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는 1927년부터 1930년경에 장흥위씨 문중의 본산격인 하산재(霞山齋)와 행원문중의 석천재(石川齋)를 중심으로 장흥위씨 대동보인 『남북합보(南北合譜)』의 편찬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족보초안의 범례와 임원록으로 추정된다.
당시 추진되었던 남북합보 사업은 구체적인 사유는 확인되지 않으나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였으며, 이후 장흥위씨 대동보는 1999년 간행된 기묘대동보(己卯大同譜)에 이르러 비로소 통합 편찬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장흥위씨 족보사에 대한 후대의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남종이 관북 종설ㆍ진환ㆍ재필ㆍ재학ㆍ재학ㆍ재린 등이 방문했을 때 합보를 제의해 초안과 서문을 춘헌공과 대원공의 이름으로 써두고도 내지 못한다. 그 때가 1927년(丁卯)이다. 당시 남북의 합보를 위해 수단을 정리한 서류가 하산재에 보관돼 있다."고 했다.
본 자료는 임원록에 관북 지역 종인의 인명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남한과 관북 지역 종친들이 공동으로 족보를 편찬하고자 하였던 당시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문서는 장흥위씨 남북합보 편찬 시도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근대 시기 장흥위씨 문중의 계보 인식과 종친 조직의 통합 지향성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자료라 할 수 있다.(필자주)
長興魏氏大同文案序(장흥위씨대동문안서)
凡例(범례)
-. 惟我南北之宗惟我南北之宗累有合譜之論而未克者誠一欠事故詢議敦親睦事/ 우리 남종과 북종은 여러 차례 합보를 논의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하나의 아쉬운 일이었다. 이에 종친들과 상의하여 친족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 종족의 화목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 南宗入單或有後先故派系不失次序編輯則間有分編空行北案一時入單故連編登榟懸頭註以明派系事/
남종은 입단 시기에 선후가 있더라도 파계의 차례를 잃지 않도록 편집하였으며, 필요한 곳에는 빈 줄을 두어 구분하였다. 북안은 같은 시기에 입단하였으므로 연이어 편집하였다. 또한 머리글 주석을 달아 파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南宗以齒為(矛=>序)間寓微意北案依單入例事/ 남종은 연장자 순으로 배열하되 편집상 약간의 뜻을 담았고, 북안은 입단한 순서에 따라 수록하였다.
-.官爵以實職填書名下事/ 관직과 작위는 실제 역임한 직책을 이름 아래에 기록하였다.
-. 或有同名故書父名及居地而別之事/동명이인이 있을 경우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거주지를 적어 서로 구별하였다.
◇ 任員錄
직책: 신분 성명, 거주지
都有司: 幼學 魏啓泮, 古邑
別軍職: 魏啓忠, 杏園
別有司: 正言 魏鍾謙, 咸興
幼學 魏相, 會寧
校正: 幼學 魏啓文,
魏啓龍, 古邑
魏日煥, 杏園
掌財: 魏啓勳, 基洞
魏璟奎, 丹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