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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서 론
일본사람 ‘사이쇼 히로시’라는 사람이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과 ‘아침형 인간의 비밀’이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올빼미 형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고, 또한 올빼미 형 인간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다. 참고로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일이다.
우연히 서재에 꽂힌 책들을 이 책 저 책 읽어보는 습관이 있는데 책을 펼치니까, 2005년 2월 1일에 최영일 목사님께서 안수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하면서 저에게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제가 5년 내내 그 책을 읽어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그 책을 읽고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인생을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한데 그 전환점이 바로 아침형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올빼미 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올빼미 형 인간은 잘못된 습관의 고착화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수정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에 영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에 깨어나지 않으면 밤 문화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에 늦게 자는 것은 영적으로 치명적인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을 올빼미 형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도시에서 사는 사람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많겠습니까? 당연히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 올빼미 형 인간이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드라마가 밤에 잠을 못 자도록 가장 흥미 있는 프로가 밤10시부터 시작하여 반드시 11시10정도에 끝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유혹자의 철저한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밤의 지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밤은 더 이상 암흑이 아닙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대도시일수록 또렷한 야광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와 보자. 네온사인이 넘실대는 환락가, 24시간 편의점, 레스토랑, 비디오가게…….심야 영화관, 텔레비전의 심야 시청률도 매년 상승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국경은 물론 밤낮의 경계도 없습니다.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비즈니스맨들의 빌딩 숲도 쉽사리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가히 현대 문명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밤이 이처럼 불야성을 이루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극히 짧은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수천 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일출과 함께 일찍 일어났다가 일몰과 함께 잠드는 것이 당연한 생활양식이었습니다. 나무나 기름을 태우는 수준의 조명기구로는 밤을 활용하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행동반경도 제한되고 할 수 있는 일도 극히 한정되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내일을 위한 충전을 하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과였습니다. 전기의 발견과 전등의 발명으로 인류의 밤은 인간의 기본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패턴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발전한 유럽이나 미국은 지금으로부터 약100년 전에 전구가 발명되었지만 보편화된 것은 약70-80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더욱더 늦어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는 일찍 전기가 들어왔지만 제가 태어난 곳이 남양주시인데 서울 바로 외곽에 있었지만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그러니까 1973년-1974년쯤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40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유전자는 아침부터 낮에 일하고 저녁에 일찍 잠자는 것이 인간의 패턴이었습니다. 동물들 중에는 야행성으로 창조된 것이 있고 주행성으로 창조된 것이 있습니다.
본 론
Ⅰ. 인간은 아침형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음...........
야행성 동물들은 박쥐, 부엉이, 소쩍새, 호랑이, 살쾡이, 오소리 등이 있습니다.
야행성동물은 귀가 발달되었습니다. 박쥐의 경우 초음파를 보네 물체에 반사되어 나온 초음파를 분석하여 먹잇감이나 장애물의 위치와 거리가 얼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부엉이나 호랑이등의 경우, 부엉이는 날개털이 부드러워서 비행할 때 소리가 나지 않아서 먹잇감이 들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강아지발바닥 보셨나요?? 막 검은색의 푹신푹신한 것처럼 호랑이도 되어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아, 또 눈이 매우 좋은 종류가 있습니다. 부엉이종류입니다. 부엉이가 왜 야행성이냐면 시력이 매우 좋아서 적은 빛도 잘 모을 수 있어서 밤에 활동하기가 좋은데 낯에 활동하면 너무 빛이 밝아 눈이 부신다고 합니다.
이런 야행성 동물들은 밤에 활동하는 것이 낮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낮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주행성으로 창조하셨을까요? 아니면 야행성으로 창조하셨을까요? 인간은 전형적으로 낮에 활동하는 동물입니다.
일단 먼저 야행성과 주행성의 정의를 알아본다면
주 활동 시간대가 저녁이후인 동물을 야행성이라 하고 주행성은 주 활동 시간대가 낮인 동물들을 이릅니다.
쉽게 구분을 지으라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식동물은 야행성이고, 초식동물은 주행성입니다. 새들은 올빼미나 부엉이 등을 빼고는 거의 다 주행성 동물입니다. 참새들은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다 가버려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되면 짹짹거리고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닭은 새벽이 되면 얼마나 시끄럽게 주변 주행성 동물들을 다 깨웁니다. 박쥐같은 동물들은 새벽에 너무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 때문에 얼마나 신경질을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보통의 육식동물이 야행성이고, 새는 고기를 먹는 것들도 대개 보면 주행성 동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들의 경우 높은데서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기 때문에 시력에 많은 의존을 해야 하거든요.
황조롱을 예로 들어보죠. 높이 1500미터에서 아래 지나가는 쥐를 식별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여타의 새들의 경우, 주 먹이가 작은 곤 충 따위인데 이네들은 낮에 활동하거든요. 그래서 주 활동 시간대가 낮입니다.
야행성 동물들이 귀가 발달된 것에 비하여 주행성 동물들은 시력이 훨씬 발달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박쥐는 시력이 무척 안 좋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올빼미인데 올빼미는 야행성이지만 시력이 무지하게 좋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야행성 동물의 경우 더위와 천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맹수들 사자 표범 등등해서 고양잇과 동물은 거의 다 야행성이고, 얼룩말을 비롯해서 영양류와 초식동물들은 주행성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야행성으로 태어났습니까? 아니면 주행성으로 태어났습니까? 인간은 전형적으로 주행성 동물입니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자도록 되어있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식동물이 아닙니다. 밤에 활동하는 동물들은 대개 눈에서 불이 납니다. 그래서 고양이 눈이나 살쾡이 눈에서 이상한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이 대게 주행성이기 때문에 인간도 역시 초식동물이다. 그런데 야행성으로 바꾸고 식성도 초식에서 육식으로 바꾸니까 질병에 많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Ⅱ. 무병장수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침형 인간들이다
요즈음에 아침형 인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장수한다고 말은 하지만 인생은 질기게 오래 사는 것이 진정한 장수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파서 20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입에 호수를 꽂고 89세까지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이 장수한 것입니까? 현대인들 중에 건강한 가운데 장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 중에 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이쇼 히로시’가 말하기를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2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들 병원에서 혹은 요양원에서 혹은 약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원주 기독병원에 가면 환자들로 바글바글합니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밝힌 것 중에 하나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 중에 야행성 인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 중에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은 야행성 인간이 몇 배나 높다는 사실입니다.
무병장수하는 노인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심리적으로 다툼이 거의 없고, 낙천적이며 희노애락의 감정의 기복이 적습니다. 그리고 늘 평상심을 유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 울그락 불그락 하는 사람들치고 오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쟁이 나도 태연한 사람들이 조바심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욕심이 적은 사람들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 배려심이 적은 사람들이 너무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없는 사람들이 대개 화를 잘 못 참아서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사려 깊게 잘 들어주는 것도 건강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식생활과 생활환경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육류 소비량이 극히 적고, 대신 잡곡, 야채, 해조류를 즐겨 먹습니다. 식사량도 약간 적은 듯 한 정도의 소식이 대부분이고, 언제나 서두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급적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 온난한 기후, 깨끗한 공기 등에 둘러싸여 있고 예외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만 보아도 100세 이상 노인 중 90%가 밤 8-9시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4-5시에 눈을 뜨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야행성을 찾아볼 수가 없고, 야식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야식을 파는 식당이 불야성을 이루면 예외 없이 그 도시에서는 병원이 대 호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 밤참을 먹고 야식을 하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야식으로 라면을 삶아서 먹는 사람들은 어떻게 빨리 병원에 가서 누워 있을까를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참고로 저녁만 대충 먹어도 건강은 훨씬 보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한동안, 특히 고도 성장기에는 밤을 지새가며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움’, ‘정열’의 이미지로 비쳐졌습니다. 치열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자녀의 모습은, 비록 건강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기특하고 뿌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입사해서는 밤을 새워가며 일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안착할 만한 40대-50대의 나이가 되어서 이들은 갑자기 돌연사 하기도 하고, 중년이나 노년에 심각한 질병을 얻어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기도 합니다. 행복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 해온 사람들이 결국 행복과는 거리가 먼 병원에서 몇 개의 주사 바늘에 의지해서 목숨을 연명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 야행성 생활에서 벗어나기
1급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스다 다츠오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당당하게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는 입사 직후부터 심심찮게 지각을 하는 바람에 상사에게 꾸중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각을 하지 않은 날이라 할지라도 점심 후 졸거나 멍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금방 문제 사원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시골에서 올라와 대도시에서 대학에 다니면서부터다.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비디오 영화를 보다 잠드는 등 전천후 생활이 계속되었다. 밤새 즐긴 탓에 아침 강의는 빼먹기 일쑤였고 완전히 야행성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습관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는 골칫덩이로 전락하였다.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으니 회사에서 머리가 멍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 선배를 만나 충고를 듣게 된 것이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선배가 충고하기를 “일이 끝나면 저녁 식사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하고, 집까지 걸어서 가봐” 처음 그 말을 들은 ‘스다’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집까지는 얼추 계산해 보아도 걸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2시간은커녕 최근 30분도 지속적으로 걸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나 더도 말고 사흘만 해보라는 선배의 말에 ‘스다’도 마음을 바꾸었다. 선배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집에 가서는 잠들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욕조의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좀 보다가 10시가 되면 정확히 잠자리에 드는 거야.”
다음날 선배의 말대로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집을 향해 출발한 ‘스다’는 후회가 막심했다. 20분도 채 못 걸었는데 벌써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온 것이다. 하지만 하루만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땀에 젖고 다리는 풀려 있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10시에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거짓말처럼 스르르 잠이 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스다’는 참으로 오랜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조금 뻐근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선배의 말마따나 일찍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속도 한결 편했다. 그리고 매일 걷고 깊은 잠을 푹 자는 생활 덕에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몸에 점점 힘이 생겼다. 스다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지만 몇 달 만에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고 나서는 회사 내에서 ‘영 파워’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스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는 일의 대략을 다 말해버렸다. 즉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낮에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고 생활한 사람들만이 아침형 인간이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절대로 늦게 먹거나 야식을 먹는 행위는 자기 몸에 대하여 범죄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저녁에 밤10시 이전까지 위장을 깨끗이 비워나야 새벽 일찍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만으로 새벽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 포식하고 나서 잠을 일찍 잤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비몽사몽 정신이 없다. 그리고 하루 중에 적어도 1시간 정도는 땀이 쏟아질 정도의 운동을 해주면 굉장히 좋다. 스다처럼 직장에서 집까지 걸어 다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원주시에서는 어디든지 차타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Ⅱ. 야행성 인간들 중에 하늘에 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아침형 인간으로 개혁됨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욕도 생활 습관도 애굽의 이교 문화에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애굽의 우상숭배를 위한 여러 행사들이 밤에 진행되어서 밤에 여러 행사가 많았고 밤에 만찬을 즐기는 습관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아주 가난한 집이라도 그 조상님들의 제사 때가 되면 아끼지 않고 정성껏 제사상을 마련한다. 그런데 꽤 잘사는 사람들은 제사를 크게 지내는데 죽은 조상들의 제삿날은 먹을 것이 변변했던 그 당시에는 포식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제사가 끝나면 떡이고 부침개고 과일이고 여러 맛난 음식들을 얻어먹으려고 밤새도록 놀고 시간을 보낸다. 왜냐하면 꼭 제사는 밤 12시에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옛날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12시 30분쯤입니다. 우리는 그 음식 얻어먹으려고 밤새도록 술래잡기를 하던가 담방구를 하던가 아니면 기를 쓰고 밤12시까지 버티려고 아이들과 12시 10분까지 놉니다. 그 당시에 밤 8시만 되면 잠자던 우리들에게 12시까지 버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그 음식을 먹으려고 작정한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졸림을 참지 못하고 미리 잠들면 그 아름다운 음식은 못 얻어먹습니다. 이방의 문화는 예로부터 이렇게 밤에 제사를 지내고 우상에게 절하고 밤에 주연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 불신앙의 애굽에서 불러내어 전혀 새로운 훈련을 시켜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서 사막 한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하여 내셔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들을 일찍 재우고 일찍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야행성 인간입네 하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전혀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리셨는데 아침 해가 떠서 나가면 지면에 있던 만나는 다 스러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만나를 언제 거두러 나갔습니까? 반드시 새벽 일찍이 나가야만 그들이 그것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새벽이 지나면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을 때에는 단 한사라마도 아침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아침형 인간이었고, 올빼미 형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침 일찍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음식물에 관한 권면, 173【많은 사람들이 취침 시간 바로 직전에 먹는 해로운 버릇에 빠진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세 끼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배고픈 것처럼 허기진 감이 들기 때문에 밤참 혹은 네 번째 식사를 하고자 한다. 이 그릇된 행습에 빠지므로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식사를 하지 않고는 잘 수 없을 것같이 느낀다. 많은 경우에 허기가 지는 원인은 온 종일 너무 자주, 너무 많은 분량의 음식을 위장에 밀어 넣은 불건전한 음식을 처리하느라고 소화 기관이 너무 심한 부담을 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짐을 진 소화 기관들은 피곤해진다. 그래서 고갈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수고로부터 완전히 쉴 시간을 요한다. 두 번째 식사는 위장이 먼저 한 식사를 소화시키는 수고로부터 쉴 시간을 갖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한다. 만일 세 번째 식사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가볍게 할 것이요 잠자리에 들기 몇 시간 전에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연약하고 피곤한 위장은 피곤하다고 불평할지 모르나 쓸데없는 일이다. 더욱 많은 음식을 위장에다 억지로 떠맡긴다. 그러므로 그것이 소화 기관들로 하여금 운동을 개시하게 하며 또 다시 잠자는 시간 동안 내내 꼭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한다. 그러한 사람의 잠은 대개 불쾌한 꿈으로 침해를 받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노곤한 느낌이 들며 입맛을 잃는다. 위장이 쉴 시간이 없었으므로 소화 기관들은 오래 가지 않아서 낡아 못쓰게 된다.】
2)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사에 잠을 자야 하는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충분한 운동과 간단한 저녁 식사가 아침형 인간이 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 것이 좋은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대체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지, 또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올바른지…….
이에 대한 답을 얻자면 먼저 밤부터 아침까지의 시간들이 우리 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먼저 새벽 다섯 시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의 맥박은 오전 5시에 가장 빨라진다고 한다. 이는 외부의 기온, 습도, 기압의 상태가 가장 불안정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자고 있는 동안에도 몸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맥박이 빨라지는 것은 다름 아닌 불안정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오전 5시부터 아침 시간까지 잠들어 있기 보다는 깨어있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기상시간은 5시로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다면 몇 시에 잠드는 것이 가장 좋은가? 수면 시간은 보통 8시간 자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저녁 9시에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리듬으로 볼 때 오후9시에 잠드는 것은 다소 무리이다. 지켜지지 않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결국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오전 5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여섯 시간만 자도 늦게 자는 사람의 8시간 수면효과와 똑같아서 밤11시 정도에만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10-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사람의 체온이 낮을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름에 열대야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잠을 설치는 경우가 그래서 그렇고 겨울에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이유가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체온은 오후2시경에 최고점에 달하고, 반대로 한밤중인 새벽2시-4시 사이가 최저가 된다. 그리고 4시경부터는 다시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오전2-4시는 가장 숙면하기가 좋은 시간대이다. 결국 새벽 2시에서 4시까지는 인간은 잠을 자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같은 체온이라 해도 체온이 내려가는 국면(밤11시-새벽1시)은 잠이 깊이 들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체온이 올라가는 국면(오전 5시-6시)은 잠이 얕아지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체온이 최저점을 향하는 오후 11시 전후에 잠들어서, 체온이 상승곡선에 접어든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것이 24시간 중 가장 효율적인 수면시간인 셈이 된다.
잠을 깬 5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난 오전6시부터 8시까지는 두뇌가 가장 명석해지는 시간이다. 이때의 집중력이나 판단력은 낮 시간의 3배에 달한다. 이 시간 중에서 1시간만 공부나 업무를 해도 낮의 3시간과 맞먹는다.
새벽이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5km, 10km씩 달리면 땀을 흘린다. 물론 아침에 달리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격한 운동일수록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는 주로 가벼운 체조와 산책, 가볍게 뛰기 등으로 몸을 워밍업 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상식적으로 아침5-8시까지 하루 중 뇌 활동이 가장 원활하고 머리가 맑은 시간인데 저녁이나 밤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시간이다. 이런 지성적으로 뛰어난 시간에 육체적인 운동으로 소비하기는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명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다. 이 시간대에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서 기도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조깅을 하거나 마라톤을 하게 되면 하루를 균형 있게 활용하기가 어려워진다.
아침형 인간의 비밀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도 말하기를 아침 식사는 가장 풍성하게 먹으라고 권유하여 우리 재림교회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 아침 식사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세끼 식사 중 가장 중요하다. 아침에 섭취한 음식은 그 날 하루의 에너지, 특히 뇌의 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침을 먹지 않는 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충실히 아침밥을 먹는 학생들에 비해서 두뇌 회전 속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침밥을 거르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조만간 뒤쳐질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을 강조한 속담을 보면, 먼저 일본에서 유명해진 말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을 모른다.”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밥을 얻어먹는다.”
“아침 시간은 입에 금을 떠 넣는 것.”(이탈리아)
“일찍 얼어나는 새가 좋은 먹이를 얻는다.”(영어권)
“아침의 새는 멀리 날아간다.” “아침은 밤보다 현명하다.”(이상 동유럽)
“신은 일찍 일어나는 자를 돕는다.”(포르투갈)
“아침 일찍 일어나는 자에게는 신의 은총이 내린다.”(폴란드)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계절을 골라 시작해도 좋다. 예를 들면 겨울은 아침형 인간으로 출발하기가 여러모로 악조건이다. 우선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고 또 추운 겨울에 따듯한 이불의 유혹은 더없이 강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미련 없이 일어나기에는 아무래도 포근한 날씨가 유리하다. 눈을 떴을 때 바깥 공기와 체온의 차이가 적을수록 일어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래서 정 자신이 없다면 아침형으로의 변화는 봄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결심이든 초반 페이스가 중요하다. 초반에 습관이 되기 시작하면 이후 과정이 쉬워지는 반면, 초반에 한두 번 거르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사람들이 야행성인간들이다. 이들은 야행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나태해지고, 얼마나 도덕적으로 유혹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밤에 늦게 자는 사람들이 한 밤중에 선행을 하는 것 보다는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밤에 거리를 돌아다녀보라, 우리의 마음은 퇴폐적인 것을 많이 보게 될 것이고 우리의 생각들도 퇴폐적인 생각들로 가득찰 것이다. 그런데 새벽에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그 자체가 은혜스럽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아도 은혜가 넘치고, 새벽에 우유를 돌리는 아주머니를 보아도 신선하다. 새벽에 기도하러 교회로 총총걸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 마음이 은혜가 넘친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밤중에 나쁜 일들이 저질러진다. 밤 문화를 극복하고 승리하려면 아침을 깨우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야만 우리의 죄의 여리고성이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여호수아6장에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경절을 유심히 보면 새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수6: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 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수6:15] “제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에 자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은 성인 ‘아이성’을 우습게 여기었다. 그리고 그 성을 정복하는데 실패하고 나서 여호수아는 다시 한 번 회개하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반성하였다. 그리고 결국 아이성을 정복하는데 다음 성경 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찾게 된다.
[수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무덤 앞으로 여인들이 달려간 시간대도 새벽미명이었습니다. 새벽에는 우리의 영적인 영성이 부활하는 시간이고, 새벽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발견하는 시간이고, 새벽에는 우리의 망가진 영성이 회복되고 부활하는 시간대입니다.
위기의식은 변화의 계기가 된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 기회이다. 야행성 생활의 폐해를 깊이 절감한 사람일수록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의 다짐은 변화의 시작이다. 100일 정도를 참고 적응하면 새로운 생활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는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에 시작하라.
결 론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2-23).
하나님은 모세가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먼저 머리의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일꾼 역할을 잘하도록 훈련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22절에“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는 것은 지금 식으로 말해서 고시는 적어도 3개 이상 패스했고 박사학위도 몇 개는 된다는 말이지요.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극기가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면서 공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7:30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하나님은 그에게 머리로 하는 공부를 가지고 그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를 집어먹는 사람들은 대개 똑 소리 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미디안 광야로 내 쫓았습니다. 애굽궁정에서 호의호식하던 그가 거친 음식과 거친 잠자리, 그리고 혹독한 추위와 싸워가면서 모래바람을 이기어 가면서 물도 없고 나무도 없는 곳, 한 낮의 땡볕과 밤의 냉기로 일교차가 극심한 곳에서 제멋대로인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통하여 모세를 훈련시켰습니다. 저는 우리 자신들을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들이나 학생들의 비유나 맞추어주고 그들의 입맛만 만족시켜주는 그러한 청년회는 그들을 믿음의 투사로 키우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더욱더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분주한 마음이다. 기도하려고 하면 마음이 분주하게 사단은 우리를 조종한다.
‘드 살레’는 말하기를 “기도 후에 마음이 분주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받은 귀한 향유를 모두 쏟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후에 가능하다면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다음 천천히 마음을 다른 일들로 옮기라. 그리고 당신이 받은 사랑의 느낌을 오랫 동안 간직하라.”
정신 분석학자인 칼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이다.” 라고 하였다.
현대의 소란함과 조급함으로 부터의 탈출 훈련이 바로 침묵이다. 조용한 가운데 명상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게 되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제어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소리와 생각이 더 많이 생긴다. 이것은 매우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도에는 그것을 참고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서서히 기도의 시간은 우리를 고요하게 만들어 주고 하나님과 자신을 깊이 의식하게 해 준다. 침묵을 통해서 영혼은 성장하고 영성은 깊어진다.
만물이 언제 자라는가? 침묵 가운데 성장한다. 깊이 뿌리 내리는 나무는 소리가 없다. 열매 맺는 나무도 소리가 없다. 소음은 영적 성장의 장애물이다. 외적 소음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내적 소음이다. 육의 생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내적 소음, 육의 소리를 잠잠케 하는 것이 침묵이다. “성도들은 고요함에 의해 성장한다.”
기도도 침묵이 수반되지 않는 기도는 깊은 기도가 아니다.
키에르 케골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조용하게 되엇 결국 기도는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종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도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킨다.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 있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본다.
모세, 침례 요한, 바울 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홀로 외로운 광야의 경험을 가졌다.
토저(A. W. Tozer)는 “큰 독수리는 홀로 날아간다. 큰 사자는 홀로 사냥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홀로 간다.”고 했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은 기도의 자리에서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작은 문제들은 친구에게 말하지만 나에게 닥친 큰 문제는 사람들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이다.
교회 7권, 243 [ 기도가 그대들의 힘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급하게 기도를 드리고 등한히 여겨지거나 잊혀질까 봐 염려하는 어떤 일을 돌보기 위하여 급하게 달려 나가는 일꾼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는 ‘광야’이다. 그리고 영적인 광야의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에너지를 충전한 사람들은 영적 면역력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본 훼퍼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려 하지 않고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서 마리아처럼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서두르지 말고 그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라.
새벽에 말씀을 연구하라. 성경은 학문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하는 대신 생명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구해야 한다.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본 훼퍼’는 한 본문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묵상할 것을 권고했다. 오관을 통해서 묵상하라. 파도 소리를 들으라. 모임 무리를 보라. 바다 냄새를 맡으라. 해변의 공기 속의 소금기를 맛보라.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보라.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보라. 그리고 그렇게 받은 말씀을 삶속에서 온전히 실천해 보라.
모든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켜서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라.“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서 그는 결코 형들보다 더 안락한 대우나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형들의 질투나 질시의 날카로운 눈짓을 견뎌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더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고서 가장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였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우고 이스라엘의 인기를 독차지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안락한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그의 가족이 아닌 사울 왕의 질투와 질시를 견뎌야 했던 것입니다. 어떤 적에는 그가 왕을 위하여 하프를 연주하고 있을 때 사울 왕은 창을 던져 다윗을 벽에 꽂으려고 죽이려고 하였고, 다윗은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고 넘겨야 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본격적인 미움이 시작되어 토굴로 들판으로 거친 광야로 사울 왕을 피하여 죽을 고생을 다하며 그를 훈련시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혁명을 위하여 하루에 팔굽혀펴기 800개를 했다.”공산주의 혁명을 하기 위해서도 팔굽혀펴기를 800개나 하며 엄정하게 그들 자신을 추슬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사무엘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를 성전으로 데려와 그 나이면 엄마 앞에서 재롱이나 부릴 나이지만 그는 엘리제사장 밑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서 깊은 회심의 경험을 합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유다의 빈자리를 제비뽑아 맛디아로 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도바울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사도로 임명이 되자마자 승승장구한 말씀사역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요단강 동편에 있는 혹독한 사막으로 가서 물도 없고 나무만 있는 곳에서 무려 3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향 다소에 가서 6년간이나 하나님에게 훈련을 받은 다음 무려 9년이라는 세월동안을 준비한 다음에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 먼저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 문제인 하나님의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롬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시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연주되는 사랑의 음성들이 깨어납니다. 암흑의 소리들이 사라지고 희망의 밝은 소리들이 우리 속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은 반드시 새벽이어야 합니다. 새벽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인 것을 사단이 알고 있기에 그는 새벽을 말살하려 합니다. PC방에서 밤새도록 아이들을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도, 노래방에서 밤새도록 우리의 아빠 엄마들을 붙들어 두려는 것도, 소주방에서 밤새도록 우리의 아빠들을 붙들어 두려는 것도 사단의 음모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김 일환 목사(마석)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2)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편 6∼11절)
고난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다윗은 일생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고난 가운데 지은 시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대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시편 57편 6절은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자기를 힘들게 하는 악한 대적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원수가 찾아와 더 큰 문제와 시험을 가져다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도 장인이었던 사울 왕과 아들에 의해서 고난을 당했으며,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합니다. 악한 대적이 우리를 환난 가운데 빠뜨리려하나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심판하십니다. 시편 1편 6절은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삶을 인정하시고 복 주시며, 악인은 심판하심으로 그들을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악한 대적들로 인하여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 37편 1절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들을 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악인 씨의 삶과 죽음』(The Life and Death of Mr. Badman, 1680)이란 책이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영국의 작가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이 『천로역정』과 반대로, 악인이 이 세상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인 씨(Mr. Badman)는 유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다가 무덤으로 들어가서는 소리 소문도 없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들은 아무런 자각도 없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옥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람이 건널 수 없는 지옥의 큰 구렁텅이가 자기 앞에 입 벌리고 있으며, 자기가 거기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그들은 슬피 울고 자책하면서 극심한 고통으로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은 결국 망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서도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그를 바벨론 왕국의 총리로 높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 메데 왕국에 멸망을 당한 뒤에도 세 명의 재상 중 한 명이 되어 메데 왕국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점령한 나라의 총리를 다시 재상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은 다니엘이 얼마나 실력이 있고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를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다니엘의 형통한 삶을 보고 시기한 다른 관리들이 모략을 꾸몄습니다. 왕 외에 다른 사람이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는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 6장 7절부터 8절은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했고 이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은 오히려 사자 굴에 던져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니엘 6장 24절은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을 죽이려고 판 함정에 그들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대적에게서 구원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부터 9절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악한 대적들로 인하여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의 삶을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2.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
시편 57편 7절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굴속에 숨어있을 때의 고백입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으나 사울의 시기를 받아 한순간에 민족의 영웅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마음을 굳게 작정했습니다. 다윗이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좋은 길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 질 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것을 의지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시 62:5). 우리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에게만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대적과 싸워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로마서 8장 31절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또 로마서 8장 35절부터 37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잠시 실패하고 가진 것이 사라지면 모두들 떠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휠체어를 탄 기적의 지휘자로 불리는 정상일 교수(61세, 세한대학교 교수, 로고스교회 집사, 휠체어합창단 상임 지휘자)가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 국립 그네신음악원에서 지휘 연주학과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 20여 개 나라(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베트남, 몰디브 등)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세한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로 많은 후학을 양성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5월 새벽에 불면증과 전해질 수치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갑갑해서 베란다로 나가 몽롱한 상태에서 걷다가 그만 11층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급히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이내 심장이 멈췄고 의사는 포기하라고 가족들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내가 통사정해 겨우 수술대에 올랐고 기적적으로 다시 숨을 쉬었지만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습니다. 더 이상 무대에서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아예 포기할까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작은 믿음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교회에 가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완전 절망하여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매일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기도하면서 주님의 위로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다시 지휘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때 ‘두려울 것이 뭐가 있냐!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기도 가운데 힘을 얻고 재활훈련에 매진한 결과 1년 후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그는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CSI 퓨전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올해는 휠체어합창단을 창단하여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 휠체어합창단 공연을 했습니다. 그가 만든 휠체어합창단은 단원과 지휘자, 부지휘자 모두 휠체어 장애인이며 공연비 및 합창단 운영비는 모두 그가 사재를 털어 충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2018년 평창 장애인 올림픽 때 100명의 장애인 합창단이 오프닝 노래를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전에는 선데이(주일) 크리스천이었는데, 사고 이후 에브리데이(매일)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제2의 삶을 주셨으니 음악을 통해 장애인들에 꿈과 희망을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사고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엔 섬김을 받고 군림했다면, 이젠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예전엔 보수를 받고 공연을 하고 단원과 학생에게 지시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공연비를 지원하고 단원과 학생을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요. 재기에 성공한 이후 지금은 앉아만 있어도 축복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셔들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새벽을 깨우는 신앙
시편 57편 8절은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인생의 고난의 자리에서 자신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희망의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그는 새벽을 깨우는 신앙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새벽을 깨우는 신앙을 가지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시편 30편 4절부터 5절은 “주의 성도들아 야훼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시편 91편 15절은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절망의 때, 슬픔의 때, 고난의 때에 주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시 50:23).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쉽게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건해지면 예수님께서 마음 가운데 거하시는 것 하나만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깊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시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골 2:6∼7). 우리는 모두 예수님 안에서 은혜를 입은 자들이 되었으니 언제나 감사하고 찬양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 57편 9절은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굴속에 숨어있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러한 기도를 기뻐하시고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광야의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주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57편 10절부터 11절은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광주시 부시장, 구례군 군수, 전남 부지사 등을 역임하며 38년간 모범공무원으로 섬기신 이복량 장로님(1914∼2007, 향년 94세, 일산 화정충현교회)이 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청렴한 공직 생활을 하셔서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표창도 여러 번 수상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신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전남 여천군수, 전남 보사국장 재직 시절에 매우 엄격한 공무원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신앙 때문에 술자리에서 술을 거절하고 사이다만 마셔 사이다 군수로 불렸습니다.
또 구례 군수 재직 시절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자 군수로서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을 때 기우제 대신 지리산 기슭에 올라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지리산 자락은 빨치산의 출몰, 맹수의 습격 등으로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기슭에 올라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혀서야 되겠습니까? 비 아니면 이제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 하나님!”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연일 300㎜ 가량의 비가 내려 그해 농사가 풍년이 된 것입니다.
특히 주일성수 문제는 공직생활 중 큰 시험거리였습니다. 전라남도 내무국장 시절에 도지사가 매 주일마다 도 간부들을 소집하여 업무보고를 하게 했습니다. 당시 상하관계가 엄격한 군인이 도지사를 맡고 있었는데, 장로로서 주일을 범할 수도 없고, 공직자로서 중요한 업무보고 자리를 빠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력을 다해 기도하는 중 주님이 두 가지 계시를 보여주셨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에스더와 사자 굴에 던져지더라도 하루 세 번 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은 다니엘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에 그는 불이익을 각오하고 서무과장을 대신 참석하게 했습니다. 화가 난 도지사는 책잡을 거리를 찾아보았지만 업무상 책잡힐 일이 전혀 없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 신앙에는 내가 손을 들었어. 믿으려면 이 정도로 믿어야지. 이 사람 진짜배기네!” 이후로 그는 주일에는 교회 가는 장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새벽기도였습니다. 그는 늘 “기도는 공짜가 없다”, “기도는 외상이 없다”라고 말하며 바쁜 공직 생활 가운데 새벽 3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94년 일생 중 70년 가까이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새벽기도로 삶 가운데 승리한 그는 또 자녀의 복을 받아 2남3녀의 자녀를 통해 직계 자손 56명을 얻었습니다. 직계 56명 중 목사 2명, 전도사 2명, 장로 5명, 권사 5명, 집사 12명, 성가대원 25명을 배출했습니다. 그는 94세에 마지막 호흡을 다할 때까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눈을 뜨면 마음이 설렙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기쁨 때문입니다. 저의 나이만큼이나 질곡의 세월도 많았지만, 새벽기도에서 받은 은혜와 지혜로 순조롭게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가 건강의 비결이요, 믿음의 열정이 나를 청춘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도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새벽을 깨우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말씀과 기도, 성령충만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새벽을 깨우는 신앙인이 되어서 절대로 고난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