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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
(신8 ; 2)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려고 하는 계획들은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의 말씀처럼 우리들을 부요하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로마서 8장 32절에 의하면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선물하셨다.이렇게 사랑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에게 인간들은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그 모든 것들을 빼앗겼다. 아니 빼앗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매일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이에서 떨어졌을 뿐 아니라.사탄의 종이 되어 일평생동안 사탄이 하라는 것만 하다가 결국에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창세기 1장 26절대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은 인간이 이렇게 영원한 멸망으로 다다르자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세우시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한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들을 택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탄의 종노릇이나 하는 인간들을 그냥 구원할 수가 없어 한 민족을 택하시는데, 그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갖은 역경과 환난이 있었는데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의 종살이로 무려 430년을 보내게 하였다. 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고 하나님의 계명들과 언약들을 주는 것이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내용입니다.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하였던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일주일, 많이 걸린다고 해도 한 달이면 충분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었던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년이 걸려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나 보면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그것도 여정이 너무 멀다고, 먹은 것이 부족하다고, 우리들은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한다고 원망한 1세대인 애굽을 탈출한 이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고 모든 죽은 뒤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곳을 정복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광야 여정을 진두지휘한 모세와 아론마저도 죽은 뒤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인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기 위해서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려는지 안지키려는지 보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르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가나안을 영적으로 보면 우리들이 이다음에 가야 할 천국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때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방식과 습관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하나님은 40년이라는 긴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산 자들만 그 땅에 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민수기 13-14장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 애굽에서 탈출시키는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이 우리들은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땅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들이 메뚜기 같다고 한탄을 하자 그 말을 들은 하나님은 그 말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해 40년이라는 세월동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광야에서 죽게 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능히 들어갈 수 있다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후대 사람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게 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바란 광야까지 약 2년여동안 자기들은 인도하시고 먹이신 하나님을 보면 그것을 믿고 그대로 나아갔다면 그들도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바란 광야까지 인도하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때가지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와주심을 잊은 버린채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 밖에 없었습니다.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역시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내가 살았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역시 내 생각, 방식을 다 빼고 없습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았지만, 내 생각과 방식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 개인에게 주시려고 한 것들을 다 받지 못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조리 죽은 이유도, 우리들이 복을 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고집과 방식, 생각들을 버리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들 각자에게 예비해 놓으신 것을 누리지 못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주려고 하는 것들은 얼마나 어마아마 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예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닐 줄을 알았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계획들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것을 빼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지만 나를 죽일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들은 우리들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공동체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우리들의 것을 빼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들이 우리들을 통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출처: 야곱의 우물가 글쓴이: ♡겨자씨♡
기억하고 감사하라
(신 8:2-10)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올
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
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
고”(신 16:16).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절기가 바로 무교
절, 칠칠절, 초막절이며, 이것을 유대인들의 삼대절기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칠칠절
이 바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 맥추감사주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은 다 같은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세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교회도 일 년에 두 번은 감사의 절기를 지킵니다. 한 번은 보리추수가 완성되
는 7월에 맥추감사주일로, 또 다른 한 번은 쌀 추수가 완성되는 11월에 추수감사주일
로 지킵니다. 전반부를 보낸 후에는 맥추감사주일을 통해, 후반기에 추수를 마치고
난 후에는 추수감사주일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도시
에 사는 우리에게 보리추수가 무슨 관계가 있어서 감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반문할 지
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의 교회에도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맥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 이후, 50
일 되던 날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으로부
터 법규와 규례를 받아서 거대한 노예집단이 국가로 탄생한 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로
서는 국가 건국 기념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오순절은 우리가 흔히 성령강림일로 기억하고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
령께서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속에 성령이 거하시게 되었고,
교회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갖추
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셋째는 성령입니
다. 이것이 교회의 3대 요소인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맥추절은 곧 교회의 생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
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도 맥추절을 감사하며 지켜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진 것입니다.
신명기 16장에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에 네 가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로 맥추절을 지키라(celebrate)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공수로 하나님께 나아오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주신대로 헌물을 드리라(give)고 명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rejoice)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remember, think)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가 맥추절에 행
할 일입니다.
감사를 할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서 감사할 제목
을 발견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thank’의 기원이 동사 ‘think’입니
다.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기억하라’는 동사는 신명기의 주제 동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기억하라’
는 동사가 신명기에서만 무려 17구절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도하셨는지, 또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기억하라
는 명령입니다.
1. 광야 40년의 다섯 가지 은혜
모세가 설교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섯
가지 은혜를 주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낮추심의 은혜입니다. 사람을 낮추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무슨 은혜냐고 반
문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조금 낮아지고 비참해져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
것이 겸손케 하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교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
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오늘은 저 목사가
뭐라고 얘기하는지 보자’ 하는 태도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
봉이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한 상태에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
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테니스나
탁구경기를 할 때도 자세를 낮추고 있어야 공이 잘 보입니다. 꼿꼿이 서면 공이 안 보
이기 때문에, 결국 경기를 지게 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낮추시는 은혜
가 먼저 오고 나서야 존귀케 하는 은혜가 따라 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비참함을 느끼고 ‘나는 왜 이렇게 낮아졌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것이 곧 은혜이며, 낮아진 다음에 또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 쓰신 방법은 목마름과 배고픔입니다. 빵
과 물이 없는데 교만할 사람은 없습니다. 논현동에서야 빵이 없으면 제과점에서 사먹
으면 되고, 물이 없으면 편의점에 가서 생수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광야에서는 빵과 물
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빵과 물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열린 하늘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해도 빵 문제, 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
니다. 하나님께서 일 년만 가뭄을 내리시면 반드시 빵 문제, 물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풍성하게 물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한민국도 물 부족 국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년만 기근을 주시면 우리나라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아무리
최첨단 컴퓨터를 만들어내고, 위대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빵
문제, 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추심을 통해 인
간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
을 가르쳐 주십니다. ‘낮아짐’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와있다는 의미입니
다. 인간은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와 하늘 문이 열리는 역사를 체
험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파서 낮아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로 만나의 은혜를 주
셨습니다. 만나의 은혜는 먹이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밥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먹
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아졌을 때, 하나님
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려서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광야
에 강냉이가 풍성했더라면 하늘 만나를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만나를 주신 것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절)
사람은 떡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떡만 먹고 사는 동물적인 존재는 아
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서 영혼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양식이
며, 하늘의 만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으려면 먼저 낮추심의 은
혜를 받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나는 부족함이
없어. 나는 내 힘으로 인생을 살 수 있어. 나는 나를 믿어.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
가 없어도 살 수 있어. 왜 나에게 꼭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거야? 왜 나보고 꼭 말씀
을 들으라고 하는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 만나를 맛볼 수도 없고 천국을 소
유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제가 어찌 이리 낮아졌습니까? 하
나님. 제가 어찌 이리 공허합니까? 제 영혼 한 구석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
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
았던 때를 생각해보세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나갔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겸손하고 낮아졌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까?
제가 교수생활을 할 때에도 똑같이 가르쳐도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있고, 못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죽어도 못 깨닫는 사람은 보통 자기 생각을 고집
하고, 자기 판단으로 자신을 가득채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말씀을 깨닫고, 성령을 체험
하고,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약할 때 강해지며, 아무 것
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결국 패망에 이
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복이 해어지지 않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주석가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웃 나라에서 계속 새 옷을 사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혹은
이스라엘에 옷 기술자가 있어서 조금만 옷이 해어져도 수시로 수선을 해줬다고 주장하
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입은 의복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닳지 않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해
석적인 난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데, 다섯 살 때 입은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다면 나중
에 커서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될 때에도 그 옷을 계속 입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옷이 해어지지 않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몸이 커감에 따라서 옷도 같이 커지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무 비약적인 해석입니다. 본문이 거기까지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입었던 옷이 40년 동안 해
어지지 않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물질적인 의복의 은혜를 공급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옷을 입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적인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義)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조금도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한 의를 이루어서 우리에게 입혀주실 옷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
수님을 믿게 되면 첫째로 죄 용서함을 받고,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의의 옷
을 덧입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
었느니라”(갈 3:27)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옷은 의의 옷이요, 천국에 들어
갈 때 입고 들어가야 할 예복입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사람만이 들
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주장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
다. 내가 스스로 선하게 살았다고 해서 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
스도를 믿은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이 옷은 결코 중간에 벗겨지거나 닳거
나 해어지는 옷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의의 옷을 입혀주셔
서 자녀됨과 천국을 보장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잘 알아야 행동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의사
가운이나 목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행동거지를 바로
하고 발걸음을 조심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예비군복만 입으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모자도 삐딱하게 쓰고, 여자가 지나가면 휘파람을 휙 불면서 소변도 아무데나 봅니
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무슨 옷을 입었는가에 따라 행동을 다르게 합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해어지지 않고 닳지도 않는 의의 옷을 입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
다.
제가 공부했던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는 노예시장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흑인들
이 많이 살고 있어 재즈가 유명합니다.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도 루이지애나 뉴올리언
스 출신입니다. 본래 노예였던 흑인들이 링컨 대통령을 통해 해방을 받게 되었는데 해
방 이후에도 흑인들은 노예 같은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침례교 목사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자신의 유
명한 설교인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를 통해 백인과 흑인이 함께 식
사하고, 백인과 흑인이 함께 천국에 들어가며, 백인의 자녀와 흑인의 자녀들이 학교에
서 함께 공부할 날을 꿈꾼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자신의
메시지를 통해 흑인들이 더 이상 노예처럼 살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행동할 것을 역설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옷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옷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
입니다.
네 번째 은혜는 발이 부르트지 않는 은혜입니다. 장거리를 걷다 보면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겨서 낙오(落伍)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장거리 행군
할 때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발바닥에 빨래 비누를 바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
라엘 백성들의 발바닥까지 신경을 쓰신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
가 바쁜 일과 중에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주신 것은 발바닥까지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
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5절).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알았던 사실은 말썽 부리는 사병들은 모두 그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신
경을 쓰지 않았다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내놓은
자식처럼 부모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대체로 그 사람은 말썽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
러나 건실하게 자식을 징계하고 야단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잘못하다가도 결
국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징계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징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
리서 12장 8절을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
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사는데도 모든 것이 잘 되고 행복한 분
이 계시다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잘못하면 제가 야단
을 칩니다. 그러나 옆집 아이가 잘못하거나 밥을 먹지 않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쫓아가서 야단을 치지는 않습니다. 제 자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
거입니다.
둘째로 징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징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그렇다면 징계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
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 12: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서 거룩에 참여하도록 하시려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니 이 징계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
까? 혹시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징계하시는가?’라고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낮추신 것도 큰 은혜요, 징계하시는 것도 큰 은혜요, 굶기시는 것도 큰 은혜요, 먹이
시고 상주시는 것도 모두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2. 다섯 가지 은혜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섯 가지 은혜를 주신 근본목적은 첫째로 여호와의 명령이 무엇
인지 마음에 간직하여 그 도를 따라 행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
해서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6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사람이 못된 짓
을 하면 반드시 브레이크가 걸려야 합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는 멈출 수 없
습니다. 만약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로 한계령을 넘어간다면 반드시 낭떠러지에 떨
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다가도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
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은 마구잡이 인생이요, 결국 낭떠러지에 굴러 떨
어지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은혜를 주신 두 번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
어가서 그 땅에 합당한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
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
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
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7-10절). 가나안 땅은 물이 풍성하고, 일곱
가지 농산물이 풍성하며, 지하자원에 부족함이 없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합당
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도록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처
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천국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도록 훈
련하시기 위해 때로는 징계하시고, 때로는 낮추시고, 때로는 하늘만나도 주십니다.
결 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은혜이며,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때에 우리는 감사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원망과 불평과 교만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지금 얻어터져서 만신창이가 되어도, 감사할 제목이라고는 조금도 없
는 것 같아 보여도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감사
와 찬송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늘 만나도 내려주시고 힘과 능력도 주셔서 천국 백성
으로 연단된 인격을 가지고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풍성하게 드리
는 맥추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