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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시킴을 말한다.
敎 : 가르칠 교(攵/7)
學 : 배울 학(子/13)
相 : 서로 상(目/4)
長 : 긴 장(長/0)
학원이나 학급에 급훈으로 많이 등장하는 명언성어다. 가르치는 일이나 배우는 일(敎學)이나 서로에게 도움을 줘 자라게 한다(相長)는 이 말은 교(敎)와 학(學)을 일로 삼는 학교의 스승이나 제자들뿐만 아닌 일반인에게도 항상 해당한다.
자기 분야에 아무리 정통한 사람이라 해도 막상 남을 가르치려 할 때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을 깨닫게 되고 부족한 부분을 더 연구하여 제자에 내놓는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이 두 번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
유명한 글귀이다. 이어서 구절 뒤로 이어진다.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어보지 않고서는 맛을 모르며,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은 점을 모른다.'
知不足然後能自反, 知困然後能自强, 故曰敎學相長.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학업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새내기 교사들은 배운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 가르치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연마해 나가면 늘어난 지식이 제자에 전달되고 자신도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뒤따라 배우는 사람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후학이기에 언젠가 스승을 능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므로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도 했다.
학문에만 한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직장을 잡은 신입 사원들에게 교육할 때도 자기의 업무를 이미 습득한 선배는 더 연구하여 가르쳐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과 같이 자만하지 않고 학문을 다듬어야 한다고 일깨운다.
⏹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시킨다는 말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다.
옥(玉)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道)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敎)와 학(學)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상(相)은 나무 목(木)에 눈 목(目)을 짝지은 글자로서, 나무 위에 올라가 보면 잘 보인다는 데서, 사람이 서로 보며 살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長)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서, '길다', '어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의 학기편(學記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 수록 겸허해 진다는 뜻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스승은 부족한 곳을 더 공부하여 제자에게 익히게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더욱 학식이 풍부한 인재로 성장한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했다. 즉, 후진자(後進者)는 젊고 기력이 왕성하므로 쉬지 않고 배우니 그 진보의 깊이는 두려워 할 만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서경(書經) 열명(說命)의 하편(下篇)에 보면,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 부열(傅說)이 교학상장(敎學相長)과 같은 뜻으로 효학반(斅學半)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즉, 가르치는 일의 절반은 자기 공부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효학반(斅學半)은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학학반(學學半), 교학반(敎學半)과 같은 말이다. 효학상장(斅學相長)이나 교학상장(敎學相長)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부열(傅說)은 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이다. 그는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룬 사람이다. 다음은 그가 군주에게 학(學)에 대해서 훈고(訓告)하는 내용의 말이다.
은(殷)나라의 재상 부열이 말했다. '모든 일을 배움에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斅學半).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斅學相長).
자기 몸을 수양할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지면 아무것도 안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에 힘쓰고,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 간다.
또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敎道)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스승과 선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스승이라는 본래 뜻은 스스로 승리한 자라는 뜻이고, 선생은 먼저 났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먼저 이루었다는 뜻으로 스승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학생은 이루는 것을 배우는 자 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 선생과 학생은 같은 길, 즉 전인(全人)이 되기 위한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누구 하나 선생이 아닌 자가 없고 생이 아닌 자가 없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다보면 아무리 학문이 깊은 사람이라 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를 하며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처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훈일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지루함이다. 일단 지루함이 들기 시작하면 일을 잘하기 어렵다. 지루함은 언제 찾아올까? 결과에 집착할 때 찾아든다.
하루라도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지루함이 바람처럼 찾아온다. 그러나 어떤 일은, 아니 대부분의 일은 한 세월이 지나서야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에 집착하면 큰일을 해낼 수 없다. 배우는 일도 그렇다. 예전의 학동이 산 속 스승을 찾아가면 나무하기 3년, 청소하기 3년을 거치게 했다.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 것 같다.
배우는 일은 수많은 단련을 요구한다. 가르치는 일도 그렇다. 가르침의 결과를 기대하면 곧바로 지루함이 온다. 한없이 가르치고 가르친 후에야 가르침의 효과가 나타난다.
학불염이교불권(學不厭而敎不倦)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가 공자(孔子)에게 '선생님은 성인입니까?'고 물었을 때 공자는 '나는 성인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어서 한 말이다.
학(學)은 배운다는 뜻이다. 염(厭)은 싫다는 뜻이다. 교(敎)는 가르친다는 뜻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자라게 한다. 즉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는 말이다.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게 된다는 뜻이다. 권(倦)은 게으르다, 쉬다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학불염이교불권(學不厭而敎不倦)은 배우는 것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하는 공자 같은 분이 배움에 싫증을 느끼지 않았음은 배움에 끝이 없음을 말해준다. 공자는 가르침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훌륭한 제자나 못난 제자를 구분하지 않고, 교육의 효과에 눈을 감고 한없이 가르쳤음을 의미한다. 배우고 가르침의 끝없음을 공자가 보여 준다.
⏹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서로 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린 영어 학습 참고서는 '정통종합영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1500만 권 정도 팔렸다. 1967년에 나왔는데, 1977년부터는 '성문종합영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저자는 송성문(宋成文) 선생이다. 원래 북한 출신으로 6·25사변 중에 단신 월남해 통역장교로 근무하다가 중등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해 60년대부터 마산고등하교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1965년 영어교사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뉴질랜드에 1년 파견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시험에 합격해 연수를 가서 영국과 일본 등지의 참고자료를 많이 가져와 저술한 책이 '정통종합영어'였다.
1967년께에 당시 최일류 고등학교인 서울고등학교로 발탁돼 갔다가, 다시 1년 만에 경복학원에 발탁돼 갔는데, 그 당시 그의 한 달 월급은 500만원이었다. 당시 500만원은, 서울시내 좋은 집 세 채 값이었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회사 설립할 때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했다.
그 뒤 그는 성문사라는 출판사를 차려 자기가 지은 영어참고서 5, 6종을 판매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한다. 이 돈을 문화재급 고서적을 구입하는 데 썼다. 수집한 서적을 국립박물관에 기증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국보 4점, 보물 22점 등 가치 있는 문화재가 많았다.
마산고등학교 24회 졸업생들이 졸업 40주년 기념식을 2005년 마산에서 열었는데 이때 송 선생을 초청하였다. 어떤 졸업생이 송 선생에게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하시지요?'고 말했다.
그러자 송 선생은 정색을 하면서 '아니야! 바로 여러분 동기생인 김종철 군이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해. 내가 마산고등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김군이 매일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내가 김군의 질문에 답하려고 밤새도록 공부했어. 내일 학교에 가면 김군이 또 무슨 질문을 할까 늘 두려웠지. 그러다 보니 내 실력이 계속 늘었지. 나를 이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 준 사람은 김군이야?'고 했다.
김종철이라는 분은, 그 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영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예기(禮記) 학기편(學記篇)에 '배워본 그런 뒤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 본 그런 뒤에 곤란함을 안다. 부족함을 안 그런 뒤에 스스로 반성하고, 곤란함을 안 그런 뒤에 스스로 강화할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知不足然後能自反也, 知困然後能自强也. 故曰, 敎學相長也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보다는 학생과의 질문토론을 통해서 더 확실한 교육이 되는 것이다. 학생도 강의를 듣기만 하지 말고, 예습을 해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 훨씬 얻는 바가 클 것이다.
교사나 교수가 학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학생도 얼마든지 교사나 교수를 성장하게 할 수 있다.
훌륭한 선생은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
산수 문제를 칠판에 풀던 선생님이 분필을 들고 머뭇거릴 때 끝나는 종이 울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선생님이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라며 칠판에 풀다 만 문제를 지우고 수업을 끝냈다.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저녁때 집에 다니러 온 작은아버지가 바로 풀어줬다. 밤새 문제 풀이를 외웠다. 다음날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이어 한 사람씩 나와 다음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는 넘어가고 그다음 문제부터 풀라고 시켰다.
학생들이 나와 칠판에 맡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생님이 풀어줬다. 다음 문제로 또 넘어가려 할 때 지난 시간에 풀다 만 문제가 있다고 내가 말하자 선생님이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손들고 풀겠다고 해 앞으로 나갔다. 외운 대로 풀다가 막혔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외워서 한 일은 언제나 막힌다. 선생님은 내가 채 풀지 못한 문제를 다 풀어주고 지우개로 지웠다. 분필을 건네주며 선생님은 내게 다시 풀어보라고 해 이해한 대로 제대로 문제를 다 풀었다.
선생님이 다른 일로 아버지를 만나고 가신 뒤 아버지가 찾았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자기도 풀지 못한 문제를 네가 풀었다더라”라며 칭찬했다고 했다.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거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학문이 높은 선비도 집 가(家) 자가 막힐 때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수록 겸허해진다는 뜻이다. 네가 공부해 깨달아 푼 문제도 아니고 작은아버지가 가르쳐 준 걸 선생님에게 뽐내려 한 일은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가르쳐준 고사성어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모두 자신의 학업을 성장시킨다는 말이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 편에 나온다. 원문은 “좋은 안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먹어 보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 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아버지는 “옛 어른들은 경전 등의 글이나 들은 말 중 몇 대목을 정해 스승이나 시관(試官) 또는 웃어른 앞에서 끊어 읽고 해석하는 것을 강(講)이라고 했다. 강을 듣고 스승이나 웃어른이 올바른지를 지적하고 평해주는 일을 의(義)라고 한다”라고 ‘강의’를 정의해 설명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그래서 강의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거다. 훌륭한 스승은 혼자 가르치지 않는다. 네게 문제를 풀어준 작은아버지는 선생님이다. 자신이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준 뒤 다시 풀어보라고 가르치는 네 선생님의 교수법은 훌륭하다”라며 “네 선생님은 다만 앞서 배운 선생이 아니라 요즘 보기 드문 진정한 스승이다”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선생님을 존경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아버지는 “요즘 선생은 흔하지만, 스승이 없다”라며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을 기념하는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생일에서 따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는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에서 ‘세계 적십자의 날’(5월 8일)을 맞아 자신의 스승을 찾아간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통 교사는 지껄인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해 보인다.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명언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배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선생님의 가르침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자녀들에게는 절대적이다. 손주들이 선생님을 만나기 시작하면 먼저 가르쳐 줘야 할 인성이 ‘존경심(尊敬心)’이다. 이때 아니면 배울 기회나 가르칠 기회가 없다.
▶️ 敎(가르칠 교)는 ❶회의문자로 教(교)의 본자(本字)로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合字)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敎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敎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그래서 敎(교)는 (1)종교(宗敎) (2)삼문(三門) 즉 교(敎), 율(律), 선(禪) 중(中)의 하나. 이 교는 경론(經論)으로써 신앙(信仰)의 근본을 삼음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본받다 ③가르침 ④~로 하여금 ~하게 함 ⑤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⑥종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연(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침을 교수(敎授), 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을 교육(敎育),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을 교과서(敎科書), 학교 교사 가운데, 오로지 수업에만 쓰이는 방을 교실(敎室), 가르치고 깨우침, 타이름, 훈계함을 교훈(敎訓), 가르쳐 기름을 교양(敎養), 가르치고 배우는 데 쓰이는 재료를 교재(敎材),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종교 단체의 모임을 교회(敎會),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종교 상의 이치나 원리를 교리(敎理),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교도(敎徒), 가르쳐서 익히게 함을 교습(敎習), 교재로 쓰는 책을 교재(敎本), 종교를 믿는 사람을 교인(敎人),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이라는 뜻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을 교외별전(敎外別傳),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 시킨다는 말을 교학상장(敎學相長),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교부초래(敎婦初來),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의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에 쓰인다.
▶️ 學(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은 ❶회의문자로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니 배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學자는 ‘배우다’나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學자는 臼(절구 구)자와 宀(집 면)자, 爻(효 효)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學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宀자 위로 爻자를 감싼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爻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學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子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學(학, 교, 할)은 (1)철학 또는 전문적인 여러 과학을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체. 곧 현실의 전체 또는 그 특수한 영역 및 측면에 관하여 체계화된 지식의 계통적 인식 (2)학문(學問) 등의 뜻으로 ①배우다 ②공부하다 ③흉내내다 ④모방하다 ⑤가르침 ⑥학교(學校) ⑦학문(學問) ⑧학자(學者) ⑨학통(學統) ⑩학파(學派) 그리고 ⓐ가르치다(교) 그리고 ㉠고지새(되샛과의 새)(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학교(學校),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학문의 실력이나 역량을 학력(學力),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을 학업(學業), 학문의 사회나 학자의 사회를 학계(學界), 한 학년 동안을 규정에 따라 나눈 수업 기간을 학기(學期), 출신 학교에 따른 연고 관계를 학연(學緣), 학문의 기술 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을 학술(學術), 공부한 이력을 학력(學歷), 공부하는 데 드는 돈을 학비(學費), 배워서 얻은 지식을 학식(學識),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학생의 무리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학도(學徒),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배우지 못함이나 학문이 없음을 불학(不學),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인간이나 인생이나 세계의 지혜와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 또는 개인이 설립한 교육 기관을 사학(私學), 외국에 가서 공부함을 유학(留學),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동안 수업을 쉬는 일을 방학(放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배움을 전학(轉學), 학문에 힘써 공부함을 면학(勉學),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는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학여역수(學如逆水), 외고 읽을 뿐으로 이해하려고 힘쓰지 않고 또 실천하지 못하는 학문을 기송지학(記誦之學),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널리 공부하여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함을 이르는 말을 박학독지(博學篤志) 등에 쓰인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❶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相자는 ‘서로’나 ‘모양’,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相자는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相자는 마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相자의 본래 의미도 ‘자세히 보다’나 ‘관찰하다’였다. 相자는 나에게 필요한 목재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자세히 보다’를 뜻했었지만, 후에 나무와 눈의 대치 관계에서 착안해 ‘서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相(상, 양)은 (1)얼굴의 생김새 (2)각 종류(種類)의 모양과 태도(態度) (3)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4)옛적 중국(中國)의 악기(樂器)의 한 가지. 흙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은 작은 북과 같음. 손에 들고 장단(長短)을 맞추어 두드림 (5)물리적(物理的), 화학적(化學的)으로 균질(均質)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6)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그 직위(職位)가 각료(閣僚)임을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서로 ②바탕 ③도움, 보조자(補助者) ④시중드는 사람, 접대원(接待員) ⑤담당자(擔當者) ⑥정승(政丞) ⑦모양, 형상 ⑧방아타령 ⑨악기(樂器)의 이름 ⑩자세히 보다 ⑪돕다 ⑫다스리다 ⑬가리다, 고르다 ⑭따르다 ⑮이끌다 ⑯점치다 ⑰생각하다 그리고 ⓐ빌다,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생김새나 모습을 양상(樣相),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양상을 위상(位相),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겉에 드러나는 추한 몰골을 흉상(凶相),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상호존중(相互尊重),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상사불망(相思不忘),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상즉불리(相卽不離) 등에 쓰인다.
▶️ 長(길 장/어른 장)은 ❶상형문자로 仧(장),兏(장)은 동자(同字), 长(장)은 약자(略字)이다. 長(장)은 머리털이 긴 노인이 단장을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나중에 노인이 전(轉)하여 나이가 위인 사람으로 관리(官吏)의 長(장), 또한 성장하다, 길게 자라다, 길다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長자는 '길다'나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長자는 머리칼이 긴 노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길다’였다. 長자는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후에 '어른', '우두머리'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長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張(베풀 장)자나 帳(휘장 장)자에 長자가 쓰이기는 했지만, 長자가 부수로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長(장)은 (1)어떤 조직체(組織體)나 또는 부서 단위의 우두머리(책임자) (2)긴 기다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오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길이 (5)늘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다 ②낫다 ③나아가다 ④자라다 ⑤맏 ⑥어른 ⑦길이 ⑧우두머리 ⑨처음 ⑩늘 ⑪항상(恒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릴 유(幼), 짧을 단(短), 늙을 노/로(老)이다. 용례로는 좋은 점을 장점(長點),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목숨이 긺을 장수(長壽), 맏 아들을 장남(長男),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오랜 기간을 장기(長期), 장편으로 된 노래를 장가(長歌), 길게 내는 소리를 장음(長音), 어른과 어린이를 장유(長幼),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사람의 존칭을 장로(長老), 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서 쪼갠 땔나무를 장작(長斫),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을 장고(長考), 아주 능한 재주를 장기(長技),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을 성장(成長), 모임을 대표하는 사람을 회장(會長),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조장(助長), 시간이나 물건의 길이 따위를 처음에 정한 것보다 늘이어 길게 함을 연장(延長),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특별히 뛰어난 장점을 특장(特長), 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유유서(長幼有序),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 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을 이르는 말을 장경오훼(長頸烏喙),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긴 눈과 날아다니는 귀라는 뜻으로 옛일이나 먼 곳의 일을 앉은 채로 보고들을 수 있는 눈이나 귀 곧 서적을 이름 또는 사물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널리 정보를 모아 잘 알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목비이(長目飛耳),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멀리 불어 가는 대풍을 타고 끝없는 바다 저쪽으로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는 말을 장풍파랑(長風波浪),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함을 일컫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날이 새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놓은 채 며칠이고 계속하는 술자리를 일컫는 말을 장야지음(長夜之飮), 길고도 긴 봄날을 일컫는 말을 장장춘일(長長春日),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길게 뻗친 숲의 깊은 곳을 일컫는 말을 장림심처(長林深處), 오랫동안 살아 죽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을 장생불사(長生不死), 늘 길거리에 모여 있으면서 뜬 벌이를 하는 막벌이꾼을 일컫는 말을 장석친구(長席親舊),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함을 일컥는 말을 장와불기(長臥不起), 먼 장래의 계책이라는 말을 장원지계(長遠之計), 긴 줄로 해를 붙들어 맨다는 뜻으로 시간의 흐름을 매어 멈추게 하려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을 이르는 말을 장승계일(長繩繫日), 장자의 일만 개의 등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부자가 신불에게 일만 개의 등을 올리는 반면에 가난한 여인은 단 하나의 등을 바치지만 그 참뜻만 있으면 가난한 여인의 한 등이 장자의 만등에 못지 않다는 말을 장자만등(長者萬燈), 부자는 3대까지 가기 어렵다는 말 곧 아버지가 고생해서 재산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인 2대는 그것을 잘 지키지만 3대인 손자는 생활이 사치하여 마침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룩한 가산을 탕진하는 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장자삼대(長者三代), 긴 베개와 큰 이불이라는 뜻으로 긴 베개와 큰 이불은 함께 누워자기에 편하므로 형제 간에 우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장침대금(長枕大衾)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