가 생각해 볼만하다고 하다고 하는것은 별 크게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벌코프? 에릭슨? 기독교에서 알아주는 신학자들인가?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신학자들 아닌가? 스티그마님 이왕이면 박형룡 박사님이나 박윤선 박사님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여러명이 있지만 참 진리를 전하는 신학자는 정말 찾기 힘들지요. 신학이 성경을 규정해버리고 있는 현실이 교회를 타락시켰으니까요!
스티그마님 스스로가 <이중아담론>은 이단사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도 성경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님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중입니다. ^^;;
이글은 하나님의 창조를 훼손하는 내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는 유대인의 경전이다? 그정도 수준이 전세계의 신학자들 수준이지요. 2차세계대전이 끝나기전에는 유대인은 죽여도 죄가 안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유대인이 세상에서 참 많은 핍박과 죽임을 당하고 무시를 당했지요. 성경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록되는데도 기독교인들조차도 유대인을 경멸하고 죽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창세기를 유대인들만의 경전으로 보는것은 이상할게 없지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본다는것은 아주 한심한 짓이지요.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의 목적과 과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이상한 학설 가설들 가지고 무슨 학설이니
학문이니 하는 꼴이 참 우습지요. 원숭이에서 진화된 인간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이 있다? 참 한심한 논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이 인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라는것을 왜 모를까요? 인간을 만들어 소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죄악이 이런 우끼지도 않는 논리들을 만들어낸다고 보고 싶습니다. 믿을려면 확실하게 믿든지? 원숭이에서 진화된 인간이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 있다? 소가 웃을 일입니다.
님은 참 비겁한 사람입니다.,,, 떠나는 마당에 참 기분 좋게 가려 했더니 님의 모습이 가관입니다.
하긴,,,성경도 소설쓰듯 쓰셔서 진리인것 처럼 믿으시는 분이신데 무슨 말인듯 못하겠습니까마는
님의 소설 속에 상대의 논리를 훼손하고 가두려는 이와 같은 교만은 이제 누가 보아도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말을 있는 것처럼 쓰시는 님의 소설은 이곳에서만 인정될 것입니다.
기독네티즌이라는 카페가 님에게는 최고의 피난처가 되고 있는 듯 합니다.,,,,소설 그만 쓰시지요.
스티그마(목사)님의 댓글을 보면, 정말 목사가 맞는가...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의심이 갈때가 있습니다. ^^;;;
빛의 아들님,,,
참 끝까지 부정적이군요,,,그래야 빛의 아들님이지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아니 베베꼬인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말들을 님은 대단한것처럼 기록하셨는데????
박형룡 박사라 했습니까? 그 사람은 제가 조금은 신학했던 사람이고,,,박 윤선 박사님의 주장에 대하여 님만큼은 몰라도 알만큼은 압니다.
님이야 사도 바울과 견주기에 이 사람들 쯤이야 성에 차기나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세계 기독교 역사에 조금은 영향력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 떠나 ,,,,이들이 유명하지 않다해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음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시각을 버리세요.
여전히 소설 쓰시기를 즐기시네요.
이렇게 소설 쓰시기를 즐기시면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소가 웃을 일입니까?,,,,,,,,,,,,,,,,,,,,,,,,,,왜 지나가는 개가 웃는 모습은 안 보이십니까?
이들이 님보다 못해서 이런 논리를 주장할까요?
님의 생각이 다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잘못하다가는 국제적 망신살 당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빼먹지 않고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문은 학문일 뿐이다.,,,,기득권자들의 학문을 진리로 보는 님보다 훨씬 성경적인 사람들입니다.
스티그마님 님의 말처럼 학문은 학문으로 끝마치시고 진리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전하시길 부탁 드립니다...저는 개인적으로 강대상에서 성경책이나 노트 없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설교 하시는 목사님이 있으면 좋겠읍니다.저는 그런 설교를 들었었지요.2~3시간씩 하시는 설교요...기도하세요.. 그동안 보지 못하던 말씀. 보이지 않던 말씀이.눈앞에 펼쳐지고 주님의 말씀이 스티그마님의 입을 통하여 증거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스티그마님의 착각! 성경은 학문이 아니고 진리입니다. 스티그마님은 자꾸 성경을 연구하는것을 학문의 한 분야로 몰아가고 계시는데요! 성경은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님이 저에게 뭐라고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님에게서 보이는것은 딱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배워서 안다? 성경은 학문이다? 이론이다? 성경을 학문으로 연구하고 학문하는것은 학문으로 그쳐야한다? 참 이상한 논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약속을 보지만 성경을 보는 자들은 학문으로 볼분이지요.
학문으로 보는자들에게는 성경이 연구하고 공부해야할것으로 보이지만....빛의 아들들은 성경을 통해서 빛이신 하나님을 보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창조한 목적을 보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보는것입니다.
님에게 성경은 학문으로 보이겠지만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과 내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가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티그마님과 제가 토론이 안되는 이유입니다. 스티그마님께서는 학문으로만 자꾸 보려고 하는데 성경은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연구할 가치가 있는 어떤 한 분야로 보겠지만 빛의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되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