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열세 명의 쉼터 청소년의 생생한 생활 현장의 기록이다. 2011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청소년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것이다. 가정 해체, 가정 폭력, 한 부모, 조부모, 다문화, 입양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다. 갈등, 방임, 빈곤, 성폭력 등 다양한 결핍과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내려고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아이들. 그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쉼터에 오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떠나는지 그 과정을 인터뷰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들려준다.
목차
들어가는 글
사라진 아이_여정 이야기
긴급입소_시내 이야기
꿈_다래 이야기
그가 사는 방식_희진 이야기
한밤에 머리 감기기_나연 이야기
무한 도돌이표_채윤 이야기
선생님!_해인 이야기
공백기_유진 이야기
패션쇼_애란 이야기
개복치와 긍정충_남주 이야기
소라게_지원 이야기
짐승의 죽음_민서 이야기
방황_강희 이야기
에필로그_케이 이야기
책 속에 나오는 복지기관 안내
책 속으로
열여덟 살 아이가 돈 앞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케이는 다래에게 미안했다. 부모가, 어른이, 사회가 열여덟 살 아이에게 대학 등록금 앞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케이는 긴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행복한 끝맺음은 후회하는 끝맺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알지만 그냥 기운이 빠져서 저도 모르게 한 생각이에요.”
“잊지 않아야 해. 소중한 가치를 선택했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힘내자.”
케이는 힘내자는 말이 다래에게 무슨 위로가 될까? 의심했다. 다래에게 라면을 대신 끓여 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케이는 자신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졌던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죽음을 생각했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시계를 내가 선택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래가 발을 끌며 자기 방으로 갔다.
--- p.37
“어쩔 수 없잖아. 안고 가야지.”
그랬다. 유진은 알았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과거의 상처가 남긴 흉터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쉬웠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남주는 무참하게 말했다.
“우린 흉터로 얼룩진 지금의 우리밖에 가진 것이 없어.”
“??.”
“그래서 미안해.”
유진은 얼굴을 떨구고 다시 흐느꼈다. 남주는 설움으로 흔들리는 작고 힘없는 유진의 어깨를 말없이 바라봤다. 유진의 울음을 자신의 눈물처럼 고스란히 받았다. 유진의 울음은 원망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울음은 길고 질겼다.
--- pp.120~121
‘앞으로 어떻게 살지??.’
자퇴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검정고시, 수능시험, 자격증 취득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앞으로 나갈 길은 막막했다. 아이들이 던지는 성관계 표현이나 막말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깊어졌다. 되돌아간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감정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사소한 말에도 발끈했다. 신경이 곤두서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식사를 거부하며 방에 틀어박혔다. 정신은 극한에 몰려 쇠약해져 갔다.
“지금, 남주에게 우울증약 처방이 필요합니다.”
케이는 남주의 자살 시도를 걱정했다. 직원회의 결정에 따라 남주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우울증약이 처방되었다. 약을 먹자 이번에는 조증이 나타나 심리검사를 추가로 진행했다. 우울증약을 먹고 있지만 타인이 말을 걸면 불편했고, 여전히 소음에 민감했다. 약은 차츰 민감성의 강도나 빈도를 완화했다. 시간이 가면서 가족의 폭행, 친척의 냉대, 멸시, 차별, 체벌, 자퇴, 쉼터 부적응의 폭풍이 잦아들었다.
--- p.154
“우리의 기억은 왜곡되고 흐려지고 사라져 가. 어려운 시간을 넘어온 너의 기억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일단 조각들을 모으고 난 뒤, 연결해서 다듬어 보자.”
남주는 케이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케이는 남주와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서로의 씨앗이 될 거라 믿었다. 마음과 몸의 허기를 채워 주는 밥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안녕을 응원하며 또 살아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근처 공원을 걸었다. 늦겨울의 햇볕이 따뜻했다. 산책 중 남주는 케이에게 안기면서 말했다.
“엄마의 사랑으로 어른이 되었어요.”
“잘 자라 줘서 고맙다. 내 딸.”
--- p.175
출판사 리뷰
“나는 흉터로 얼룩진 지금의 나밖에 가진 것이 없어.
그렇지만 나답게 살고 싶어!”
이 책은 열세 명의 쉼터 청소년의 생생한 생활 현장의 기록이다. 2011년부터 청소년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것이다. 가정 해체, 가정 폭력, 한부모, 조부모, 다문화, 입양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준다. 갈등, 방임, 빈곤, 성폭력 등 다양한 결핍과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내려고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아이들. 그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쉼터에 오고,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떠나는지 그 과정을 인터뷰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요즘 유행하는 나레이션 논픽션쯤으로 생각해도 좋다.
열세 명의 아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집 밖을 떠돌다 쉼터에 둥지를 틀고 상처를 다독이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우리 어른들이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요즘 청소년들의 현실과 문제를 새로이 인식하게 해준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이 필요한지 되새기게 한다.
물론 또래 청소년들 역시 현실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에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이겨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열세 명 쉼터 아이들의 이야기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청소년 문제는 누구나 겪을 수 있고 현실이 될 수 있는 절박한 문제이다. 개인이 흔들리고 가정이 붕괴될 때 가장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의 현실적 문제를 청소년쉼터라는 함축된 시공간 속에서 살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이다.
청소년의 현실 문제에 대한 대책과 복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청소년쉼터이다. 쉼터는 누구나에게 현실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복잡하고 거친 세상에서 누구든 집 밖의, 혹은 집 안의 폭력 속에 놓이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에도 길 위를 헤매고, 바깥에서 잠을 청하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일으켜주고 지켜주는 첨병이 바로 쉼터일 것이다.
쉼터에서는 ‘케이’라고 불리는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임상심리사 등의 종사자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쉼터는 전국에 136개소가 있는데, 쉼터 이용 청소년 수는 2010년 9,350명에서 2019년 32,402명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2021년 가정 밖 청소년은 12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에서 쉼터 이용자는 27%에 불과하다. 청소년을 더욱 촘촘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쉼터를 늘리고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수치상으로도 쉽게 드러난다. 이런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쉼터는 청소년 현실의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로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따라서 쉼터야말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실태를 실감나게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청소년쉼터 이야기를 건네는 이유일 것이다.
한 아이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는 부모의 양육과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진심어린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집 밖의 아이든, 집 안의 아이든 어른들은 최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부모와 사회의 역할이 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 결과 버려지고 상처 입은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 책에 실린 아이들 이야기가 우리 사회와 어른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흉터를 끌어안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들은 이 순간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복지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현장을 여러분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 이야기를 엮었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다. 그 일을 모든 어른과 청소년이 앞장서 다 함께 하기 위해서다.
“자, 이제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자!”고 당신에게 호소하고 있다.
추천평
이 글은 청소년 쉼터에서 일하는 케이(상담사)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입니다. 꽃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입니다. 삶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본능일 것입니다. ‘꽃들의 흉터’는 바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꽃들의 방황과 눈물의 흔적입니다. 아픈 노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어서고 싶습니다. 자기 삶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문을 두들기며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봐 달라고 외칩니다. 이 책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습니다. 생존을 위해 어두운 현실을 버텨내는 아이들의 목마름. 그들에게 물을 건네주는 모든 (케이) 선생님들과 버티는 아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야 할 때입니다. 언제나 저녁의 터널을 통해 밝아오는 새벽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 꽃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괜찮아요,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같이 가요.
- 김자연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