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退溪) 선생의 梅花 詩와 杜香 이야기 ♠
李滉 退溪 선생은 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한다. 그래서인지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
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는데,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官妓 두향 때문이었다 한다.
두향은 단양에서 태어나 조실부모 했으며, 그의 빼어난 자태를 아까워한 한 退妓에 의해
길러져지면서 妓籍에 오르게 되었다. 몸매도 아름다웠거니와 거문고와 시문에도 능하였고
또한 매화를 가꾸는 盆梅에는 남다른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그때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이
퇴계가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임 군수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여 수소문 하다가 그가
조정에 근무하던 때 매화를 읊은 시 한 수를 발견하고 그 인품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 시는 이러하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장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관기로서 퇴계를 가까이 모시게 되면서 그녀는 선생을 사모하게 되었고, 성품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햇던 퇴계 선생도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허전한 빈 가슴에 한 떨기
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시화와 음율을 논하고, 산수
를 노닐며 인생을 즐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고,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선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이에 두향이 말없이 먹을 갈아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
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두향의 마음이야 오매불망 당장
이라도 찾아가고 싶었으나 선생께 누가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지를 않았다. 그저 간간이 인
편으로 문안을 여쭙곤 하였다. 헤어진지 4년이 되는 봄날에 온 두향의 인편에게 퇴계 선생
은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보내 그녀를 위로했다.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여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마라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 준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이 하나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그는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었다. 그러다가 선생이 당신 나이가 들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조그만 한 움막을 치고 그곳에서 퇴계를 그리며 평생을 살았다.
퇴계는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에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한다.
선생의 그 말 속에는 두향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 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생시에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죽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
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고, 유언대로 충주호의 장희나루 건너 강선대 인근에 묻혔다.
나이 탓인가! 애절했던 사랑앞에 더욱 아프다. 이곳에서 두세 시간 거리다. 단양군 단성면에서
1987년부터 매년 5월에 ‘두향제’를 열고 있다는 정보에 전활했더니 금년부터 없앴다고 한다.
어째 가슴이 휑 하다.
그러나, 고맙게도 그때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代를 잇고 이어 지금도 안동
陶山書院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언제 다시 안동에 갈 기회가 주어지면 그 애절한 두향의 사랑을 가슴깊이 쓸어 안고 오리라.
-이곳저곳을 뒤져 정리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