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었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어 있거라.
이 시는 이미지가 연상이 잘 되는 것 같다.
봄에 봄꽃들이 화사하게 주변에 펴 있는 정거장에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 담배 피우는 남자의 그림자와 담배연기 위로 날아가는 비둘리들의 그림자가 얹어져 있을 것 같다.
책에서 사랑스런 추억은 윤동주의 향수를 담은 시이며 아마 도쿄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나와있다.
서울에 있던 시절은 봄, 아침, 희망과 사랑, 젊음 등의 밝고 사랑스러운 단어들과 연결된다.
이 시에서 나오는 기차는 시간을 달리는 것 같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이 연 다음에 장소가 달라진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있는 걸 보면 기차가 과거에서 현재로 실어다 줬다는 뜻일 것 같다.
기차를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1연에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는 윤동주가 말하는 젊음이었던 시절에 희망을 가지고 사랑을 품고 미래를 기다리고 기대했다는 뜻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6,7연에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흐르고 있고 자신이 계속 그 추억들을 서성이고 회상한다는 뜻 같다.
앞에 서울에 있던 때에는 희망과 사랑처럼 앞으로 올 것을 기다렸지만 동경에서는 반대로 희망과 사랑처럼 이미 지나간 것을 그리워했다. 희망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라면 사랑은 아직 오지 않은 것보다는 이미 있는 것에 애정을 가지는 느낌이다. 윤동주는 미래도 과거도 희망과 사랑을 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 설레게 , 또는 이미 온 것 처럼 가깝게 바라본 것 같다.
기억 전달자를 읽고 썼던 글에서 이런 생각을 썼었다
나는 사람이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타고나는 성향이라는 게 있지만 그 성향에 따라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되고 그 기억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예전에 철학책을 읽고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도
경험은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인생이고 그 인생이 그 사람이다.
라는 문장을 썼었다.
나는 아직도 주시하를 주시하로 구분하고 이희원을 이희원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인지 고르라고 하면 그 사람을 이룬 기억과 추억을 고를 것이다. 사람은 기억들의 집합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스런 추억을 읽으며 우리는 윤동주의 추억 곧 진짜 윤동주를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