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14장 < 2 >) 1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 * --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 같은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바리새인 같은 사람으로 채워지면 외적으로는 훌륭한 교회로 부각될 것입니다.
모든 교인이 신앙생활에 열심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그 교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함보다는 서로가 자신을 높은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가 천국 안 가면 누가 가나 하는 마음으로 천국을 당연한 결과로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을 청한 분에 대한 감사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청함을 받았으되 잔치를 맛보지 못할 자로 규정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신앙을 외적인 열심에서 찾습니다. 열심이 있을수록 천국이 당연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을 받을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잔치에 청한 주인에 대한 감사함은 자기 의에 묻혀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 의가 중심되어 나 같은 자를 청한 주인에 대해 감사함이 없는 사람을 천국은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에는 우리들이 쉽게 순종할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참으로 그 명령이 부담이 되어지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며,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경우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친척과 고향을 버리면서까지 순종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예비하셨습니다.
지금 부당하고 부담되어지는 명령이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복을 심는 것이요 환란을 피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1. 어리석은 영혼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 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 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누가복음 14 :18-20)
최초의 초청을 수락한 사람에게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종을 보내는 것은 당시의 관례였으며 이때 불가피한 사유가 아닌 한 잔치에 불참하는 것은 매우 큰 결례(缺禮)였습니다.
심지어 아랍인들에게는 두번째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선전 포고로 간주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이 하나같이 일신상의 하찮은 일을 핑계로 하나님의 천국 초대를 거절하는 모습이 우리들의 때묻고 나태해진 어리석은 영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종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주인은 그들의 사유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핑계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그들의 행위는 피차의 인격적인 관계를 노골적으로 깨트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분노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닥칠 비극상이 어느 정도일 것인지를 분명히 나타낸 것입니다.
2. 아직도 빈자리가...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누가복음 14 :21-22)
하나님 나라의 초청 잔치에 이방인들을 포함한 만백성이 초대 됨을 뜻합니다.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자들은 유대인 가운데 소외되고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정죄받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이 엉겁결에 사양한다 하더라도 친철한 자세로 끈질기게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을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4 :23-24)
주인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한 사람들은 정식으로 초청한 사람과 시내와 거리와 골목에서 데려온 가난하고 병든 자들, 그리고, 길과 산울가에서 강권하여 데려온 자들입니다.
성 안에 살지도 못하고 길에서 방황하는 자이거나 산울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완전히 소외되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영역 밖에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주인의 집은 채워지도록 섭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구속사역이 완성되는 시기까지 '큰 잔치집'의 '빈 자리'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시는 명령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한 사람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한 유대인들이 맞게 될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말씀하심입니다.
3. 십자가를 지는 길.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 :25-27)
바리새인의 집을 떠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 하실 때에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무리가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레자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등극할 것을 기대하고 따르는 자도 있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무리들이 당신을 따름에 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뜻을 추종하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일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 중 후자의 것에 궁극적(窮極的)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면 예수를 따르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이요,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정하는 길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4. 바른 선택.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 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누가복음 14 :28-30)
망대를 건축하려는 사람이 자기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숙의를 하듯, 주님을 좇으려는 사람들은 그 제자로서의 삶의 성격을 먼저 파악해야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망대를 짓는 일은 넓은 지역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멀리 떨어진 많은 사람들의 눈에도 쉽게 띄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제자들의 삶은 증인적인 삶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 :31-33)
지혜로운 왕이라면 자기의 군대가 적의 군대를 이길 수 있는지 계산해 볼 터인데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되면 전쟁을 시작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일단 평화협정을 맺고자 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대적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그것은 보통 어리석은 짓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전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채 전쟁에 임하는 위험한 처사입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는 상대입니다.
그를 대적하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대적할 상대가 아니라, 화친하여 그의 보호하심을 구해야 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면 세상의 어떤 세력과 대적하여도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영적인 가치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복종 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선택인 것입니다.
5. 맛을 잃은 소금.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4 :34-35)
소금의 가장 큰 기능 중의 하나는 맛을 내는 일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대해 바로 이러한 기능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한 맛과 향기를 풍겨 주어야 합니다.
소금의 또 하나의 기능은 부패 방지의 기능입니다. 바른 행실을 통하여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입니다.우리에게 예수님의 맛, 향기가 없으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의 비웃음이 될 뿐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소금의 역활을 다 하지 못하고 미약한 상태에 있사오니 더 유익한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소금이 맛을 내며 부패를 방지함과 같이 우리가 이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진한 맛과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자 되게 하옵시고 바른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4. 28.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