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2012년 불교계는 ‘범계’로 극심한 진통을 앓았다. 혜민 스님 등 몇 몇 개인 스님들이 ‘힐링’ 서적으로 나름 ‘선방’을 했지만 가파르게 추락한 불교의 위상을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승풍 실추 도박 사건을 차치하고도 올 해 한국불교계는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일부에서 제기된 ‘진아론’ 논쟁이 그랬고, 경허 논쟁 속 <불교평론> 폐간 결정이 그러했다. 그 사이에서 재가불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세미나가 열렸지만 질적인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반면 불교계의 사회참여활동과 두드러진 보살행은 덜컥 내려앉은 불자들의 마음을 그나마 어루만진 성과였다. ‘약손’의 대표주자인 혜민·법륜·정목 스님과 시즌2를 맞은 템플스테이도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게 항해 중이다. 4부 니까야가 완역된 것을 위시로 한국불교계에서의 초기불교시대가 개막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명상’ 바람을 타고 한국에 상륙한 티베트와 서구 불교가 상처와 멍으로 얼룩진 한국불교계에서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는 지켜봐야 할 일일 것이다. 편집자
1.무아-진아 논쟁
‘참 나’, ‘진아’, ‘주인공’, ‘본래면목’ 등 방편의 언어로 설법하는 일부 스님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펜촉이 드리웠다. 2012년 미디어붓다에 게재된 적연 이제열 법사(법림법회 스승, 위 사진)의 비판적 기고에는 많은 경우 200개 이상의 찬반 댓글이 올라오는 등 뜨거운 논쟁의 장이 펼쳐졌다.
이제열 법사는 지난 4월 법림대중법회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의 ‘참 나를 찾으라’는 취임식 법문은 비불교적”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7월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제 혜민 스님에게도 “유견(有見)을 지니고 설법하는 혜민 스님은 힌두교 수행자인가? 도교의 수행자인가?”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대한불교진흥원 주최 다보법회에서 혜민 스님이 설법한 내용이 부처님의 교설에 배치된 외도 법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제열 법사의 비판에 동의하며 방편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 불자들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사로잡혀 달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불자들의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미디어붓다는 혜민 스님이 본인의 블로그 올린 답변 성격의 글 ‘텅 빈 것이 살아있다’를 게재했고, 이 글에는 209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논쟁의 특성상 승패를 가릴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수준 높은 댓글이 달려 쌍방향 미디어인 인터넷 미디어의 특성과 장점을 잘 보였으며, ‘진아론’적 언어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 승풍실추-승려 도박 파문
올해는 사부대중에게 특히나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한 해였다. 불교계를 벗어나 사회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킨 ‘승려 도박사건’ 때문이다. 지난 4월 23일 T 스님 등 7명이 전남 장성군의 한 관광호텔에서 도박판을 벌인 장면이 호텔방에 몰래 설치한 CCTV에 담겼고, 이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이 사건은 백양사 방장 스님의 ‘주지를 바꾸라’는 유시로 말미암아 기존 주지를 따르는 스님들과 방장의 유시를 따르려는 스님들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단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으며 호법부는 도박에 참여한 스님과 도박 현장을 불법 촬영한 스님에게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백양사는 승려 도박사건 이후 총무원의 특별감사를 세 번이나 거부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불교의 위상과 신뢰도를 격하시킨 도박사건에 대해 선원수좌회와 일부 재가불자단체 등의 규탄 성명이 연이었지만 뚜렷한 대응과 적극적인 대책이 실종된 가운데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올해의 승려 도박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3. 경허논쟁 - <불교평론> 폐간 소용돌이
올해는 불교잡지 <불교평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한 위기를 넘긴 해였다. <불교평론> 2012년 가을호에 실린 재야불교학자 윤창화 민족사 대표의 논문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을 기념 특별기고에서 윤창화 대표는 “경허도 자신의 주색을 후회했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고, 수덕사 문중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불교평론>은 긴급 편집위원회 회의 끝에 9월 21일 <불교평론> 폐간을 최종 결정했다.
갑작스런 <불교평론> 폐간 소식에 교계의 불교학자들과 관계자들은 “한국판 분서갱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수덕사 측의 대응에 대한 성토의 분위기와 다시 발간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3개월여 간의 조율 끝에 <불교평론> 편집위원회는 12월 11일 <불교평론>의 복간을 알렸다. <불교평론>의 실질적인 발간주체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교계 안팎의 요청에 폐간결정을 철회한 것이다.
이번 <불교평론> 사태는 한국불교학계에서 학술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특히 학술적인 문제를 학술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4. 세미나 홍수
올 한해 불교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세미나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2012년 하반기만 해도 60여 개에 가까운 학술대회가 펼쳐졌다. 성철 스님과 경허 스님, 한국불교의 미래, 한국 사회와 불교, 불교문화재, 명상 등 주제와 분야가 다양한 것도 특징이었다. 하지만 세미나 홍수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학술적인 검토라는 장점 외에도 논문의 질적 저하 등의 단점을 낳았다.
5, 60명 안팎의 제한된 교계 학자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학술대회가 열려 논문의 질적 구성이나 밀도가 떨어졌다는 비판이 교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주최 측의 주문에 의해 발표논문을 만드는 ‘주문 논문’ 형태의 논문이 늘어난 것은 학자적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조계종 교육원은 올해 다양한 학술대회를 통해 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만큼 내년부터는 세미나와 학술대회 등의 행사를 대폭 줄이고 현장과 연관성이 있는 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안으로부터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5. 보살행 확산
국제구호단체 활동과 생명나눔 서약, 조계종 노동위원회 발족 등 2012년 한 해는 불교계의 보살행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된 해이기도 했다.
불교계 대표적인 구호단체인 로터스월드와 한국JTS, 지구촌공생회, 더프라미스 등의 국제구호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원폭피해자 2,3세를 위한 합천 평화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위드아시아가 설립 10주년을 맞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 봉은사 신도회 등 새터민(탈북자)을 돕는 단체가 많아진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한 장기기증 신청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신청한 스님은 모두 67명. 지금까지 2070명의 스님이 법구 기증 의사를 밝힌 것이다. 특히 지난 12월 20일 입적한 불화의 거장 석정 스님의 법구는 스님의 유지에 따라 해부학 연구용으로 기증돼 불자들의 감동을 샀다.
‘중생이 부처다.’ 노동자의 아픔을 껴안고자 올해 9월 발족한 조계종 노동위원회(위원장 종호 스님)는 ‘쌍용차 문제 조속한 해결을 위한 십만 배 기도’를 서울 대한문 앞 천막에서 봉행하고 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역시 강정마을의 안녕을 위한 마을 용왕대재 등의 사회참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가운데서도 ‘하화중생’을 묵묵히 실천하는 불자들이야말로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 아닐까.
6. 외국불교 유입 본격화
외국 불교의 권위자와 세계적 명상의 거장들이 연이어 한국을 방문했다. 선(禪)과 명상, 심리, 뇌, 힐링 등 보다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을 찾은 이들 외국불교학자 중 일부는 명실상부하게 ‘전법 포교’를 주창하는 등 한국불자들을 정확히 겨냥한 외국불교의 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챙김 명상을 중심으로 한 통합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MBSR의 창시자인 존 카밧진 박사는 신간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을 들고 11월 방한해 한국의 불자들에게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강연하고 실습을 지도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승려와 철학자>의 저자 마티유 리카르 스님(위 사진)도 때를 같이해 방한했다. 프랑스 출신의 마티유 스님은 도반인 랍잠 린포체 스님과 함께 강연과 사진전 등을 개최하며 티베트 불교를 전파했다.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주최한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포럼에는 미국 UCLA의 로버트 버스웰 교수를 비롯한 10여 명의 외국 불교학자들이 참가해 고대 인도에서 현대 아시아에 이르는 불교 명상에 대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1월에는 명상에세이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저자로 한국불자들에게 잘 알려진 아잔 브라흐마 스님이 방한해 ‘세계명상힐링캠프’를 지도할 예정이다.
7. ‘힐링·멘토’ 열풍의 주역 - 혜민·법륜·정목 스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스님들의 설법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올해 서점가에서는 혜민·법륜·정목 스님 등 ‘스님’들의 책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7월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세 스님의 책이 모두 순위권에 올라가기도 했다. ‘힐링’이 필요한 시대, 스님이 전하는 쉽고 간결하고 따뜻한 음성이 대중의 가슴을 절절하게 적셨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출간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12월 현재까지도 교보문고,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법륜 스님의 <행복한 주례사>와 <방황해도 괜찮아> 등의 저서도 여름 시즌 선전하며 베스트셀러 목록 10위 안에 꾸준히 등재됐다. 정목 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역시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올 한해 스님들의 책이 대중의 확실한 반응을 얻은 것은 불교가 불교 본연의 이야기로 일반 대중에게 어필한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불교 포교와 대중화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8. 템플스테이 10주년…템플스테이 시즌 2 스타트
이효리, 배용준, 루시드폴, 수지… 최근 인기 연예인들의 참여로 일반대중들에게 성큼 다가가며 대내외적으로 전통문화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해온 템플스테이가 2012년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전국 33개 사찰에서 2천여 명의 참가로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매년 30%이상의 참가자 증가율을 보이며 성장해왔다. 새로운 관광관의 부상과 사찰 고유의 가치로 10년 새 이용객이 100배 증가한 수치를 나타낸 템플스테이는 향후 10년, 즉 템플스테이 시즌2의 슬로건을 ‘나를 위한 행복한 습관’으로 내걸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템플스테이를 관장하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법진 스님)은 향후 템플스테이가 휴식과 성찰 등 개인을 넘어 사회적 불안요소를 해소함과 동시에 한류관광 콘텐츠로써의 입지를 굳혀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전국 각지의 사찰들은 다가오는 계사년을 맞아 1월 1일 새해맞이 템플스테이를 준비 중이다.
9. 재가불교 급속 붕괴
승려도박사건 등의 광풍이 몰아닥친 2012년 한국불교계에서 재가불교가 그 목소리와 힘을 상실한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불교계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비구·비구니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우바새·우바이가 나서 균열이 생긴 부분을 진단하고 처방해야 마땅하지만 올해 터진 사건들에 대한 재가불교단체의 대처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정법수호의 선봉에 서서 승가의 잘못된 부분을 질타해왔던 대한불교청년회나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 젊은 불교인들의 대응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재야 재가단체인 재가연대에서 나름의 청정승가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종단 집행부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청정성 회복과 정법 구현을 위한 사부대중연대회의 행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8월 사부대중연대회의에서 준비한 ‘종단 내 지도급 스님들의 범계행위에 대한 공개질의서’는 총무원 집무실에 제출조차 하지 못한 체 제지당했다. 총무원 호법부에서도 공개질의서 접수를 거부했다.
또한 재가불교계 일각을 향해 던져진 ‘호가호위’나 ‘홍위병’ 등의 돌멩이들은 재가불교의 현주소를 대변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상징 같은 것이었다.
10. 4부 니까야 완역-초기불교 시대 본격 개막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의 한글완역 염원이 지난 11월 <맛지마 니까야> 한글본 4권의 출간되면서 마침내 성취됐다.
초기불전연구원(원장 대림 스님)은 <디가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등 4부 니까야를 완역해 한불교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초기불전연구원의 4부 니까야 완역은 한국불교계에서 초기불교 공부 및 수행의 텍스트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초기불교는 스님들 개인이 알음알음, 남방불교국가에서 체험하고 수행하는 등 다소 소극적이고 접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4부 니까야의 완역으로 한국에도 초기불교의 텍스트가 생김으로써 한국의 초기불교시대가 본격 개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부 니까야의 한글완역이라는 대불사를 이뤄낸 초기불전연구원은 향후 5년간 <율장(위나야 삐따까)>와 <논장(아비담마 삐따까)>, <빠알리-한글 술어사전>, <빠알리-한글 대사전>완역에 매진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4부 니까야 완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 스님과 지도법사 각묵 스님은 12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으로부터 총무원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