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더 지난 저 먼 날에, 박사고을 임실 삼계 뒷고개 너머 제각집에서 살던 작은 소녀였다.
낯꽃 좋고 심성 좋았던 아이인지라 사람을 보면 활짝 웃으며 꾸벅 꾸벅 인사를 잘도 하던 아이였다.
먼 곳에서도 나를 보면 '선생님!' 소리치면서 달려와 덥석 안기던 아이였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복도 저쪽 끝에서 달려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에 인사를 공손히 했음은 물론이고 정말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그 아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40대 중반쯤 되었을 그 아이는 지금도 고운 얼굴에 웃음꽃 가득하게 사람들을 반기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려서부터 그토록 웃기를 잘 하고 사람을 반겼으니 그 심성, 그 버릇 어디로 갈까?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설령 어떤 일로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그 고운 웃음은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늘 웃음을 띠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 순간 띠워주는 웃음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녀에게 그 웃음을 물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아이도 그렇게 고운 웃음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그처럼 웃음을 간직하지 못하는가? 그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어주지 못하는가?
그처럼 웃어 줄 수만 있다면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울 텐데…….
부끄럽다. 그 아이처럼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그동안 미옥이의 웃음을 까마득 잊고 살았다. 그의 웃음을 진즉 생각해 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난 휴일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박사고을 삼계 소재지의 탑정이 고개를 넘어오면서 그 제각집이 눈에 들어왔고 그 때에 문득 그 아이 생각이 난 것이다.
제각집에 살았으니 그리 넉넉하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웃음을 띠고 살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반가워하였다.
지금이야 제자들 머리만 쓰다듬어도 성추행으로 몰려 수난을 당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던 시대였다.
그는 내가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 복도 끝에서 걸어오다가 '선생님!' 소리치며 달려와 덥석 내 품에 안기곤 하였다. 그 때에 그가 짓는 미소가 한없이 순진하고 예뻤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가 유독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누구를 대하든 그런 웃음으로 맞이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도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머리에 새치도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때의 웃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웃음을 잃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모나리자의 웃음은 저리 가라 할 그의 아름답던 웃음.
그가 어떻게 변하였든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수필가 이용만씨는'수필문학'과 '아동문학'(동화)으로 등단 했다. 현재 전주미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